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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공략당해 버렸다-117화 (117/153)

117화

수연이와 이야기를 마치고 집에 들어오니 윤아가 평상시와 같은 얼굴로 반겨줬다. 언제나와 같은 얼굴, 작게 지은 미소. 모두 평상시와 같았지만 나는 그런 윤아의 얼굴이 뭔가 꾸미고 있는 듯한 느낌이라는 것을 지울 수 없었다.

" 늦었네? 그리고 뭔가 옷도..."

아, 그러고보니 옷도 수연이가 사준 것으로 갈아 입었지. 윤아의 입장에선 입고갔던 옷의 스타일이 달라졌으니 이상하게 볼만도 했다.

" 수연이가 저번 서코때 빌려줬던 돈을 갚는다면서 사줬어."

" ....으, 수연이 생각보다 적극적인데..."

" 응? 좀더 크게 말해, 안들린다고."

" 아, 아니. 그보다 상혁이 답지 않은걸? 그렇게 차려입으니 뭔가 일반인 같고."

평상시의 나는 일반인이 아니라는 거냐. 대체 뭔데 나란 놈은.

뭐라 한마디하고 싶었지만 간만에 일반적인 대화를 였고, 오랫동안 나갔다온 탓에 씻고 쉬고 싶었기에 애써 참았다.

" 그럼 나 씻을건데 괜찮지?"

" 응, 상관없어. 난 저녁을 준비하는 아버지를 도울거니까."

역시 평상시와 같은 윤아다. 어제까지만해도 뭔가 말을 더듬는다던지 피하는 기색이 있었는데 갑자기 평상시와 같은 모습으로 변해있었다. 내가 없는 동안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

고민해보지만 역시 답은 나오지 않는다. 내 방으로 돌아와 옷을 벗고 평상복으로 갈아 입었다. 그런 다음 씻기 위해 갈아입을 옷을 준비하는데 갑자기 책상위에 올려두었던 핸드폰이 울렸다.

" 이 시간에 누구지?"

지금 시간은 거의 저녁 여덟시. 이 시간에 누가 내 핸드폰으로 전화를 할 만한 사람이 있던가? 부모님이라면 집전화를 이용할테고 친구라면- 없다.... 기껏해야 명환이 정도인데 명환이가 이 시간에 전화했을 턱도 없고 수연이, 곱슬이, 청이 선배 모두 저녁에 갑자기 전화를 할만한 사람들이 아니다. 먼저 문자로 물어본다면 모를까.

" 응? 누나잖아."

화면에 비친 발신자 표시에 나는 눈을 가늘게 좁히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곤란한 누나다. 또 뭔가 이상한 일로 전화를 한 것은 아닐까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밖에 없었다.

유상화. 곤란할정도로 뛰어났던 나의 누나. 고등학교를 먼곳으로 가게되자, 중학생활은 나를 지켜보기 위해서였다는 듯이 1년만에 조기 졸업. 바로 미국의 유명대학에 입학하여 역시 조기졸업. 지금은 미국의 한 연구기관에 초청되었다-라고만 알고 있다.

미국에 간 주제에 진짜 가끔 예고도 없이 찾아와가지곤 아침밥을 만들고 있다거나 내 도시락을 챙겨둔다거나 하는 참신한 괴짜 누나이다. 생각해보면 수연이 못지않게 애니메이션에서 튀어나온듯한 사람이랄까.

나와는 여러가지로 다르지. 끄으, 최악의 커뮤력을 달렸던 나와 달리 누나는 중학교때 학생회장에 친구들도 어마무시하게 많았고, 그 청이 선배마저 언니 언니 하면서 따랐을 정도로 인망도 지닌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미국 유명대학도 1년만에 조기 졸업해버린 역대급 수재. TV에도 소개될정도로 꽤 유명한 사람이었다.

물론 그 갭때문에 누구도 내가 누나의 친동생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지만.

" 여보세요. 누나, 왠일이야 갑자기 이런 시간에 전화를 하고? 미국이면 아침이나 새벽아냐?"

