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물론 이제 와서 언니에게 내가 무슨 말을 해봤자 듣지도 않을 것이다. 최근 언니의 행동과 말로 볼때, 언니는 이 남자에게 완전히 반해있다. 나의 입장에선 대체 이 남자의 어느 구석에서 언니가 빠진건지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의 입장이고 언니의 경우엔 다르겠지.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이렇게 만나자고 한 것이다.
" 아무튼 그런 이야기는 여기서 멈추고, 아까 이야기하려고 했던 언니와 어머니가 어째서 지금같은 상황에 놓이게 된건지 이야기하도록 할게요."
" 그래, 알았어."
혹시나 계속 이상한 헛소리를 하려나 생각했지만 다행히도 그는 더이상 특별한 말을 하지 않고 고개만을 끄덕였다. 난 그런 그의 모습에 안도의 한숨을 쉰 뒤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까... 어머니에 관한 것만 이야기하자면 7년전 어머니의 생일에 있었던 일만 말하면 족하지만, 역시 이런 것은 맨 처음부터 이야기하는게 좋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때는- 아직 자신이 어리던 시절.
다섯 살의.
봄.
그것은 꽤나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어머니는 나의 친 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신 이후 상당히 실의에 빠져있었다. 특별한 불화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저 평범한 가정의 일원이었던 어머니는 남편을 잃은 것에 크게 슬퍼하고 있었다.
나는 아직 어려서 아버지가 단지 어디로 멀리 가버렸다-라고만 생각해서 그것도 모르고 어머니에게 아버지를 어서 데려오라고 말하며 때를 썼고 말이다.
그때의 나는 어렸다. 올바른 판단을 바라기엔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다.
아직 어린 다섯살의 나이.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을 받아들이기엔 모든 것이 너무나 여렸으니까. 그런 자신을 생각한 것인지. 어머니는 그 다음 해의 봄.
내가 여섯 살이 되는 해의 봄에 재혼을 했다. 무뚝뚝해보이지만 자상한 말투의 남자와.
솔직히 나는 그때 지금의 아버지를 꽤 무서워했다고 생각한다. 얼굴도 무뚝뚝하고 말도 많지 않아서, 전의 아버지와는 너무나 달랐기에 쉽게 적응할 수 없었다. 만약, 그 옆에 있던 또래의 작은 여자아이가 있지 않았다면 나는 꽤 오랫동안 아버지를 무서워했을 것이다.
『당신이 새로운 어머니인가요? 저는 이수연이라고 해요!』
검은 긴 마리카락을 귀엽게 올려 묶고 있는 또래의 소녀. 그녀의 이름은 이수연이었다. 자신보다 한살 연상이었기에 이제부터 자신의 언니가 될 소녀였다.
어머니는 그런 그녀의 모습에 조금 당황한듯 싶었으나 새롭게 지내게 될 가족이고, 소녀역시 새로운 어머니를 무척 잘따랐기에 그 만남에 특별한 불협화음이 끼는 일은 없었다.
처음엔 조금 낯을 가리던 나도 소녀의 행동에 금방 친자매처럼 지낼 수 있게 되었다. 당시의 어린나는 그렇게 자신의 언니가 된 '이수연'의 이상한 점을 크게 알 수 없었다.
물론 조금은 인지하고 있었다. 아무리 어렸던 나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언니가 아버지와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는 것과, 그럼에도 새로운 어머니에게 너무나 쉽게 적응하고 친 어머니처럼 대한다는 것은 위화감이 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나의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것처럼.
그것에 이상함을 느낀 것은 나 뿐이 아니었다. 어머니 또한 그것을 얼마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아니, 어머니는 어린 나 이상으로 그것을 제대로 보고 있었다. 자신의 친 아버지와 한마디도 대화하지 않는 여자아이를.
그럼에도 너무나 밝고, 자신을 친어머니처럼 대해주는 아이를.
