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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공략당해 버렸다-75화 (75/153)

75화

지윤은 눈동자를 데구르르 굴리며 주변을 살폈다. 현재 이곳은 청이의 별장안. 해변에 가기전에 경호원들에게 중요한 짐을 맡겨 모두 날라두었기에 들어오는 것은 지금이 처음이었다. 과연 청이의 별장이라고 할만큼 별장안은 깔끔했고 시설도 무척이나 좋았다.

사실 지윤으로선 '개인별장'이라는 사치를 부릴정도의 사람을 만나본적이 없어서 지금 상황이 몹시 낯설었기에 그저 '친구들끼리 돈을 모아 여행을 간' 정도로 생각하기로 했다.

저녁시간이었기에 요리를 할 수 있는 수연, 곱슬이, 청이는 부엌쪽으로 재료를 가지고 사라졌고 명환, 상혁, 이, 지윤으로선 밥이 되기전까지 잉여처럼 거실에 앉아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 우우, 보통은 이런데서 소꿉친구가 뭔가를 해줘야하는게 아닐까~."

" 어, 어쩔수 없잖아. 저 세명이 요리를 너무 잘하는걸. 우리는 나중에 정리하는 거나 열심히 하도록 하자."

" 청이 누나의 요리 너무 기대된다..."

흥. 당연히 언니의 요리가 가장 뛰어나겠지만요. 지윤이는 속으로 코웃음치며 세명의 말을 흘려들었다. 수연이의 요리실력이 얼마나 뛰어난지는 어린 시절부터 잘 알고 있는 지윤이다. 설마 저 양아치가 자신의 언니보다 잘할리는 없으니 청이정도가 수연이에게 위협적인 요리 실력을 지녔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 하지만 가만히 기다리고 있는 것도 심심하고.'

텔레비전을 보지 않다보니 마땅히 시간을 보낼게 없었다. 상혁과 명환, 그리고 윤아의 틈에 껴서 수다를 떠는 것은 본인 성격에 맞지도 않았고 마땅히 할 말도 없었다. 애초에 지윤이에게 있어 상혁이는 적! 그런 존재와 즐거운 마음으로 대화하고 싶은 마음따윈 없었다.

뭐 할게없나- 하는 마음으로 별장을 이곳저곳 기웃거리던 지윤은 탁자 아래에 놓여있는 무언가를 발견하곤 눈을 반짝였다.

' 우와, 체스네~.'

체스, 바둑, 장기. 이 세가지는 지윤이가 무척이나 잘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놀이이기도 했다. 어린시절부터 지윤이는 손으로 만지작 거리며 무언가를 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래서 레고라던지, 오늘처럼 모래성을 만든다던지 하는 조립이나, 창작하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했지만 체스나 장기와 같은 것도 엄청 좋아했다.

음, 이것이라면...

지윤은 흘깃 명환과 윤아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상혁을 바라보았다. 마땅히 저 사람을 어떻게 괴롭혀야겠다- 라는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는데 이것이라면 충분히 괴롭힐 수 있을 것같았다.

" 저기, 구더기. 아니 구더기 오빠."

" 정정하는 것처럼 하지를 말던가?! 전혀 변한게 없잖아!"

" 적어도 오빠라고 해드렸는데 불만이 많네요."

".... 그래, 왜 불러."

그래, 오빠라고 불러주는게 어디냐. 상혁은 정말 지윤이에게만큼은 안되겠다고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며 몸을 일으켰다. 지윤이가 자신의 앞에 있는 탁자를 탁탁 두드리는 것으로 보아 이곳으로 오기를 바라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 혹시 체스 두실줄 아세요? 설마 아무리 변태에 무뇌아라고 하더라도 이정도는 하실 수 있으시겠죠."

변태에 무뇌아라니. 하지만 그말에 부정을 하자니 게임cd와 병원에서의 사건이 걸려서 부정을 할 수가 없었다. 아무튼 갑자기 왠 체스? 하는 생각으로 지윤이가 천천히 탁자에 올리는 것을 보니 고급스런 형태의 체스판이 지윤이의 손에 들려있었다.

" 오? 그거 체스판이네? 여기에 있었어?"

" 네, 호오, 그 반응을 보니 체스에 나름 자신이 있으신 모양이지요?"

" 나름 좋아해. 어렸을때 윤아랑도 자주 뒀었고."

상혁은 그렇게 말하며 속으로 씨익 웃었다. 솔직히 체스는 상혁에게 있어 무척 자신있는 것이었다. 윤아와 어린시절부터 둔 것도 사실이고 어른들과도 자주 뒀기에 지윤이 정도는 이겨줄 자신이 있었다.