「오! 동생, 보고 싶었어!」

" 용건을 말해, 용건을. 나 지금 나갔다 와가지고 씻고 싶단 말이야."

「 -풋, 그 농담 웃겼어. 네가 이 시간까지 나갔다 왔다고 하다니.」

삑.

끊어버렸다. 뭐야 이 기분나쁘기 짝이 없는 여자는. 맞는 말이라는게 더 기분나쁘다. 수연이나 명환이 정도가 아니면 내가 이 시간때까지 밖에 나갔다가 왔을리가 없지.

그대로 씻으러 가려다가 다시 울리는 핸드폰에 짧게 혀를 찬 뒤에 어쩔 수없이 전화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누나 성격상 받을때까지 지겹게 전화를할게 분명했으니까.

「 뭐야! 동생 완전 단호해, 단호박인줄.」

" 아무튼 전화를 했으면 용건이 있을거 아냐. 빨리 그것부터 말하라고."

「 누나를 소중히 하란 말이야! 이러다가 SEREN한테 납치라도 당하는거 아닐까 생각될정도로 우수한 누나란 말이야.」

" ....연구소에서 애니나 게임하는건 아니지?"

「 누나를 뭘로 보는거야. 제대로 연구원 기숙사에서 룸메이트랑 함께 하고 있다고.」

누군지 모를 누나의 룸메이트에게 기도를 해드려야겠다. 저 천방지축 누나를 막으려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을까.

「 아무튼. 이번 주말에 돌아갈거니까 누나 선물을 기대하도록 해.」

뭐냐 이 갑작스러운 말은. 완전 뜬금없이 찾아오는 거잖아.

" 뭐야 갑자기. 이번 주말에 무슨 일로 오는건데?"

내가 그렇게 묻자 누나는 오히려 내가 이상하다는 것처럼 되물어왔다.

「 뭐냐니, 그거야 당연하잖아? 윤아의 부모님이 서울로 이사가기로 했으니 가족으로서 축하파티에 참여하는 것은 기본이지.」

....뭐?

누나랑 티격태격 주고 받으며 열이 올랐던 머리가 차갑게 식는 기분이었다. 그제야 최근 윤아가 나를 피해다닌 이유도, 무엇을 고민하고 있었는지 알 것같았다.

" ...진짜로?"

「 핫, 몰랐던 건가?! 윤아가 이쯤이면 당연히 이야기해줬을줄 알았지. 뭐, 그래도 윤아네 부모님이 노력하신 덕에 제대로 가게가 번성하여 서울로 옮긴다는 것이니까 너무 걱정하지는 마.」

누나의 말은 무척 기쁜 소식을 전하는 듯한 목소리였다. 그래, 분명 기쁜일인게 분명하다. 직장도 잃고, 집도 없이 우리집에서 힘들게 살았던 윤아가 이제야 제대로된 집으로 이사가게 되는 것이니까.

" 그래, 그거야... 당연하지."

이런 것을 아주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윤아가 나를 피해다니고, 수연이를 만나러 갈때 도와주는 등, 여러가지로 석연치 않은 것들이 마음에 걸렸었다. 혹시, 설마- 라고 생각했었지만 그래도 그것은 아니라고 애써 생각했는데.

「 아, 룸메이트 왔다. 누나는 끊을게. 주말에 보자!」

" 응, 사고치지 말고."

「뭐~야! 누나는 절대 사고같은거 안쳐!」

시끄럽게 떠드는 누나의 말을 무시하며 전화를 끊었다. 머릿속이 무척 복잡했다. 윤아가 숨기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했지만 막상 듣고 나니 윤아의 입으로 그 말을 듣고 싶지 않아졌다.

언제나 옆에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어렸을때부터 함께 였기에 그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며 그렇게 살아왔는데. 주말은 이라고 말해봐야 앞으로 이틀 뒤이다. 오늘 윤아가 평상시와 같이 보였던 것도 아마 녀석이 나에게 말을 하기로 마음먹었기에 그런 것이 아니었을가 싶다.

