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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공략당해 버렸다-85화 (85/153)

85화

한 시간을 밖에서 방황하고 카페에 들어와 기다리기 시작한지 약 30분. 아니, 어쩌면 30분이 넘었을지도 모른다. 대충 커피하나만을 시킨체 대여섯명 정도가 앉을 만한 테이블에 떡하니 앉아있으니 뭔가 뒷통수가 따가웠다.

딸랑, 딸랑.

귀에 익숙한 종소리. 우리 동내에 있는 카페의 종소리와 무척 흡사해서 더욱 정겨웠다. 카페의 문이 열리고 들어온 사람은 나보다 한두살 많아보이는 남성. 어른이라고 하기엔 아직 모자란 나와 같은 청소년이었다.

그는 카페에 들어오자마자 주위를 두리번 거리더니 나와 시선이 마주치고는 잠시간 시선을 교환했다. 마치 '카페의 정모하러 온 사람인가? 아니면 그냥 카페의 손님인가'라는 듯한 시선이었는데, 아무래도 내가 여러명이 앉을만한 테이블에 혼자 앉아있어서 그렇게 생각한 모양이다.

나역시 그것을 생각하며 앉아있었던 것이기에 뻘쭘히 서로 바라보고 있기보단 우선 말을 걸어보는게 좋을 것같았다.

" 혹시-. 오늘 OOO카페의 정모하러 오신분인가요?"

몸을 일으키며 차분하게 묻자 상대방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나에게 다가왔다.

" 네. 아, 그럼 먼저 오셔서 자리 맡아두고 계시던건가요? 죄송하지만 카페 닉이..."

" 아, 지금은 '휴식고딩'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하고 있어요."

" 아~. 하긴 이번에 오기로 하신분 중에 고등학생은 저랑 모에님하고 고딩님분이니 그렇겠네요."

음, 그렇다는 이야기는 나와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은 '유유윳키'일 확률이 높다. 이번 모임에 오기로 한 또다른 고등학생이며 나보다 두살이 많다는 사람. 다행히도 사람이 무척 좋아보이는 인상이었기에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 에휴, 이번에는 제가 가장 먼저와서 오실 카페분들을 기다리고 있을 생각이었는데 늦어버렸네요. 곰님에게 전화를 해야겠어요. 사실 이번에 인원이 적다보니 딱히 'ooo정모 장소'라는 식으로 깃대를 꽂아두지 않을 생각이라서 제가 미리 대기하고 있으려했거든요."

" 아, 그러고보니 저하고 모에님빼고는 원래 다들 모이시던 분들이죠?"

처음 기다릴 때만해도 '이거 그냥 이렇게 무작정 있어도 되는거야?'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생각해보면 나와 모에님이라는 분을 제외하고 나머지 세명은 전부터 정모를 했던 사이니까 장소를 알리는 표식같은게 필요없을 법도 했다.

" 네. 원래는 열명이 넘게 보이는데 이번엔 조금 적네요. 다음 정모는 좀더 크게하도록 해야겠어요-, 아 곰형. 지금 고딩님은 이미 와계시네요. 네, 네. 아~. 네 알겠어요."

유유윳키는 나와 대화를 하던 도중, '빨갛게익은곰(소위 곰형)'과 전화 통화를 했다. 어색하지 않을까했는데 이렇게 상대방이 무난하게 받아주니 그렇게 어색하진 않은 것같았다. ...다만 유유윳키는 예상보다 평범하다고 해야하나. 닉이나 평상시 채팅방에 '미래일기 짱조음' 또는 역시 얀데레가 최고시다- 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던 사람치곤 무척 평범해보였다.

사실 이번에 모임하는 사람중에 이 사람이 가장 평범하지 않을거라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선입견이었던 모양이다. 참고로 두번째로 평범하지 않을거라 생각하는 사람은 미사일 연발 시뮬레이션. 세번째는 검은긴생머리모에라는 분이다. 예전이라면 모에라는 사람을 첫째로 두었겠지만 요즘 수연이 때문인지 나도 '검은긴생머리 꽤 좋지...'라고 생각하는 터라 순위가 물러나 버렸다.

딸랑, 딸랑.

유유윳키와 간단하게 카페 이야기나 가벼운 애니이야기를 하길 십분. 다시 카페의 문이 흔들리며 두명의 사람이 들어왔다. 한명은 나보다 키가 조금작고 통통한 인상의 사내와, 다른 한명은 평범하게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그려진- 아니 이러면 평범한게 아닌가? 뭐 아무튼 애니메이션 캐릭터...말하자면 기동포격소녀 나대위가 그려진 반팔티를 입은 눈이 작은 남자였다.

우와, 나노하 오랜만에 본다. 한 1~2년 전만해도 진짜 대세였었는데.

" 아, 곰형. 여기에요."

" 오-, 아, 고딩님이신가요. 안녕하세요."

