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화
[내일 날씨는 무척이나 맑은 것으로 예상되며, 햇살에 주의하셔야 할 것같습니다.]
째깍, 째깍.
어두운 방안에 TV에서 나오는 불빛이 두 사람을 비춘다. 고요한 침묵과 어색한 공기가 떠도는 방의 안에는 막 뉴스가 끝났음에도 둘중 누구도 채널을 돌릴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애초에 이 뉴스도 그냥 TV를 돌리다가 멈추어두었을 뿐이지 특별히 보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이 어색한 공기를 조금이나마 달래기 위해서 틀어두었던 것일뿐.
" 내일은 일찍 돌아다녀야 하니, 자는게 좋을 것같은데."
고요한 침묵을 깬 것은 침착한 수연이의 음성이었다. 얼굴이 미묘하게 붉어진체, 어색하게 있는 상혁이와는 달리 비교적 평상시와 같은 모습이었지만. 자세히보면 수연이의 귀끝이 붉게 물들어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그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 수연이는 방의 불을 꺼두었지만 말이다.
" ~그렇지? 아, 피곤하다~."
어색한 공기를 깨기위해 상혁이 애써 과장된 몸짓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방에 침대가 있으므로 자신은 이곳과 떨어진 거실 쪽으로 향할 생각이었다.
그런 그의 행동에 수연은 뭔가를 눈치채고 급히 상혁이의 손목을 잡았다.
" 힉-!"
아직 샤워를 한 온기가 남아있는 수연이의 따듯한 손이 손목을 감싸쥐자 상혁은 자신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내었고, 덩달아 수연이도 그 소리에 놀라 황급히 손을 떼었다.
" 이, 이상한 소리 내지 말아주겠니?"
" 아니-, 아, 그게 누구라도 갑자기 손목에 부드러운게 닿으면 깜짝놀란다고!"
" 부드럽다니... 아무튼. 너 지금 어디를 가려고 하는거지?"
자신의 손이 부드럽다는 말에 수연은 잠시 어떤 반응을 보여야할지 고민했지만 그런 것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었으므로 우선 상혁이를 붙잡은 이유를 이야기했다.
" 혹시, 거실로 가서 잘 생각이야?"
" 보통은 그게 정상이잖아? 여자를 거실바닦에서 자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침대에서 함께 자는 것은... 좀 그렇잖아."
이미 수많은 일이 벌어진 이 상황에서 같은 침대까지 쓴다면 아무리 자신이라도 참을 자신이 없었다. 수연이 역시 '침대에서 함께 자는 것'이라는 말에 잠시 움찔했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냉정하게 반론했다.
" 싫어. 애초에 나는 너에게 빚을 진 입장이니 내가 거실쪽에서 잘거야. 알텐데. 난 빚지는 것을 싫어해."
" 으윽-! 고집불통이긴. 하지만 나도 이 건에 대해선 양보해줄 수 없어. 네 말을 따르자면 나에게 빚을 지는 것은 싫으니 침대는 내가 자는게 옳다는 것이겠지? 하지만 내 입장에선 그게 더 신경쓰인다고. 내가 침대에서 자면 그것이 신경쓰여 더 잠을 못자고 그러면 나에게 해가 되는 일일테니, 네가 침대에서 자지 않는 것은 너의 만족일 뿐이야. 그러니 빚을 지기 싫다면 침대에서 자도록 해."
" .....읏....."
언제 이녀석의 말빨이 이렇게 늘어난 거지? 수연은 그렇게 생각하며 살며시 상혁을 노려보았지만 이 융통성 없는 녀석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는 것같았다. 그리고 상혁의 말처럼 애초에 잘 곳을 선택할 권리는 그에게 있었다.
" 알았어. 하지만 불편하거나 잠을 못자겠으면 언제든지 바꾸도록 해."
" 오, 생각보다 순순한데. 하지만 그럴 일은 없을거야."
얄미운 녀석. 수연은 속으로 투덜거렸지만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애초에 자신을 위해서 침대를 양보하겠다는 의도가 아닌가. 물론 수연이 본인이 거실에서 잤다면 좀더 마음이 편했겠지만 상혁이가 저래서야 씨알도 먹히지 않을테니 어쩔 수 없다.
저녀석도 은근히 고집이 쌔니까.
수연은 그런 생각을 하며 '이렇게 된거 바닥에서 잔걸 후회할만큼 숙면을 취해주겠어.'라고 다짐하고는 상혁에게 슬슬 자는게 어떻냐고 말을 하기 위해 입을 여는 순간.
" ....그나저나 이녀석은 연락이 없네."
라고 작게 중얼거리는 상혁이의 모습이 몹시 진지해서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녀석?' 누구를 말하는 거지. 저녀석이 연락을 주고받는 상대도 있나?라는 생각에 수연은 천천히 침대에 앉으며 물었다.
" 누구와 연락하기로 했니?"