나는 윤아가 이제부터 내곁에 없을 거라고 말하는 소리에 뭐라고 말해야할지, 그것이 너무나 막막했다.

너무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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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혁이는 오래전부터 나와 함께 였다.

상혁이의 부모님과, 우리 부모님은 옛날부터 친한 친구여서 언제나 언제나 붙어지냈다. 그것이 당연하다고 여겼고, 언제까지나 그럴 것이라 그저 막연하게 생각했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였기에, 주변의 아이들과 놀때는 자주 놀림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나도, 상혁이도 그것에 개의치 않았다. 놀 애들이 없을때에는 둘이서 숨바꼭질을 하는게 일상이었고, 상혁이가 술레일때면 언제나 상혁이가 귀신같이 찾아내곤 했다.

다른건 몰라도 정말 숨바꼭질은 잘한다니까. 사람을 찾거나 따라다녀 귀찮게 하는 것은 이 동내 제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거기다 그때의 나는 좀 말괄량이 기질이 있어서 동년배 애들을 이글고 다니는 골목대장 같은 것이었다. 상혁이는 그때문에 더욱 놀림감이 되곤 했지만 그다지 신경쓰는 얼굴은 아니었다. 도리어 '언젠가는 내가 지켜줄테니까.' 라고 웃기는 소리나 했었지.

이렇게만 말하면 무척 한심하고 잘하는 것하나 없는 것같지만 녀석에게도 잘하는게 하나쯤은 있었다.

바로 숨박꼭질. 다른 놀이는 몰라도 숨박꼭질에서는 언제나 내가 졌기에 '다음엔 절대로 못찾는 곳에 숨어줄거야!'라고 분해서 소리친적도 있다. 물론 상혁이는 그말에 '윤아가 어디에 있는지는 눈감고도 찾을 수 있지롱~.'이라고 놀렸었지만.

그럴때는 TV로본 각종 격투기로 상혁이를 괴롭히곤 했었다. 특히 플라잉 니킥을 쓰는 선수를 좋아해서, 상혁이에게 자주 연습용으로 사용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무척 부끄럽지만....

상혁이도 그렇지. 그렇게 어린 여자애에게 당했으면 분할만도 할텐데 이상하게 언제나 자기가 나를 지켜야된다고 이상한 생각이나 하고 있고. 남자라고 멋진척이나 하려해서 나한테 약한 모습은 절대 보이려 하지 않았다.

물론 때때로 괴롭힘 당하거나 할때는 울상이었지만 말이야.

하지만 그런 상혁이의 우스운 모습에 내가 많이 기댔던 것도 사실이다. 놀림을 받고, 괴롭힘을 받을때도 있었지만 상혁이는 언제나 나의 옆에 있었고 그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어린시절부터 아기때부터 함께였고 앞으로 계속 이렇게 가장 가까운 사이로서 지내게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달라진 것은 7년전. 아버지에게 큰 사고가 났을때였다.

나는 그날 친구들과 노느라 늦게 오는 상혁이와, 일 때문에 늦는 아버지를 위해 어머니와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러던중 병원에서 온 전화와, 경찰에게 안내되어 집으로 온 상혁이의 모습에 '사고'를 알게 되었다.

기적이라고 해야할지, 사망자는 존재하지 않지만 큰 사고였다. 뒤집힌 차량도 있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차에 치이고, 가게에 쳐박힌 자동차도 있어서 이런 작은 동내에서는 보기 힘든 대형사고였다.

아버지는 한쪽팔이 절단되는 부상을 입으셨고 그때문에 일하던 회상에서도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때문에 아버지는 한동안 술을 마시며 일상을 보냈고, 그 때문에 더이상 큰 집을 유지할 돈이없어 이사를 가야만 하는 형편이 되었다.

