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5권>
수연이도 없고, 분위기가 이래서야 지윤이가 의도한 '정보캐기'라는 것조차 제대로 할 수 없을 것같았다. 기껏 제대로 해보기로 마음먹었는데 상황이 이래서야 몹시 곤란하다.
되도록이면 수연이가 보는 앞에서 상혁이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고 싶었는데...
이래서야 전혀 소용이 없잖아. 도발을 해보려했더니 정작 당사자가 없어서야. 그나마 다행인건 수연이와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는 지윤이가 있으니 수연이에 대한 이야기는 녀석에게서 들을 수 있다는 것정도일까.
' 상혁이에게 데이트 신청은 나중에 전화로 하던지 하도록하고, 우선은 저 계집애한테 이야기나 들어볼까.'
청이와 수다를 떨고 있는 상화를 곤란하다는 듯한 눈으로 보는 상혁을 흘깃보았던 곱슬이는 뚱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지윤이의 귓가에 살그머니 속삭였다.
" 어이, 어차피 여기에 있어봤자 네가 원하는 정보를 얻기엔 무리일 것 같은데 윤아와 잠시 나가지 않을래? 차라리 그 편이 이야기 듣기 편할 것같은데?"
그리고 자신도 묻고 싶은 것도 있고. 곱슬이의 그런 말을 들은 지윤은 잠시 뚱한 표정으로 바라보다 마지 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로서도 지금 이곳에서 정보를 묻기에는 여러가지로 무리일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미 대부분 물어봐서 얻을 정보가 없는 곱슬이지만 혹시 또 모르지 않는가.
"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쩔 수 없죠."
" 괜히 튕기기는~."
피식웃으면서 말하는 곱슬이의 말에 지윤은 작게 코웃음치며 고개를 돌렸지만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 곱슬이는 오자마자 가게?"
지윤이와 곱슬이가 나갈려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청이가 물어왔다. 오자마자 가는 모양세가 이상하기는 하지만 이곳에 온 이유는 수연이를 보기 위해서였고,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이상 이곳에 있을 필요가 없었다. 상혁이에게 데이트를 신청하는 것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니 우선은 지윤이에게서 지금 수연이의 상태를 묻는 것이 먼저였다.
" 네. 아무래도 지윤이에게 물어볼게 있어서요."
" 흐음-, 그래.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어차피 곧 개학이니 굳이 방학때 나올 필요도 없으니까."
어차피 방학에 시간을 죽이러 나온 것에 불과하다. 거기다 청이도 대충 무엇때문에 곱슬이가 지윤이와 이야기하려는 것을 짐작한 것인지 특별히 가지말라고 잡거나 하지는 않았다. 덕분에 곱슬이로선 설명할 수고를 덜었다고 해야하나. 괜히 윤아나 상혁이 앞에서 귀찮은 소리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더군다나 상혁이의 누나라는 상화까지 있는 이상 개인적인 이야기를 이곳에서 하기엔 꺼려졌으니 말이다.
" 아, 누나 달라붙지 말라니까!"
" 조금더 누나를 소중히 하란 말이야. 이 바보가!"
...뭔가 저 과도한 스킨쉽이 마음에 걸리지만 오늘은 무시하고 가도록 하자. 계속 저런 것에 신경쓰면 이곳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같았으니 말이다. 그렇게 애써 상혁이에게 달라붙는 상화와 그것을 때어내려고 애쓰는 상혁과 윤아의 모습을 외면한체 부실의 문을 닫고 밖으로 나왔다.
거리로 나온 지윤과 곱슬이는 말없이 걸었다. 나름 친한 둘이지만 부실이 아니면 이렇게 단둘이 마주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도 않을 뿐더러 지윤이는 먼저 말을 꺼내는 성격이 아니기에 둘 사이에는 고요한 침묵이 일었다.
그렇기에 예전 수연이를 쫓던 다리를 지날때에야 먼저 말을 꺼낸 것은 곱슬이였다.
" -그, 수연이는 집에서 어때?"