' 이 기회에 연장자의 힘이 무엇인지 가르쳐 줘야겠네.'

밉살스럽게 이야기하는 것도 지금 뿐이다. 라고 생각하며 상혁은 자신만만하게 지윤의 반대편에 앉았다. 속으로 지윤이 비웃고 있다는 것도 모른체.

" 헤에, 체스네. 그립다~, 옛날에 상혁이랑 자주 했었는데."

" 그래? 나는 이런건 어떻게 하는지 잘몰라서..."

지윤이와 상혁이가 체스판 위에 말을 위치에 올려놓는 것을 발견한 윤아와 명환이 옆으로 다가와 그렇게 이야기했다. 윤아는 어린시절 상혁이와 체스나 부루마블같은 것을 하며 놀던 때가 생각나서 그립다는 듯이 웃었고, 명환은 딱히 같이 할 사람도 없었기에 체스의 룰도 잘 알지 못해서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 지는 쪽이 알밤맞기 어때요?"

" 호오, 그런거 해도 괜찮아?"

" 물론이죠."

어차피 일방적으로 때리는 것은 저일테니 말이죠. 지윤은 눈앞의 상혁이 뭐가 그리 자신만만한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앞에선 그저 하룻강아지일 뿐이다. 언니에게 배운 알밤때리기 기술은 바로 지금 이 순간 구더기 한마리를 꾹꾹 눌러죽이기 위해 기다려온 비기이다.

" 저는 흑을 할게요. 백은 양보해드리죠."

" 후회할텐데~."

" 설마."

지윤은 어울리지 않게 빙그레 웃음지었다. 그것은 지윤이가 지을 수 있는 한도 내의 가장 자비로운 미소였다. 마치 먹이사냥전 피식자가 방심하게 만들기 위해 짓는 포식자의 웃음과 같이.

잠시 후, 요리가 완성되어 모두를 부르러 나온 수연이 본 광경은 머리를 부여잡고 쓰러져있는 상혁의 모습이었다.

" ...바닥에 굴러다니는 것은 벌래답게 어울리긴 하지만 밥을 먹어야 되니 좀 자제해줄래?"

" 이유는 묻지 않는거냐?"

" 어머나, 내가 궁금해할 이유라도 있니?"

" ...그, 그건 그렇긴 하네."

으으, 머리아파.... 하고 투덜거리면서 이마를 메만지는 상혁을 무시하고 정면을 보자 윤아의 이마를 때리고 있는 지윤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아래를 보니 놓여있는 체스판. 아무래도 지윤이가 체스를 이용해 상혁이나 윤아를 괴롭히고 있었던 모양이다.

" 지윤이 너무 잘해~."

" 당연하지. 지윤이는 나도 체스로 이겨본적 없어."

울상이 되어 이야기하는 윤아의 말에 수연이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도도한 자세로 손가락에 나이트를 끼고 빙빙 돌리던 지윤은 수연이 다가오자 기분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언니왔네?"

" 기분이 무척 좋아보이네."

" 여러가지로."

뒤에서 뒹굴거리는 상혁이의 이마를 보니 족히 세 네번은 수연이식 오의 알밤때리기로 이마를 때려준 모양이다. 그동안 상혁이를 계속 괴롭히고 싶어하더니만 오늘에서야 목표를 달성한 건가? 수연은 그런 생각을 하며 속으로 피식 웃었다.

" 헤에~, 그거 의외구나. 수연이가 지윤이에게 체스를 졌었다고?"

언제나 생각하지만 갑자기 뒤에서 나타나는 것은 청이만한 사람이 없다고 수연은 생각했다.

" 예, 다른건 몰라도 체스나 장기같은 것을 지윤이에게 이겨본 기억은 없네요."

실제로 어린시절에 수연이가 한창 지윤이를 데리고 놀 때, 수연이에게 체스를 알려준 것도 지윤이었다. 체스나 장기같은 것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수연은 그때 지윤이에게 체스나 장기를 배웠고, 타고난 머리로 금방 지윤이정도는 이기겠거니 했지만 결국 한번도 이겨보지 못했다.

사이가 나빠지면서 점점하지 같이 하지 않게 됐지만 지금도 지윤이랑 체스를 한다면 이길 자신이 없었다.

" 그래? 으음~, 지윤아. 밥먹고 언니랑 체스같이 해보지 않을래?"

" 네? 아, 네에."

