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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공략당해 버렸다-92화 (92/153)

92화

곤란하다.

라고- 수연은 생각했다. 30만원이 공중으로 증발해버렸다,라는 생각에 복받쳐 슬픔이 올라왔기 때문인지. 그것이 아니면 이러한 미연시나 라이트 노벨에서 나올 법한 이벤트에 혹한 것인지 모른다.

애초에 이런 상황은 흔치 않잖아.

정말로 미연시나 라노벨이 아니라면 이런 상황은 보통 일어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러브 코미디를 좋아하는 수연이로선 정말 좋아하는 시츄에이션이고, 자신이 게임을 플레이하거나 책을 읽는 상황이었다면 기분좋게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라노벨이나 미연시같은 상황을 맞닥들인 히로인이 자신이라면 재밌다고 할 수없지. 처음 말한 것처럼 곤란하다.

스스로도 내가 이렇게 서코에 가고 싶어했나? 라고 자문해볼 정도다. 평상시의 자신이라면 분명 돈을 잃어버린 상황에서 상혁이에게 돈을 빌려 돌아갔어야 했다. 그게 정상이니까. 이렇게 돈을 빌려 방을 함께 쓰고 무려 3박 4일이라는 시간동안 남자애와 같은 방에서 머문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며 민폐짓에 불과하다.

만약 이 사실을 아버지나 여동생이 알아버린다면...

' 정말 다시없을 바보짓이네.'

하아, 작게 한숨을 쉬며 수연은 방의 내부를 둘러보았다.

다행히도 모텔은 깔끔했고, 어떻게 보면 호텔과도 비슷한 외견을 지니고 있었다.

" 우선 짐같은 것은 대충 정리해두자."

" 그래."

이미 엎질러진 물. 수연은 이미 벌어진 일에 신경을 쓰기보다는 좀더 생산적인 일을 하기로 했다. 상혁이 녀석도 자신과 같은 방을 쓰는 것에 그리 신경을 쓰는 것같지 않으니 자기만 신경써봐야 손해일 뿐이다.

' ....저녀석은 뭐가 저리 아무렇지도 않지?'

다만, 저 터무니없을 만큼 태평한 녀석의 행동에 도리어 신경이 가고 만다. 같이 숙박하게 된 것은 이미 저질러버린 일이니 어쩔 수없다지만 상혁이 녀석은 무려 '여자애'와 한 밤을 지세게 된 것인데 조금도 신경쓰지 않는다.

' 좀 기분 나쁜걸.'

곁눈질로 슬쩍 방의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지만 역시 흠잡을데 없이 아름다운 자신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검은 비단같이 윤기가 흐르는 긴 흑발. 인형처럼 아름다운 얼굴. 들어갈 곳은 들어가고 나올 곳은 나온 균형잡힌 몸매.

이렇게 그림같은 자신과 같은 방을 쓰게됐는데 어쩜 저렇게 둔할 수가 있지? 아니면 정말로 고자인가?

" ....뭔가 누군가가 기분나쁜 생각을 하고 있는듯한 기분이 드는걸."

수연이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상혁이가 갑자기 몸을 부르르 떨며 중얼 거렸다. 예민한 녀석. 수연이는 투덜거리며 모텔의 침실로 추정되는 방에 자신의 짐을 내려두었다. 원룸 형식인줄 알았더니 거실과 침실로 이루어진 구조여서 그리 혼잡해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 으음, 그나저나 침대는 하나네.'

크기는 대략 2인용. 그렇지만 자신과 상혁이가 같은 침대를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만약 이 방 숙박비의 돈을 반씩 냈다거나, 자신이 빌린 것이었다면 이 침대는 자신의 차지였고, 상혁이를 놀리는데 써먹었겠지만 지금 자신은 붙은 빈대에 불과하고 돈 한푼없는 거지에 불과하므로 이 침대는 상혁이의 것이 될 것이다.

' 뭐 거실에서 자는 것은 익숙하니까.'

게임하다가 바닥에 픽 쓰러져 잠들어버린 것은 한두번 있으니 그리 어려울 것도 없다.

" 대충 정리했으니-. 얼래, 언제 시간이 벌서 이렇게 됐지? 씻는건 어떻게 할까?"

" ....정말 둔감한 것도 정도가 있지. 그런 말이 태연하게 나오는 너는 참 대단한걸. 박수라도 쳐주고 싶은 기분이야."

시간은 벌써 아홉시쯤 된 시간이다. 잘 준비를 하건, 밤 세 놀 생각이든 우선 상혁이의 말처럼 씻고나서 해야할 일이다. 하지만 이 방은 남여. 서로 성별이 다른 두 사람이 있고 동급생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런 말은 쉽사리 꺼낼 수 있는게 아니니 말이다.

