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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공략당해 버렸다-82화 (82/153)

82화

" 지윤아~, 빨리 떼줘, 떼줘!"

" 잠깐만~, 언니. 가만히 있어야 내가 떼지."

나는 머리에 벌레가 붙어서 바둥거리는 언니를 애써 진정시키며 검은 긴생머리 뒷편에 붙어있던 거미를 손가락으로 떼어내어 풀숲으로 던졌다. 그제서야 바들바들떨던 언니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 우와! 살았어. 역시 여동생이야! 여동생 정말 최고!"

" 버, 벌레따위 무섭지 않으니까. 헤헤."

뭐든지 잘하는 언니다. 운동이면 운동. 공부면 공부 하나같이 너무나도 잘하는 완벽한 언니였다. 하지만 그런 언니가 유일하게 기피하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다리가 많은 벌레. 평범한 벌이라거나, 개미같은 것에는 크게 반응하지 않지만 거미라던지, 지네. 또는 보기 힘든 곤충. 특히 메뚜기를 무척이나 싫어했다.

" 음음~, 아무튼 이것봐 지윤아. 언니랑 모래장난하고 놀자. 여기에 모래로 만든 성 완전 멋지지? 언니 정말 최고?"

" 아이참 언니. 모래장난하면 손이 더러워져."

" 그럼?"

" 응~. 난 소꿉놀이가 좋은데!"

자신이 만든 모래성을 탁탁 두드리며 자부심넘치게 웃는 언니의 모습은 여자아이라기보단 또래의 소년같이 보였다. 모래장난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던 나 였던지라 소꿉놀이를 제안했지만 아니나 다를까 언니는 어색한 얼굴로.

" 에~. 난 소꿉놀이같은 것은 좀- 약한데."

" 왜에?"

그러고보면 언니가 인형을 가지고 놀거나 소꿉놀이를 하는 것을 본 기억이 없었다.

" ...음.... 잘 몰라서."

" 뭘?"

하고 되물었지만 언니는 그저 살며시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을 뿐이었다. 나는 그런 언니의 손길이 좋았기에 더이상 묻는 것을 그만두었다. 언니는 상냥하고, 너무나 멋졌으니까. 이제 만난지 겨우 1년째이지만 누가봐도 친 자매라고 생각될 정도로 우리의 사이는 좋았다.

' 엄마도 나처럼 언니와 사이좋게 지내면 좋을텐데.'

분명 엄마도 재혼할적에는 언니에게 잘대해준다고 웃으면서 이야기했던 것같은데 점차 그런 말이 없어졌다. 지금은 어째서인지 언니를 '이상한 것'을 보는 눈으로 보고 있었고...

" 자자, 지윤아 그러니까 모래성이나 만들자. 언니가 도와줄게."

" 웅~. 어쩔 수없지. 대신에 예쁘게 만들게 도와주기야!"

" 물론이야. 언니만 믿어! 고대의 신비 수준의 피라미드를 만들어줄게!"

나는 아직 어렸다.

모든 것을 깊게 생각하기엔 너무나 어렸다.

그랬기에 이때는 아직 알지 못했다. 지금과 같은 나와 언니의 관계가 무너지게 되는 것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만약 알았다면 나는-

' ....윤...'

조금은 다른 행동을 했을지도 모르는데.

'....지.... 윤.....'

아직도 후회되고 후회되서 그때의 일을 떠올려보지만 생각할 수록 가슴만 아파올뿐이다.

" 지윤아!"

" 으....으에?!"

깜짝이야. 나는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올리며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주변에서는 한창 폭죽을 들고 불꽃놀이가 한창이었다.

어... 피곤해서 잠들었던 걸까?

" 지윤아, 피곤하니?"

고개를 돌리니 언니가 약간 걱정스런 목소리로 말해왔다. 불과 몇달전까지만 해도 완벽한 무표정에 무감정한 언니였지만 고등학교에 들어가고서부터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바로 지금처럼 '감정'이라는 것이 느껴지는 음성이나 목소리가 그 증거.

" 조금. 정말이지 힘들어. 뭐야 이게. 담력시험이 끝나자마자 불꽃놀이라니... 지금이 몇신줄 아는거야?"

" 후, 그러길래 평소에 운동좀 하지 그랬니?"

" 펴, 평소에도 꼬박꼬박하고 있어! 저것봐 윤아언니는 이미 피곤에 쩔어서 시체상태잖아! 이상하게 이 멤버가 체력이 넘치는것 뿐이라고!"

