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그런 청이 선배를 뒤로 하고 빠르지 않은 걸음으로 길을 걸었다. 명환이 녀석이 걸음이 느린 것도 하나이고, 굳이 빨리 걸어 힘을 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 귀... 신 같은거 별로 무섭지 않아?"
내가 말없이 계속 걸어가는게 뻘쭘했는지 명환이가 어색한 얼굴로 작게 물어왔다. 마치 겉모습만 보면 귀신을 무척 무서워하기에 동조를 구하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저녀석은 귀신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 다는 것을 누구보다 나는 잘 알고 있다.
다르긴 하지만 나는 분명 전생에 명환이었으니까!
" 별로."
환생을 한 이후 귀신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라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무섭거나 한 것은 없었다. '영혼'이라는 것을 믿게 되기는 했지만 그것과 달리 내가 귀신을 보거나 한 것은 아니니 말이다.
" 그, 그래? 음... 혹시 저기- 나랑 조가 되서 역시 화난거지?"
아무래도 내가 계속 단답형식으로 대답한 것이 원인인 듯 명환은 눈치를 살피며 그렇게 말했다. 딱히 그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명환이 자체를 꺼려하다보니 당사자는 그렇게 느꼈던 모양이다.
" 그다지, 그런 것은 아니야."
" 그러면 다행이지만-. 상혁이 대신해서 나같은게 짝이되서 그런가 해서."
아니 뭐시라. 이녀석은 갑자기 무슨 뜬금없는 소리를 하는거냐.
" 호오, 어째서 갑자기 그녀석의 이름이 나오는 걸까나."
" 아니, 그게 그러니까. 음, 그 계속 상혁이를 신경쓰는 듯해서."
...무슨.
뭐야 나. 이런 녀석에게 눈에 띌만큼 그녀석에게 신경쓰는 모습을 보인거야? 그렇다면 곱슬이가 계속 나를 의심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 하지만 나는 딱히 상혁이에게 데레데레한 모습은 보인적 없다구! 츤데레지만 츤이 99퍼센트고 데레가 1퍼센트니까!
" 별로 그런 것은 아닌데, 그렇게 보였니?"
" 그래? 내 착각인가? 뭔가 상혁이를 보는 시선은 다른 사람을 보는 시선과 좀 차이가 있는 것같아서. -지윤이던가? 그 동생을 보는 시선도 달랐지만 그쪽은 가족이니까."
뭐, 뭐야. 이녀석에게 이런 재주가 있었나? 전생의 자신을 머릿속에 떠올려봤지만 애초에 명환이던 시절엔 이렇게 가깝게 이야기할 사람이 없었으니 알 수 없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라 내 시선을 분석하다니. 더군다나 계속 지켜본 것도 아니고 스쳐지나가듯 본 것만으로 내 시선에 깔린 본심을 알아차린 것이다. 무서운 아이!
' ...아니, 생각해보면 저 때는 언제나 눈치를 살피는 입장이었으니 남의 감정을 살피는데에 익숙했을지도 모르지. 지금은 다 잊어버렸지만.'
지금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이정도 뿐이다. 뭐어 애초에 전생과는 너무나 달라진 현재이니 하나하나 굳이 과거에 대입해서 이상하다 아니다 따지는 것도 우스운 일이니까.
" 근데..."
이녀석은 질리지도 않는지 계속해서 말을 걸어왔다. 뭐 나로서도 침묵만을 일관한체 올라가는 것보단 이 편이 나았기에 간단히 답변해주었다.
" 왜?"
이런 나의 답변에 명환은 잠시 움찔했지만 이내 익숙해진 얼굴로 재차 말을 이었다.
" 아니 뭐라고 해야하나, 우리 길을 걷기 시작한지 좀 된 것같은데 아무것도 안튀어나오고 먼저 갔던 애들도 소식이 없길래."
어라, 그런가? 슬쩍 뒤를 돌아보니 생각보다 우리가 걸어온 거리가 꽤 되었다. 청이 선배가 말한 '절'이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이정도 걸어왔으면 적어도 절반은 온 것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거기다가 명환이 말처럼 멀리서 말소리라도 들려야할 곱슬이와 윤아의 음성이 조금도 들리지 않았다. 지금쯤이면 돌아오고 있어야 할 시간일텐데.
" 뭔가 이상-"
하다가고 말하려는 순간, 발아래에서 이질적인 감각이 들었다. 반사적으로, 말그대로 '뭔가 일어날 것같다'라는 순간의 판단으로 서있던 자리에서 급히 물러선 나는 바닥에서 튀어나오는 손을 볼 수 있었다. 만약 내가 그 자리에 그대로 서있었다면 지금 바닥에 넘어져 뒹굴거리고 있는 명환이처럼 되었을지도 모를일이다.
" 으, 으에에엑! 무-뭐야 이건!!"
귀신을 그다지 무서워하지 않는 녀석이지만 이런 상황에는 익숙하지 않은게 보통이겠지. 울 것같은 얼굴로 바닥에 튀어나온 손들에게 저항해보지만 바닥에서 튀어나온 손들은 전혀 용서없이 명환이를 제압했다.