과연 인상처럼 통통한 인상의 사내가 '빨갛게익은곰'이었던 모양이다. 아마 나이는 말하지 않았지만 이십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외모였다. 그 옆에 있는 나대위 티셔츠의 남성역시 비슷한 또래로 보였고.

" 네. 안녕하세요, 카페에서 휴식고딩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근데 예상외네요. 서로 그렇게 가깝게 말하는 사이인줄은 몰랐어요."

유유윳키와 곰형(빨갛게익은곰은 너무 기니까)의 대화를 보면 상당히 친한 듯한 모습이었는데, 카페 채팅방에선 늘 전부 존댓말을 하다보니 이렇게 형동생하는 사이인지 몰랐다. 이런 나의 궁금증에 대답해준 것은 나대위 티셔츠를 입고 커피를 주문하던 눈이 작은 남성. '미사일연발시뮬레이션'이었다.

" 아무래도 채팅방에선 모르시는 분들도 있으니 존댓말로 하는게 좋으니까요. 괜히 반말로 친한사람들끼리 모여서 이야기하면 소외되는 사람도 있고. 암묵적인 채팅방의 규칙이라고 해야하나."

" 아-."

하긴, 그럴 수도 있을 것같았다. 유독 카페의 채팅방 분위기가 엄하더니 그런 규칙이 있었던 모양이다.

" 처음부터 같이 오신거에요?"

유유윳키가 묻자 곰형은 시계를 보며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 아니, 이녀석과는 오다가 만났지. 보다시피 눈에 엄청띄는 옷차림이잖아. 저번에는 아예 코스프레를 하고 오더니만 이녀석 진짜 대단한 녀석이야."

" 이번에도 하려했는 곰형이 말렸으면서. 뭐 나노하짱으로 참겠지만."

" ....3기는 흑역사인데 3기 나노하 옷을 입고오시다니..."

과연 하나같이 덕력이 상당한 오타쿠들이라 대화도 자연스럽게 그런 쪽으로 가는 모양이었다. 사실 나는 나노하는 딱히 좋아하지 않아서 보진않았지만 패러디가 워낙많아서 대부분 알고 있는 편이다. '[포격을 하며)친구가 되어줘'라던지.

" 음, 이제 다들 모인건가?"

제일 연장자로 보이는 곰형이 테이블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이야기했다. 시계를 보니 약속시간인 열두시까지 5분정도 남은 상황이었다.

" 한분 안오셨어요. 고딩님과 동갑인 모에님있잖아요."

" 아, 맞다 그분도 오기로 하셨었지."

유유윳키의 말에 미연시형(이쪽도 너무 기니까 줄이도록하자)이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곰형도 '맞다 맞다 잊을뻔했네.'라고 이야기하며 천천히 핸드폰을 들어올렸다.

" 그렇지 않아도 정모하는 분들의 연락처는 미리 받아뒀으니 연락을 해보면 되겠지. 뭐 아직 늦은 시간은 아니지만 현재 위치나 혹여 정모에 못오게 되었을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말한 곰형은 여유로운 태도로 저장되어있는 번호를 꾹 누르고 신호음이 가기를 기다렸다.

" 아, 받았다. 여보세...."

느긋한 태도로 입을 열던 곰형은 갑자기 눈을 부릅뜨며 급히 통화종료 버튼을 눌렀다. 그리곤 몹시 놀란 얼굴 그대로 조용히 탁자위에 그 핸드폰을 놓았다. ...뭐지? 뭐가 잘못됐나? 아니면 모에님이 자신의 번호를 알려주기 싫어서 이상한 번호를 알려준 것일까?

" 곰형, 왜 그러세요?"

비단 이상하다고 생각한 것은 나만이 아니었기에 유유윳키와 미연시형도 곰형을 바라보며 물었다. 곰형은 몹시 혼란스런 얼굴로 자신의 전화기를 뚫어져라 보다가-

" ....여자가 받았어."

라고 떨떠름하게 이야기를 했다. 그다지 길지 않은 아주 짧디 짧은 말이었지만 그 말을 들은 유유윳키와 미연시형은 그야말로 전율이 일어나는 표정으로 천천히 입을 떼었다.

" 설마... 잘못 건 것 아니야, 형?"

" 분명 모에님이 알려준 번호였다."

" 그럼 모에님이 전화번호를 알려주기 싫어서 장난친거라던지."

" ...그게 제일 유력하지만..."

세명의 남성은 전화기를 앞에두고 방금 전화받은 여성이 누구인가- 라는 것으로 토론을 하기 시작했다. 유력한 추측은 '전화번호를 알려주기 싫어 다른 사람 번호를 말했다'와 '아직 집에서 출발하지 않아서 여동생이나 어머니가 전화를 받았다'라는 쪽으로 이야기가 굳혀져가고 있었다.

' 여자일 수도 있지 뭘 저리 당황한데? -아, 아니지 하긴 모에님이 평상시에 하던 말을 보거나 활동기록을 보면 도무지 여자는 아닌 것같기는 하지.'