처음에는 단지 이 아이가 어머니의 정이 그리웠구나-라고 생각했던 어머니지만 그런 생각은 함께 살아가며 조금씩 사라졌다.
소녀는 명랑했다.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와 한마디의 대화도 하지 않는 아이라고 보기엔.
소녀는 어른스러웠다.
도무지 이제 일곱살이 된 여자아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물론 나는 그런 점을 제대로 인지할 수없었다. 나는 겨우 여섯살이었고, 언니는 그저 나에게 잘해주는 훌륭한 언니였을 뿐이다. 나는 언제나 언니와 함께 다녔다. 함께 유치원을 다니고, 초등학교도 가서도 언제나 언니의 뒤를 따랐다.
귀찮을만도 했으련만, 언니는 그런 나에게 조금도 불평하지 않고 웃어주었다.
그런 언니를 따르는 아이는 나 뿐이 아니어서, 언제나 놀때는 다른 아이들이 와서 함께 놀곤 했었다. 언니는 언제나 뭐든 잘했고, 못하는 것이 없었다.
아이들이 하기 힘들고 곤란한 일도 언니의 손에 걸리면 금방 해결할 수 있었기에 언니는 주변 아이들의 우상이었다. 나 역시 그런 언니의 등을 보고 자랐고, 언제나 나도 언니처럼 되고 싶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렇기에 몰랐다.
나는 언제나 언니의 등만을 보고 있었기에, 언니가 무슨 얼굴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뒤를 돌아 나의 손을 이끌어주는 언니는 언제나 웃고 있었고 단 한번도 약한 소리를 하지 않았다.
그때쯤 이었을까.
어머니의 태도가 점점 이상해지기 시작한게.
어머니는 언니와 정말 사이좋은 딸과 엄마의 사이가 되고 싶어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조금씩 조금씩 언니를 꺼려하기 시작했다. 그때의 나는 어머니가 왜 그러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어머니는 그때 이미 언니의 이상한 점을 깨달아 가기 시작한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어머니를 신경쓰지 않았다. 그저 언니와 노는 것만으로 바빠서 언제나 언니의 뒤를 쫓아다니고, 함께 놀고 그랬다.
초등학교 2학년인가. 초등학교 운동회가 열렸던 때라고 기억한다. 그때 내가 참가했던 종목은 가족들과 함께 달리는 것이었다. 아이들에 따라 부모와 달리는 아이들도 있었고, 형제 자매가 있는 아이들은 자신의 형이나 오빠. 또는 누나나 동생, 언니와 함께 달렸다.
나 역시 언니와 함께 그것에 참여하게 되었었다.
짐이 되지 않도록 그동안 엄청 열심히 연습했었다. 나는 달리기를 잘하지 못하였기에 특히 더 열심히 해서 이번만큼은 언니와 나란히 달리고 싶었다. 언니에게 정말 잘했구나, 하고 칭찬받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넘어지고 말았다.
너무 기세를 탔던 것이 문제였는지, 아니면 함께 달리는 것에 익숙하지 못했던 탓인지는 알 수 없다.
나는 넘어져, 무릎이 까지고 발목을 접질려서 제대로 달릴 수 없었다.
눈물이 나왔다. 왜 나는 이런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인가 싶어 계속 눈물이 나왔다. 언니가 화낼거야. 그렇게 생각하며 넘어진 체로 일어나지 못했다.
그때였다.
언니는 자신과 그다지 차이도 나지 않는 나를 등에 업었다. 그리고 울고 있는 나를 향해 고개를 슥하고 돌리며 언제나처럼 활기차게 웃었다.
『 지윤이가 너무 빨리 달려서 언니가 미처 발을 맞추지 못했구나, 미안해.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언니에게 맡겨줘.』
무거울텐데, 언니는 나를 업고 일어나 달렸다. 그리고 미안해서 입을 꾹 다문 나에게.