갑작스러운 이 모든 일에 나는 조금 어두운 아이가 되었다. 세상을 원망한 적도 있었다. 대체 나에게 왜 이런일이 일어나야 되는지 신에게 묻고만 싶었다. 평범하게 즐거운 우리 집이 왜 이렇게 괴로워야 되는지 따지고 싶었다.

하지만 그때, 무슨 연유인지 상혁이의 부모님이 집에 자주 없는 자신들을 대신해서 우리 부모님에게 상혁이를 맡기었다. 그덕에 나와 우리 부모님은 상혁이의 집에 얹혀 사는 형태로 살게되었다.

무슨 이야기가 오고갔는지는 모르지만, 그 뒤로 아버지는 술을 끊고 집안일을 하셨고, 아버지를 대신해서 어머니가 여러가지 일을 하게 되었다. 아마 결혼전에 하시던 경력을 살려 패션과 관련된 일을 하시게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조금씩 상황이 안정되고, 아버지의 입에 웃음이 되돌아올때 쯤에야 나도 어두운 마음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다. 그저 조금 달라졌을뿐이라고 생각하며 그제서야 상혁이의 모습을 주위에서 살폈지만--이미 상혁이는 자신의 방에서 나오지 않게 된 이후였다.

그제야 깨달은 것이다. 주변의 상황때문에 미쳐 상혁이가 어떻게 되었는지 보지못했던 것이다. 내가 큰 사고와 내가 겪는 절망에 눌려있는 동안, 상혁이도 무언가에 눌려 예전의 그 명랑한 아이가 아니게 되었다.

예전처럼 대하려고 해봐도 상혁이는 웃지 않았고 언제나 내 시선을 피했다. 그 시선에 담겨있는 것은 명백한 죄책감. 내가 이렇게 된 것이 모두 자신의 탓으로 생각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아버지를 피하는 모습으로 보아, 특히 아버지에게는 심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것같았다.

예전처럼 당연하다는 듯이 인사를 할 수 없게 되었고 옆에 있기도 힘들어졌다.

싫어.

이런건 싫다고. 나는 언제나 상혁이 옆에 있었는데. 언제나 계속 함께 할것이라 생각했는데. 장난을 쳐도, 예전처럼 말을 걸어봐도 상혁이는 나를 피하고 '두려워'했다. 마치 내가 무슨 심한말을 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처럼.

그것은 내가 중학생이 될때까지 변하지 않았다.

내가 상혁이를 포기하지 않는 것도, 상혁이가 나를 피하는 것도 변하지 않았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할 수 없을까. 그렇게 고민하던중 한 여성을 만났다. 이름은 '심 청'. 나보다 한살만은 혼혈아 여학생. 상화 언니와 아는 사이였던 그녀는 내가 입부한 문예부에 우연히 함께 하게 되었다.

상화 언니처럼 명랑하지는 않지만 그 잔잔한 분위기와 그 어른스러움에 나는 매료되었고 그녀라면 어쩌면 나의 고민을 해결해줄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기분을 가지게 되었다. 상화 언니도 모슨 일이 있으면 청이 언니에게 말하라고 했었고.

그래서 고민 끝에 청이 언니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상담을 받자, 나의 이야기를 들은 청이 선배는 몹시 놀란- 경악한 얼굴로 나를 한참동안 응시하더니 슬픈 얼굴로 나에게 사죄했다.

나는 갑자기 보이는 청이 언니의 이상한 태도에 무슨 일인지 물었고, 그에따라 청이 언니에게서 나온 말은 나를 놀라게 하는데 충분했다. 납치범들을 피해 도망친 것이 도로였고, 마침 오던 차량이 우리 아버지의 차였으며 그것을 피하다가 커다란 사고가 나게 되었다는 것을.

정말 엄청난 우연이다. 그야말로 극악한 확률이었고, 말도 안되는 상황이었다. 대체 어떻게 이런 상황이 있을 수 있을까.

청이 언니에게서 모든 이야기를 들은 나는 순간 엄청난 분노에 당장이라도 눈앞에 있는 금발의 여자를 어떻게 해버리고 싶었다. 살의를 품었다-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아버지의 일도, 상혁이와 관련된 일도 결국 이 금발의 소녀가 도로로 튀어나오면서 일어난 사건때문이 아닌가.

