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S]공략당해 버렸다-101화 (101/153)

101화

내가 조용히 지켜보기만 하자, 세명의 남성은 서로 눈치를 보다가 멋쩍게 웃으며 말을 했다.

" 거듭 말씀드리지만 영상이 퍼진 것은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사고가 날뻔한 일이었고 가신 뒤에 여러가지 일이 있어서 참고자료로 가져간 것인데 뉴스에도 나올 줄은 몰랐어요."

" 아실지는 모르겠지만 그 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코스프레 사진과 함께 동일인물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나왓고, 기자들이 오지 않은 것은 그나마 다행인것같아요."

역시 그랬나. 확실히 기자들이 오지 않은 것은 다행이다. 그냥 사람을 구한 것에 불과하니 오지 않은 것일까? 아니면 뜬 소문이라고 생각한걸까.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지금으로선 기자들이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거기다가 내가 아니라고 딱 잡아때고 왔으니 조금 있으면 점차 소문은 수그러들겠지.

" 그보다 오늘은 유키노시타 코스프레인가요?! 완전 잘어울려요! 짱짱!"

" 네, 뭐-."

이 여자, 속마음으로 말하는 나와 말버릇이 비슷하다. 내 속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면 딱 저런 발랄함의 화신이 되겠지. 절대 속마음을 밖으로 꺼내지 말아야지.

" 오늘 저와 만나러 오신 것은 그럼, 내일 밴드에 관한 일인가요."

내가 차분히 묻자, 발랄하게 떠들던 여성이 고개를 급히 끄덕였다.

" 넵! 그리고 제가 어제 이름도 말씀드리지 않고 간것같아서요. 제 이름은 지민서에요. 나이는 올해 스물 두살. 나머지 세명은 스무살 한명에 스물하나가 둘이고 이름은 동환, 창우, 주혁이라고 간단하게 알아주세요."

스물 두살이었구나. 저 세명의 남성보다 연상이라고 들었을때 나이가 꽤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스물 둘일줄이야. 솔직히 말해 외모자체는 고등학생이라고 할 만큼 동안이었다. 저정도면 외모도 귀여운편이니 대학에서 인기가 꽤 많을 것같았다.

" 네."

나로선 특별히 묻고싶은 것도 없었기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내 대답이 너무 짧았던 탓에 그것이 긍정을 표하는지 부정을 이야기하는지 알 수없었던듯, 여성- 민서는 재차 나를 향해 물었다.

" 에, 어제 멋대로 말하고 오늘 또 이야기하긴 좀 그렇지만 내일 오실 수 있나요?"

" 특별한 일이 없으면 가는 것은 어렵지 않겠죠."

약간 비꼬듯이 들릴 수 있지만 내 입장에선 나름 긍정의 표현이었다. 나로서도 이런 것에 참여할만한 기회는 없다보니 그다지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내린 결정이다. 그리고 민서라는 여성이 솔직히 좀 마음에 들기도 해서 도와주고 싶기도 했다. 저런 발랄한 성격의 여성을 난 아주 좋아하는걸.

" 감사해요! 물론 일이 생겨서 오시지 못하면 어쩔 수 없지만 강제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저 저희가 노래할때 옆에 모델처럼 서 계시기만 하면되요. 유키노시타님말고도 다른 분들도 두세명 말해두었으니 부담스러워하실 필요도 없어요!"

어제는 센죠가하라님이라고 하더니만 오늘은 유키노시타님이라고 하네. 코스프레한 캐릭터의 이름을 그냥 부르는 건가.

" 제 이름은 이 수연이에요. 간단히 수연이라고 불러주세요."

" 아, 네. 그럼 오늘 대화해주셔서 감사해요! 수연님 코스프레 열심히 하세요!"

수연님이라니. 내가 뭐라고 말을 정정해줘도 전에 민서는 어제 그랬듯이 용무를 마치자 세명의 남성을 끌고 사라졋다. 아, 저 세명에게 할 말이 있었는데. 인터넷이나 기자들한테 내가 동일인물이라는 것을 퍼트리지 말하려 했지만 늦어버렸다.

