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4권>
" 네~? 담력시험이요?"
아연한 얼굴로 중얼거리는 상혁의 말에 나도 '에, 정말?'이라는 시선을 가득 담아 청이 선배를 바라보았다. 청이 선배는 이런 우리의 시선을 받으며 한껏 기분좋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럼~♪ 경호원 분들하고 가정부 분들이 이번 담력시험을 위해서 얼마나 힘을 써주셨는데. 역시 이런 고교합숙같은 것에선 담력시험이 빠져서는 안되는 거잖니?"
과연. 청이 선배는 오타쿠도 아닌데 왕도전개를 잘 알고계시는걸. 역시 수학여행하면 담력시험이지. 나야 뭐 귀신같은 것은 별로 무서워하지 않으니 좀 귀찮을뿐 특별히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마 명환이도 귀신같은 것은 무서워하지 않을테고, 지윤이도 특별히 귀신을 무서워한다는 이야기는 들은 기억이 없다. 밤중에 혼자 공포영화도 태연한 얼굴로 보는 애고... 상황을 너무 깔끔하게 분석하다보니 그런 것에 공포를 느끼지 않는 모양이었다.
' 음, 하지만 담력시험이면 역시 무서워하는 애가 있어야 되는데.'
기껏 열심히 담력시험을 준비했는데 아무도 무서워하지 않는다면 그것도 문제다.
" ....아, 나 이런 무서운 것 딱 질색인데."
예상외로 가장먼저 고개를 흔든 것은 상혁이었다. 보통 여자애들이 겁을 내야 정상아니야? 그리고 저번 도쿄 디즈니 랜드에서 나랑 같이 귀신의 집 갔을때는 별로 무서워도 하지 않더니만.
이런 나의 시선을 알아차렸는지 상혁이 나와 시선을 마주치며 겸연쩍은 얼굴로 말해왔다.
" 뭐어 귀신의 집은 그냥 건물안이니까 그런데. 귀신과는 별개로 이런 곳에서 담력시험하면 그 어두운 산속을 올라가거나 하는 분위기가 무섭다고 해야하나."
" 굳이 설명해줄 필요는 없는데."
"...아니 표정은 '저번에 나랑 귀신의 집갔을 때는 별로 무서워 하지도 않더니만'이라는 표정이라서 말이야."
힉.
이녀석 이젠 정말 독심술까지 익혔나? 혹시 혼자말이라도 했나 생각했지만 난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 거기다가 나는 알다시피 무척 무표정한 얼굴인데 그 무표정에서 어떻게 표정을 읽은거야.
" 흐응, 변태구나? 남의 얼굴을 일일이 들여다보고 말이야. 무슨 흑심이라도 있는걸까?"
" 윽! 아무튼 너란 녀석은... 크으, 아무튼 담력시험은 자신없는데."
상혁이 녀석은 정말로 담력시험에 자신이 없는지 머리를 벅벅긁는 것이 보였다. 담력시험 특유의 분위기가 무서운 것일까? 아니면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 뭐 어느쪽이던 남자답지 못한 녀석이라는 것은 분명하지. 저 겁많고 찌질찌질한 명환이도 그런 것에는 겁을 내지 않는데.
...말하고 나니 조금 슬퍼지는걸.
' 뭐 아무튼.'
슬쩍 곁눈질로 한숨을 쉬고 있는 상혁이를 본다. 뭐, 뭐어 정말이지 어쩔 수 없네. 저렇게 겁이 많아서야...
" 정말 구제불능이구나? 그렇게 무서우면 특별히 내가....."
" 상혁아~!! 같이가자 같이! 나 귀신같은 것에 약해서... 상혁이가 같이 가줬으면 좋겠어!!"
천천히 입을 열던 나의 말은 옆에서 갑작스럽게 튀어나와 소리치는 적색머리칼의 민폐녀의 음성에 깔끔하게 지워졌다. 아니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지금 네가 귀신이 무섭다고 한거냐. 차라리 윤아였으면 이해라도 하지 너는 '겁'과는 가장 동떨어진 세계에서 살고 있잖아.
" 거짓말은 좋지 않다는 것 정도는 초등학생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일텐데."
내가 뒤에서 빤히바라보며 작게 이야기하자 곱슬이녀석은 그 성격만큼이나 짜증나는 곱슬머리를 흔들며 나의 말에 부정했다.
" 진짜야! 내가 뭐하러 그런 것을 거짓말하냐?"
뻔한 소릴 하긴. 상혁이랑 붙어있으려고 그런 다는 것은 여기있는 모든 사람들이 알거다.