『 응원해줄래? 지윤이가 뒤에서 응원해준다면 힘이날거야.』
그렇게 말하며 달렸다. 평상시의 언니라고 보기엔 느렸다. 당연한 이야기다. 자신과 키도 몸무게도 비슷한 아이를 업고 달리는 것은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이 된 언니가 하기엔 무리였다. 하지만 언니는 해냈다. 그 작은 몸에서 어떻게 그런 힘이 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언니는 자신을 업고 달렸다.
경기를 하는 누구보다 느렸지만 나를 업고 끝까지 달렸다. 나는 그런 언니의 뒤에 업혀 언니가 바란 것처럼 응원했다. 언니 정말 최고-라고.
그렇게 언니는 나를 안고 제대로 경기를 끝냈다. 결과는 두말할 것도 없이 꼴찌였지만 언니는 나와 함께 끝까지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좋았다며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리고 내가 바랐던 것처럼, 지윤이는 정말 열심히 했다고 칭찬해주었다.
언니는 그랬다. 언제나 나를 생각해주고 주변을 생각하는 그런 착한 아이였다.
하지만 내가 그런 언니를 볼 수 있었던 것은 그 해 가을까지 였다.
아직 10월이었지만 바람이 유독 차가운 때였다. 나와 언니는 어머니의 생일을 준비하기 위해 둘이 함께 밖에 나왔다. 언니는 이번에 어머니에게 깜짝 파티를 해서 놀라게 해주자고 말하며, 기운찬 미소를 지었다.
나 역시 최근 언니를 조금 이상하게 대하기 시작하는 어머니가 마음에 걸렸기에 둘이 사이 좋게 되기를 바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와 함께 어머니의 생일 선물을 사고, 깜짝 파티를 준비하기 위한 이런 저런 재료들을 샀을 때는 하늘이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언니가 늦었다고 하며 집에 돌아가려던 그때, 거리에서 큰 사고가 났다. 그것을 잠시 구경하던 우리는 더 늦어지면 안되겠다 싶어 급히 지름길인 골목으로 들어갔고, 그곳에서 만났다.
울고 있는 남자아이. 그 아이는 나와 언니 또래정도로 보이는 아이였다. 길을 잃은걸까, 아니면 무슨 일이 있는 걸까.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머뭇거렸지만 언니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그 아이를 향해 걸어갔다. 언니가 말하길, 아까 나의 어깨를 치고 갔던 아이야- 라고 설명하면서.
우리가 그 아이를 경찰서에 데려다주고 집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한밤중이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걱정하고 있었던 터라 크게 혼날 것이라 생각했지만, 언니의 얼굴을 본 어머니는 어째선지 시선을 피하며 작게 주의만을 주었다.
나는 그것이 이상했지만 아직 어렸던 나에겐 그저 혼나지 않았기에 다행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 어머니의 생일날.
나와 언니는 어머니를 깜짝 놀라게해주기 위해 집을 꾸몄다. 어머니가 마침 일이 있어 나간 사이, 파티준비를 열심히했다. 거실에 풍선을 메달고, 언니는 케이크마저 직접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 정말 멋지게 파티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우리 둘은 어머니가 기뻐해 주실까?하고 생각하며 어머니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러기를 한시간, 어머니는 다행히 늦지 않게 집에 돌아오셨다.
그리고 그것을 기다린 우리는 함께 폭죽을 터트리며 어머니를 반겼다.
어머니는 우리의 행동에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나는 그런 어머니의 얼굴이 깜짝 생일파티에 놀라서 그런 것으로 알았기에 신이나서 어머니의 손을 잡고 언니가 만든 케이크가 있는 곳까지 안내했다.
어머니는 언니가 만든 케이크를 눈앞에 두고 아무 말이 없었다. 감동한 것일까? 아니면 왜 아무런 말이 없는거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어머니의 반응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분명 엄청 기뻐할 것이라 생각했건만 어머니의 반응은 무척이나 무미건조 했다.
『 에, 음. 엄마. 이거 지윤이랑 제가 함께 준비한 생일 선물이에요.』
어째서인지 반응이 없는 어머니의 모습에, 언니가 조금 어색한 얼굴로 함께 준비한 선물 상자를 품에서 꺼내 어머니를 향해 예쁘게 웃으며 내밀었다.
