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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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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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락, 사락.
조용한 부실. 들리는 소리라고는 겨우 책장을 넘기는 소리 정도다. 아무래도 방학이다보니 이런 아침부터 부실에 와있는 것은 나뿐이리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수연이가 와서 책을 보고 있을 줄은 몰랐다.
더군다나 만화책도 라이트노벨도 아닌 일반 소설을 보고 있다니!
수연이가 이런 나의 생각을 안다면 뭐라고 한소리 했겠지만 그렇다해도 저런 일반적인 소설을 보고 있는 수연이는 새로운걸.
검은 긴생머리에 섬세한 속눈썹. 붉은 입술에 하얀피부를 하고 있는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소녀. 서코에 다녀온 뒤로 세삼스럽게 깨달은 것이지만 수연이는 정말로 '아름답다'.
지금 나의 옆에 앉아 조용히 소설을 읽고있다는 것조차 신기하게 느껴질만큼 이런 여자아이가 나와 가까이 있다는게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 아, 이런 이렇게 계속 몰래몰래 보다간 걸리겠지.'
워낙 남의 시선에 예민한 녀석이니 분명 알아차리고 나를 매도할게 분명했다. 아무리 나지만 수연이의 매도를 정면에서 듣게된다면 견딜 자신이 없었으므로 보고 있던 만화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최근, 서코에 다녀온 뒤 약 삼일간 윤아의 행동이 몹시 불안불안하고, 나의 눈치를 보는지라 오늘만해도 학교의 부실로 도망나와버렸다. 막상 나오고보니 공부할 것도 챙겨오지 못해서 근처 만화책방에서 그동안 보지않아 밀렸던 원피스를 잔뜩 빌려왔다.
원피스 그동안 꽤 많이 나왔구나- 하고 생각하며 흥미진진하게 보던중, 나는 다음에 펼쳐진 광경에 눈을 동그랗게 떳다.
" 헉? 에이스 죽네?"
" ...어머나, 아무렇지도 않게 네타를 과감하게도 이야기하는구나."
무심코 한 말에 수연이가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를 노려보았다. 앗, 나도 모르게. 수연이는 아직 안보고 있던 것이었을까?"
" 아, 미안."
" 물론 난 예전에 봐서 알고 있지만."
대체 어쩌라는건데.
" 아무튼, 감동적이네... 아, 에이스 죽을때 대사 너무 슬프다..."
" 아, 그거 아마... '싀X. 설마 마그마가 불을 태울줄이야'. -였던가?"
" 전혀 다르거든?!"
얼마나 왜곡된 기억으로 이 명장면을 기억하고 있는거냐!
" 정말이지 곤란해. 과학지식이 부족한 걸까. 몸이 불로 변하는 능력자가 불에 타죽다니. 코미디가 따로없지 않니."
" 만화는 만화로 봐라 좀. 네가 하는 게임들은 더 허무맹랑한 것도 많잖아."
" 하긴. 최근에 했던 미연시는 성 죠스 학원이라는 게임은 갑자기 수영장에 상어가 나타나서 히로인을 물어죽였지."
" 진짜냐."
대체 수영장에 상어가 어떻게 나타난건데.
" 참, 구상혁."
" 구상혁은 또 뭐냐."
" 구더기 유상혁이라고 하면 너무 길잖니. 지윤이랑 토론한 끝에 앞에 '구'만 붙이기로 했어. 그러면 다른 사람들도 너를 구더기 유상혁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않을테니 말이야."
" 남의 성을 멋대로 바꾸진 마라."
" 그럼 유레기는 어때?"
" 이름을 바꾸지도 말고!"
" 욕심이 많구나. 그럼 구더레기는?"
" 이름의 원형조차 남아있지 않잖아..."
그리고 언제 지윤이랑 나의 이름을 가지고 진지한 토론을 한거야. 그것도 구더기와 나를 꼭 연관시켜야 하는건가. 내 취급 너무 심하지 않아? ....뭐 지윤이 입장에선 내가 수연이에게 한짓을 하나하나 생각하면 그럴지 모르지만. 아니 수연이 입장에서도 내가 한 몇몇 일들은 경찰에 신고될뻔한게 있기도 했지.
...저런 말을 들어도 반박할 입장이 못된다는게 슬프다.
" 사소한 것은 넘어가고."
" 내 이름이 사소한 것이라니..."
" 아무튼 요즘 윤아랑은 어떠니?"
가볍게 농담삼아 이야기하던 것과 달리, 이번만큼은 진지하게 물어왔다. 대체 이 온도차는 뭘까-하고 생각이 들지만, 수연이 입장으로선 쉽게 꺼내기 힘든 주제이니 만큼 일부러 가볍게 이야기하다가 말을 꺼낸 건지도 모른다.
" 글쌔... 서코에 다녀온 뒤로 계속 똑같아. 나를 피하는 것같기도 하고 뭔가 할말이 있는 것같기는 한데 말이야."
윤아의 아버님에게 물어도 보았지만. 그것은 윤아가 직접 이야기 해줄 것이라며 대답을 회피하셨다. 하지만 윤아는 나만 보면 작은 고양이처럼 흠칫 놀라며 어색하게 나를 피하기 바빠서 대체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없었다. 자기 딴에는 평소처럼 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내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행동이 한가득이라 오늘처럼 부서로 도망치게 된지도 삼일 정도가 되었다.
" 흐응, 대체 뭘까. 혹시 서코에 가는날 흥분해서 윤아의 침대에 기어들어가거나 한 것은 아니니?"
" 네 머릿속에서 나는 어디까지 쓰레기인거야."
" 그런 것을 묻다니 정말 저질이구나."
