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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공략당해 버렸다-93화 (93/153)

93화

' 우선 생각을 해보자.'

파닥, 파다다닥.

수연은 귓가에 아련하게 들리는 소리를 애써 외면하며 샤워기에 나오는 물을 머리 위로 뿌렸다. 따뜻한 물이 전신을 적시며 흘러내렸고, 혼란스럽던 마음이 조금이나마 진정되는 기분이들었다.

현재 상황을 정리해보자.

자신은 지금 샤워중이고, 샤워실의 밖에는 상혁이가 대기중이다. 방음따위는 되지 않고, 이곳에서 자신이 조금만 비명을 지른다면 상혁이가 당장이라도 달려와 CG회수를- 이 아니라 아무튼 대형 사고가 날지도 모르는 상황.

그리고 그 곤란함의 원인이 되는 바퀴벌래는 하수구 틀 사이에 한쪽 다리가 끼어 파다닥 거리며 힘차게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만약 저 바퀴벌래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저 하수구 틀을 들어올린 뒤에 물을 뿌려 다시 바퀴벌래를 안쪽으로 흘려보내는 수밖에 없을 것같았다.

' 이렇게 곤란한 일이.'

수연이는 눈가를 가늘게 좁혔다. 움직이지 않는 시선을 천천히 옮겨 바퀴벌래가 파다닥 거리는 모습을 보자 눈이 저절로 질끈 감겨졌다. 입을 막고 있지 않았다면 비명도 함께 터져나왔을지 모른다.

자, 진정하자 이수연.

여유있고 상쾌한 샤워를 위해서라도 저 바퀴벌래를 서둘러 치워야할 필요성이 있었다.

' 침착하게 샤워기로 쓸려보내면 되겠지.'

크게 호들갑 떨 필요도 없다. 그저 이렇게만 하면 바퀴벌래는 샤워기의 수압에 틀에서 떨어져나가 물에 쓸려 사라질테고, 자신은 쾌적하게 샤워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조심조심 샤워기를 강하게 틀고 바퀴벌래를 향해 뿌리려다가- 혹시 만약에 사태를 대비해서 몸을 커다란 수건으로 감쌌다. 작업을 하다가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니 만약의 사태를 대비할 필요가 있었다. 자신이 실수로 비명을 지르거나 할지도 모를 일 아닌가.

수연은 자신의 판단에 만족하며 몸을 감싼 커다란 수건을 핀셋으로 잘 고정시킨 이후, 샤워기를 바퀴벌래를 향해 돌렸다.

파닥, 파다다다다다다다닥.

샤워기의 물살때문인지 바퀴벌래의 움직임이 몹시 거세졌다. 검고 반들반들한 껍질에 물기가 반사되어 반짝반짝 빛이났고, 수연은 시선을 애써 피하며 곁눈질로 힐끔힐끔 상황을 확인했다.

파닥, 파닥, 파다다다-

힘차게 바퀴벌래가 파닥거린 탓인지, 아니면 샤워기의 물살때문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결국, 하수구 틀에 끼어있던 바퀴벌래의 다리는 틀에서 해방되었다. 덕분에 바퀴벌래는 물살에 쓸려 수연이가 예상한 것처럼 구멍으로 사라질 것이라 생각했으나.

파다다다다다다다닥

바퀴벌래의 몸부림과 물살의 힘이 예상보다 강하여 구멍이 아닌 뒤쪽으로 쭉 밀려났고, 거셋 물살을 탄 바퀴벌래는 파도타기를 사용하며 샤워실 안을 빙 돌아 샤워기를 잡고 물을 뿌리고 있는 수연이의 발에 도달했다.

파닥거리는 바퀴벌래가 보기싫어 잠깐 시선을 피하고 있던 수연이는 곁눈질로 하수구 구멍을 보다가 바퀴벌래가 사라진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쉬다가 발에 닿는 뭔가 딱딱한 무언가에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파닥-

" ........"

발에 닿고 있는 이 딱딱한 무언가는 분명- 수연의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정신을 차렸을때 자신은 이미 샤워기를 집어던지고 샤워실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버린 상태였으니까.

" 수, 수연아? 저기, 그 옷은 입고 나오는 것이-...."

덤으로 너무 거세게 문을 열고 나와버린 탓에 나오자마자 상혁이와 딱 시선을 마주쳐버렸다. 만약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큰 수건으로 몸을 가리지 않았다면 그야말로 대형사고가 터질뻔했다. 물론 그 혹시 모를 사태는 상혁이가 샤워실로 들어올 때를 대비한 것이지, 자신이 밖으로 나간다는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지만.

아무튼, 샤워실로 다시 돌아간다는 선택지는 수연이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었다. 갈아입을 옷도 모두 들고들어간 탓에 어쩔 수 없이 돌아가야 하지만 샤워실 안은 이미 바퀴벌래가 신나게 돌아다니고 있을지도 모를 노릇이다.

아니면 아까보니 물을 계속 맞은 탓에 약간 지쳐보이던데 그자리 그대로 쉬고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수연이는 둘 중 어느쪽이라도 그 바퀴벌래를 처치할 자신이 없었다.

' 어차피 이렇게 된거.'

아, 오늘 대체 왜이럴까. 수연이는 순간 우울해졌지만 이미 벌어진 일은 벌어진 일. 기왕 이렇게 된거 상혁이를 이용하기로 했다.

" 이쪽 보지마."

" 아,알았어! 눈 꽉 감고 있으니까-, 대체 무슨 일이야?"