....그렇다고 해야하나. 뭐야 이 퀄리티?! 진짜 좀비물? 해도 너무하잖아! 대체 어 떻게 땅속에 숨어있는 것데! 숨쉴수 있는거야?!
아무튼 바닥에서 튀어나온 손들은 좀비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몹시 능숙한 손놀림으로 순식간에 명환이를 제압한다음 바닥을 들썩 거리며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대체 어떻게 바닥에 들어가서 튀어나오는 걸까. 위에 흙으로 덮여진 상태에서 나오는 거면 인간이 할 수 있는게 아닌데. 바닥아래에 뭔가 공간이 있었던게 아닐까? 흙의 무개를 이겨내고 튀어나올 수 있을리가 없잖아.
" 으어어어...어어어."
" 우어어...어어어."
으,으음. 목소리도 최선을 다해 제현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분장퀄리티도 높아서 진짜 좀비라고 생각될정도. 과연 이정도면 곱슬이와 윤아가 그토록 비명을 지른 것도 이해가 간다. 곱슬이라면 바닥에 튀어나온 손은 피했어도 윤아는 지금 명환이처럼 꼼짝없이 제압이 되었겠지.
' 아무튼...'
슬그머니 뒤로 물러섰다. 좀비들(?)이 땅속에서 튀어나온 탓에 그 외양은 결코 깔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땅속에 있었다면.... 그 몸에 그, 뭐시냐. 벌래같은 것도 붙어있을지 모르고.
" 으햑, 머리에 지네가 떨어졌잖아! 이, 이거 때주세요, 으아아앙아아아!"
-저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으아, 정말 지네잖아. 명환이의 얼굴위를 기어가는 지네를 보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다른 것은 몰라도 저것만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 으어어어... 우어어어..."
" 으... 어...어어....어."
목소리는 몹시 느린 진짜 좀비같은 음성이었지만 땅속에서 튀어나온 좀비들의 움직임은 목소리와 달리 매우 민첩했다. 숫자는 대략 다섯정도. 그들은 매우 익숙한 움직임으로(좀비 특유의 다리저는 모션까지 세세하게 구사하며) 단숨에 나의 주위를 포위했다.
민첩하다고! 좀비주제에 너무 민첩하고 지능적이야! 음성이나 움직임은 세세하게 고증을 따르면서 행동은 왜 그게 아닌건데! ....그러고보니 청이 선배가 말한 것을 생각해보면 '경호원'들과 '가정부'분들이 도와준다고 했었지. 지금 눈앞에 있는 좀비분들은 여성이 없는 것으로 보아 '경호원'분들이라고 봐도 좋은 걸까.
" 으어...어어... 제압해!"
" 으어어어... 어어... 예!"
' ....제압하라고 소리치는 좀비가 어딨어!!'
아무튼 명색의 경호원들이다보니 세세한 좀비의 움직임을 따르고 있음에도 몹시 재빨랐다. 물론 다리움직임과 달리 손과 팔의 움직임은 도저히 좀비의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지만.
' 명환이는 나중에 구하기로 하고, 우선은 절에 가야겠지? 몸이 더러워 보이는 저 분들은 손을 쓰기도 꺼려지니 빠져나가는 것을 목표로 삼자. 청이 선배도 굳이 둘이서 같이 사진을 찍으라는 말은 없었으니까.'
순식간에 명환이를 버리기로 결정한 나는 자리에서 점프해 나뭇가지를 잡고 단숨에 가지가 두터워 보이는 나무 위에 착지했다. 밤이다보니 혹여 벌래같은게 있지 않을까 했지만 다행히도 그렇지는 않은 모양이다.
" 나무 위! 나무 위다!"
저기, 이미 자신들이 좀비인 것 까먹지 않았나요.
아래쪽에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좀비들을 보며 나는 혀를 차며 급히 자리를 내뺄 수 밖에 없었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평상시에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을때라면 모를까 지금같이 좀비분장을 한 경호원들에게 붙잡힐 만큼 나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단숨에 나무와 나무사이를 넘어 바닥에 착지한 나는 길을따라 빠르게 질주했다. 중간중간 좀비들이 튀어나오려고 했지만 워낙 내가 빨리 달려간 탓에 나올 타이밍을 잡지 못했고, 분장한 모습으로는 나를 쫓아올 수도 없었다.
" 여유네, 여유."
곁눈질로 뒤를 보니 이미 나를 따라오고 있는 좀비들은 보이지 않았다. 이정도면 되겠지. 빠르게 움직이던 다리를 멈추고 지금쯤 좀비들의 먹이(!)가 되었을 명환이에게 작게 기도했다. 아마 윤아나 곱슬이도 명환이처럼 제압되서 먹잇감이 되었으리라.
============================ 작품 후기 ============================
다음편에 담력시험편 끄읏. 그다음 지윤이 꿈이야기 잠깐 나오고 합숙편은 대체로 마무리입니다. 그다음 지윤, 윤아, 곱슬이 순서로 과거편이 나오고 정모편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