결국 나는 나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는 청이 언니를 끝까지 보지못하고, 그 사과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등을 돌렸다. 그리고 집에돌아와 오랜시간을 고민했다. 청이 언니에 대해서, 그리고 앞으로에 대해서. 하지만 막상 냉정하게 고민을 하게 되자, 청이 언니에게 모든 잘못 있는가? 라고 생각하자 그것은 절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명백히 그녀도 피해자였다. 그녀는 그저 납치범들을 피해 혼신의 힘으로 도망쳤을뿐이다.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 그녀는 납치범들에게 끌려갔을 것이고. 그랬다면 분명 ...죽었을지도 모르니까.

처음엔 거짓말로 꾸며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분명 그날 뉴스에 나왔던 사고에서 사망자는 '칼에 찔린 것으로 추정되는 배트남 혼혈소녀'뿐이었기에 청이 언니의 말이 사실이라고 밖에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해도 아버지의 사고와, 상혁이의 일때문이어도 윤아는 순순히 청이 언니를 용서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용서하지 않는다면 뭐가 어떻게 되는가.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마음에 맺힌 증오를 퍼부어도 달라지는 것은 없고 폭력을 행사한다고 자신의 가슴속 응어리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도리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인지 죄책감만 들 것같았다.

몇 일간의 고민끝에. 나는 다시 문예부로 나가 청이 언니에게 그것은 청이 언니의 잘못이 아니라고 이야기했다. 솔직히 원망하고 싶고, 뭐라 욕을 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계속해서 감사하다고 말하는 청이 언니의 모습에 그동안 그녀도 얼마나 큰 죄책감을 가지고 살았을까-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어 점차 완전히 용서하게 되었다.

아니, 사실 내가 용서할 입장인지도 조금 우스웠지만. 같은 피해자로서 우연히 연쇄적인 사고에 휘말렸을뿐인데. 하지만 이렇게 감사하다고 말하는 청이 선배의 모습은 마치 구원받은 듯한 얼굴이어서 나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그 모습이 마치, 지금 자신에게 죄책감을 느끼는 상혁이의 얼굴과 같았으니까.

그리고 청이 언니의 도움을 통해, 나는 상혁이와 다시 화해하게 되었다. 다시 이야기를 하고 곁에 있게 되었다.

겉으로는.

상혁이의 마음속에는 아직도 그때의 죄책감이 남아있다. 나는 그것을 잘 알고 있기에 그 이상 다가가지 않았다. 그저 이 가장가까운 자리가, 바로 옆에 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만족했기 때문에.

상혁이를 좋아하고, 연인으로서 그 옆에 있고 싶지만 그것을 상혁이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알기때문에.

그렇게 우리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음에도, 서로의 등을 맞대고 얼굴을 보려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계속, 그것만으로 만족한체 가장 가까운 곳에 만족하며 살았다.

" 하아."

수연이와 만나고 온 상혁이의 얼굴은 한층 밝아져 있었다. 하지만 의외인데... 설마 내가 코디해서 보낸 옷도 마음에 안든다고 옷을 사서 갈아 입혔을줄이야. 정말 훌륭한 질투다. 그 수연이가 이정도까지 신경쓸줄은 몰랐어.

나는 개학하기 일주일전에 이사를 가게 되었다. 위치는 서울.

어머니의 일이 잘되어 본사가 있는 서울로 이사하게 된 것이다. 그동안 차곡차곡 모았던 돈과 전의 집을 처분하고 약간 남은 돈을 합쳐 서울에 크지 않은 집을 마련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상혁이에게는 내가 이야기하라고 했다. 하지만 말이지-, 역시 곤란한걸. 언제나 가장 옆에 있는다고 생각했는데 멀어지게 될줄이야. 아버지는 이런 내 마음을 알텐데도 싱글싱글 웃으며 언제말할꺼니? 라고 속을 뒤짚어 놓으신다.

