146화
나에게 있어 지윤이는 어떤 존재일까.
침대에 누워 문득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가장 먼저 생각이 들은 것은 귀여운 여동생이라는 것이었다. 낳아준 부모는 달랐지만 나와 지윤이는 피가 연결된 다른 자매들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만약 지윤이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면 그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나는 지윤이를 도왔을 것이다.
올해초 지윤이가 나를 위해 그러했듯이 나도 분명 그렇게 했을 것이다. 어떻게든 돕고 싶어서, 가만히 혼자두고 싶지 않았기에. 하지만 나는 한심한 언니라 계속 도움만 받았다. 사실, 나는 지윤이가 나를 싫어한다고 계속 생각했었다.
어릴때 어머니에게 외면 받은 이후, 나는 다른 가족들과의 관계도 두려워져 완전히 벽을 두고 도망치고 말았다. 그건 새 어머니에게서 만이 아니라 지윤이도 마찬가지여서 지윤이가 매일 같이 방문을 두드렸어도 나는 문을 열어줄 수 없었다.
아직 어린 지윤이라면 모르지만 지윤이도 점점 나이를 먹고 성장하면 나의 이상한 점을 알아차릴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언니, 같이 놀자-.」
지윤이가 그렇게 이야기하며 방문을 두드렸을때 몇번이나 방문을 열고 싶었는지 모른다. 언제는 누군가와 다퉈서 다치고 왔다고 말해서 나도 모르게 문고리에 손을 뻣었지만 열 수는 없었다.
나는 겁쟁이였다.
결국 나는 도망친 것이다. 아버지로부터, 새어머니로부터. 그리고 지윤이에게서도. 명환이었을적에 나는 한번 사회에 맞서는 것을 선택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가족들에게 받은 차가운 외면뿐이었다. 그래서 새롭게 태어났을때는 솔직히 기뻤다.
성별이 바뀌었다는 것은 사소한 문제였다. 죽었다가 살아난 기쁨에 어찌 비할까. 하지만 동시에 불안감도 느꼈다. 이번에도 실패할 것같아서.
처음 눈을 떴을때 시야에 들어온 어머니는 굉장히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그녀는 나를 껴안고 눈물을 흘리며 많은 이야기를 했다. 나는 사랑 받은 아이라고. 모두에게, 그리고 이 세상에게.
어머니가 지켜봐줄게.
이제부터 시작 될 너의 이어달리기를 곁에서 응원해주지는 못하겠지만. 이 엄마가 너를 언제나 보고 있다는 것만은 잊지 마렴.
멈추고 싶을 때가 있을지 몰라. 주변을 둘러보고 울고 싶어질지도 몰라. 또는 달리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지도 모르지. 하지만 명심하렴. 설령 주변에 아무도 보이지 않아도, 아무도 너를 이해해주지 않아도 이 엄마는 우리 딸을 응원하고 있을거야.
너는 강한 아이란다. 엄마는 믿어. 우리 수연이는 분명 모두에게 사랑 받을 것이라고.
어머니의 유언.
어머니의 말을 들으며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느껴지는 무한한 사랑. 전생의 어머니도 내가 태어났을때 이런 눈으로 바라봐 줬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생의 부모님이 나에게 보내던 시선은 언제나 차가움뿐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그것은 이젠 알 수 없는 것이다. 이미 지나가버린 일이니까.
나는 이 세상에 새롭게 태어나, 송명환이 아닌 이수연으로서 살아가게 되었다. 어머니의 유언처럼 사랑받고 싶었다. 모두에게 사랑받는 그런 아이가 되고 싶었다. 전생처럼 그렇게 외롭게 쓸쓸히 죽고 싶지 않았다. 모두에게 둘러쌓여 행복하게 웃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노력했다. 이수연으로서, 부모에게 사랑받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나를 봐주지 않았고 새 어머니는 나를 두려워했다.
실패한 것이다.
나는 자신을 잃었다. 혼자만의 세계속에서 모든 것을 거부하고 그렇게 홀로 고독히 남았다. 그렇게 모두에게서 도망쳤다. 하지만 포기하지는 않았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말했던 것처럼, 나는 언젠가를 위해서 계속 달렸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혼자만의 쓸쓸한 이어달리기를 하며 계속 살아왔다. 사랑받는다- 그건 나에게 그저 꿈같은 말이었다. 단지 나는 어머니의 말을 충실하게 따랐을뿐이다. 아무것도보이지 않고 혼자 남았더라도 모든 것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계속 달렸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해 누구와의 인연도 만들지 못한체 중학교를 졸업했다. 나의 마음은 점점 현실과 동떨어져 차가워져 갔다.
이 달리기는 언제까지나 혼자만의 달리기가 될 것같아 무서워졌다. 어머니가 바라는 사랑받는 아이는 영영 되지 못할 것같았다. 하지만 사람이 무섭고, 다가가는 것은 두려워서 내가 직접 무언가를 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고등학생이 되었다.
나는 혼자 달리고 있었다. 계속, 계속. 하지만 어째서인지 내가 달리는 트랙 위로 다른 사람들이 멋대로 끼어들었다. 바라지 않고 거부했건만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생겼다.
귀찮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섭다고 생각했다.
왜 갑자기 나타나서 나에게 잘해주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거부했다. 도망쳤다. 하지만 어김없이 나를 따라와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내가 어디 숨어있건 찾는 건방진 녀석도 있었다.
