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화
하지만 그 여유도 얼마가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도 그럴게 처음에 나왔던 좀비 경호원들은 장난이라는 듯이 어마어마한 이펙트를 가진 좀비들이 마구마구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 왠 여자가 울고 있길래 좀비 역할을 너무 열심히 하다가 다쳤나 보러갔더니만...'
돌연 나를 향해 뒤돌아보며 엄청난 속도로 쫓아오는 바람에 솔직히 말해서 나조차 간담이 서늘했다. 호러게임을 자주 하지 않은 나도 그 좀비가 어떤 좀비를 모티브했는지는 알 수 있을 정도로.
청이 선배가 '게임'을 참조했다더니만 아마 레프트 4 데드에서 나오는 윗치를 모티브로 만든 좀비가 아닐까 싶다. 좀비계의 우사인 볼트라는 고증을 철저하게 지킨듯, 누군지는 몰라도 그 윗치로 분장한 여성분은 정말 엄청나게 빨리 나를 쫓아왔다.
물론 내가 더 빠르긴 했지만 내가 아니었다면 분명 잡혀서 나동그라졌을거야... 그 좀비의 엄청난 질주속도에 당황한 듯, 다른 좀비들이 막 촉수같은 것(대체 어떻게 만든건지는 모르지만)을 던지고 별짓을 다했지만 나와 그 윗치는 단숨에 지나쳐 가버렸다.
물론 거의 절에 다왔을쯤에는 자기 역할을 다했다는 것인지, 아니면 지쳐서 나가떨어진 것인지는 모르지만 보이지 않았다.
" 윤아와 곱슬이가 비명만 지른 것도 납득이 가네."
양손이 묶인 곱슬이가 그 좀비들은 물론, 저 우사인 볼트 윗치에게서 도망쳤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윤아는 뭐... 곱슬이가 잡힌 시점에서 리타이어였겠지.
이거 클리어 가능한거야? 아니 나 정도 되는 신체능력이 없다면 도망치는 것도 불가능할 것같은데. 무슨 담력시험이 이렇게 난이도가 높아. 적어도 상대가 좀비면 저항할 무기라도 들고 올라가게 하지 맨손으로 저런 좀비들과 맞서라니 쿠소게인 것도 정도가 있어.
처음에 경호원 좀비에서 명환이를 어떻게 데리고 올라왔더라도 아마 윗치에서 끌려가지 않았을까.
" 그래도 도착했는걸."
과연 사용하지 않는 절이라고 하더니만 딱보기에도 '폐가'라고 부를만한 스산한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아마 방울을 들고 사진을 찍으면 된다고 했었지.
한밤중에 뜀박질을 잔뜩한 탓에 어서 돌아가서 씻고싶었으므로 나는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절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내가 발을 옮기기 무섭게 옆에 있던 높은 나무에서 거대한 물체가 뛰어내렸다. 산의 어둠 속에서도 뚜렷하게 보이는 거대한 무언가.
'그것'은 평범한 좀비(들로 분장한 사람들)보다 키가 컸으며 상당히 흉즉한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 목에 그로테스크한 뭔가를 감고 있고 양손에는 어째서인지 흉흉해보이는 총기들을 들고 있었다.
간단히 설명해서-
" 네메시스 잖아...."
바이오 하자드의 대표적인 보스캐릭터. 갑자기 레포데에서 바이오 하자드로 장르가 넘어가는 거야? 뭐 그런 사소한 것은 넘어가더라도 굉장한 퀄리티잖아. 당장 저러고 주택가를 습격하면 진짜 괴물취급받을 것같다고 생각될 정도로 흉악하고 강렬한 포스를 뿜어내고 있었다.
" 더이상은 못가십니다."
-라고 유창한 목소리로 말만하지 않았다면 말이지. 뭐야! 외견은 최강인데 저렇게 다정한 음색으로 평범하게 이야기하다니. 외견이 아까워!
근데 어디서 들어본 목소리인데.
" 청이 아가씨가 저와 대결해서 이긴 분만 통과시키라 하셨습니다."