전교에서도 손꼽히는 체력을 지닌 나인데 이상하게 언니 주변에는 체력이 좋은 사람이 많아서 체력부진아 취급이다. 애초에 언니는 인간이 아니지만(이런 면에서) 저 곱슬거리는 해파리 언니조차 이정도로 강철체력이라니. 힘도 좋고 다양하게 육체파라는 것은 진작 알고 있었지만 정말 예상외다.

양아치라면 폐가 안좋아야 되는거 아냐? 양아치주제에 담배도 피지 않고 건전하게 생활하다니. 양아치 실격이야 정말.

" 언니."

" 왜?"

새로 길다란 막대같은 폭죽에 불을 붙이며 그 타들어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본다. 조용히 부르는 나의 말에 내옆에 앉아 주변의 모습을 바라보던 언니가 천천히 물었다.

" 엄마 생일이제 석달 남았어."

" ...그런가. 길다면 길고, 얼마남지 않았다면 얼마남지 않은 시간이구나."

언니는 달라졌다. 내가 전에 이렇게 물었다면 아마 대답도 하지 않고 자리를 피했을 것이다. '도망친다'. 그것이 언니의 방식이고 지금까지 살아온 생존법이니까.

하지만 지금의 언니는 나의 말에 똑바로 대답해주고 있었다.

'금기'와 같은 엄마의 생일을 차분하게 이야기해주었다. 이것은 엄청난 변화다. 나로선 정말 그동안 쭉 바라왔던 그런 모습. 이런 언니를 만든게 나라는 것이 아니라는게 조금 씁쓸하지만 그래도 이게 어디일까.

" 이번 생일에는 같이 준비하는게 어떠니?"

" -응?"

지금 내가 무슨 소리를 들은거지? 나는 멍하니 불빛을 바라보던 시선을 언니에게 옮기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엄마의 생일을 언급한 것도 나로선 꽤나 고민하던 것이었는데 무려 '같이 준비하자'라고?

" -그래. 응, 맞아. 어린시절의 그때처럼, 같이 준비해보고 싶어."

그것은 나와 언니의 마지막 추억. 정확히는 나와 밝은 언니와의 추억. 그 이후 언니는 나를 포함한 모든 가족들을 외면했고 방에 틀어박혀버렸다.

금기중의 금기.

절대로 언급해서는 안되는 그때의 그것을 언니 스스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 어머나, 놀란 표정이 귀여운걸?"

" 윽, 놀리지마! 그말 진짜야? 언니가, 엄마의 생일을 나와 같이-."

" 그래, 같이 준비하자."

언니는 그렇게 말하며 바람에 흔들리는 검은 머리카락을 뒤로 넘겼다.

" 도망쳤어. 계속 도망치고- 외면하고. 음, 그런 것같아. 줄곳 뭔가 해보는게 어떨까 생각했는데 방금전 지윤이의 말을 들으니 한번 스스로 먼저 해보는 것도 좋을 것같으니까."

그렇게 이야기하는 언니의 모습은 여태까지의 무감정한 언니가 아닌 과거의 자신감 넘치던 언니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 민폐만 끼치고. 이제 도망치는 것은 싫어. 줄곳 따라와준 사람이 있고, 달라지길 바라는 사람들이 있거든. 물론 지윤이를 포함해서 말이야. 그래서 결정한거야."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입을 작게 벌렸다. 뭐라고 할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 입가가 계속 미소지어지는 것을 애써 참았을 뿐이다.

" 그러면... 몹시 기쁠것같아."

어린시절의 나처럼 방긋 웃으며 말하자, 언니가 그 얼굴에 작게나마 미소를 지었다. 저 미소를 얼마만에 보았을까. 어쩐지 먹먹한 기분이 들어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꿈에서나 보던, 어린 시절의 언니에게서만 보았던 바로 그 미소.

하지만 불안감은 있었다. 지금의 언니는 과거의 그때와 비슷하지만 그 갈등의 원인이 되었던 다른사람. '엄마'는 그때와 다르지 않다. 솔직히 왜 언니를 그토록 꺼려하는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에도 언니가 그때처럼 거부당한다면.

" 괜찮아."

" 응?"

살짝 불안해진 마음을 어떻게 알았는지 언니가 나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안심하라는 듯이. 방금 꾸었던 꿈처럼 머리를 쓰다듬으며.

" 거부당해도 도망치지 않을거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 당연히 거부당할 것이라 믿고 하는거니까. 그저... 이렇게 하는게 지윤이가 좀더 기쁘지 않을까 생각해서."