하지만 그 제멋대로인 사람들 덕에 나는 내가 보이지 않은 곳에서 나를 응원하던 아버지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지윤이가 나의 뒤를 따라 달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동생은 등 뒤에 바짝 붙어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몰랐다. 정말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무서워서, 두려워서 계속 도망치고 외면해서 알 수 없었다. 앞만 보고 달렸기에 뒤를 볼 수 없었다. 분명 그럴 것이라 생각했던 내 예상은 그저 바보같은 오산이었을 뿐이다. 나의 재능을 경멸할 것이라 생각한 여동생은 전혀 나를 경멸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위해 주었다. 나를 여전히 좋아주고 있었다. 더이상 어린시절에 하던 트윈테일을 하지는 않았지만 나와 같은 머리모양을 하고 나를 사랑해주었다. 어째서 지윤이가 더이상 트윈테일을 하지 않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분명 무슨 이유가 있겠지. 지윤이는 나를 계속 믿어줬다. 그러니 나도 지윤이를 믿고 기다릴 것이다.
도망쳤다.
계속 도망치고 숨어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지쳤어. 도망치고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게 숨어있는 것에는 이제 지쳤다. 아무리 꼭꼭 쑴어도 귀신같이 찾아내는 녀석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아버지와 지윤이가 걱정하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제는 도망치지 않는다.
나는 아직 어리다. 이제 겨우 고등학생이 됐을뿐이다. 전생에 몇년을 살았건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나는 송명환이 아니라 이수연인 것이다.
이수연은 이 세상에 태어난지 이제 17년이 됐을뿐인 소녀다. 그것에 전생의 시간을 합치는 짓은 무의미하고 바보같은 짓일뿐이다. 전생은 전생일뿐이니까. 물론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있고 경험은 있다. 완전히 떨쳐내는 것은 무리일 것이라 생각한다.
명환으로 살았단 20여년이 이수연에게 아무 영향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나는 그것을 앞으로도 더욱 외면할 것이다. 이것이 내 마지막 도망침이다. 이수연으로서 나는 이 세상에 살아간다. 그것에 전생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
내가 그렇게 정했으니까.
" ...나는 왜 같이 나와야 되는건데."
멍하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내 옆에서 투덜거리는 얼굴이 들어왔다. 새침한 눈매와 밉살맞게 비틀린 입매. 아까 집에서 나올때마다 투덜거리던 지윤이었다. 어제 상혁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들어온 지윤이는 바로 오늘 내가 상혁이와 함께 새 어머니의 생일 선물을 사는게 어떠냐고 이야기를 했다.
어머니의 생일을 준비하는 것은 오랬만이네... 그런 생각을 하며 생각하던 나는 그것에 지윤이도 함께 가기로 결정했다. 지윤이는 '이게 아닌데...'라고 알 수 없는 말을 중얼 거렸지만 무시하기로 했다.
솔직히 어제 지윤이와 상혁이가 둘이서 뭘하면서 그렇게 늦게까지 돌아다녔는지는 정말 궁금했지만 넘어가기로 했다. 설마 지윤이에게까지 플레그를 박았다거나 한다면 여동생과 언니의 플레그 회수전이 되는건가-라는 망상을 하기도 했지만 그럴리는 없겠지. 아무리 라이트 노벨 주인공같은 녀석이지만 그런 것을 할 녀석은 아니다.
그런 것도 나름 신선한 전개였을테지만 솔직히 나로선 사양이다. 그런건 심장이 아프다구...
" 어머나, 너의 제의가 아니었니? 그리고 어머니의 생일을 준비하는 것은 옛날부터 너와 내가 함께 같이 가는 것이었잖아."
" 그건 그렇지만...."
어린시절 나와 지윤이는 어머니의 생일마다 이렇게 준비를 하러 나왔었다. 선물을 사고 생일 케이크를 사고 그러며 어머니가 기뻐해주실까 이야기를 나눴었다. 물론 몇번하지는 못했고 내가 처음으로 케이크를 만들어 본 그 날은 화려하게 쫑나버렸지만.
" 그리고 그런 것까지는 신경쓸필요 없어."
" 응?"
내가 살짝 코웃음치며 말하자 지윤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봐온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껴안아주고 싶었지만 우선은 참기로 했다. 이런 거리에서 그런 짓을 할 정도로 나는 대담하지 않았다.
" 너 이 언니를 생각해서 그런거지 않니. 유상혁과 내가 데이트하게 하려고."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나의 말에 지윤은 입가를 새치름하게 입가를 말아올리며.
" 헤에, 의외네. 그 말은 내가 언니가 그 구더기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사실을 알고 그런다는 것을 알았다는 거구나?"
최근까지는 그래도 이름으로 불렀던 것같은데 다시 구더기가 되어버린 상혁이다. 어제 무슨 일을 저질렀기에... 아무튼.
" 그래. 최근 내가 좀 표시나게 그리했으니 네가 알아차렸구나 싶었어. 어제 네말을 듣고 아차 싶었지."
" 하지만 예상외잖아. 분명 아니라고 부정하리라 생각했는데."
" 어머나? 요즘 츤데레는 당사자를 제외하고는 솔직한게 대세란다."
"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지윤이는 고개를 푹떨구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며 '언니는 그 이상한 말버릇만 아니면 좋은데...'라고 건방진 소리를 이야기했다. 안타깝지만 이젠 정착해버린 말투라서 어쩔 수 없는걸.
============================ 작품 후기 ============================
이젠 진짜 연재속도를 올려야지! 요즘 왜이리 연재속도가 느려진건지..
거기다 전편에서 그런 실수를! 110화에서 설마 그렇게 언급했는지 까먹었었네요. 110화를 나중에 손을 봐야겠어요! 완결이 앞으로 다가오니 미묘한 귀차니즘이 발동해서 연재주기가 느려졌네요. 빨리 빨리 연재해서 완결을 내야겠네요. 빨리하면 이주면 완결날 것같은데... 사실 20kb씩 연재하면 많아봐야 열편정도에 완결일것이라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