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화
그 뒤로 나는 사람들에게 쓸려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간신히 사람들이 도움을 줘서 코스프레 신청서를 쓰고, 인증용 팔찌를 찬 뒤에 코스프레를 할 수 있었다. 그냥 무작정 가서 하면 안되는거였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미아가 되지 않은게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한다.
"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꾸벅, 하고 고개를 숙이며 코스프레 등록을 하는 것을 도와준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상혁이를 비롯한 일행들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먼저보낸터라(약한척 하고 싶지 않은 내 특유의 허세가 문제....)방황하고 있던 차에 도움을 주신 분들이다.
뭐, 솔직히 내가 예쁘니까 도와준 것이겠지. 그게 아니라면 저렇게 몽롱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지 않을테니.
" 우와...."
" 예상은 했지만 정말 잘어울리시네요."
애초에 의상을 입고 온 나지만, 미연시 씨가 말하길 등록 전에 입으면 안된다고 해서 큰 겉옷으로 감춰두고 있다가 이제서야 겉옷을 벗은터라 상당히 시원했다. 덕분에 내가 입고 있는 코스프레 의상- 일명 바케모노가타리에서 나오는 센죠가하라 코스프레에 나를 도와준 분들은 입을 딱벌리며 서로 사진기를 꺼내고 있었다.
" 저, 저기. 찍어도 괜찮죠?"
" 예."
원래 이런 곳에선 그냥 찍지 않나? 서코가 열린 뒤로 하나 둘 나타난 코스프레를 한 사람들도 그냥 사진을 찍고 있는데 말이야. 내가 그런 의문을 담아 시선을 보내자 일행들은 내 시선을 알아들었는지 머쓱한 표정으로 말했다.
" 너, 너무 예쁘셔서 그게..."
부끄럽다는 듯이 말하는 남성. 그러면서 내 모습을 사진을 찍고, 같이 찍어도 괜찮냐고 물어본 뒤, 일행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나를 도와준 사람들이기에 개인 사진은 서비스라고 해야하나. 코스프레를 한 것이 처음인지라 조금 부끄러웠지만 그래도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기에 수월하게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 블로그나, 웹사이트에 서코 후기에 같이 올려도 괜찮을까요? 아, 물론 다른분들 사진과 함께 올리는 겁니다."
" 사이트 주소만 알려주시면 괜찮아요."
무작정 올리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는데 이정도면 양반이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기거나 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사이트 주소를 들었지만- 나중에 수많은 사람들이 찍기 시작하면 일일히 물어볼 수도 없으니 사실상 무의미한 짓 같았다.
" 그럼 수고하세요~!"
" 정말 예쁘세요!"
사진을 모두 찍은 뒤, 친절한 그 사람들을 배웅해주고 나니 뭔가 뻘쭘해졌다. 막상 코스프레 하기는 해서 근처 코스프레를 한 사람들 주위에 있었지만 뭔가 떵그러니 놓여있는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하기야 뭐 에상했던 일이지만.
특정 코스프레 팀에 속한 것도 아니고, 개인 블로그를 운영한 것도 아니니. 나에게 사람들이 몰려들거나 하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애초에 사람도 워낙 많고, 독특한 코스프레를 한 사람들도 많아서, 무난하다면 무난한 코스프레를 한 나에겐 잘 시선이 쏠리지 않았다.
그래도 나의 외모때문인지 주변을 지나가며 깜짝 놀라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상당 수 되서, 아주 적다고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말이야. 애초에 오전이기도 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찍은 사진들 까지 치면 꽤 된다고 생각한다.
' 코스프레는 점심먹을때까지만 하고, 식사 이후엔 일행들과 다시 만나서 서코 내부나 구경해야지.'
근데 코스프레를 한 체, 내부에 들어가도 되겠지? 안에서도 하는 사람들이 있을테니... 핸드폰을 꺼내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볼까 했지만 와이파이가 터지지 않아서 포기했다.
' 그래도-, 나름 이런 것도 즐겁긴하네.'
애초에 야외 활동을 좋아하지 않는 나지만 이런 것도 나쁘진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스프레는 지금보단 전생에 꼭 한번 해보고 싶었던 일이었다. 하지만 자신감도 없었고, 어울리는 것도 없었기에 이번 생에는 꼭 한번 해봐야지 라고 생각했던 일에 불과하다.
그랬지만 막상 해보니 코스프레를 하며, 그 캐릭터를 연기하고. 사진을 찍히는 것도 나름 괜찮았다. 오히려 딱 이정도로 적당히 사진을 찍히는게 좋다. 너무 바글바글하게 몰렸다면 아직 약간 대인기피증이 남아있는 나로선 눈이 빙글빙글 돌아버렸을지도.