" 나를 그렇게 생각하는 네쪽이 저질아니냐?!"
" 뭐 농담은 그쯤 해두고, 그렇다면 곤란하지 않니. 계속 같이 있었던 만큼 가장 힘든 것은 너일텐데?"
간단하게 주제를 변환하다니. 아무튼 수연이 말처럼 지금 나는 상당히 힘들다. 과거의 이런 저런 일도 떠오르고 심리적으로 불안하기도 하다. 그래서 내가 더더욱 이렇게 부서에 오게 되는 건지도 모른다.
부서에 오면 지금처럼 수연이가 있으니까. 어째서인지는 모르지만, 서코에 있었던 일 이후로 수연이와 대화를 하면 안도하는 자신이 있었다. 만약 이렇게 수연이가 나의 곁에서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다면 나는 또 집에서 혼자 방에 틀어박혀 있었을지도 모를일이다.
" 그래-, 뭐 윤아는 소꿉친구고 언제나 같이 있었으니까. 이렇게 나를 피하니 힘들지. 하아, 또 뭐가 문제인걸려나."
좋지 않은쪽으로 계속 생각된다. 찔리는 일이 없다면 좋을텐데 윤아와 관련해서는 좋은일보단 좋지 않은 일을 떠올리는게 더 많다. 아무래도 과거에 윤아와 있었던 일들이 문제겠지.
" 나는 언제나 윤아에게 빚을 지는 입장이었어. 내쪽에서 뭐라고 윤아에게 말할 수도 없고, 윤아가 저런다면 분명 뭔가 이유가 있을거야. 그것은 분명 네가 생각하듯 내 잘못일 확률이 많지."
하아, 그저 한숨만 나온다. 이유는 너무 많아 모르겠고, 그것을 내가 해결할 수도 없으니 그저 답답할 뿐이다. 복잡해지는 머릿속에 지그시 눈을 감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나의 머리를 쓰다듬는게 느껴졌다.
" 한심하구나. 분명 너의 탓은 아닐테니 걱정은 하지말렴.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무슨 일이 있으면 나에게 말하도록 해. 전에 말했듯이 나는 너의 편이잖니."
부드러운 손길이다. 서코에 다녀온 뒤로 바뀐게 또 있다. 바로 지금처럼 수연이가 때때로 부드러운 얼굴로 말을 해주는 것. 머리를 쓰다듬는 것은 처음이라 놀랐지만 그 손길에 마음이 진정되어 가는게 느껴졌다.
대체 왜 수연이는 나에게 이렇게 신경써서 대해주는 것일까?
가끔 나를 놀리고 매도하긴 하지만, 그것은 장난에 불과하다는 것은 나도 잘 안다. 도리어 지금처럼 나를 감싸주는게 많아지고 서코에서 말했듯 '나의 편'으로서 이야기해준다. 분명 그것은 나에게 큰 힘이 되지만 수연이가 고작 나에게 '왜'그렇게 해야하는지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설마-
' 에이, 그건 진짜 말도 안되겠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를 수연이가?'
농담도 그런 농담이 없다. 이런저런 사고만 치는 나를 수연이가 그런 마음을 가질리가 없지. 지금 나로선 그저 수연이의 친절에 감사하며 부드러운 손길을 음미하는 정도가 전부다.
" ...그래서 언제까지 쓰다듬으실꺼?"
흠칫.
낮선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익숙한 목소리지만 둘만 잇는 이 공간에서는 낮선 목소리였다.
고개를 돌리니 시야에 들어오는 적갈색의 붉은 머리칼. 고압적인 눈빛을 가지고 부들부들 떨리는 미소를 지은체 이쪽을 응시해오는 ...곱슬이가 그곳에 있었다. 부실의 문을 열고 못볼 것을 봤다는 듯이 눈을 가늘게 뜨고 노려봐오는...
" 걱정하지 마렴. 손 세정제라면 준비해왔으니."
그런 곱슬이의 말에 태연하게 답하는 수연이도 대단하다. 그보다 내 머리는 한번 쓰다듬으면 소독까지 해야할 레벨입니까.
" 그렇게 말하며 태연하게 쓰다듬지 말라고! 너 뭐야 갑자기! 이상하잖아, 언제부터 이렇게 가까워진건데!"
" 하나하나 시끄럽긴. 부실에 왔으면 조용히 공부를 하든 독서를 하렴."
" 애초에 너희가 부실에서 이상한 짓을 하고 있으니까 그렇잖아!"
" 어머나 싫다. 역시 양아치의 머릿속은 이렇지. 혹시 내가 상혁이 머리털 안에 있던 이라도 잡아주고 있을지 어떻게 아니?"
" 에? 상혁아 너 머리에 이 있어?"
" 그럴리가 없잖냐."
나의 말에 다시 수연이를 향해 시끄럽게 떠드는 곱슬이를 보며 나는 한숨을 쉬고 피식 웃었다. 정말이지, 윤아 때문에 곤란해 죽겠지만 이 녀석들 덕분에 내가 아무렇지 않게 있을 수 있는 것같았다.
' 하지만 윤아의 일은 내가 해결해야겠지...'
그것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나는 티격태격하는 수연이와 곱슬이를 슬쩍 바라본 뒤, 원피스를 꺼내 다시 읽기 시작했다. 아무튼 에이스가 죽어서 몹시 슬프구만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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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아편 프롤로그 입니다. 전편 후기를 봤는데 이걸로 완결이에요?! 라는 글이 보이네요.... 아니 절대 아닙니다.
제 말은 윤아편 곱슬이 편 수연이편 끝나고, 새엄마 편가지 긑나야 완결이라는 이야기에요! 오해하시면 곤란합니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