" 응? 아, 그게 아니고. 윤아 녀석 말이야. 보통 이렇게 내가 어디 가거나 하면 자주 연락을 하고 했거든. 근데 오늘은 이상하게 연락이 없네. 뭐, 요즘 계속 연락이 뜸하긴 했지만."
윤아, 인가. 하긴 윤아라면 상혁이와 자주 연락을 주고 받는 것도 이상한 것은 아니다. 수연이 본인이 애니메이션 설정에 너무 익숙해져서 그 특별함을 자주 넘어가기는 하지만 사실, 상혁이와 윤아의 관계는 보통 관계가 아니다.
어린 시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무려 같은 집에 살고 있는데다가 아침마다 깨워주는 것 같고! 애니나 라이트 노벨에서나 나온다는 소꿉친구 속성이다. 거기다가 상혁이 한정으로 츤츤거리는 속성까지 가지고 있지. 물론 수연이의 입장에서는 평범한 성격이지만 말이다.
' ...역시 상혁이가 좋아하는 것은 윤아인가?'
예상하고 있던 범위이고,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 약간 가슴이 아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것을 보면 확실히 자신은 상혁이에게 많은 호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기에 무심코 쓴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 어머나, 그럼 하루종일 소꿉친구님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던 걸까나. 듣는 내가 다 부끄러운걸."
" 그, 그건 아니야! ....뭐라고 해야하나. 최근 계속 이녀석 반응이 이상해서 말이지. 흠, 뭐 내일이나 내일 모래정도엔 연락하겠지."
태연하게 말하긴 했지만 여전히 신경쓰이는 듯, 상혁은 다시한번 핸드폰 화면을 본 뒤에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 그럼 벌써 자려고? 아무리 내일 일찍부터 움직인다지만 너무 일찍 자는거 아냐? 아직 열시 정도밖에 안됐는데?"
" 응. 잘거야. 솔직히 계속 깨어있어도, 어색하기만 하잖아?"
수연이 다운 직설적인 말이었다. 그정도 사건을 이 작은 방안에서 겪고도 이정도로 담백한 반응을 하는 것도 대단한 일이다. 사실, 상혁이가 생각하는 것보다 수연이는 단순히 계속 단둘이 있는게 부끄러웠기 때문이지만 그런 사실까지는 굳이 말을 하지 않았다.
" 그- 그렇긴 하지."
상혁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수연이의 말처럼 최근 두시간 정도는 그야말로 정신과 시간의 방이었다. 입구마저 파괴된 듯한 기분이라 마인부우처럼 소리라도 지르고 탈출해야되나 고민하던 차였다.
" 네가 밖에서 잔다고 한 거니 투덜거리지 않기를 바랄게. 만약 그러면 내가 강제로라도 너를 침대에 묶어두고 나는 거실에서 잘거야."
" 오케이. 너야말로 침대에서 자는데 잠 설치거나 하지 말라고."
그래도 수연이라 다행이다-라고 상혁은 생각했다. 전생때문인지 수연이는 이런 곳에서 무척이나 담백했고. 그 성격처럼 솔직했다. 조금 어색한 것은 있었지만 굳이 자신을 추궁한다거나 하는 것은 없었고 이렇게 가볍게 말을 주고 받을 수 잇다는 것만해도 즐거웠다.
말하자면 친구-인가? 상혁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또 그것은 아닌 듯한 기분이 들었기에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 늦잠자면 버리고 갈거니 그렇게 알아. 아, 나갈때 불은 꺼줘."
" 그래 그래."
하얀 이불을 가슴까지 폭 덮으며 말하는 수연이의 말에 상혁은 피식 웃으며 조용히 침실의 문을 닫았다. 그리고 침구류를 꺼내 거실에 대충 깔아놓고는 바닥에 누웠다. 약간 딱딱하기는 했지만 오늘 이것저것 한 것이 많아서인지 이른 시간임에도 잠이 솔솔 쏟아졌다.
' 늦잠자면 버리고 간다고 했으니 서둘러 잠들어 보실까.'
수연이라면 정말 그렇게 할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나오지 못하게 이불과 함께 꽁꽁 묶어두고 나가버릴지도. 그런 생각을 하며 킥킥 거리고 작게 웃음 상혁은 내일을 기약하며 조용히 잠들었다.
============================ 작품 후기 ============================
어. 쓰고 보니 짧네. 사실은 서코 입구까지 쓰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길어져 버린 탓이고, 이 이후에는 끊기가 애매해서 어쩔 수 없이 여기서 끊네요. 담담한 것같지만 우리의 수연이, 상당히 부끄러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 침대 이벤트는 첫날에 일어나서는 안되죠. 너무 진도가 빠르잖아요! 물론 그렇다고 수위가 높다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이건 전체 이용가니까요!
오늘은 롤을 한판밖에 못했군요. 같이 롤을 하시고 싶으신 분은 주저 않고 메시지 주세요! 저는 랭보단 일겜을 더 많이 하니 같이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