언니의 말에 나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한방울 흘리고 말았다. 참고 참았는데 결국.

" 왜, 갑자기 그런 이야기를 하는거야...?"

딱히 전조도 없었건만. 그저 아까 담력시험에서 벌레를 보고 무서워 하던 언니를 보고 어린시절 꿈을 꾸었을 뿐이다. 그리고 깨어나보니 마치 기다렸다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언니의 모습. 마치 꿈만같고 이상하게만 느껴졌다.

" 아까..."

언니는 약간 어색한 얼굴로 차분히 이야기했다.

" 지윤이가 벌레를 쫓아내는 것을 보니 옛날일이 생각났어. 그리고 후훗, 어떻게 잠꼬대로 계속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무시할수가 있겠니?"

" ...아."

확, 하고 얼굴이 붉어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니 분명 붉어졌다. 잠깐 잠이 든사이 혼자서 계속 중얼중얼 거렸던 걸까.

" 아침에 그래서 모래성을 만든다고 한거였구나?"

" .....흥."

나는 굳이 자진해서 할만큼 모래로 장난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저- 어린시절 언니와 자주했던 놀이기에 애착을 가지는 것일뿐. 트, 특별히 그런거 좋아하지 않는다구!

뭐어, 아무튼 그래. 내가 아침에 모래성을 만든다고 한 것도 언니를 생각해서 한 말이었지만 깔끔하게 무시당했다. 지금이라도 알아줘서 고맙다고 해야할런지.

" 그럼 내일은 같이 만들자. 그래, 고대의 신비 수준의 피라미드를 만들어줄테니까."

" 으읏, 언니 그런 것은 너무 튀어. 싫으니까 그냥 평범하게 하자."

뭔가 언니에게 놀아달라고 칭얼거린 동생의 기분이 들었기에 얼굴이 무척 뜨거웠다.

" 헤헤헤~, 상혁아 이거 봐라 불꽃이 아주 쩔어!"

" 으앗! 곱슬아 폭죽을 사람에게 향하면 안되지!!"

....옆에서 분위기 파악 못하고 시끌벅적 떠드는 바람에 곧 가라앉기는 했지만.

" 나, 많이 달라졌지."

" 응. 엄청."

즐겁게 웃고 떠드는 다른 일행들을 보며 언니는 기분좋은 음성으로 말했다. 저 사람들이 있었기에 이렇게나 달라질 수 있었으리라. 언니가 달라진 것은 기분 좋지만 그 점에서는 아직도 조금 슬펐다.

" 계속해서 달라질거야. 옛날처럼 될수는 없을지라도."

" 응."

" 물론 그 달라지는데 지윤이가 가장 큰 역활을 한거니까. 자랑해도 좋아."

" 어?"

의아하다는 듯이 바라보는 나의 말에 언니는 그저 미소만 지었다. 어린시절 자신의 물음에 짓던 미소와는 조금 다른 더욱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 계속, 그렇지?"

앞으로도 자신의 곁에 있어달라는 언니의 눈에 나는 어색하게 볼을 긁적였다. 나도 너무 달라져 버린 모양이다. 예전이었다면 귀엽게 미소지으며 '물론이야 언니!'했을텐데.

" 무,물론이지. 언니는 내가 없으면 안되니까."

" 그래."

언니에게서 솔직하지 못한면을 닮아버렸지만 나쁘지는 않다. 덕분에 빨간 해파리나 구더기 등등을 억누를 수 있게 되었으니.

아마 앞으로도 나와 언니는 조금씩 달라지며,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새삼 그런 것을 깨달게 해준 것을 보면 이런 우스운 합숙도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계속 성장하고, 나아가고 달라지겠지.

하지만 나는 쭉 언니의 아군이 될테니까.

그래. 언니의 말처럼.

계속, 그렇지?

============================ 작품 후기 ============================

합숙편 마지막은 지윤이의 시점에서 끝맺었습니다. 그리고 각 캐릭터들의 과거편을 쓰려고 했으나!

생각해보니 과거편을 쓰고나면 분위기가 다운될테니 정모편 쓰기가 애매할 것같더라구요. 그래서 바로 다음편부터 정모편을 쓰려고 합니다. 물론 그렇게 길지 않아요. 길어봐야 이 합숙정도... 사실 스토리상으로는 정모편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보니. 지루하긴 했어도 합숙편이 좀더 중요하고.

내일 바로 올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정모편 스토리도 생각해야되서 어찌될지는 잘 모르겠네요. 그럼 바이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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