' 그래도 영상이 퍼졌다고 사과하던 것을 보면 멋대로 퍼트리거나 할 것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거니 내일가게되면 말을 해둬야겠다. 이러나 저러나해도 내가 내일 그 애니송 콘테스트에 가기는 가야하는구나.

" 흐음."

시간을 보니 아직 점심시간까지는 꽤 남아있었다. 이런 저런 일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시간은 별로 안갔네. 남은 시간동안은 코스프레하던 곳으로 돌아가서 마저 활동해야지. 아직 의심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면 내가 아니라고 못박아둬야하니 말이야.

그렇게 결론을 내린 방금전 달려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 - - - -

" 그래서 사람들은 납득해준거에요?"

점심시간에 식사를 하고 일행과 합류하자 나의 이야기를 들은 곰씨가 그렇게 물었다.

" 저말고 코스프레를 한 사람은 많았으니까요."

오전에 다시 코스프레를 하기 위해 돌아갔던 나를 반겨준 것은 역시 어제 있었던 일을 궁금해하던 사람들이었다. 인파도 더욱많아져서 또 멘붕할 뻔했지만 다행히 잘 설명할 수 있었고, 사람들도 '하긴 저런 가녀린 팔로는 무리겠지'라는 식으로 납득했다.

그 후에는 다들 나의 외모에 푹 빠져서 잔뜩 사진을 찍고 갔다는 말씀. 코스어로의 화려한 대뷔이다 이거야! 좋아좋아, 이제 돌아가면 블로그 운영하면서 파워블로거가 되자. 이게 내 장래희망 1호야!

...너무 잉여로운가?

" 하긴 모에님이 그런 것을 했다는 것은 같이 본 저희도 믿기지 않으니까요."

" 덕분에 저는 모에님 팬이 되버렸지만요!"

미연시 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의 말에 긍정했고, 유유윳키는 과하게 눈을 반짝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좀 부담스러울 정도의 믿음이 느껴져서 뒷걸음질 칠뻔했다. 믿음이 무서워.

' 그나저나 저녀석은 더 심각해졌네.'

그 당사자는 역시 유 상혁.

" ...후우."

어제까진 모텔에 가서만 그렇다너 오늘은 아침부터 줄곳 심각한 얼굴이다. 어제는 잠도 제대로 못잔 것인지 눈 아래로 미약한 다크서클도 있고 손에 줄곳 핸드폰을 들고 있다. 아무래도 윤아의 연락이 없기 때문인 모양이지만 저정도면 일반적인 모습이라 보긴 힘들다.

아무리 소꿉친구라지만 연락이 몇일 안된다고 저렇게까지 신경쓰나? 나는 올해를 제외하고 지난 15년간 먼저 연락 온 경우가 손에 꼽는데?

"......."

아, 잠깐 울어버릴거 같아. 난 외롭지 않았는걸...

그, 그래! 나는 모태 외톨이니까 이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아! 으으, 아니지! 거기다가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잖아. 이상한쪽으로 빠질뻔했어. 상혁이가 저렇게나 윤아를 신경쓴다는 것은 분명 뭔가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트라우마 전문가인 나의 생각에 따르면 분명 상혁과 윤아는 뭔가 있다 이거야. 거기다가 지금까지 상혁이가 했다는 말에 따르면 '과거 윤아와 상혁이는 무슨 일이 있었다.'라고 한적이 몇번 있지. 내 생각인데 분명 그것때문에 상혁이는 저렇게 된게 아닐까 싶다.

말하자면 수연이 대예상!

물론 추측이니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만약 그것때문이 아니라면 나는 지금 장대한 삽질을 하고 있는 거고.

" ......"