고양이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청이의 말에 지윤은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였다. 도무지 청이의 말에는 거부할 수가 없었다. 지윤은 고분고분해지는 자신의 모습에 대해 '나는 부자들한테 약한걸까? 아니면 외국인한테 약한걸까.'라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저녁식사는 과연 호사스러웠다. 동양식과 서약식의 만남이라고 해야하나. '언니가 가장 요리를 잘하겠지.'하고 생각하고 있던 지윤이조차 놀랄만큼 곱슬이의 요리실력은 굉장했고, 청이의 실력도 만만치 않았다.

" 어때? 내 요리실력에 감탄했냐?"

" 제, 제법. 굼뱅이도 구르는 제주가 있다더니만..."

다른 누구도 아닌 곱슬이가. 양아치 주제에 이렇게 요리를 잘하다니! 예전에 수연이가 곱슬이의 도시락을 보고 느꼈던 충격을 지금 지윤이가 느끼고 있었다. 아무튼 충격은 충격이고 확실히 혀는 즐거웠다.

곱슬이의 다른 점은 몰라도 요리만큼은 인정해야겠다고 지윤이도 솔직히 인정했다.

저녁식사 후, 아까 청이가 말했었던 것처럼 지윤은 청이와 가볍게 체스를 뒀다. 지윤이의 체스실력을 알지 못하는 곱슬이는 당연히 옆에서 '네가 어떻게 청이 선배를 이기냐?'라고 말하며 깐죽거렸지만.

" .....졌네?"

청이의 미소가 굳었다.

" 지윤이의 체스실력은 진짜 막강하니까요. 불가사이 할 정도로 강하다고 해야하나."

" ...아까 지윤이 앞에서 까불거린 자신을 마구 패버리고 싶다."

청이는 유심히 체스판을 봤지만 진 것은 변하지 않는다. 사실 지윤이, 상혁이도 그랬지만 청이도 체스에는 자신이 있었다. 괜히 별장에 고급체스판이 있는게 아니다. 아버지에게 부탁해서 서양의 체스마스터에게까지 정식으로 체스를 배운데다가 기본적으로 머리가 아주 좋아 또래는 물론 유명 체스기사들에게도 거의 진적이 없다.

그런데 자신보다 어린 중학생 여자아이한테 질줄이야. 얼마나 잘하나 볼까~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임했다가 팔꿈치로 명치를 맞은 기분이었다.

" ...지윤아?"

" -네에?"

" 다음에 우리집에 오지 않을래? 같이 체스를 두고 싶은데."

평상시의 청이와는 달리 미묘한 오오라가 나온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뭔지 알 도리가 없는 지윤은 고개를 갸웃한다음 이내 끄덕이며 승낙했다. 특별히 거절할 이유도 없었고 방금 청이의 실력은 지윤이도 놀랄만큼 대단했다. 이렇게 잘하는 사람은 흔치 않았으므로 체스를 좋아하는 지윤이로선 청이가 체스를 같이 해준다면 고마운 기분마저 들었다.

또래중에선 체스를 할줄아는 아이도 없고, 이렇게 재미있게 둘만한 사람도 없었으니까.

" 한판 더 할까?"

눈을 살며시 반짝이며 청이가 이야기했지만 지윤은 그것을 미처 보지 못했기에 고개를 흔들었다. 연속해서 계속 체스를 한 탓에 조금 피곤했기 때문이다.

" 아니요. 피곤해서 잠시 바람좀 쐐고 올게요."

지윤의 말에 청이는 아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어차피 나중에 집에 오기로 약속했으니 그때를 기약하면 됐으므로 지금은 넘어가기로 했다.

" 응, 아쉽네~. 그럼 수연이랑 한번 해볼까?"

" 후후, 저도 지윤이만큼은 아니어도 나쁘지 않게해요."

두 사람이 서로 마주보고 앉는 것을 보며 지윤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잠깐 바닷바람이나 쐬면서 저녁식사도 소화도 시키고 체스를 하느라 쓴 머리를 쉴 생각이었다.

" 시원하네."

지윤은 자신의 긴 생머리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느끼며 환한 달이 빛나는 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뒷편에서는 별장에서 일행들의 왁자지껄한 음성이 들려왔다. 상혁과 윤아의 음성이 주로 들렸고 간간히 청이의 말소리나 수연이의 가벼운 대답같은게 들렸다.

' 역시 언니 최근에 좀 달라졌단 말이지.'

좀더 벽이 없어졌다고 해야하나. 예전이면 이상할정도로 남을 기피하던 자신의 언니를 생각하면 지금처럼 남과 어울리는 모습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특히 요번 수학여행 이후로 구더기-상혁에 대해 달라진 언니의 반응.