" 귀신은 패버릴 수 없잖아. 당연히 무서울 수밖에 없지."
" ....."
과연 그렇게 말하니 설득력이 있는게 무섭다. 과연 곱슬이라고 해야하나. 뭐라고 반박할 만한 말을 생각하고 있는데 곱슬이가 상혁이에게 달라붙어있는 모습그대로 머리를 갸우뚱 기울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단순한 시선이었지만 점차 눈가가 가늘게 좁혀지며 명백히 수상하다나는 시선으로 나를 바라봐왔다.
" 근데 왜 그런걸 신경써? 내가 상혁이랑 가든말든 갑자기 왜...... 흐으음..?"
뭐야 그 눈은. 사람을 의심하는 눈이잖아.
" 너 수상한데. 전이라면 쿨하게 내가 뭐라하든 말든 그냥 짜한 시선으로보고 신경도 안쓰던 녀석이 갑자기...."
큿, 예민한 녀석 같으니라고. 죽어도 여자아이는 여자아이라는 거냐. 상혁이녀석은 전혀 눈치도 못채고 그저 곱슬이 녀석을 밀어내는데에 전념하고 있는데 말이야.
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상혁이 본인을 제외하곤 딱히 내가 녀석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숨길 생각은 없다(특별히 곱슬이나 윤아처럼 좋아한다고 보기 어렵고 단순한 호감수준이라고 생각하니까... 지금은 말이야.). 만약 이곳에 곱슬이가 따로 내게 물어왔다면 아까 윤아에게처럼 주저없이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혁이 본인이 바로 앞에 있었기에 차마 말을 할 수 없었다.
" 어머나. 그렇게 질투하지 않아도 좋은걸. 내가 저녀석에게 관심이 있을리가 없잖니?"
" 그래도 수상한데..."
내가 단호하게 말을 했음에도 곱슬이는 의심스러운지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전부터 계속 나를 의심하던 녀석인지라 쉽사리 시선이 변하지 않았다. 쳇, 이거 귀찮게 됐는걸.
뭐라고 말을 해서 관심을 돌려야하나-하고 잠시 고민하는데 예상치 못한 원군의 음성이 들려왔다.
" 어머어머. 그렇게 기대하는건 좋지만 멋대로 짝을 정하면 재미없잖니. 역시 이런 때에 짝은 제비뽑기로 정해야 하겠지?"
제비뽑기? 즉, 랜덤으로 하자는 소리인가.
" 그게 좋겠네요. 전 아무래도 좋지만 저 빨간 해파리같은 언니가 저렇게 방방뜨고 있는 모습을 보니 조금 별로라서 말이죠."
청이 선배의 말을 반긴 것은 지윤이었다. 잠자코 이쪽을 지켜보고만 있는 듯 싶더니 아무래도 시끄럽게 떠드는 곱슬이의 모습이 거슬렸던 모양이다.
" 맞아, 확실히 이편이 공평하겠네. 자기가 하고싶은 사람이랑 하게되면 명환이의 입장이 곤란하잖아. 아무래도 아직 명환이로선 편한 사람이 상혁이 정도인걸."
윤아는 뻘쭘하게 서있는 명환이를 생각해주며 말했지만 명환은 그저 어색하게 웃으며 끄덕일 뿐이었다. 흥, 뭐가 곤란해. 아마 저녀석은 지금까지 지켜봤던 모습을 생각하면 청이 선배와 어떻게하면 같이갈 수 있을가 생각하고 있던 모양인데.
'나'라고 부를 수는 없지만 전생의 명환이었던 존재로서 녀석의 그런 모습들은 하나하나 눈에 가시같이 신경쓰인다. 역시 난 저녀석이 싫어.
" 자아, 그러면 제비뽑기 시작할게~. 다들 긴장하고 있어!"
언제 만들었는지 나무젓가락을 이용해서 제작한 듯한 제비뽑기를 흔들며 청이 선배가 신이 난듯 이야기했다. 애초에 담력시험이 싫다고 했던 상혁이로선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일뿐 반론은 허락되지 않았다.
가끔 이런 모습을 보면 나 못지않게 청이 선배도 상당한 마이페이스적인 성격이 강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가장 '마이페이스'에 어울리는 녀석은 신중하게 제비를 뽑고있는 저 적갈색 머리칼의 암코양이같은 녀석이지만.
아무튼 그렇게 순서대로 제비뽑기를 한 결과.
나 - 명환
지윤 - 상혁
곱슬 - 윤아
라는 최악의 편성표가 짜여지고 말았다.
" ...청이 선배는 없는 것같은데 착각인가요?"