아! 그때 명환이한테 정신이 팔려있어서 신경쓰지 못했지만 그 불량배들을 제압한 청이 선배의 집사님인가. 과연 그 거구라면 저런 변장이 가능할 법도 하지. 나이도 많다고 들었는데 고생하시네.
"...그럼 저 귀찮은데 그냥 돌아가도 될까요?"
까짓거 오기도 다왔는데 굳이 저 네메시스 집사님과 대결하면서 까지 방울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생각해보면 딱히 벌칙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내가 왜 여기까지 올라온 거지. 적당히 하다가 돌아갔으면 그만인 것을.
새삼 생각난 사실에 난 작게 한숨을 쉬었다. 아, 실수했다. 그냥 명환이랑 아웃당할걸.
' 아니, 그랬으면 청이 선배가 실망했으려나.'
이런 어마어마한 좀비부대를 동원한 것은 아마 나를 위해 준비한 것같으니 말이야. 어찌됐던 지금으로선 어울릴 것은 모두 어울려줬으니 그만해도 되지 않을까.
" 그럴순 없지요!"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거체가 날았다. 아니 나 여기서 그만한다니까! 아니 그만하면 '아웃'이라서 제압하겠다는 의도인가? 아, 그건 싫은데.
몸을 숙여서 나를 향해 뻗은 팔을 피한 뒤에 가볍게 뒤로 물러선 뒤에 상황을 살핀다. 보아하니 '보스몹'같은 거라서 주변에 자잘한 좀비들은 없는 모양인지 네메시스 집사님 한명만이 강력한 포스를 뿜어내고 있었다.
아니, 저거 진짜 네메시스라니까? 입만 열지 않으면 너무 굉장한 퀄리티잖아.
근데 뭘 어떻게 해야하지. 보아하니 자신을 쓰러트리고 지나가라는 포스인데 정말 싸우라는 것은 아닐테고-. 내가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을 알았는지 네메시스 집사님이 입을 열었다.
" 아, 참고로 등에 매달려있는 열쇠를 가지고 가신다면 승리십니다. 절의 문에 걸린 금속 자물쇠를 따는데 필요한 열쇠지요."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이 말하는 네메시스 집사님. 그런 것은 보통 덤벼들기전에 말해야 되잖아! 뭐어 암튼 좋아. 열쇠만 챙기면 된다 이거지?
" 간단하네요."
후, 하게 작게 심호흡을 한 뒤에 발을 구른다. 탁, 탁, 발을 구르며 자신이 동할 곳의 위치를 살핀다. 한번에, 단 한번에 끝냈다. 그리고 그대로 점프해서 네메시스 집사님의 뒤를 잡으려 했지만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은지 팔을 뻗어 그 행동을 제지했다. 처음에 들고 있던 총기류는 아마 장식품이었던 듯 바닥에 내던진 집사님은 그 커다란 손으로 내 팔을 강하게 잡아채왔다.
아무래도 내가 여자이다보니 근력을 이용해서 제압하려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나는 그것을 이용해서 역으로 집사님의 팔을 잡고- '공중'으로 들어버렸다.
" 무...뭐-."
집사님이 당황한 듯한 모습이었지만 나는 속으로 싱긋 웃으며 그대로 뒤로 넘겨 바닥에 집사님의 거구를 쓰러트렸다. 그리고 곧바로 등의 열쇠를 향해 손을 뻗었지만 집사님도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듯이 땅에 떨어지는 순간 낙법을 이용해 충격을 줄이고 바로 나의 손에서 벗어났다.
" ...청이 아가씨가 말씀하시긴 했지만 이상할 정도의 신체능력이군요."
하기야 보통 여고생이 2미터가 되어가는 거구의 남성을 순수 근력으로 들어올려 뒤로 매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나는 가능하다. 나도 그 이유는 잘 모르지만 -뭐 옛날부터 내 신체능력은 불가사이할 정도였으니까. 죽었다 살아난 부작용인걸까.
아무튼 계속 시간을 끌어봐야 시간낭비다. 나는 다시 뛰어나갈 자세를 잡으며 한층 몸을 사리는 집사님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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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한 좀비들이네요."