' 수상해...'

사실 이번 바다에 따라온 이유도 바로 그것때문이다. 예전에는 상혁이에 대해 그다지 이야기한적도 없고, 설령 대화하는 것을 보더라도 주로 비꼬거나 비난하는 모습이 주를 이루었다.

하지만 요즘엔 자신과 상혁이 대해 가끔 이야기를 꺼낼 때도 있고, 가끔 둘이 대화하는 것을 보면 전과 달리 비난하고 비꼬는 모습도 확연히 줄어들었다. '수학여행'을 기점으로!

" 야, 뭐하냐?"

기껏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데 초를 치는 음성이 들렸다. 눈을 가늘게 뜨고 옆을 보니 시원한 옷차림으로 터덜터덜 걸어오는 곱슬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 정말 여성스럽지 못한 걸음걸이네요. 알고는 있었지만."

" 내 걸음걸이에 네가 뭐 보태준거라도 있어?! 그냥 편한대로 걸으면 되는거지."

흥, 아무튼 선머슴이 따로없다니까. 지윤은 투덜투덜 거리다가 문득, 지금 자신이 하던 고민을 예상외로 곱슬이라면 뭔가 알고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계속 자신의 언니와 구더기 옆에 붙어다니던 사람이기도 했고, 함께 수학여행을 다녀온 당사자가 아닌가.

" 저기 궁금한게 있는데 말이죠."

진지하게 물어오는 지윤이의 말에 곱슬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뭔지는 모르지만 지윤이가 자신에게 뭔가를 물어올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 뭔데? 네가 나한테 물어볼 것도 있나?"

" 물론 알거라 생각은 하지 않지만 돌다리도 두들겨 건너라는 말이 있잖아요."

" 내가 돌다리냐?!"

" 돌다리라기보단 돌머리겠지만... 아무튼"

아무튼이 아니잖아. 곱슬이는 태클을 걸고 싶었지만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이녀석과 계속 언쟁을 해봤자 피곤한 것은 자신일 뿐이다.

" 그래서 뭔데, 물어볼거면 빨리 물어봐."

" 음, 그게 말이죠. 수학여행에서 언니에게 별일 없었나요?"

수학여행? 갑자기 그 이야기는 왜한데. 곱슬이는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지윤이에게서 그런 말을 들으니 곱슬이도 그때 당시의 상황에 생겼던 의문을 지윤이라면 뭔가 알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뭔지는 몰라도 수연이는 그때 도망을 갔었고, 도망을 갔다는 이야기는 그때 뭔가가 수연이에게 '트라우마'였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것이 계속 궁금했는데 수연이와 가장 가까운 사이라고 할 수 있는 지윤이라면 뭔가 알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 별일이야 있었지. 그러니까 말이야-."

곱슬이는 자세한 것은 그다지 몰랐기에 그냥 자신이 보았던 것만을 이야기해주었다. 갑자기 골목으로 수연이가 갔던것. 명환이의 일. 그리고 갑자기 수연이가 도망갔고, 상혁이가 수연이를 찾아서 데려왔던 일까지.

모두 아리송한 일이었을 뿐이다. 혹시 지윤이라면 뭔가 아는게 없나, 하고 물어보니 지윤은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알고 싶었던 것은 수학여행에서 상혁과 무슨 썸씽이 있었던게 아닌가 했던 건데 이런 것은 전혀 예상외의 대답이었기 때문이다.

" 언니의 트라우마요? 제가 아는한... 그건 가족에게 관련된 것밖에 없는데. 아버지와 지금의 어머니와 얽힌 일정도....라고 해야하나. 그런 곳에서 언니가 도망칠만한 사건따위 지금까지 없었는걸요."

그 상황에서 언니가 왜 도망친걸까. 도리어 지윤이가 궁금해졌다. 자신이 언니의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언니가 도망칠'만한 일이면 그만큼 큰 사건이었을텐데 아버지와 어머니의 일말고 언니가 그런 행동을 벌일만한 사건은 지금까지 없었다고 생각한다.

대체 뭐지... 지윤은 계속 고민했지만 도무지 생각나는 것은 없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언니는 계속 상처받고 있었던 걸까- 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려왔다.

" 그렇구나... 근데 너 진짜 언니 좋아한다. 보통 그런거 물어보는 여동생은 없잖아?"

" 누, 누가 언니를 좋아해요! 그냥 궁금했을 뿐이에요!"

" ....성가신 소리하지 말고. 네가 언니 좋아한다는건 다 알아. 티가 그렇게 많이 나는데."