부실에서 야겜을 하고 있는 모수연씨 때문에 모에님이 여자여도 '그럴수도 있지'라고 생각하던 자신이 무척 바보같게 느껴졌다. 거기다가 이런 오타쿠 모임에서는 여자란 극히 드물고 귀하기 마련이니 나머지 셋이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뾰로롱~.

" !문자가 왔어...!"

곰형은 탁자에 올려둔 핸드폰이 귀여운 소리를 내며 울리자 미국독립선언문을 펼치는 워싱턴의 표정으로 천천히 화면을 꾹 눌렀다.

[ 늦어서 죄송해요, 앞으로 5분정도면 도착할 것같아요. 갑자기 전화를 끊으셔서 놀랐....]

짤막하고 평범한 문자였다. 5분뒤면 약속시간보다 조금 늦긴했지만 그렇게 늦은 시간은 아니었다.

" ...그러면 방금 전화는 제대로 갔다는 이야기고 당사자가 받았다는 이야기인데..."

곰형과 나머지 세명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문자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카페에서 활동하던 모에님의 기록들을 보면 도무지 여자라는게 상상이 되지 않았지만 현재까지 모인 증거가 말해주고 있는 것은 '모에님은 여성이다'라는 결과였다.

" 여...자라니."

" 저번 모임에 넷카마는 있었어도 여자는 없었는데..."

평범한 애니오타쿠 카패의 정모에 여자가 온다. 라는 것은 아주 흔치 않은 일인 모양이었다. 저번에 열명이 넘게 왔을 때도 단한명도 오지 않았던 것을 보면 놀랄만한 것같기도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아 여자구나.'라는 감상정도 밖에 없었다. 애초에 첫 모임이고 여성 오타쿠가 그리 적은 것도 아니며 무려 같은 부에 나조차 범접하기 힘든 초 오타쿠인 수연이가 있지 않은가.

내 입장에선 그냥 그러려니 할 뿐이었다.

" 상상도 못했다. 모에님이 여자일줄이야."

" 부매니저면 성별보이는데도 몰랐어요, 곰형?"

" 누가 모에님같은 사람을 여자라고 생각하겠냐."

남자들이나 알 법한 드립은 물론, 수많은 야겜 리뷰와 미연시 리뷰만 보더라도 감히 모에라는 사람을 여자라고 생각할만한 회원은 없었다. 야겜을 하는 여성 오타쿠는 애니나 라노벨에서 나오는 환상속 존재이니 말이다.

다들 모에님을 앞으로 어떻게 대해야하나- 하고 고민하고 있을 때, 재차 핸드폰이 짧게 울렸다.

뾰로롱~.

[ 도착했는데 어디세요? 지금 카페문 열고 들어갈게요.]

역시 짤막한 말. 여성보단 남자의 그것을 생각나게 하는 간단한 문장이었다. '카페문 열고 들어갈게요'라는 말을 확인한 세명의 남성들과 나는 천천히 열리기 시작하는 카페의 문을 급히 돌아보았다.

딸랑~, 딸랑~.

귀에 익숙한 방울소리.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은 검은 긴생머리가 아름다운 천사같은 소녀. 누가 보더라도 단번에 빠지고 말 것같은 투명한 외모와 몸을 감싸는 차갑고 도도한 분위기가 소녀를 더더욱 부각시켰고 무표정하지만 딱딱하지 않은 그 얼굴이 곧은 소녀의 마음을 보는 듯 했다.

간단히 설명해서, 무척 아름다운 여자아이였다.

환상속에서나 볼법한, 그런 아름다움을 가진 소녀.

그리고 나는 저 소녀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 ....이, 수연?"

나도 모르게 경악이 담긴 음성으로 짤막하게 신음처럼 읊조리자, 고개를 두리번 거리던 아름다운 소녀의 얼굴이 내 쪽으로 고정되며 붉은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 찾았네."

미약하지만,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 작품 후기 ============================

오타는 완결내면 전체적으로 다 수정할 생각입니다. 재탕하실분들은 그때해주세요! 사실 저는 글을 쓰면서 생각하는 스타일입니다. 그렇다보니 오타가 무척 많은편이에요... 오타수정도 처음엔 매번하다가 시간도 없고 해서 완결나면 한번에 할 생각입니다. 내일 골수검사하러 가서 내일은 올릴 수 있을지 잘모르겠네요.

아무튼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덤으로 던파 법사2각 떴더군요. 일러가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여러 논란도 있구요. 그나저나 던파 배메 2각 설정 제가 예전에 쓰던 던파 팬픽에서 나오는 니우의 테아나 이상의 단계와 설정이 좀 뭔가 비슷하네요. 머리카락이 금발로 변한다는 거나... 비슷한 상상하신 분들이 많아서 그런가. 나름 배메 2각은 똑같이 맞췄으니 예언자인가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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