예전에 비하면 남을 피하거나 하는 것은 확실히 나아졌지만-. 아직도 사람많은 곳에 가는 것은 조금 꺼려진다. 그래도 이정도면 장족의 발전이지 암.
" 우, 우와! 센죠가하라, 코스프레 맞죠?! 와-, 진짜 대박대박!"
스스로의 발전에 만족하며 고개를 끄덕끄덕하는데 옆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 슬쩍 고개를 돌려보니, 나와 키가 비슷한 여성이 눈을 반짝이며 서있었다. 읏, 부담스러운 눈빛-. 마치 청이 선배가 나에게 뭔가를 부탁할때 나를 바라보는 시선과 같다.
말하자면 순수도 맥스의 부담스러운 눈빛!
' ....저런 시선은 아직도 적응이...'
나름 많이 변했고, '다가오지마!'라고 항시 전개하던 보호막도 사라졌지만 이런 순수한 분위기의 사람이 오면 당황하게 된다. 선천적으로 이런 순수하고 착한 사람은 꺼려진다고 해야하나. 말하고보니 마치 내가 악에 오염되어 있는 사람같구만.
" 사진, 사진 찍어도 괜찮죠! 와, 코스어는 많이 알고 있는데 처음보시는 분이네. 혹시 블로그나 뭐 하시나요?"
" 아뇨."
" 꺅-! 대답도 시크해! 아, 죄송해요. 제가 진짜 좋아하는 캐릭터인데 싱크로도 너무 좋아서 흥분해버렸네요!"
...도망가야하나? 이렇게 열정적으로 달라붙는 사람은 처음인지라 조금 부담스러웠다. 그리고 보통은 나에게 이렇게 달라붙는 사람이 없었기에 생소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학교에서는 거의 아웃사이더이고, 밖을 돌아다닐 때도 내 특유의 분위기에 남들이 잘 다가오지 않는다.
저번 바다에 갔을때도 헌팅한번 당한적이 없을정도로 나는 꽤 부담스러운 인상인 모양이다. ...그래서 조금 자존심이 상하긴 했지만 말이야.
" 와, 진짜 볼수록 대박. 왜 이런분이 알려지지 않았지? 코스퀄에 비해서 주변에 사람도 적고. 아, 그렇지!"
여성은 내 주변을 멤돌며 찰칵찰칵, 신나게 사진을 찍으며 아쉽다는 듯이 중얼거리다가 무언가가 생각난듯 나에게 고개를 바싹 들이밀었다.
" 저기~. 괜찮으시면 서코 마지막날에 열리는 행사인 애니송 패스티벌할때 조금 도와주실 수 있나요?"
" ....?"
갑자기 뭔소리지. 애니송 페스티벌을 할때 도와달라니. 행사 관계자인건가? 내가 그런 생각을 하며 빤히 바라보자 여성은 아~하고 작은 감탄사를 낸 뒤, 자신의 머리를 쥐어박고는 재차 말해왔다.
" 말을 너무 생략하고 했네요. 애니송 페스티벌에 도와달라고 한 것은 이번에 저희가, 아 저희가라는 것은 제가 속한 동인 벤드에요. 아무튼 저희 벤드가 애니송 페스티벌에 참가하게 됐는데 모델처럼 옆에 서계시면 좋을 것같아서요!"
즉, 간단히 말해서 자신들이 노래할때 옆에 서있어달라는 거지?
" 그런 것이면 저말고도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셔도 될 것같은데 말이죠."
내가 냉정하게 말을 잘랐지만 여성은 그런 것은 아무렇지도 않은지 방긋 웃으며 내 손을 꽉 잡았다.
" 저희가 이번에 애니송 페스티벌에 부르는 것이 바케모노가타리 엔딩인 '네가 모르는 이야기(君の知らない物語)'거든요! 노래를 부를때 도와주실만한 코스분을 찾고 있었는데 이렇게나 완전 어울리는 분을 만나게 될 줄이야!"
" 아."
이제서야 왜 그녀가 나에게 부탁을 했는지 알 것같았다. 바케모노가타리 엔딩이니- 센죠가하라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나는, 딱 최적의 인물이었겠지. 뭐 개인적으로도 매우 좋아하는 애니송이다. 애니송을 즐겨듣거나 하지는 않는 나지만, 애초에 좋아하는 작품인데다 ...가사가 무척 와닿는 그런 곡이라서.
자주 흥얼거리고, 그랬었던 곡이다.
" 괜찮을까요?! 아 물론 센죠가하라님만 오시는 것은 아니니 걱정마세요! 다른 분들에게도 부탁할거니 부담가지지 마시고 오시면 되요!"
" 아, 전."
윽, 부담스럽게 순수한 눈빛. 딱 잘라 거절을 하고 싶었지만 저 순수한 눈빛에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거기다가 곡도 내가 좋아하는 노래인지라 '한번쯤은 이런 것도 나쁘지 않잖아?'라는 생각이 점차 들기 시작했다.