칫, 지윤이는 뚱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언니를 좋아한다. 그것은 사실이다. 어린 시절 그렇게 동경했던 언니다. 그렇게 닮고 싶었던 언니인데 자신이 싫어할 턱이 없었다. 어린시절의 밝고 명랑한 언니로 돌아와 준다면 좋겠지만 지금의 쿨한 언니도 나쁘지 않다고 지윤은 생각하고 있다.

" 흥, 그래요. 좋아해요. 동생이 언니를 좋아하는게 뭐가 나쁜가요?"

" 아니아니, 그냥 신기해서. 보통 언니가 뭐든 잘하면 동생은 비교당하기도 하고... 별로 좋아하지 않는게 보통이잖아? 질투한다던가."

그런가? 지윤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고보면 언니도 자신에게서 그런 오해를 했었던 것같기도 하다. 자신이 까칠하게 대하고 어머니에게 가끔 비교당하는 것을 보고 싫어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던가.

" 별로요. 언니가 뛰어나면 자랑스러워 한다면 모를까 그걸 뭐하러 질투하나요."

" 그거 대단하네. 나라면 언니가 저렇게 뭐든 잘하면 자괴감이 들기도 할 것같은데. 재능의 차이라던지 그런거 있잖아."

재능의 차이. 뭐 그런 것은 알고 있다. 어린시절부터 언니는 못하는게 없었다. 모든게 너무 뛰어나서 자신이 언니의 뭔가를 따라잡을 거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가볍게 몇번 했을뿐인 언니가 자신을 뛰어넘었고 뭘해도 자신의 노력에 비해 보잘 것없는 노력을 한 언니가 훨씬 뛰어났다.

하지만 그것에 질투를 해본 기억은 없다.

" 하긴 그렇죠. 언니는 대단해요. 뭐든 잘하고 정말 굉장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도 우수한걸요. 언니보다 못하다고 제가 쓰래기가 되거나 하는 것은 아니에요. 언니만큼은 못해도 저는 충분히 우수하고, 뭐든 할 수 있을 거라고 자신하고 있어요."

언니처럼 전국 1등을 하거나 입이 떡 벌어질만큼 굉장한 일은 하지 못할지 모른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것은 할 수 없고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 뭐든 잘하고, 어떤 것이든 잘하면 솔직히 전 재미없을 것이라 생각해요. 전 부족한 제가 좋으니까요. 계속 배워야할게있고. 너무나 뛰어나서 목표로 정하기 딱 좋은 언니가 있어요. 평생따라잡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전 평생 발전할 수 있겠죠. 전 그것에 충분히 만족해요. 그러니 언니를 좋아할 수 있는 것이구요."

지윤이의 말에 곱슬이는 헤에, 하고 웃었다. 무심코 대단한 녀석이다- 라고 생각했다. 자신도 나름 별에 별 이상하고 대단한 녀석들을 많이 만나오기는 했지만 지윤이같은 사람은 처음이었다.

나는 우수하다.

지윤은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고 자신하고 있었다. 굳이 최고일 필요는 없다고. '최고'를 목표로 잡고 노력할 수 있다는게 가장 즐겁다고. 곱슬이는 그런 지윤이를 보면서 참 대단한 자매구나. 라고 생각했다.

" 뭐 언니는 이해하지 못하겠지만요."

" 얌마, 그 말투만 고치면 안되겠냐. 도대체가 평범하게 칭찬을 해줄수가 없잖아."

" 흥, 그쪽이 칭찬을 해준다는 것자체가 굴욕이에요."

밉살스럽게 이야기하는 지윤이. 곱슬이는 그런 지윤이에게 가볍게 꿀밤을 때려준 뒤 씩 웃었다. 뭐 이런 것도 이녀석의 매력이라고 생각하니 말이다.

" 으, 아무튼 아무리 여름이라도 밤은 쌀쌀하네 슬슬 들어가자. 청이 선배가 할 말 잇다고 너무 오래 밖에 있지는 말랬어."

" 그러죠. 어차피 수학여행에 대해 듣기도 했고. 들어도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둘은 그렇게 티격거리며 별장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첫날의 밤은 이렇게 끝나는 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밤의 시작은 바로 지금부터였다.

============================ 작품 후기 ============================

다음편은 다시 수연이 시점! 그리고 담력시험편입니다!

하지만 수연이는 귀신을 무서워하지 않죠! 그럼 무서워하는게 없나요? 라고 하면 아니죠. 수연이는 소소한 것을 무서워하니까요.

여기 와이파이가 너무 느려서 언제 연재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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