정말 고민고민하고 상혁이의 전화도 무시하며 생각한 끝에 나는 마지막으로 내일 상혁이에게 모든 것을 전하기로 했다. 물론 그 전에 앞으로 상혁이의 옆에 있을 것이라 생각되는 수연이를 위해 작은 선물도 했고.

지금 생각하면 수연이가 이렇게 상혁이와 가까이 있게 된건 무척 의외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데다가 수연이가 보통 뛰어난 것도 아니고 뭐하나 빠지는 구석도 없는데 상혁이랑 이렇게 가까워질 줄이야.

더군다나, 호감도 있다고 했지... 수연이 무서운 아이.

아마 상혁이가 자신을 쫓아와 주고 찾아준 것에 반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여자의 직감이야. 옛날부터 그녀석 남을 찾고 쫓아가는 것은 정말 잘했으니까. 천부적인 스토커라고 생각해.

솔직히 수연이가 호감을 가진다고 했을때 많이 고민하고 막막했다. 나같은 것과 달리 수연이는 모든 것이 완벽한 여자아이였으니까. 물론 부실에서 야한게임을 한다거나 하는 것은 어떨까-라고 생각하지만.

하지만 지금의 수연이라면 상혁이를 잘 돌봐주겠지. 서코에서도, 오늘만해도 내가 제대로 말을 하지 않아 불안해 하는 상혁이를 잘 돌봐줬으니까. 물론 곱슬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다만 최근 곱슬이는 기회가 없었지. 수연이처럼 적극적이 되야 할텐데 말이야. 예상외로 수연이가 정말 직접적으로 다가간단 말이지. 역시 수연이가 자주하는 그 뭐지 미소녀 연애- 무슨 게임같은 것 때문이려나.

" 그리고 나도 내일은..."

마지막 심술이다.

나도 내일만큼은 모든 것을 쏟아낼 것이다. 그것이 후회가 될지, 아니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열쇠가 될지는 모르지만 말이야. 적어도 서울에 가기전에 미련을 남기면 안되니 절대 망설이지 않을 생각이다.

다만, 상혁이가 나를 제대로 만나러 올 수 있을지가 걱정이지만.... 뭐 안오면 어쩔 수 없으려나. 그러면 미련이 남을텐데 걱정인걸.

'윤아는 언제나 내가 지켜줄테니까.'

어울리지도 않게 큰소리를 탕탕 치던 어린 상혁이의 얼굴을 떠올리며 나는 서글프게 웃음지었다.

============================ 작품 후기 ============================

원래 이번편에서 상혁이와 윤아가 만나는 부분까지 쓰려했는데(클라이막스부분) 생각보다 길어져서 커트! 어차피 다음편도 길기 때문에 여기서 잘라야 할 것같습니다. 혹시 궁금한점이나 알고 싶은 내용이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전에 청이를 윤아가 너무 쉽게 용서하는것은 이상할 것같다고 말씀하신 분이 있어서 조금 상세하게 썼어요. 음, 만약 저런 상황이 된다면 청이를 탓하기도 좀 그렇겠죠. 청이 입장에선 살기위해 도망친거니... 마침 그곳이 도로였다는게 문제지만. 하지만 말씀처럼 윤아 입장에선 절대 용서하기도 힘든일이겠죠. 하지만 윤아 성격상 폭력을 쓰는 것은 이상할 것같았기에 오랜 고민끝에 받아들였다는 식으로 썼습니다.

그럼 다음편은 내일 ... 쓸 수있다면 좋겠지만! 그리고 히오스 하시는 분들 없나요. 혼자하려니 심심해욧.

그리고 오타 꼭 말씀해주셔야 되요! 제가 눈에 숙주가 와서 글자가 잘안보여요. 거의 감으로 쓰는지라 핸드폰으로 나중에 댓글을 확인하거나 읽을때에서야 알 수 있으니 오타를 발견하시면 꼭 좀 댓글로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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