뭐라고 말을 꺼내볼까 하다가 그만뒀다. 여기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무리고, 괜히 건드렸다가 예상밖의 반응이 나오면 다른 일행들에게 피해를 끼칠 수 있으니까. 우선 지금은 서코 회장을 둘러보며 즐길 수 있는 사람이라도 즐기고 상혁이에 대해선 저녁에 물어도 늦지 않다. 아직 서코는 하루가 더 남아있으니.

" 내 여동생이 이렇게 귀여울리가 없어 관련 부스는 없나요?"

" 아, 그건 저쪽이에요."

일행을 따라 걸어가며 나는 힐끗 상혁이를 바라보았다. 상혁은 일행들이 이동하자 괜찮은척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뒤따라오고 있지만 표정은 그렇게 좋지 않았다. 물론 그거은 계속 상혁이를 바라본 나정도가 아니면 알 수 없었기에 일행들은 상혁이에 대해서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다.

바보같긴. 그렇게 신경쓰이면 오늘 돌아가자고 해도 내가 승낙해줬을텐데. 아마 그런말을 꺼내지 않고 서코에도 나와 같이 나와준 것을 보면 서코를 기대하던 나 때문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다른 이유가 있을까봐 물어보진 못했지만.

' 나 때문이라면 이제 돌아가자'라고 말했다가 '아니, 너 때문이 아닌데?'라고 하면 무지 뻘쭘하잖아. 그래도 혹시 모르니 저녁에는 물어봐야지.

그렇게 오후에는 어제와 같이 서코 회장내부를 둘러보며 이곳저곳 구경했다. 역시 돈이 없었기에 뭔가를 사거나 하지는 못했지만 나름 즐거웠다. 거기다가 어제와 다른 점은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아서 돌아다니다가 사진을 찍은 경우도 상당히 있다는 점! 일부 부스에서는 공짜로 자신들이 만든 상품을 나눠주기도 했다.

좋아, 이득이야 이득.

" 아, 벌써 내일이 마지막날이네요."

돌아갈 시간이 되자, 곰씨가 아쉬운듯 이야기했다. 그 말에 미연시 씨도 동감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 이번 정모는 정말 역대급인거 같아요. 카페 분들에게 정모 후기를 올리면 다들 놀라실지도..."

" 다른 누구도 아닌 모에님이 여성이었으니까요. 거기다가 이렇게나 예쁜 여학생이라니."

세명은 정말 아쉬운 것같았다. 나도 상혁이가 좀 걸리긴 했지만 상당히 즐겁게 서코를 즐겼다. 만약 돈을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더더욱 즐거웠을테고, 상혁이가 저렇게 고민의 수렁에 빠지지 않았어도 더 좋았겠지만 밀이야.

" 내일 약속시간도 오늘하고 같이해서 만나죠. 장소도 똑같이."

" 네, 알겠어요. 다들 그럼 들어가서 쉬세요."

" 모에님도 편이 쉬시고 내일 뵙도록할게요!"

" 안녕히 가세요."

둘째날 일정이 끝나고 우리들은 각자 인사를 한 뒤에 해어졌다. 나와 상혁이도 그들에게 인사를 한 뒤에 숙박하는 모텔을 향해 걸어갔지만 모텔에 도착할때까지 특별한 대화를 하지는 않았다.

나야 원래 말을 잘 하지 않았고, 상혁이는 여러가지 생각할게 많았기에 입을 열지 않았으니 말이다.

" 먼저 씻을래?"

방으로 돌아와서 뭔가 어덜트 게임에 나오는 대사같다는 생각을 하며 말하자, 상혁은 고개를 천천히 흔들며 먼저하라고 이야기했다. 싱거운 녀석. 뭐가 저리 생각할게 많은걸까.

솔직히 내가 상관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신경쓰이니까. 거기다가 나, 저녀석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보니 계속 저런 모습을 보면 나까지 기분이 다운된다. 그래, 계속 호감이라고 표현하기는 했지만 나는 저녀석을 좋아하니까.

분명 이성으로서 좋아하는 거겠지.