하지만 그것이 잘못이었을까.
어머니는 그런 언니의 선물을 손으로 쳤다. 그것은 거절하기 위해 그 선물을 쳐내었다기보단 반사적으로 쳐내었다는게 옳을 것이다. 말하자면, 그때의 어머니는 공포심마저 깃든 눈으로 언니를 보고 있었다.
어머니를 향해 내민 선물이 내쳐진 것에 굳어있는 언니를 당황한듯이 바라보던 어머니는 마치 변명이라도 하듯 말을 하기 시작했다.
『 이상하잖아, 너 정말 이상하다고.』
최근 몇년간 어머니는 언니를 조금 꺼려한다는 기분이 없잖아 있었다. 그리고 그 마음이 오늘을 계기로 터진 것인지 어머니는 언니를 보며 하나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분명 언니에게 잘 대해주려했다. 새로운 어머니로서 가족이 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언니는 어머니의 생각한 보통 아이와 달랐다.
어머니는 말했다.
어째서 아버지와 한마디도 하지 않는 것인가.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도 어떻게 명랑하게 있을 수 있는 것인가.
그럼에도 새로운 가족인 어머니와 나에겐 잠깐의 꺼리낌도 없이 진짜 가족과 같이 대할 수 있는 것인가.
가족이라는 것은 누가 알려주는게 아니다. 아이가 눈으로서 보고, 귀로 듣고 생활하며 체득하는 것이다. 하지만 언니에겐 태어날때부터 어머니가 없었다. 아버지와는 한마디의 대화도 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그림으로 그린 것같은 이상적인 딸의 행동을 보여주는 언니의 모습은 어머니에게 위화감을 주었다. 단 한번도 제대로 가족을 맛본적이 없는 아이가 누구보다 완벽하게 행복한 가족을 알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는 처음엔 그것을 단순히 언니가 tv에서 보거나 동화책으로 읽은 것을 흉내내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과는 달랐다. 어머니와 언니의 아버지가 재혼한 이후에도 언니는 아버지와 조금도 대화하지 않았다. 마치 깔끔히 잘라낸 것처럼.
그럼에도 나와 어머니에겐 멋진 언니로서, 귀여운 딸로서 행동했다. 어머니는 그 위화감을 깨달았다. 언니의 나이는 그때 겨우 일곱살. 지금은 열살이었다. 그런 행동을 생각하고 해내기엔 너무 어렸다.
보통의 아이라면 새로운 가족을 어색하게 생각하고, 아버지에게 의지하는 것이 보통이다. 만약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하더라도, 한마디의 대화도 하지않는 것은 이상했다. 거기다가 그러면서 새 어머니와 그 딸에겐 친 어머니와 친동생과 같이 대한다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이상한 일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언니는 그 또래의 아래라고 보기엔 너무 어른스러웠다. 그리고 못하는 것이 없었다. 공부는 물론, 그 사소한 어휘도 아이의 것이라기엔 이상했다. 바로 그날 케이크를 직접 구운 것만해도 이제 열살인 아이로선 엄청난 일이었다.
물론 어린시절부터 케이크를 만드는 것을 배웠다면 그럴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언니가 케이크를 집에서 구운 것은 그 날이 처음이었다. 요리는 가끔 했지만 그 역시 아이의 솜씨라고 보기엔 힘들정도.
그 모든 것이 어머니에겐 이상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이상함은 공포로 다가왔다. 두려움을 일으켰고 어머니에게 언니를 거부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즉, 그때의 어머니는 세상에 다시 없을만큼 언니를 두려워했다.
어머니의 입에서, 나온 그런 말에 언니는 눈을 크게 뜨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언니의 손을 쳐내고, 멍하니 있는 언니를 밀치고 소리치는 어머니의 말에 언니는 조금도 반응 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계속해서 말했다.
너는 이상하다고.
