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 바~다?"
" 그래."
집에 돌아와서 지윤이에게 '내일은 수영복을 사러갈거다'라고 이야기했더니 지윤이가 언니는 그런거 입을일도 없잖아, 하면서 마구 비웃길래 이야기해줬다. 하기야 늘상 방구석에 박혀있던 내가 친구들이랑 바다에 간다고 하면 믿기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런 반응이라니 너무해. 그동안 내가 히키코모리처럼 생활하기는 했지만 그런 놀랍다는 반응은 심하잖아.
" 나도 갈래."
응?
뜬금없는 지윤이의 말에 내가 무슨 속셈인가 유심히 바라보았지만 지윤이의 안색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내가 답변을 하지 않아서였을까, 지윤은 재차 입을 열어왔다.
" 나도 갈거야. 괜찮지?"
" 청이 선배에게 말하면 될 것같기는 하네. 그런데 왜?"
지윤이도 나만큼은 아니어도 굳이 놀러가는 것을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내가 바다에 간다고 해도 신경도 안쓸줄 알았는데 상당히 의외가 아닐 수 없다.
" 내 마음이야. 언니가 알 필요는 없잖아?"
밉살스럽게 말하는 지윤. 누구 동생아니랄까봐 쉽게쉽게 속마음을 털어놓지 않는다. 이런 것을 보면 내가 옛날부터 너무 독설교육을 시킨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지만 뭐 이건 이것 나름데로 귀엽다고 생각한다.
" 너 수영복도 없잖니?"
나도 없지만 지윤이도 없다. 우리 자매는 지금까지 바다에 간적이 단 한번도 없으니까! 더군다나 지윤이는 자신의 체형에 불만이 많아서 일반적인 수영장도 잘 가지 않기에 수영복을 산지가 아주 오래됐다.
"...내일 사러가면 되겠지."
수영복을 입는다는 것은 아직도 꺼려지는 듯, 말을 하는 지윤이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수영복을 입는게 그렇게 꺼려지면 왜 같이 간다고 한거래. 특이한 녀석.
" 아니면 언니가 마침 지윤이 체형에 맞는 수영복이 있는데 그거 줄까?"
" 시, 싫어! 그거 만화에서나 나오는 이상한 거잖아!"
예리한 녀석. 스쿨미즈인걸 어떻게 알았지. 인터넷을 뒤지다가 충동적으로 구매해버렸는데 안타깝게도 나의 몸에는 맞지 않았기에 감상용으로 방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스쿨미즈. 내심 지윤이라면 분명 몸에 맞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거절이다.
지윤이도 흑발에 긴생머리니까 스쿨미즈 입으면 분명 어울릴 거라 생각했는데 아쉬운걸.
큿, 나도 가슴만 끼지 않았어도 입을 수 있었는데. 물론 대체로 가슴이 큰게 좋기는 하지만 스쿨미즈만큼은 입지 못한다는게 너무나도 원통하다.
" 흥, 가슴이고 뭐고 그냥 입고서 언니가 바다에 가면 되잖아?"
이런 나의 속사정을 어떻게 아는지 지윤이가 비웃듯이 말해왔다. 뭘 모르는구만 이녀석! 물론 가슴이 껴도 스쿨미즈를 입을 수는 있지만 스쿨미즈의 매력이 백분발휘되는 것은 빈유일 때라고!
" 그리고 변태같이 설마 그걸 바다에 입고갈 수 있을 턱이 없잖아."
" 나한테 입히려고 한 주제에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시끄러운 녀석.
어쩔 수 없이 내일 수영복을 사러가는데에 지윤이도 데려가야할 것같았다. 내일 수영복을 고르는데에 상혁이를 제외하고 모두 온다고 했으니 지윤이를 데려가는 것도 그때 이야기해야할 것같았다.
뭐 청이 선배라면 흔쾌히 허락해줄거라 생각하지만.
그 뒤, 지윤이가 스쿨미즈를 입어준다면 더없이 좋을 거라는 생각에 다시한번 권해봤지만 냉정하게 거절해버렸다.
치사해.
---------
날씨는 더웠다. 예전의 나라면 이런 날에는 감히 움직일 생각도 하지 않고 집에서 게임이나 하고 있었을텐데 요즘들어 밖에 나돌아다니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게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더운건 싫어.
" 늦었잖아!"
약속장소에 도착하니 이미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던 듯한 곱슬이와 윤아가 나를 보고 소리쳤다.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저녀석은. 지금은 아직 약속시간 1분 전이라고.
" 거기다가 그녀석은 왜 데리고 왔어?"
" 흥, 하나같이 꺅꺅 시끄럽네요, 곱슬이 언니. 저도 바다에 가고 싶어서 부탁하기 위해 온 것이에요."
" 네, 네가 바다에 간다고? 흥, 그런거 절대 용납못해. 청이 선배도 분명 거절할걸!"
변함없이 사이가 좋은 두명이다. 만나자마자 서로 으르렁 거리는 두명을 제쳐두고, 나는 그런 두명을 흥미진진하다는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는 윤아에게 말을 걸었다.