솔직히 난감하고 무척 곤란하다. 내가 왜 저녀석에게 이런 감정을 가진 것인지 스스로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계속, 계속 도와줬기에 그런걸까. 아니면 외톨이였던 나에게 이렇게 다가온 첫 이성이었기 때문인가.

전생이 남성이었기에 남자에게 반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우습구나 나.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천천히 샤워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 - - -

수연이가 샤워를 마치고, 상혁이도 뒤이어 씻고 밖으로 나오자 거실은 어두웠다. 아직 자기는 이른 시간인지라 수연이라면 분명 텔레비젼을 보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상혁이로선 꽤나 의외였다.

" ...어?"

어제 잠도 설친탓에 이렇게 된거 일찌감치 잠이나 자자는 생각으로 어제 자신이 잠들었던 잠자리에 가보니 개어두었던 이불들이 사라져있었다. 분명 아침에 일어나서 여기다 두었는데 어디간 것일까.

아까 자신이 샤워하러 가기 전만해도 그 자리에 있었으니 치울만한 사람이라고 한다면-

" 수연이인가?"

" 정답."

언제 뒤에 온 것일까. 가벼운 옷차림으로 갈아입은 수연이가 자신의 뒤에 서서 팔짱을 끼고 있었다. 상혁은 갑작스런 수연이의 행동에 의문이 생겼다. 장난이라고 생각하면 간단하지만 수연이는 이런 실없는 장난을 할 성격이 아니다. 분명 행동에는 이유가 있을게 분명했다.

하지만 이것에 무슨 이유가 있지?

이런 상혁이의 의문을 해소시켜주려는 듯, 수연은 평상시의 차분한 음성으로 딱 잘라 이야기했다.

" 오늘은 침대에서 자도록 해."

" 뭐? 저번에 말했잖아. 침대는 네가 쓰라고-"

전에 했던 말을 다시 반복하려 했던 상혁이였지만 수연이도 이번만큼은 달랐다. 오랜만에 보는 매서운 눈으로 상혁이를 압도하며 손목을 잡고 끌고가 침대위에 던져버렸다. 무안한 이야기지만 그 가공할 완력에 상혁은 저항하지 못한 체 그대로 침대에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 변명은 듣지않아. 너, 여기 온 뒤로 계속 잠을 설치고 있지? 이제와서 뭐라고 말할 생각은 하지는 마."

" 하지만 그러면 네가..."

" 나? 그걸로 빠져나갈 생각을 한다면 좋아. 나도 침대에서 잘게, 그거면 됐지?"

단호한 수연이의 말에 상혁은 입을 떡 벌렸다. 이녀석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건지 알고는 있는건가. 지금 여자애가 남자와 같은 침대에서 자겠다는 그런 소리를 한건가?

" 어머나, 싫어라.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그냥 자는 곳만 같은거야. 혹시 나에게 무슨 짓을 하거나 할 생각은 아니겠지? 혹여, 네가 정신이 나가 나에게 손을 데려고 해봤자 나에겐 소용없는 짓인걸."

" 그, 그건 그럴지 모르지만 윤리적으로 그건 아니지! 너와 난 고등학생이고 성별도 다르고 아무튼! 이거 엄청난 문제라고! 그렇게 가볍게 말할 것이 아니라니까!"

같은 침대라니. 부모님이 아시면 죽는다. 아니 누나가 알아도 죽고 학교에서 알려지면 매장일게 분명했다. 상혁은 강하게 부정했지만 수연은 단호했다.

" 우선 제대로 눕고 말해."

정말로 침대에서 자신을 제울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러면 수연이가 침대에서 잔다는 거고, 그건 안되는데- 그러면 수연이가 바닥에서 자야하나? 그거려면 그것도 바닥이 차서 그다지 좋지는 않고. 결국 수연이 말처럼 같은 침대에서-머릿속이 빙글빙글 도는 기분이었다. 상혁은 자신의 옆에 서서 묵묵히 바라보는 수연이의 시선에 결국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침대에 기어들어가 자리를 잡고 누울 수밖에 없었다.

