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화
물론 그런 상혁이의 생각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었지만, 정확히는 수연이는 '상혁이가 신경쓰여서'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는게 맞다. 하지만 '자신이 돈을 빌리는 입장'이라는 것도 사실이기에 상혁이의 그런 생각은 아주 틀린 것은 아니었다.
' 확실히 이대로 계속 주도권을 내주는 것은 좋지 않지만...'
그렇다고 돈을 빌리는 입장에서 자신이 저녀석을 강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저 한숨만 나오는 상황이다. 무슨 약점이라도 잡는다면 모르겠지만-.
' ...응? 약점?'
갑자기 든 생각에 수연은 눈을 가늘게 뜨며 생각에 잠겼다. 생각해보면 자신이 약점을 잡으려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잡을 수있는게 어제 오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그런 것에 신경쓸만한 정신이 아니었고 심리적으로 위축되어있었기에 미처 이용하지 못한 것일뿐.
오늘 아침만 해도 상혁이가 자신을 껴안지 않았던가! 평상시라면 두고두고 우려먹었을 그것을 오늘은 이상하게 배빵 한번만하고 가볍게 넘어가 주었다.
애초에 스스로가 상혁이에 대해 너무 관대해져 있던 것인지도-.
" 안녕하세요. 먼저 와 계셨네요."
아, 도착한 건가. 상혁이가 인사하는 소리에 퍼득 정신을 차린 수연이 자신도 인사를 하기 위해서 정면을 보자, 보이는 것은 어째서인지 감동한 눈을 하고 있는 세명의 사내였다.
" 떴다-! 리얼 센죠가하라 떴다!!"
" 우와...., 장난 아닌 퀄리티..."
" 나도 코스프레를 하지만-, 역시 코스프레의 완성은 얼굴이라 이건가..."
떴다-라는 것은 정확히 일본의 '키타!'에서 나온 것이지만 뭐 오타쿠적인 반응이라고 해야하나. 감탄스러울 정도로 전형적인 반응이다. 그래도 수연이로선 꽤 만족스럽다고 해야하나. 아무리 자신만만한 본인이라도 첫 코스프레인데다가 보여준 사람이 상혁이 밖에 없어서 내심 좀 긴장하긴 했었다.
' 하지만 역시 이거지! 나 정말 최고!'
이 세명의 반응이 이렇다면 서코에서의 반응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 잘 어울리나요?"
자신의 길고 아름다운 검은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살짝 꼬며 이야기하자 곰씨는 콧김마저 내뿜을 기세로 고개를 강하게 끄덕였다.
" 엄청 잘어울려요! 무보정으로 이렇게 예쁘신분은 처음봅니다. 정말로!"
처음의 다정다감한 큰 형의 이미지는 어디로 벗어던졌는지 지금의 모습은 그야말로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는 남성의 모습이다. 물론 뼛속까지 오타쿠답게 '그저 흥분할뿐 건드리지는 않는다!'라는 것을 몸소 실천하며 하악거리고 있었다.
...물론 아침에 돌아다니던 몇몇 사람들은 그모습을 보며 신고를 해야되나 말아야하나 고민하고 있었지만.
" 솔직히 말해 코스프레라는 것을 모를정도 에요. 옷의 퀄리티도 정말 놀라울 정도고... 진짜 교복이라고 생각될 정도네요."
실제로 지나가는 사람들중에 곰씨가 하악거려서 쳐다보는 사람이나 수연이가 예뻐서 보는 사람은 있었지만 '우와, 코스프레다~.'라는 시선으로 보는 사람은 없었다.
" 칭찬 감사해요."
" 으읏, 아, 아뇨. 정말 진심으로 잘어울리시네요."
유유윳키의 칭찬에 수연이가 가벼운 감사를 표하자. 얼굴이 홍시처럼 붉어진 유유윳키는 고개를 붉히며 시선을 땅으로 숙였다.
' 헤에-, 뭔가 신선한 반응인데. 요즘 상혁이 녀석때문에 잊고 있었지만 평범한 남자애들은 이게 보통이겠지.'
가끔 잊고 있는 사실이지만-
수연이는 정말 미소녀다! 그것도 보면 입이 벌어질만큼 미소녀!
물론 취향이 다른 사람은 있을지 모르겠지만 예쁜 것은 변하지 않으며 보통의 남성이라면 지금과 같은 반응을 하는 것이 미소녀다. 윤아에게 익숙한 상혁이나 그냥 얼굴을 살짝 붉히는 정도로 끝나는 것이지 보통이면 지금 유유윳키와 같이 시선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한다.
" 그럼 이야기할 것도 있으니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하죠."