지윤은 손을 탁탁, 털며 바닥에 널부러져있는 좀비를 보며 혀를 찼다. 벌서 몇번째인지.... 수연이가 출발한 뒤에 10분정도 시간을 두고 산을 오르기 시작한 지윤과 상혁은 계속해서 튀어나오는 좀비들에게 질릴 수밖에 없었다.
" 이게 어딜봐서 담력시험인지. 체력시험이면 모를까."
신랄하게 비난하는 지윤이의 말처럼 바닥에서 튀어나오거나 다양한 방법으로 나오는 좀비들의 모습은 나름 공포스러웠지만 그것을 해결하는데에 필요한 것은 용기가 아니라 신체능력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지윤의 신체능력은 그다지 뛰어나지 않다. 그래도 나름 호신술을 익힌데다가 언니를 뒤따라가고 싶어 운동을 자주했기에 체력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좀비(경호원)들도 진심으로 덤벼드는 것이 아니기에 지윤이가 나름 손을 쓰면 알아서 쓰러져 주었지만 힘든 것은 힘든거다.
" 오-, 그 뭐냐. 대단한데!"
" 아무렇지도 않다는 얼굴로 칭찬하지 마세요. 정말 짐짝이 따로 없다니까요. 대체 몇번을 끌려가는 거에요. 굼뱅이도 구르는 제주가 있다던데, 굴러서라도 도망쳐야죠."
눈가를 가늘게 좁히며 날카롭게 이야기하는 지윤의 모습에 상혁은 어색하게 웃으며 볼을 긁적일 수밖에 없었다. 일반 좀비들에게 제압해서 바닥에 구른 것만 세번. 이상한 촉수같은 것에 휘감겨 질질 끌려간게 두번.
울고 있는 여자가 있다면서 말걸었다가 제압되기까지. ...솔직히 지윤도 그때만은 구해주고 싶지 않았다. 상혁을 제압하고 있는 여자가 방금전 상혁을 쫓아갈때 보여준 엄청난 달리기와 무시무시한 포스가 지윤조차 접근하길 꺼려지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버리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인지라 간신히 구해주고 이제서야 목적지인 절에 다와간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근데 이상하네요. 지금쯤이면 언니가 슬슬 내려와야 되는데."
" 그러게. 사실 10분차이면 한참전에 만났어도 이상하지 않은데 말이야."
윤아와 곱슬이야 어디에 붙잡혀서 나동그라졌을지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설마 수연이가 그렇게 된다고 생각하기엔 어려웠기 때문이다. 상혁의 입장으로선 지금까지 보여준 수연이의 신체능력은 인간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 저어번에 사대천왕인가 하는 뭐시기들과 곱슬이와 얽혔을때는 무려 곱슬이가 그다지 큰 것은 아니었다고 해도 오토바이를 들어서 던지기까지 했고.'
사실 수연이도 수연이지만 곱슬이도 이상하긴 매한가지이니 그냥 이젠 그러려니 할 뿐이다. 아마 곱슬이가 양손을 묶이지 않았다면 아마 좀비들은 바닥에 다 나뒹굴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할 따름이다.
============================ 작품 후기 ============================
주말엔 연제가 힘들어서(부모님 두분이 다계셔서 컴퓨터 쓰지말고 쉬라고해서 글쓰기가 힘들답니다) 못올릴뻔했는데 주무시는 틈을 타서 짧게 올립니다.
사실 수연이의 시점에선 자기가 공략되는 평범한 미연시지만 상혁이 시점에서 진행하면 수연, 곱슬, 윤아 이벤트를 모두 겪는다고 했을땐 학원 액션물에 가깝죠. 특히 곱슬이와 관련되면... 수연이는 모르지만 상혁이는 안보는 곳에서 무지무지 구르고 있었다는거.
아마 나중에 상혁이 시점의 외전(완결후에)을 쓸지도 모르겠군요. 뭐 곱슬이랑 윤아와 관련된 것은 다음편에 담력시험편이 끝나면 나오긴 하겠지만요.
이거 완결내고 다음작품은 고민중인데 저번에 투표에선 엘프를 원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그것도 스토리 생각중이고 말이죠.
얀데레 1인칭 시점의 이야기도 생각중이라 어떤걸 쓸까, 생각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