" 그래, 오늘은 거기서 자도록해. 흐응, 이제 어떡할까, 방금 말했듯 같이 침대에 들어가서 잘까? 참고로 이제 더이상 네가 침대 말고 다른 곳에서 잔다는 선택지는 없어."

이미 누워버린 이상. 수연은 말을 짧게 덧붙이며 말을 마무리했다. 그 말을 들어보니 수연이도 정말 자신과 같은 침대를 쓸생각은 없었던 모양이다. 그저 자신이 똑바로 눕길 바라고 한 이야기였던 모양이지만-.

그렇다면 수연이는 바닥에서 잘거라는 이야기인데. 그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거기다가 뭔가 질질 끌려다닌 기분이라 이렇게 딱 침대에 누워 가만히 생각하니 당하기만 한 체로 끝내기엔 아무리 상혁이라고 할지라도 억울했다.

" 나와 같이 잔다는 것은 무리지? 그러니 나는-"

수연이가 거기까지 말했을때 상혁이는 홧김에 수연이를 향해 소리쳤다.

그래, 자신도 모르게 무심코.

" 가, 같이 자는게 어때?"

뚝, 하고 공기가 멈추는 느낌이 들었다. 수연이도 상혁이의 대답이 예상외였던 듯이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약간 어색한 듯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 ...호오, 과연 구더기 씨...라고 해야하나. 뭐 좋아, 먼저 말을 꺼낸건 나였으니까."

갑자기 수연이의 상혁이에 대한 평가가 구더기로 떨어졌다. 상혁도 스스로 자신이 무슨말을 한건지 입을 잡아뜯고 싶었지만 천천히 옆의 침대에 앉는 수연이의 모습에 머릿속이 백지로 변할 수밖에 없었다.

" 좁아, ...등 돌리고 누워. 설마 마주보고 잘 생각은 아니지?"

" 어, 어어. 그래 알았어 잠시만."

진짜냐! 뭐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단숨해! 바둥바둥 움직여 옆으로 돌아누운 상혁이의 뒷편으로 수연이가 쿡, 하고 작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일까 싶어 고개만 살짝돌려 뒤를 돌아보자 수연이가 자신의 뒷편에 등을 맡대고 눕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우와, 뭐야 이 초전개. 상혁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머릿속이 따라가질 못했다. 갑자기 왜 수연이가 이러는 것인지 알 수 없었고, 어째서 이렇게까지 된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 ...어쩌다보니 이렇게 되었네. 사실 나는 너만 재우고 뭐좀 물어보기만 하려했었는데."

수연도 수연 나름대로 웃음만 나오는 상황이었다. 상혁이를 오늘 침대에서 제울 생각이었고, 그탓에 첨에 좀 과격하게 말했던 말이 자신의 발목을 잡을 줄이야. 뭐 그리고 차라리 이 편이 지금부터 대화하는 것에는 나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순순히 옆에 누운 것이다.

그리고 상혁이에겐 미안한 이야기지만 이야기가 끝나고 상혁이가 잠들면 자신은 밖에서 나가 잘 생각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동침은 좀 그렇지. 이미 함께 누워있긴 하지만...

' 지윤이가 본다면... 내가 죽으려나 상혁이가 죽으려나.'

물론 절대 비밀이다. 상혁이가 설마 그런 대답을 할줄은 자신도 몰랐지만.

" 물어볼 것?"

등 뒤에서 들려오는 상혁이의 말소리에 수연은 머릿속으로 정리해두었던 것을 천천히 말했다.

" 그래, 너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무슨 일있지?"

자신의 말에 상혁이가 등 뒤로 움찔하는 것이 느껴졌다. 분명 찔리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나 티를 내가 다녔는걸. 물론 알아차린 것은 나뿐이었지만.

" ...그렇게나 티났어?"