부실에서는 차마 물어보지 못한 질문이다. 상혁이도 있고, 윤아도 있기에 수연이의 이상을 알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상혁이와 윤아도 수연이가 학교에 나오지 않았기에 걱정은 하고 있을 것이다. 다만 그것을 지윤이에게 묻지않은 것은 지윤이를 위한 배려였을 것이다. 더불어 청이나 상화가 있는 앞에서 할만한 이야기도 아니었고. 청이라면 듣고 분명 전전긍긍하며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할게 분명했다.
" 다짜고짜 남의 집사정을 묻다니 매너없네요."
" 너도 어제 실컷 물어봤잖아!"
자기가 먼저 언니가 어쩌니 저쩌니하면서 이상하다고 말하고 자신한테 캐물었으면서 정말 성가신 녀석이 아닐 수없다. 수연이가 말하는 츤데레니 뭐니하는 귀찮은 족속은 이런 녀석을 말하는게 분명했다.
" ...그렇긴 하죠. 사실 언니는 이상하긴 해도 그렇게 평소와 다르진 않아요. 그날 그렇게 비를 쫄딱 맞고 와버린 주제에 말이에요."
지윤은 생각했다. 그날, 언니가 비에 젖어서 돌아온 그날. 자신은 차마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갑자기 밖으로 나갔다 돌아왔냐고 물을 수 없었다. 그때의 수연의 표정은 차마 그런 것을 물어 볼 수 없는 표정이었고. 이 후 씻고 나온 이후엔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얼굴인지라 물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다.
지윤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때의 언니는 분명 '울어버린' 듯한 모습이었으니 결코 아무 일도 없었을리가 없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는 것은 대체 무엇때문인가 지윤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곱슬이나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려했던 것이다. 언니에겐 물어볼 수 없으니 주변 사람들에게서 뭔가 들은게 없는지, 알고 있는게 없는지 물었던 것이다.
하지만 언니에 관해 특별한 이야기를 들은 사람은 없었다. 그나마 곱슬이에게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지금 언니의 행동은 단지 그런 것만으로 생각하기엔 여러가지로 이질 적이었다.
" 이상해요."
이상하다.
다시 말하지만 정말 이상하다.
" 네 언니가 이상한건 하루 이틀이 아니잖아."
애초에 말투부터가 보통사람이랑 다른 녀석이다. 이상한 것을 꼽자면 그 외부터 한두가지가 아니다. 심할정도로 서브컬쳐에 심취해있다거나, 보통사람이 보기엔 나사가 풀리다 못해 빠져 굴러다니고 있을 정도다.
지윤도 그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상하다는 것이다.
" ...정말 기분나쁜 소리나 하는군요. 틀린 말이 아니라는 것이 더 기분나쁘지만."
" 아무튼 그래서 뭐가 이상한데? 그걸 말해야지 내가 뭔지 생각을 해볼 생각해볼 것 아냐."
건성건성 말하는 곱슬이의 모습에 힐끗 노려봤던 지윤이지만 이내 눈에 힘을 풀고 작게 한숨을 쉬었다.
" 아무것도 하지 않아요."
" 뭐야 그건 넋놓고 가만히 앉아있다는거야?"
그렇다면 꽤나 심각하잖아-라고 곱슬이가 생각하는데 지윤이가 고개를 천천히 흔들었다.
" 아니요. 그런게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던 게임도, 애니메이션도. 만화도 소설도 보지 않아요. 단지 평범하게 공부를 한다거나 TV를 보거나 할뿐이에요. 전처럼 매정한 얼굴도. 차가운 대답도 하지 않아요. 그래요, 옛날과 같아요."
옛날의 언니는 딱 지금과 같은 모습이었다. 집에서는 공부를 하고 평범하게 TV를 보고 지윤이와 놀아줬다. 언제나 밝고 명랑했던 그 소녀는 지윤이에게 있어 꿈꾸는 우상과 마찬가지 였다. 그날, 모든게 틀어지기 전까진.