하악거리는 곰씨와, 얼굴을 붉힌체 어쩔줄 모르는 유유윳키를 대신해서 미연시 씨가 그렇게 이야기했다. 가게 입구에서 계속 이야기하고 있는 것도 이상할뿐더러, 우리 일행이 점차 주목을 모으고 있었기 때문이다.
" 그러는게 좋겠네. 아우 정신차려야지. 이러다가 잡혀갈라."
' ...그래도 자각은 있어서 다행이구만.'
자신이니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거지 보통 여성앞에서 저렇게 하악하악 거리면 당장 경찰에 신고되어 연행될지도 모른다.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로.
아마 다른 일행도 그렇게 생각한 것인지 혹여 일행을 이상하게 보는 사람이 없나 슬쩍 둘러본 다음 천천히 가게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 - - - - - - -
서코.
명실공히 대한민국 오타쿠 행사중에 가장 큰 행사이며, 수많은 코스어들과 동인 작가들. 또는 동인 물품을 판매하기 위한 서클들이 참가하는 볼거리 많은 행사이다. 물론 일본의 코믹월드에 비하면 그 규모나 볼륨이 작은 것은 사실이지만 사실 그러한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오늘은 내가 코스플레이를 하고 있다는 말씀이야!
으헤헤, 그래. 서코 엄청 가고 싶었는데 드디어 와보는구나. 사실 일본 코믹월드도 가보고 싶었지만 그것은 나중을 기약하고 우선은 서코부터 와보는게 맞지. 전생에도 한번도 와보지 못한 곳이고, 언제나 상상 속으로만 이런 곳이겠지~하고 상상해왔던 곳이니 만큼 서코 회장의 풍경은 남달랐다.
식사를 마치고 천천히 서코가 열리는 양제AT센터라는 곳에 도착한 우리를 반긴 것은 바글바글한 인파였다.
열시 반에 오픈하는 만큼 밖에서 대기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엄청 많았고,코스플레이어 들은 주로 와서 갈아입는 것인지 아직은 그다지 보이지 않았다.(나도 눈에 띌까봐 밖에 외투를 걸쳐서 옷차림을 가리고 있었다)
'근데 코스프레를 한다면 안에서 해야되나 밖에서 해야되나.'
밖에서 하는게 후광도 생기고 이미지도 살지만 내부에서 한다고 해도 특별히 상관은 없다. 안에서 활동하는 동인 서클들을 구경할 수도 있고, 서코에서 하는 행사들도 볼 수 있으니 오히려 밖보다 안이 보람찰지도 모른다.
물론 안에 들어가도 내가 뭔가를 사거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시무룩.
" 이야, 올해도 사람이 참 많네요. 듣기로는 이번에 애니송 콘테스트인가? 그런 것도 하고 코스프레 콘테스트도 있다고 하더라구요. 혹시 코스프레 콘테스트에 나가보실 생각있나요, 모에님?"
줄에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말을 걸어온 것은 미연시 씨였다. 곰씨는 이미 의욕이 가득차서 계속 시간을 체크하고 있었고, 유유윳키는 나를 힐끔힐끔 보며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상혁이는 언제나 그렇듯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멍청하게 서있지만 말이야.
아무튼-, 코스프레 콘테스트라. 솔직히 관심없다! 그런 곳에 나가서 순위를 정하는 경쟁같은 것을 나는 정말 싫어하니까. 그래서 전에 일본에 갔을때도 '검은 긴생머리가 잘어울리는 미소녀 콘테스트'같은 것에도 참가하지 않았던 것이고.
남들에게 시선을 끄는 것은 싫어하지 않지만 순위를 정하는 것은 딱 질색이다 이거야!
" 아니요. 그런 것은 좋아하지 않아서요."
" 아~, 그런가요? 아쉽네요. 모에님이라면 분명 많은 환호를 받을 것같았는데. 사람들의 눈에 띄는 것을 싫어하셔서 그런가."
뭐래냐. 내가 언제 눈에 띄기 싫데. 나 눈에 띄는거 완전 좋아하는데. 물론 성적 대상으로 보이는 것은 싫지만 '우와 엄청예쁘다!' '굉장해, 스고이!'라는 시선을 받는 것은 정말 좋아한다는 말씀이야. 말하자면, 나는 정말 최고!
그런 마음을 모토로 살고 있는 나에게 '눈에 띄는 것을 싫어하셔서'라니. 눈에 띄기 싫으면 코스프레도 않했어.
" ...수연이가 눈에 띄는 것을 싫어해요?"
멍청한 표정으로 있으면 계속 멍청하게 있을 것이지 미연시 씨의 말을 들은 상혁이가 묘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뭐라고 태클을 걸려는 것같았는데, 최근 계속 당하기만 한 것같아 이번에는 내가 선수를 치기로 했다.