" 엄청."

" 아하하... 그랬나. 하긴 그럴지도."

상혁은 그렇게 웃은 뒤, 씁쓸한 목소리로 천천히 말을 이었다.

" 어제 그저께에 말했었지. 그- 윤아랑은 이렇게 떨어지면 늘 윤아가 연락을 해온다고."

물론 기억하고 있다. 그 말에 윤아와 상혁이가 대체 어느정도의 관계인가 한참 생각하기도 생각했으니까. 내가 생각하기로는 분명 친구 이상 연인 미만. 윤아는 분명 상혁이를 좋아하고, 여기에 상혁이까지 윤아를 좋아하는지 아닌지가 중요한 관건이었다.

" 그래."

" 근데 말이지. 계속 연락이 오지않아. 이상해, 이런 경우는 없었으니까 말이야. 심지어 '그 일'이 있었을 때도 윤아는 계속 연락해줬었는데."

그 일? 뭔가 핵심이 되는 말을 들은 기분이다. 분명 저것이 윤아와 상혁이의 지금 관계를 설명해주는 중요한 무언가 이겠지. 자신이 알기로 이것을 해결하는데에 연관되었던 것은 청이 선배 정도가 있다.

" ...불안한거야. 그때는 그토록 내가 거부했는데. 막상 지금 이런 상황이 닥치니 불안해져. 그것이 나를 초조하게 하고, 갑자기 무슨 일이라도 생긴건가 걱정이 되서."

" 그때?"

" 어-, 자세히는 말할 수없지만 대충 내가 사교성이 괴멸적이었다는 시기 있잖아."

아, 그때말인가. 윤아가 워낙 가볍게 말하고 넘어가서 잊을뻔했다. 그리고 그 기간은 꽤 길었다고 했지.

" 정말 힘든건 그때 윤아였을텐데 괜히 내가... 그리고 또 지금도 이러고 있다는게 스스로 좀 한심하다는 기분이 들어서 말이야. 윤아가 연락을 못한다면 이유가 있을텐데... 하지만 내가 문자나 전화를 해도 뭔가 피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거든."

윤아가?

수연은 인상을 살풋찡그리며 최근 윤아의 모습을 생각했다. 방학중인지라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확실히 해변가부터 이상하기는 했다. 자신이 상혁이를 좋아하는지 물어본 것은 그렇다치고 가끔 만났을때도 평상시와 미묘하게 달랐으니 말이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무슨 일이 있기는 한 모양이었다.

" 아무튼 그것에 신경쓰느라 괜히 너까지 신경쓰게 했구만. 윽, 이거 면목없는걸."

애써 가볍게 말하고 있지만 상혁이는 지금도 계속 신경쓰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보아하니 중요한 무언가는 윤아가 알고 있는 모양이고 상혁이는 계속 속만타고 있는건가.

이래서야 수연이라도 마땅한 해결책을 제시해줄수 없었다.

서로 생각할 것이 있었기에, 침실 안은 고요한 침묵으로 가라앉았다. 수연이도 더이상 상혁이에게 물을 만한 것이 생각나지 않았고, 상혁이는 생각에 잠긴체 자신이 뭔가 놓치고 있는게 없나 고민하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먼저 입을 연 것은 상혁이 쪽이었다.

" 있잖아."

" 응."

슬며시 물어오는 상혁의 말에 수연은 가볍게 답했다.

" 너와는 친구가 되서 다행인것 같아."

" ......."

수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상혁은 그것을 긍정이라 생각하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 올해는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어. 그 일속에서 너와 친구가 된 것은-."

" 아니."

거기까지 상혁이 말했을때, 그 말을 자르듯 수연은 딱 잘라 이야기했다.

" 아니야."

" 응?"

" 난 너와 친구가 아니라는 이야기야."

그 말에 상혁은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수연이의 말이 필요 이상으로 냉정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나름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수연이가 아니라니 조금 충격받았기 때문이다.