" 평범하게 웃고. 평범하게 제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제가 어린시절 꿈꿨던 언니의 모습 그대로 지금 보여주고 있어요."
그 말을 들은 곱슬이는 잠시 말을 잃었다. 상상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 수연이가 평범하게 웃고, 솔직해진 모습을. 그건 말처럼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었으니.
하지만 그런 티는 낼 수 없었기에 억지로 웃으면서 지윤이를 향해 태연하게 말했다.
" 오히려 잘된거 아냐? 그거 예전부터 네가 시끄럽게 떠들던 언니의 옛모습이잖아. 정말 바라던 모습이잖아."
곱슬이의 그런 말에 지윤은 곱슬이를 똑바로 응시한체 고개를 천천히 흔들었다. 그 표정은 더 없이 무거웠다.
" 아니요. 이건 아니에요."
" 뭐가?"
" 사람의 성격이라는 것이. 마음이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달라지는 것이 아니니까요. 자신이 이렇게 변하고 싶다고 해서 그렇게 쉽게 변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자신이 겪은 일과,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흘러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 '성격'이라는 거에요. 심지어 그 취향도 마찬가지죠. 자신의 경험에 의해 무엇이 좋은지, 그리고 싫어하고 혐오하는 것도 달라지는 거에요."
그런데 지금의 언니는 그런 과정이 전혀 없다. 마치 그날 처럼, 그 전과는 전혀 다르다는 다는 듯이 단칼에 변화버린다.
" 어렸을적에는 그것이 이상하다는 것을 몰랐어요. 그리고 지금까지 저는 언니는 단지 그날에 있었던 충격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도리어 모든 것이 이상해요. 언니가 그때 충격을 받은 것은 맞지만 그 성격이 하루아침에 바뀌어 버렸어요."
사실 그런 생각은 전부터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언니에게 묻지는 않았다. 정말 큰 충격을 받는다면 하루아침에 성격이 바뀌는 것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다면 도리어 이상하다는 것이다.
" 큰충격으로 바뀔만한 것이었다면-. 애초에 언니는 그렇게 밝은 모습자체를 할 수 없었는걸요."
당시의 수연은 고작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아이였다. 고작 여섯살. 그런데 아버지의 재혼에 조금도 의심을 품지 않았다. 갑자기 어머니가 생긴다는 사실에 이상하다고 묻지도 않았다.
아니, 애초에 아버지와 대화자체를 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웃으면서 지윤이와 새로운 어머니를 대했다. 살갑게, 너무나도 상냥하고 어른스럽게.
그것이 가능할까?
도리어 말없이 매사에 차가운 수연이가 그때였다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때의 수연이는 그야말로 꽃과 같은 아이였다. 전혀 그런 밝은 성격이 될 상황이 주어지지 않았음에도. 하지만 그건 천성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
" -여섯살의 아이가 아버지와 한마디 대화도 하지 않은체 그렇게 될 수 있다고 가정하면요."
그것을 이해한 순간 곱슬이는 팔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그제야 지윤이가 이상하다는 이유를 깨달은 것이다. 과연 수연이는 어린시절부터, 대체 어떠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왔다는 것인가.
" 이번이 두번째. 언니는 또다시 성격을 바꿔버렸어요. 어린 저는 몰랐지만 지금은 알 것같아요."
언니가 웃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정말 슬플때뿐이란 걸. 그것을 밝은 모습으로 감추려한다는 것을. 그리고 모든 것을 감춰버리려 한다는 것을. 냉정하고 매정한 얼굴이 도망치는 것이었다면, 그 웃는 얼굴은 단절을 의미한다는 것을.
" 언니의 매정한 얼굴이 그리워질줄은 몰랐네요. 그 얼굴이야말로 언니가 변하고 섬세하게 가다듬어진 성격을 나타낸 것이었는데."
" ....."
곱슬이는 아무런말도 대답할 수 없었다. 지윤이의 말을 듣고 지금 수연이가 어떤 생각인지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윤아에게 가라고 상혁이의 등을 떠밀어진 수연이는 어떤 생각을 하고 보내준 것일까. 포기한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보내준 것일까. 아니면 이렇게 해도 새롭게 달라져 상혁이에게 모습을 보일 생각이었을까.