" 어머나, 나는 관계자인걸? 숨어서 귀신역활을 할거야. 어차피 짝도 안맞지 않니?"
과연 그래서 그토록 신나했구나.
" ...결국 이렇게 될거라고 생각했어.."
" 뭐, 나도 마찬가지야 곱슬아."
곱슬이는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제비를 보며 쓸쓸이 웃음지었고 윤아가 나란히 앉아 해탈한 듯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배가 부른 녀석들이네 솔직히 말해 너희들은 '상혁이'랑 짝이 되지 않은 것뿐이지 나쁘지 않잖아!
" 저-, 수연아?"
" 왜."
" 윽, 아, 아니 그-. 같은 조니까..."
" 알고 있어."
크으, 왜 하필 다른 누구도 아닌 명환이랑 짝이 된거야. 이거 뭔가 이상해. 세게의 억지력? 다른 누구도 아닌 명환이랑 담력시험을 해야된다는 거야?
하아.
더군다나 이녀석은 귀신도 무서워하지 않으니 청이 선배가 준비한 담력시험 경로로 지나가는 내내 침묵이 계속될지도 모른다. 한숨이 절로 나오네. 옆에 있는 명환이는 안절부절하며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하는 표정이었지만 상관할바 아니다.
그나마 내가 굳이 조를 바꾸겠다고 난리를 치지 않는 것은 나만큼이나 좋지 않은 조가 있기 때문이지.
" 저, 지윤아?"
" 왜요, 이젠 언니에 이어서 저까지 어떻게 해보려는 속셈인가요."
" 아니, 그 나 귀신에 약해서..."
" 호오-, 그말은 담력시험을 핑계로 이런저런 짓을 할지도 모른다는 예고라고 생각해도 좋은건가요?"
" 아, 아니 그건 아니고."
" 아아, 정말. 왜 하필이면 구더기 같은-. 아, 실례. 아무튼 구더기 같은 오빠와 짝이되다니."
" 야! 수정하는 척하면서 그냥 말을 이어붙인 것 뿐이잖아!!"
지윤이와 상혁이 조에 비하면 이쪽은 그냥 침묵뿐이니 그나마 나은 건가. 지윤이가 상혁이를 싫어하는 이유는 내가 거짓말했던 '여동생과 함께하자!'가 원인이 되는 만큼 상혁이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걸로 변태로 낙인찍인 다음부터 더이상 회생하지 못할만큼 여러가지 비호감이 쌓여버린 저 결과라고 해야하나.
아, 저녀석 공부가리키겠다고 병원에서 하루밤을 함께 보낸 적도 있었지. 그때도 아마 지윤이가 '또, 그 오빠인가요?'라고 말했던 것으로 보면 아마 그 시점에서 이미 상혁이와 지윤이는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된게 아닐까 싶다.
쏘리, 상혁아. 다음에 아메리카노라도 한잔 사주도록 할게.
============================ 작품 후기 ============================
오랜만입니다! 사실 퇴원은 지난주 금요일날 했어요. 어제 올리려고 댓글을 봤더니 걱정하는 댓글이 많더라구요. 그래서 어제 올리려고 했는데.
넵튠을 사버려서! 넵튠을 하고 말았어요! 역시 느와르가 짱이네요. 마키세 크리스 성우라 그런가 뭔가 더 마음에 드는 느낌.
덤으로 병원에서는 컴퓨터를 하지 못했습니다. 덕분에 핸드폰으로 누워서 스마일 프리큐어와 하트캐치 프리큐어를 다 봤죠! 아아, 아동용 애니메이션이라고 깔봤지만 스마일 프리큐어는 여러가지로 정말 감동이었어요. 프리큐어 정말 재밌네요.
다만 두근두근 프리큐어는... 음 뭐라고 해야하나 마지막 파르테논 모드! 로 변신하더니 발차기 한방이 '빅뱅급 데미지'라는 말을 듣고 오오, 이것참 그렇구만. 이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발차기 한방이 빅뱅급이면 손오공도 맞고 죽겠다.
아, 어쩌다가 프리큐어 이야기로 빠졌는데 아무튼 이제 다시 일일연제 시작할 생각입니다. 아직 몸상태가 완전 괜찮은 것은 아니어서 20kb연제는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되도록 10kb는 올리도록 할게요.
빨리 완결내고 다음작 써야지. 투표를 보니 엘프가 가장 많은데 입원한 상태로 이것저것 재밌는 글들을 많이 생각해서 복잡한 기분이에요. 프리큐어보면서 아... 마법소녀물을 써볼까 라는 생각까지 해서...
아무튼 내일 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느와르가 정말 귀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