네가 무섭고 두렵다고.
너를 도저히 사랑할 수 없다고.
언니는 그 말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숙이고 멍하니 있었을 뿐이다. 나는 언니에게 소리치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그만하라고 말하며 울었지만 어머니는 지금까지 생각하고 참고 있던 것을 모두 이야기 하듯 멈추지 않았다.
나는 그저 언니와 어머니가 사이좋게 되기를 바랐을뿐인데.
결국 어머니의 생일파티는 그대로 끝났다. 언니는 방에 들어가버렸고, 어머니는 다시 밖에 나가버렸다. 언니와 함께 준비한 생일상에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밝고 환하게 빛나리라 생각했던 케이크는 촛불이 밝혀지는 일도 없이 덩그라니 남아버렸다.
나는 훌쩍거리고 울며 혼자 그것들을 정리했다. 언니와 즐겁게 웃으며 붙였던 풍선들 때고, 함께 만든 음식들을 버리고. 언니가 행복하게 만들었던 케이크를 조금 잘라서 입에 넣었다.
달았다. 그리고 맛있었다.
정말 처음한 케이크라고 생각할 수없을만큼 맛있는 케이크였다. 어머니도, 언니도 함께 먹었으면 좋았을텐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예쁜 모양의 케이크를 냉장고에 넣었다. 아무도 먹지 않겠지만 버리는 것은 아까웠다.
언니가 어머니를 생각하며 만든 케이크다. 그것이 버려지는 것은 너무나 슬펐다. 오직 나라도 그것을 조금씩 먹을 생각이었다.
그 뒤, 언니는 더이상 어머니와 제대로 된 대화를 하지 않게되었다. 극히 필요한 말을 할뿐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전의 사랑스런 아이의 모습은 조금도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나에게도 더이상 멋진 언니로서 행동하지 않았다. 언제나 함께 손을 잡고 밖에 나가던 언니는 이제 없었다.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 언니~. 밖에 나가자.』
방의 문을 두드려본다. 하지만 대답은 없다.
『 언니-.』
아무리 불러도 더이상 언니는 나와 놀아주지 않았다. 더이상 머리를 쓰다듬어주지도 않았다. 즐겁게 웃어주지도 않았다.
잘했다고, 칭찬해주지도 않았다. 언니는 내가 싫어진걸까.
『 언니, 나 다쳤어! 그리고 요즘 계속 이상한 애들이 괴롭혀서...』
혹여 내가 다치거나, 누군가에게 괴롭힘을 받는다면 전처럼 밖으로 나가서 혼내줄까 싶어서 이야기해도 반응이 없었다. 전에는 살짝 긁힌 상처도 큰일이라며 그렇게 호들갑떨었으면서 지금은 피도 나는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언니-, 같이 놀자.』
매일 매일, 언니의 방문을 두드렸지만 그 뒤 언니가 나를 제대로 보아주는 일은 없었다. 언니는 나를 피하는 것인지 모른다. 어머니가 그랬듯이 내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나 역시 그런 시선을 보내지 않을까 두려워 진 것이다.
그때의 나는 몰랐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나이를 먹고,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서도 언니는 변하지 않았다. 나 역시 더이상 언니의 방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언니가 싫어져서가 아니었다. 단지 더이상 이런 것으로는 언니를 도울 수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뿐이다.
나는 다시 언니와 함께 놀고싶었다. 예전에 그 사이좋았던 자매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언제였을까. 나는 아버지를 따라 언니의 죽은 친어머니의 묘소를 간 일이 있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저 언니를 낳아준 언니의 친 어머니가 누구인지 조금 알고 싶었을 뿐이다.
아버지는 묘소를 바라보며 나에게 말했다.