" ....생각나면 한번쯤 들를게요."
" 으앙, 츤데레!"
뭐가 츤데레야! 아니 츤데레 맞지만 츤데레에게 그러면 실례라고! 내가 살짝 노려봐줬지만 여성은 그저 '에헤헤~'하고 웃어볼 뿐인지라 기운이 쭉 빠졌다. 아휴, 나만 괜히 열내봐야 손해지.
' 괜히 저러니까 저런 사람이 속한 벤드가 어떤 곳인지 궁금해지네.'
순수 발랄이 컨샙인 벤드일까? 그보다 벤드라면 이 여성도 무슨 역활을 하고 있다는 것일텐데 어떤 것이려나. 왠지 성격상 기타나 드럼같은 것은 아닐 것같은데.
내심 궁금해져서 나는 여성에게 짧게 물었다.
" 벤드 이름이나 몇인조 구성이신가요."
내말에 여성은 '아차! 그것을 이야기하지 않았구나!'라고 소리치며 나의 손을 꼭 붙잡고(놔줬으면 하지만) 재차 입을 열었다.
" 저희 벤드이름은 '알타이르'에요. 6인조 벤드고! 구성은 보컬, 일렉기타 둘! 베이스 드럼 키보드 각각 한명씩으로 구성되어있어요! 참고로 저는 베이스 기타 담당이고요."
" 흐응-."
베이스 기타라고? 저 발랄한 성격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되지만 사람이 항상 겉모습을 따라가는 것은 아니니까.
" 지금 네명은 미리와서 구경중이고, 두명은 나중에 온다고 했고-. 아, 이건 말할필요가 없나? 아무튼 저희가 공연할때 꼭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네, 네. 생각나면 갈게요."
" 정말 감사해요!"
아니 확정은 아닌데... 부담스러울 정도의 눈빛에 나는 어쩔 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어, 마지막날 쯤이면 구경도 다 했을테니 애니송 페스티벌에 참가해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 말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부탁한다고 했고. 다만 마지막 날에는 에루를 코스프레 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되면 마지막날도 센죠가하라로 해야하잖아.
참고로 내일은 유키노시타. 내가 가하라씨만큼이나 좋아하는 캐릭터라 잔뜩 기합이 들어가 있다고.
" 그럼 제가 계속 여기있어도 방해가 될테니, 저는 이만 가볼게요. 코스프레 열심히 하세요!"
" 네."
" 꺅! 시크해! 아, 이게아니지. 내일 모래 뵈요!"
아니, 그러니까 난 간다고 한마디도 않했다니까. 물론 여성은 이런 나의 생각은 조금도 알지 못한체, 밝은 웃음을 지으며 인사를 하곤 사라졌다.
" -애니송 페스티벌이라."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았는데 막상 이야기를 듣고 보니 조금 궁금해지기도 했다. 노래를 싫어하진 않았으니까. 중학교때는 기타에 흥미가 있어서 조금 한 적도 있고. 유투브같은 곳에 올리기도 했었다.
...기분좋게 끝나지는 않았지만 말이야. 물론 지금 와선 다 추억이다. 딱히 트라우마 같은 것이 있는 것은 아니고 내가 가진 각종 재능이 얼마나 보통사람이 볼때 일반적이지 않은지 알 수 있었던 일이고.
그래서 내가 공부를 제외하곤 다른 활동을 하지 않는 것이지.
거기까지 생각을 한 나는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쓸데없는 생각은 계속 해봐야 시간만 아까울 뿐이다.
' 곧 열두시이니, 상혁이 녀석에게 연락을 해야겠네.'
이제 해도 점차 쨍쨍해지기 시작했으니, 야외에서 코스프레를 하는 것은 그만두고 안으로 들어가야 할 것같았다. 식사시간도 가까워지니 우선 상혁이를 만나고, 오후에는 함께 다니는게 좋을 것같았다. ...왜냐하면 나는 돈이 없으니까. 흑.
============================ 작품 후기 ============================
추석은 다들 잘 보내셨나요! 본래 내일 올리려했지만 쓰다보니 용량이 차서 그냥 올리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빨리빨리 진행을 하고 싶기도 하고요. 거의 막바지라고 생각했는데 분량을 생각하니 막바지가 아니네요... 윤아편 곱슬이편, 마지막으로 수연이편이 끝나려면 아직 한참남은듯. 개인적으로 전 윤아편을 가장 좋아하지만요.
그리고 수연이가 처음과 달리 정말 많이 달라졌죠. 남들과 저렇게 접촉하고 대화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정말 장족의 발전입니다. 예전에는 혼자밥먹는게 좋아서 숨어서 먹고 했으니까요!
아무튼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저와 롤을 하고 싶으신 분들은 언제든 귓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