" 윽, 그래도 나름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너무한걸."

뭐 수연이라면 그럴수도 있지. 하고 생각하고 넘어가려는데, 차분한 수연이의 음성이 들려왔다.

" 하지만."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일까. 수연은 잠시 심호흡을 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 나는 너에게 빚을 졌어."

빚.

수연이는 빚지는 것을 무척 싫어한다. 그랬기에 자신을 위해서 공부를 가르쳐 주기도 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지금, 수연이는 재차 '빚'을 언급하고 있었다.

" 알지? 나는 빚지는 것을 싫어해. 하지만 너는 나에게 계속, 만난 순간부터 계속 나에게 빚을지게 만들었어. 소중한 동생을 도와주었고, 계단에서 구를뻔한 나를 도와주었고. 놀이동산에서 나를 쫒아와주었으며, 명환이 때문에 혼란스러웠을때로 날 찾아주었지. 그리고 내가 환생한- 그런 이상한 사람이라는 것을 남들에게 알리지도 않았고."

동생을 돕고.

다칠뻔한 자신을 구해주었으며.

놀이동산에서 도망친 자신을 쫒아와주었고.

또다른 자신에게 흔들린 자신을 찾아주었다.

계속.

자신이 위험에 쳐할때마다, 곤란할때마다 도와주었다.

그것은 빚이다.

갚아야 하는 수연이만의 빚이다.

" 그러니까."

수연은 말한다. 자신은 상혁이와 친구가 되고 싶은게 아니다. 앞으로도 영원히 친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 나는 너의 편이야."

상혁은 그 말에 몸을 움찔 떨었다. 생각하지도 못한 말이었다. 설마 수연이가 자신에게 저런 말을 해올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 네가 나에게 준 빚을 다 갚을 때까지 계속. 무슨 일이 있어도. 모두가 너에게 등을 돌려도. 이 세상이 적이 된다해도, 나만은 너의 편이 되줄게."

" ...과장이 심한데."

" 그러니? 아무튼 진심이야. 무슨 일이 있어도 이 빚이 사라지지 않는한 난 너의 편이지."

무려 세상까지도 언급하는 수연이의 대범함에 상혁이는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진담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상혁은 너무나 수연이가 고맙게 느껴졌다.

나의 편-. 과거의 자신에게 그런 것이 있었다면 자신은 좀 달라질 수 있지 않았을까.

" 그러니, 만약 친구에게도 말하기 힘든. 가깝기에 말할 수 없는 일이 있다면 나에게 상담받도록 해. 나는 우수하고, 또 정말 대단하니까. 네 문제쯤은 가볍게 해결해 줄지도 몰라."

" ....그래. 알았어."

가깝기에 말할 수 없는 것. 수연이의 말을 들으며 상혁은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만큼은 윤아에 관한 문제도 잊을 수 있을 것같았다.

수연이는 우수하다.

또 대단하다.

확실히 그런 그녀가 자신의 편이라면 무슨 문제든지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른다.

' ...난 정말 운이 좋은 녀석일지도.'

그저 운이 좋게 몇번 도와줬을뿐인데 이런 '같은 편'이 생길줄이야.

상혁은 눈을 감았다. 참아두었던 졸음이 갑작스럽게 몰아닥친 듯한 기분이었다. 그만큼 자신이 정신적으로 내몰려 있었다는 것이겠지. 그것이 지금의 수연이의 말로 풀려 수마가 몰려오는 것같았다.

오늘만큼은, 어떠한 악몽도 꾸지 않을 것같다고 생각하며.

상혁은 수마에 몸을 맡기기로 했다.

============================ 작품 후기 ============================

나는 님 친구가 아닙니다(정색)

게임해야 되는데 점검이라니!

쓰다보니 이렇게 길어질줄이야. 간만에 용량이 정상이네요. 그럼 저는 이만 롤을 하러 가보겠습니다!

다음편이나 다다음편이 서코편 마지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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