『 신비한 사람이었지. 그리고 언제나 말했단다. 이 세상에 살아가는 것은 하나의 이어달리기와 같다고. 누군가가 건내준 바턴을 들고 건내줄 사람을 향해 쉼없이 달려가는 이어달리기처럼. 우리는 저마다 누군가에게 받은 무언가를 짊어지고 달려간다고. 자신이 안고 달렸던 무언가를 바턴처럼 건내주게 될 사람을 만날때까지 말이야.』
그것은 알고 있는 말이다. 언제나 언니가 입버릇처럼 어린 나에게 했던 말이기도 하다. 그 말을 했더니 아버지는 웃으며 그녀석이 마지막에 수연이를 안고 이런 저런 소리를 하며 이야기하긴 했었지. 설마 기억하고 있을줄이야-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며 슬픈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 나 역시 한가지 바턴을 그녀에게서 넘겨받았다. 바로 수연이를 앞으로 지켜주기를, 그리고 행복하게 만들어 달라는 마음이었지. 하지만 나는 그것을 솔직하게 행할 수 없었다. 후회하고 있지. 하지만 이제와서 내가 무슨 염치로 수연이의 앞에 서겠니.』
그 목소리는 너무나 조용했고, 그리고 슬펐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언니는 계속 혼자였지만 혼자는 아니었다고. 단지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언니를 사랑한다. 하지만 언니는 그것을 모른다. 그리고 언니의 죽은 어머니 또한 언니를 무척 사랑했을 것이다.
물론 언니는 아마 모를 것이다.
그런 것은 너무 슬펐다. 언니는 계속 혼자였다. 어린시절, 나와 놀고 있던 그때의 언니도 아마 마찬가지일 것이다. 언니는 계속 쓸쓸했다. 그래서 힘냈던 것이다. 하지만 무엇하나 제대로 되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가 언니의 친어머니에게 받았던 그 바턴을 가지고 싶다고. 언니를 지키고 행복하게 만들어 달라는 그 마음을 받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받았다.
그 마음을 손에 쥐게 되었다. 언니를 향해 달리는 언제 끝날지 모를 이어달리기를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고등학생을 앞두고 있는 지금까지 계속 되었다. 그리고 이제 그런 나의 이어 달리기는 끝날지도 모른다. 언니는 고등학교에 가고 나서 많이 달라졌다. 그것을 깨달은 것은 언니가 수학여행에 갔을때 였다.
언니의 방을 정리하던 나는 침대밑에서 오래된 스케치북을 볼 수 있었다. 어린시절 언니가 그렸던 그림. 언니가 웃는 얼굴로 모두와 함께 달리기를 하고 있는 그림이었다. 응원을 하고 있는 사람도 많았다. 그리고 몇장을 넘기자 그곳에는 혼자 달리고 있는 언니의 모습이 있었다.
응원하는 사람도, 경쟁하는 사람도 없었다.
마치 혼자가 되어버린 언니를 이야기하는 듯이.
나는 그것을 버릴까 생각하다가 언니가 볼 수 있게 다른 곳에 두었다. 그리고 최근, 한번 언니의 방을 청소할 일이 있어 들어갔을때 다시 스케치북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달라진 그 그림도 볼 수 있었다.
전에 혼자 달리고 있던 언니의 그림은 언니가 새롭게 채워넣은 것인지 달라져있었다.
조심스럽게 나마 응원을 하고 있는 아버지가 있었고, 내가 있었다. 학교에서 만난 언니의 친구들이 그려져 있었다. 전과 같이 혼자서 달리고 있는 쓸쓸한 그림이 아니었다.
언니는 더이상 과거의 언니일 수는 없다. 더이상 그런 밝고 명랑한 언니가 되는 것은 무리였다. 물론 요즘엔 간혹 그때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 모습 또한 완전히 그때 당시와 같은 것은 아니다.
언니는 이제 달라지려 하고 있다. 조금씩 힘내서, 변해가려 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제 내가 지금까지 들고 달려온 바턴 또한 누군가에게 넘겨줘야할지 모른다.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최근 언니의 모습을 지켜보며 그것을 누구에게 주어야할지 생각했다.
언니가 호감을 가지고 있는 상대.