실제로 수연이도 '씻는건 어떻게 해야하나...'하고 고민하고 있을 정도. 아무래도 이런 좁은 모텔에서는 샤워할때 씻는 소리도 큼지막하게 들리는 법이니 말이다.

" 윽, 따, 딱히 나도 그렇게 태연한건 아니라고. 애써 이것저것 행동하며 태연한척 할뿐이지. ...네가 믿는다고 했으니까 나로선 목석 같이 구는 수밖에 없잖아."

수연이의 질타에 상혁이가 억울하다는 듯 얼굴을 붉히며 반론했다. 사실 상혁이의 입장에서도 억울한 일이었다. 방에 들어가기전에 '믿을게'라고 딱 말해버렸는데 자신이 감히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신경이 쓰이지 않을리가 없다.

당연한 이야기잖아. 저렇게나 예쁜 동급생과 같은 방을 쓰게 됐는데 아무 마음이 안 생긴다면 정말로 정신적인 고자가 분명하다. 한 집에 사는 소꿉친구가 있다보니 비교적 여성에 대한 면역력은 있긴 하지만 상혁이는 아직 팔팔한 고등학생이며 야동도 보고 평범하게 생활하는 들끊는 청춘이니까.

" 흐응, 그러니? 겉으로 티를 내지 않으니 알 수 있을리 없지."

역시 내가 매력이 없을리가 없지. 수연은 속으로 역시 나는 정말 최고니까-라고 중얼거리며 방금전 상혁이의 말에 대한 대답을 하기로 했다.

" 먼저 씻으렴. 나는 TV라도 보면서 시간을 보낼테니까."

" 그래? 뭐 알았어."

가볍게 대답한 상혁이는 먼저 씻으러 샤워실에 들어갔다. 애초에 구조가 화장실에 하얀색 칸막이를 치는 구조로 되어있기는 하지만 샤워실은 샤워실. 내부도 그리 크지 않으니 씻으면 소리가 다 들릴게 분명했다.

" -TV나 봐야지."

왠지 동요되는 기분인지라 수연이는 애써 침착하게 거실에 있는 TV를 틀었다. 친절하게도 케이블까지 나오는 인터넷 티비였기에 수연은 언제나처럼 애니채널을 틀어놓고 무릎을 끌어안고 바닥에 앉았다.

' ....아무리 생각해도 큰일이네.'

나 완전 대담해! 아무리 생각해도 상혁이랑 단둘이 모텔이라니! 수연은 애써 태연한 척하던 머릿속이 빙빙 도는 것이 느껴졌다. 다른 곳도 아니라 단둘이 모텔. 하루도 아니라 3박 4일! 만약 곱슬이가 이 사실을 안다면 '발랑까진 것, 했네 했어.'라고 비난할지도 모를일이다. 뭘 하긴 뭘 해! 우린 미성년자라니까!

" 하아, 한심하네, 나."

혼자 쉐도우 복싱하는 것도 아니고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다니. 정말 곤란하다. 수연은 새삼스레 지금의 상황이 얼마나 터무니 없는 것인지 인지했다.

거기다가 자신이 진짜 상혁이를 돌덩어리 본다면 모르겠지만 충분히 호감도 가지고 있다. 상혁이는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그런 것은 사실 상관이 없었다. 수연이 본인의 호감도가 중요하니 말이다.

솔직히 수연이는 태연하게 잠을 잘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아무렇지 않은척 이야기를 했지만 내심 귓가에 들리는 샤워기 소리에도 상당히 동요하고 있었다. 딱히 뭔가 알몸을 보고싶다 던가 그런 남사스런 생각은 아니다. 단지 '이벤트'와 같은 현재의 상황이 수연이에게 와닿은 것이다.

' ...나 히로인이지? 이거 완전...'

보통이라면 여자쪽이 ' 나 먼저 씻을테니까..'라고 말하며 H씬으로 돌입하기 바로 직전같은 상황인 것이다! 완전 곤란해!

얼굴도 붉어졌을려나. 그런건 곤란한데. 동요하지 말자, 동요하면 나만 손해고. 수연은 애서 그렇게 되뇌이며 작게 심호흡을 했다. 별 것아닌 행동이었지만 그래도 약간 도움이 된 듯, 방금 전보다 붕 떠있던 마음이 가라앉은 것같았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멍하니 애니방송을 보며 앉아있던 수연이는 샤워실 문을 열고 나오는 소리에 퍼득 정신을 차렸다.

" 어이~. 나는 다 씻었는데~."

약간 물기가 남은 머리카락을 털며 상혁이가 걸어나왔다. 옷은 환복한듯 가벼운 추리닝같은 차림인지라 샤워실에서 씻은게 맞기는 하구나-하고 수연이는 실없는 생각을 했다.