이런 상황에도 유지되는 자신의 쿨한 음성에 수연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혹여 당황하고 있는 마음을 알아차리면 어떡하나 했는데 다행히 자신의 위기관리 능력은 스스로도 감탄할 정도였다.

" ...안에 바퀴벌래가 있어. 처리해주지 않겠니?"

" 바퀴벌래? 아-."

수연이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던 상혁은 저번 바다에 갔을때 지윤이에게 들었던 '언니는 다리가 많은 벌래를 싫어한다'라고 이야기했던 것이 생각났다. 그제야 왜 수연이가 밖으로 뛰쳐나왔는지 알았지만-.

' 아무리 나라도 이런걸 보이면...'

바로 눈앞에 동급생 여자아이가 커다란 수건으로 몸을 가린체 도도하게 서있습니다-라고 이야기한다면 아무도 믿지 않겠지. 수연이는 당장 바퀴벌래를 처리하라고 재촉하는 듯한 시선을 보내왔지만- 그... 자신에게도 사정이라는게 있는 법이다.

아무리 윤아로 인해 여자에게 면역이 있다하지만 저런 모습을 보고도 아무 반응이 없을 정도로 정신적인 고자는 아니니까. 그것을 증명하듯 자신의 분신은 '힘이 솟아오른다!'라고 소리치며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앉아있었기에 숨길수 있었지, 아니었다면 곤란한 것은 자신일 뻔했다. 입고 있는 것도 추리닝이라 적나라에게 드러났을지도 모를 일이고.

" 뭘 그렇게 빤히 보고 계신 것일까. 부탁이지만 저 화장실에 있는 것부터 치워줬으면 하는데."

수연이는 그런 자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급한데로 가방에서 코스프레를 하기위해 가져온 의상(와이셔츠와 같은 형태)을 꺼내 임시로 자신의 몸을 더더욱 가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아까 하얀 맨다리와, 가슴골, 늘씬한 몸매를 봐버린 탓에 상상력만 자극할뿐, 상혁이가 평정을 찾는데에 도움을 주지는 못했다.

" 아니, 그- 뭐라고 해야하냐. 나에게도 사정이란게 있으니까 잠깐만 기다려줄래?"

" 바퀴벌래를 치워버리기만 하면 되는데 너에게 무슨 사정이- ....잠깐만. 너 설마."

수연이의 눈이 가늘게 변했다. 그 시선은 싸늘하게 상혁이의 전신을 훑으며 상혁이가 잘 안보이게 몸을 틀고 있는 다리부근에 잠깐 머물렀다가 사라졌다.

" ....이런 상황에서도 반응이 오나보네. 흐응-, 과연 세상에 둘도 없는 변태라고 해야하나."

이런 상황이니까 반응이 오는거라고! 전생에 명환이었다면서 왜 남자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거냐?! 단순히 놀리고 싶은건가? 하지만 놀린다고 보기엔 수연이의 표정이 지나치게 싸늘했다.

수연이를 보고 뭐라 말하려고 했지만 촉촉히 젖은 머릿결과 물기가 남아있는 피부, 몸을 가리고 있는 와이셔츠 아래로 보이는 맨다리에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수연이의 시선은 더욱 차가워졌지만.

' 클났네. 이러다간 진짜 큰일날 것같은데.'

수연이가 계속 이렇게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자신의 분신도 쉽사리 진정할 것같지가 않았다. 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야되나 고민하고 있는데, 의외로 수연이는 작게 한숨을 쉬며 천천히 등을 돌렸다.

" 그래, 먼저 일을 벌인 거은 나니까. 뒤 돌아 있을테니 어서 저 바퀴벌래를 치워줘. 부탁해."

작은 한숨이 섟인 말이었다. 그 말처럼 수연이는 나를 보지않게 부엌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몸을 숨겼다. 덕분에 상혁이도 움찔움찔하며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나 샤워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상혁은 작게 안도의 한숨을 쉬며 샤워실 안을 발랄하게 돌아다니고 있는 검은 바퀴벌래를 향해 최고로 뜨거운 온수를 강하게 틀어주었다. 덕분에 바퀴벌래는 단번에 운명했고 하수구 구멍으로 물과 함께 쓸려가 자취를 감추었다.

" ....됐나."

별거 아닌 일이었지만 뭔가 무척 피로하게만 느껴졌다. 상혁은 이제서야 가라앉은 자신의 분신의 상태를 슬쩍 확인한 뒤에 천천히 밖으로 나가 수연이를 불렀다.

" 바퀴벌래 치웠어. 하수구 틀도 잘 고정해놨으니 또 벌래가 기어나올 일은 없을거야."

" 응."

상혁이의 말에 수연이가 천천히 몸을 돌려 샤워실 안으로 걸어갔다. 상혁이는 예의상 시선을 피했지만 잠깐 보았던 수연이의 얼굴이 미묘하게 붉어져 있었다. 그것은 수치심 때문일까?

" 이번 일은, 고맙다고 말해둘게. ...너에겐 나쁘지만도 않은 일이었겠지만."

확실히 나쁘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상혁은 그말에 얼굴을 확붉혔지만 수연은 그런 상혁이를 봤음에도 특별히 추궁하지 않고 샤워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것은 아마 수연이의 얼굴도 상혁이의 얼굴 못지 않게 얼굴이 붉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 작품 후기 ============================

오늘은 머리가 아파서 좀짧습니다. 간만에 랭겜 4연패를 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더불어 첫날밤 에피소드는 이정도로 끝내고 다음편엔 코스프레하러 서코에 갑니다!

둘째밤은 대충 넘어가고 셋째날에 다시 이벤트가 있을 것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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