" 어머나, 그러고보니 센죠가하라 코스프레를 하려면 아라라기 군 역활도 잇으면 좋겠는데. 굳이 코스프레를 할 것은 없고 계속 내 옆에 서있어주는 것은 어떠니?"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런 짓을 했다가는 님은 죽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말하긴 아무리 자화자찬이 모토인 나라도 그렇지만. 이렇게나 예쁜 내가 저녀석 옆에 딱붙어서 연인처럼 서있는다면 지나가는 남자들이 한대씩 때리고 갈지도 모른다.
이 인원수로 보아 한대씩만 때려도 상혁이 같은 것은 고깃덩어리가 되어버릴게 분명했다. 지금 당장 내 옆만봐도 말을 들은 유유윳키가 상혁이를 향해서 '그 말을 승낙하면 지금 당장 파이토다요!'라고 소리칠 것 같으니까.
'사실 센죠가하라가 연인 옆에서 다정하게 사랑을 속삭이는 캐릭터는 아니라서 만약 정말 그렇게 하더라도 그냥 서있기만 할테지만.'
아, 솔직히 그 납치하는 것은 한번해보고 싶다. 나라면 할 수 있을 것같지만 범죄이므로 그만 둬야지.
" 그, 그건 사양할게. 나는 안에 살것도 있고 해서..."
" 언제든지 하고싶으면 말하도록 해. 반겨줄테니."
" 목숨은 소중해서 말이야..."
녀석도 눈치가 있긴 하다보니 내말을 듣고 어색하게 웃으며 시선을 피해버렸다. 크, 그나저나 부루주아 녀석. 나 때문에 이런저런 돈을 쓰고 있음에도 사고 싶은 것을 살 여유가 있다니! 도대체 얼마나 들고 온거지. 청이 선배 때문에 존재감이 사라지긴 했지만 이녀석도 사실 꽤 부자다.
나 같은 소시민과는 금전 감각부터 다르다고.
그때-, 한번 갔던 상혁이의 집을 생각하면 보통 잘살아서는 집세가 감당 안됄 것같은데 말이야. 무려 두 집살림이 한집에서 살아도 넉넉할 정도였으니.
" 오오, 오픈까지 앞으로 2분!"
대체 상혁이의 지갑에는 얼마가 들어있는 것일까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던 내게 흥분한 곰씨의 음성이 들려왔다. 뭐라고 해야하나, 오픈을 기다리며 한껏 상기된 그 모습은 계속 서코를 기대한 나보다도 더 기대감에 부푼 모습이라 내심 웃음이 나올 것같았다.
' 뭐 나도 첫 코스프레인 만큼 처음엔 안에에서 구경좀하다가 코스프레를 하면 되겠지?'
내가 그런 생각을 하며 이제 오픈이 2분쯤 남은 서코 회장의 입구를 바라보는데, 문득 뭔가가 생각났다는 듯이 미연시 씨가 나를 향해 이야기했다.
" 아~, 맞다. 저도 코스프레 때문에 온지가 좀 되서 잊고 있었는데. 코스프레 하실려면 신청서 써야되요. 코스프레하기 위해 서있는 분들 줄에서서 들어가셔야 될걸요."
" ...네?"
" 신청서는 저도 잘 생각이 안나는데 근처에서 물어보시거나 안내하시는 분이 있으면 그분에게 물어보세요."
그 말과 동시에 서코의 입구가 열리며 수많은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지만, 나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런 것은 빨리 말하란 말이야!
============================ 작품 후기 ============================
오늘은 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과 함께 롤을 했습니다!
다들 잘하시더군요. 덕분에 버스 탓어요. 헤헤. 하다가 말투 엄청 특이하게 하고 게임하는분 만나서 같이 끼고 5인큐 했네요. 게임에서 다나까밖에 안쓰시는 아주 특이한분...
더불어! 사실은 오늘은 게임하는 날로 정했기에 내일 올리려 했으나, 시간이 남아 올리게 되었습니다. 제 낙중하나가 댓글을 보고 혼자 희희덕 거리는 것이거든요!
이번엔 댓글수가 적기에 음 천천히 연제해도 되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지만 오늘 같이 롤을 하고 나니, 롤을 같이한 이야기를 적고 싶더군요!
역시 롤은 같이 해야 재밌습니다! 다음에 혹시 같이 하실분들은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단 듀오랭은 제가 징크스가 있어서 결코 돌리지 않습니다... 듀오랭해서 20연패를 한적이있어서.... 솔랭은 혼자 잘올리는데 왜 그럴까요. 듀오랭을 하면 꼭 다 터지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