" 그래. 그러면 나는 씻을테니 TV라도 보고있도록 해. 혹여, 몰래 훔쳐보면 바로 경찰을 부를테니 말이야."

" 설마, 그런짓 않해."

" 호오, 그 이야기는 내가 훔쳐볼 가치도 없을만큼 매력이 없다는 소리?"

" .... 너는 대체 어떤 대답을 바라는 건데!!"

" ~어머, 싫어라. 여자의 속마음이나 묻고-."

"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흥, 그러면 됐어. 가벼운 언쟁끝에 머리를 푹숙인 상혁이의 모습을 만족스럽게 슬쩍 바라본 수연이는 샤워실로 들어갔다. 방금전 상혁이가 이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듯이 약간의 습기와 따뜻한 온기로 가득차 있었다.

' ....조용조용 씻어야지. 생각보다 밖에서 소리가 잘들리더라고.'

그냥 물소리에 불과한데 뭘 그리 신경쓰냐고 한다면- 신경쓰이는게 당연하잖아! 뭐랄까, 조, 조금 부끄러우니까.

쏴아아아~

" 하아."

그래도 따뜻한 물로 몸을 적시니 피로가 풀리는 기분이다. 아침부터 길을 잃어서 한참 돌아다니고, 또 이곳저곳 구경한다고 돌아다닌 데다가 30만원을 잃어버려서....

' 흑, 내 30만원. 남겨 돌아가서 나중에 게임 패키지 살때 보테려했는데.'

이번 달 용돈까지 고스란히 날라갔으니 다음달까지는 배를 곪으며 살아야 할 것 같았다.

' 언제나 머리감는 것은 고역이야.'

예쁜 여자가 된 것도 좋고, 내 취향의 검은 긴 머리카락도 좋지만 씻을때만큼은 정말 힘들다. 머리가 길다보니 샴푸도 많이 들어가고 물에 젖으면 무겁다. 여간 불편한게 아니지만 거울을 볼때마다 몰려오는 만족감에 차마 머리를 자를 수가 없었다.

'그럼 머리도 이제 대충 된 것같으니 몸을 씻어..... 응?'

머리를 감고 수건으로 대충 올려 묶은 뒤에, 몸을 씻으려던 수연은 물이 들어가는 하수구쪽에 뭔가 반짝이는 물체를 발견하곤 눈을 가늘게 좁혔다.

뭔가 검은색 광택에, 다리가 좀 많고. 더듬이가 까딱거리는 물체.

" 바, 바퀴---흡!"

순간,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지를뻔했던 수연은 두손으로 자신의 입을 꾹 막았다. 역시 초인적인 반사신경이야, 역시 나! -라지만 지금 수연이에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바퀴벌래의 출몰. 이것으로 인해 수연은 다시없을 위기에 직면해버리고 만 것이다.

아니 대체 청소를 어떻게 했기에 바퀴벌래가~ 라고 소리치고 싶지만 보아하니 하수구쪽에서 기어올라온 물체인 듯하다. 하수구 철망에 다리가 걸린 건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철망쪽에서 바둥거리고 있는 형태라 다가가기도 곤란하고. 지나가자니 눈에 띄어서 차마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거기다기 입을 막고 있는 손을 떼면 당장에 작은 비명이라도 튀어나올 것같았다.

' 왕도도 이런 왕도가 없잖아!'

비명을 지른다->무슨 일이야 수연아!->샤워실에서 마주침->BAD END 이렇게 될 상황이 농후하다. 더군다나 저걸 치우지 않으면 내가 못나가니 비명을 지르지 않아도 상혁이를 부르게 되면 결국 샤워실에서 마주쳐야 되고. 거기다가 상혁이의 자제심을 뛰어넘는 결과가 나온다면 BAD END가 아니라 BED END가 되어버린다.

H씬은 모 야메룽다!

아무튼 그 말은 즉, 수연이 본인이 저 바퀴벌래를 퇴치하던지 하수구안으로 다시 돌려보내야 한다는 소리인데...

' ...그냥 집에 갈 걸.'

이미 지나가버린 일에 후회하며, 수연이는 작게 울상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 작품 후기 ============================

모텔에서 묵는것은 총 세번이죠. 처음은 그냥 간만보고, 두번째는 좀 익숙해지고. 세번째에는 달달한 것을 집어넣을 생각입니다. 헤헤. 달달하시게 해드릴게용.

수연이는 다리많은 벌래류를 싫어합니다. 거미라던지... 담력시험편에서 언급이 됐었죠!

아참 그리고 모텔에 저렇게 못들어가는지는 알지만 픽션입니다! 착한 청소년은 따라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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