솔직히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남자답지 못하다고 생각하고, 공부를 특별히 잘하지도 운동을 잘하는 것도 아니다. 얼굴이 특출나다거나 무언가에 큰 장점을 가진 것같지는 않았다.
그냥 평범한 남자. 하지만 언니가 반해있는 상대. 그리고 언니가 힘들때 계속 같이 있어준 사람.
특출나지는 않다. 특별하지도 않고 어디하나 대단한 구석이라곤 없지만, 어째선지 알 수는 있었다. 이 사람이라면 언니가 힘들때 계속 옆에 있어줄거라고. 아무리 어려워도 거부하지 않고, 언니가 도망친다고 해도 쫓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믿을수는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 이곳에서 언니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나와 언니의 즐거웠던 추억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언니가 왜그렇게 달라져야했는지. 그리고 무엇을 슬퍼하고 변한 것인지 이야기해주는 것이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전과 특별히 달라지지 않은 맹한 얼굴이다. 하지만 나의 이야기를 듣고 크게 놀라거나, 동요하지 않는 그 얼굴이. 우습게도 나는 마음에 들었다.
" 이야기는 여기까지에요. 그래서 언니는 계속 어머니를 피해왔어요. 하지만 이번에는 다시 한번 이야기해보겠다고 했어요."
어머니는 아직도 언니를 두려워한다. 무서워하고 피하고 있다. 이번에도 분명 어머니는 피할 것이다. 언니도 그것을 알텐데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상처받을게 분명한데도 도망치지 않았다. 그만큼 언니는 달라진 것이다.
" ...하지만 그런 것이라면 역시 나는 별도움이 되지 않을까? 전 처럼 오히려 가족인 네가..."
" 아니요, 이번엔 정말로 달라요."
그때는, 언니가 가장 처음 도망쳤을때는 확실히 나라는 선택지가 옳았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아니, 분명 내가 해도 될지 모르지만 이제는 이 사람이 언니의 곁에 있는게 더욱 도움이 될 것이다.
언니를 계속 뒤쫓아준 사람.
" 저는 이번 어머니의 생일에 당신을 집에 초대할 생각이에요. 그리고 어머니의 선물을 사는 것도 언니와 단둘이 하게 할 생각이구요."
" 하지만 그건 마치..."
남자친구 같잖아. 라고 말하려는 듯한 그의 모습에 나는 약가 이죽거렸다. 언니의 마음을 말해줄 생각은 없다.
" 하지만, 좋아하잖아요?"
" ....!"
처음으로 그가 놀란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정말이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 눈은 숨길 수 없다니까. 나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 티 났어요. 다른 사람은 모르지만 전 알고 있었다고요."
" ...그러냐?"
상혁 오빠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뭐 그런거다. 상혁 오빠는 언니를 좋아하고 있다. 그것을 깨달은 것은 전에 담력시험이 있던 날이었다. 잘 감추고 있었다고 생각한 모양이지만 나에겐 아직 안된다.
그러니 이제 된거다. 언니도 저 사람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고, 그도 언니에게 호감이 있다. 정말이지 둘을 보고 있으면 답답해서 화가 날 정도다. 그래서 이번에 조금 힘을 써줄 생각이다. 겸사 겸사 어머니와 언니의 일도 신경쓰고.
============================ 작품 후기 ============================
윽 사실 어제 올리려 했지만 이런저런 사정이 있어서(게임이라던지...)최근 계속 친구가 롤을 하자고 때를 써서 이렇습니다. 덕분에 마영전도 같이 하기로 하고서 못들어가고... 전 저녁에 못하니까요 크읔.
오늘은 그래도 소설을 올렸으니 마음편히 롤을 할 수 있겠네요. 마영전도 해야되는데 으앙ㅇ카앜.(마영전 캐릭 닉은 유적소녀 입니다. 롤 닉은 아즈라필)이제 다음편은 수연이와 상혁이의 데이트 편이 되겠네요.(어머니 선물 고르는겸, 지윤이도 동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