모른다.
지금 자신이 어떤 것을 생각해도 그것은 단지 상상일 뿐이다. 자신은 그렇게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에 복잡한 생각을 한 적이 없었기에 더더욱 그렇다. 좋아하는 것은 그냥 좋아하는 것이다. 그것에 복잡한 무언가가 들어갈 틈은 없다. 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아무래도 사람마다 다르겠지.
" 성가신 녀석..."
수연이를 생각하면 매번 중얼거리는 말을 곱씹으며 곱슬이는 심란한 표정을 하고 있는 지윤이의 머리를 휙하고 헝클었다. 갑작스런 그녀의 행동에 눈을 동그랗게 뜨던 지윤은 이내 확하고 곱슬이를 노려보았다.
" -이게 무슨 짓이에요!"
" 중딩답지 않게 복잡한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 그렇지. 자고로 어린이는 밝은 생각만하는게 중요한거야."
" ...저랑 당신은 고작 한살차이라고요."
" 하지만 외모는 초등학생과 고등학생정도의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 그건 당신이 삭은 것이겠죠."
" 네가 어린거겠지."
" .....큭."
분한 표정으로 얼굴을 일그러트리는 지윤. 자신의 외모가 또래보다 어려보인다는 것을 잘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중학생 중에서 이런 외모를 가진 것은 자신뿐이 아니라, 간간히 조금 동안인 여자애들을 보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은 하지만- 분한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 뭐-, 원래부터 성가신 녀석이니 조금더 다루기 어려워졌다고 그게 그저지. 걱정마, 네 언니는 예전의 그 사교성 없는 그 얼굴로 돌려놔줄테니까. 하기야 녀석이 빙글빙글 웃으며 달라붙으면 친구들이 잔뜩 생길테니 언니를 독차지하고 싶은 너로선 마음에 들지 않겠지."
" 제, 제가 언제 그런 소릴-."
" 네가 아까 말했듯 사람의 성격은 시간이 지나가며 경험하고 겪어온 일로 변해가는 것이니까. 나도 그랬고- 그리고 네 언니도 그랬겠지. 그러니까 그녀석이 그렇게 방실방실 웃는 얼굴로 사람을 대하고 싶다고 생각해서 연기를 해도 결국 깨지게 되어있는거야."
마치 예전의 녀석처럼. 굳이 뒷말은 말하지 않았지만 지윤도 알아 들었을 것이다.
" 수연이 녀석은 말이야. 눈송이 같은 녀석이지. 왜 눈송이인지 알아?"
" ...예뻐선가요?"
" -너 정말 상상력이 빈곤하구만."
" 시, 시-끄러워요! 해파리같은 당신에겐 듣고 싶지 않네요!"
융통성이 없는게 딱 그 언니와 같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닮은 자매인 것이다.
" 눈송이는 말이지, 단순히 바라보기엔 예쁘지만 말이야, 보면 볼수록 복잡하고 부서지기 쉽거든."
" .....그러네요. 이해했어요."
" 그렇지? 겉은 차갑고 예쁘지. 하지만 복잡해, 만지려고 하면 부서지고 바람에 날려 도망가버려."
분명 지금 수연이의 모습이 그렇겠지. 예쁘게,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갈 것같은 얼굴을 하곤 속은 전혀 그렇지 않겠지. 꽁꽁 얼어 남들이 다가오는 것을 막았을 것이다. 단순히 외면하고 도망치던 전보다 질이 나쁘다.
" 하지만 말이지 내가 어렸을 적에 보던 만화에서 이런 말이 나와."
" ....?"
고개를 갸웃하며 자신을 보는 지윤을 향해 곱슬은 검지를 쭉피며 다시 문제라는 듯이 씩 웃으면서 말했다.
" 눈이 녹으면 어떻게 되지?"
" -흥, 물이 되는게 당연하잖아요."
" 너 진짜 완전 꿈도 희망도 없구나. 소녀다움이 없어 소녀다움이."
" 끄으~!"
얼굴을 붉히며 파르르 떠는 지윤이의 모습은 나름 귀여웠지만 굳이 그 말을 입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곱슬이는 그저 빙그레 웃으며 쭉피고 있던 검지로 지윤이의 이마를 쿡 찌르며.
" 바보야, 눈이 녹으면 봄이 오는게 당연하잖아?"
" 아-."
그제서야 이해했다는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는 지윤이를 만족스럽다는 듯이 본 곱슬이는 등을 피고 곧게 섰다. 지윤이로부터 지금 수연이의 상황대해 들었으니 이제 집에 돌아갈 생각인 것이다. 본래 전화로 상혁이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려고 했지만 그건 내일 상황을 보고 할 생각이다. 아마 내일은 수연이도 부실에 나올 것같으니 말이다. '달라진' 모습으로. 사실 내심 방긋방긋 웃는 수연이의 모습을 보고 싶기도 하다.
' 그녀석이 방긋방긋 웃으면 무서울것같지만...'
방실방실 웃고 있는 수연이의 얼굴은 아무리 상상해도 뚜렷한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았다.
" 잠시만요."
지윤이에게 등을 돌리고 걸어가려던 곱슬이는 갑자기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천천히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러자 시선에 들어온 것은 마치 화가난듯이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지윤이의 모습이었다. 저녀석이 또 왜그러나-하고 생각하는데 그 생각을 읽은 듯 지윤이가 말했다.
" 그러면 언니는 무슨 생각을 하는거죠? 그렇게하면 언니에게 무슨 이득이 있다고."
뭐야, 이녀석 알고 있었어? 자신이야 대놓고 상혁이에게 어필 중이었으니 그렇다해도 수연이가 상혁이에게 호감이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니. 그리고 지금 상황이 상혁이와 관련됐다는 것을 아는 것도 굉장하다. 그나저나 무슨 생각이라던지 이득이냐니-. 정말 수연이보다 더할정도로 냉정한 녀석이 아닐 수 없다.
말그대로 애늙은이라고 해야할려나. 하지만 자신도 딱히 설명할 말이 없다. 옛날부터 자신은 그렇게 뭔가를 깊게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이 학교에 입학하고 첫주에 수연이를 도우러 뛰어다녔던 것도 딱히 특별한 생각이 없었고, 중학교때 여왕이라 불리게 되었던 것도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었을 뿐이다.
그냥 그렇게 하고 싶으니 한다. 더군다나 지금 상황에선 오히려-, 뭐 그런 것까지 귀찮게 생각할 필요는 없겠지.
" 몰라 임마."
"...에?"
애늙은이 녀석에겐 이정도가 딱이다. 벙찐 지윤이의 얼굴을 보니 곱슬이는 내심 기분이 상쾌해졌다. 언제 저렇게 멍한 표정으로 서있는 지윤이의 얼굴을 보겠는가. 그것만으로 곱슬이는 꽤 만족스러웠다.
' 아, 돌아가면 우선 밥부터 먹어야지. 딱 점심시간일 것같은데.'
괜히 학교까지 나온 덕에 배만 고파진 것같았다. 덕분에 지윤이로부터 이야기를 들었지만 애초에 그건 전화로도 충분히 들을만한 것이었다. 이제부터 딱히 할일도 없었기에 곱슬이는 집으로 돌아가서 라면이나 하나 끓여먹을까- 하고 생각하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을 향해 걸어갔다.
============================ 작품 후기 ============================
수연이 시점은 다시 본래의 수연이로 돌아온 다음에 될것같네요. 다음편은 상냥하고 부드러운 수연이가 나오겠습니다. 원래 곱슬이의 독백부분도 넣으려 했는데 이번화가 길어져서 다른 부분에 넣어야겠네요.
어린 수연이와 지윤이의 이야기는 지윤이편(수연이편)에서 자세히 다룰 생각입니다. 이건 그 편을 염두한 떡밥정도로 생각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