" 안녕."
" 응? 아, 수연아 오늘도 변함없이 예쁘네. 하얀색을 좋아하나봐?"
" 뭐 그렇지."
검은색에는 흰색이 잘 어울리니 말이다. 윤아는 분홍색 캐주얼한 복장에 핫팬츠를 입고 있었는데 무척 잘어울렸다. 나는 늘상 그렇지만 흰색 원피스. 평상시보다 얇은 시원한 차림이었다. 물론 양산 지참.
청이 선배는 조금 늦는다고 한 모양이다. 곱슬이와 지윤이가 틱틱거리는 것을 윤아와 지켜보며 어느 정도 시간을 보내고 있으려니 얼마지나지 않아 청이 선배가 약속장소에 나타났다. 역시 선배. 언제봐도 '난 아가씨에요'라는 오로라를 마구 풍기는 모습이네요.
" 미안해, 내가 조금 늦었지?"
그렇게 까지 늦은 것은 아니다. 약속시간이 열 두시였는데 지금은 열 두시 이십분. 늦기는 했어도 심각하게 늦은 것은 아니었다. 심지어 미리 늦는다고 이야기도 해뒀으니 그정도는 그냥 넘어가도 상관없었다.
" 괜찮아요. 수영복 매장은 이 근처로 갈건가요?"
좀 먼 곳으로 가면 걸어야 되서 상당히 귀찮을 것같았기에 물어보자 청이 선배는 고개를 작게 흔들며.
" 아니야, 이 근처에 내가 잘 아는 가게가 있으니 거기로 갈 것같아."
다행이네. 체력이 문제가 아니라 걷는다는 행위가 너무 귀찮았는데 정말 다행이다. 거기다가 우리 일행들이 보통 시선이 쏠리는게 아니어서 그런 것도 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곱슬이는 날카로운 맛이있는 미인이고 윤아는 단발머리에 귀여운인상. 그리고 귀엽지 않은 가슴을 가지고 있다. 청이 선배도 말할 것도 없이 금발을 가진 혼혈아 미소녀이고 나는 검은 긴생머리의 미소녀. 지윤이는 중학생 답지 않은 초등학생의 외견을 가진 초 귀여운 여자아이다.
본인도 그 사실을 알기에 애써 어른스럽게 코디하기보단 귀여운 쪽을 하는편.
근데 이 녀석도 웃긴게 평상시엔 그렇게 어려보이는 것을 싫어하는 주제에 밖에 나가거나 할때는 자신의 귀여움을 백분 발휘할 수 있는 코디를 한다. 누구 동생아니랄까봐.
" 수연이는 어떤 수영복 살거야?"
" 흐응, 잘 모르겠는걸. 봐야알 것같네."
수영복 가게는 청이 선배의 말처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평범한 가게일거라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가게가 무척이나 커서 '과연 청이 선배가 가는 곳'이라는 생각을 들게 만들었다.
근데 정말 고민인걸 어떤 수영복을 사야하나.
방금 윤아가 물었을때 대답한 것처럼 나는 수영복을 잘 모른다. 그냥 일체형 수영복이나 비키니형태의 수영복정도밖에 모른다고 해야하나? 직접 골라본 적도 없을 뿐더러 최근 수영장에도 가지 않아 요즘 트렌드도 잘 모른다.
내가 아는 수영복이라고 해봐야 주로 애니메이션에서 캐릭터들이 입던 수영복정도고...
흑발 긴생머리 캐릭터들이 어떤 수영복을 입었던가-하고 떠올려봐도 우리 요조라의 수영복이 너무 강렬한 인상을 남겨서 다른 캐릭터들이 어떤 수영복을 입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 그녀석 취향도 모르고-라니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내가 수영복을 사는데 그녀석과 무슨 상관이람.
매장의 안으로 들어가니 차가운 바람이 볼을 간질였다. 역시 여름엔 에어콘이 짱이야. 우리집은 선풍기밖에 못틀게해서 에어콘 바람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건 지윤이도 마찬가지인 듯 곱슬이랑 신나게 말싸움을 하다가 찬 바람이 몸을 간지르자 금방 기분좋은 표정을 지었다.
" 2층이 수영복 매장이니까, 먼저 올라가 있어. 나는 사장님과 잠시 이야기하고 올라갈게."
" 네에~."
사장님과 이야기하고 올라간다니. 청이 선배의 저런 모습을 보면 확실히 보통 사람과는 다르구나~하고 생각하게 되어버린다. 아버지 사업차 알고 지낸분이거나 그런걸까.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자 '신상품'이라고 써져 전시되어 있는 각종 수영복들이 눈에 들어온다. 형형색색의 귀여운 수영복들과, 심지어 선수용 수영복까지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전신타이즈 수영복이라... 흑발 생머리 여캐들에겐 금기와 같지.
" 와~, 귀여운거 많다. 고민되는걸!"
곱슬이는 환한 얼굴로 사방을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자신의 몸에 가져다대며 '어떤게 잘어울리까나~.'하면서 즐거운 듯이 둘러보고 있었다.
" 에-."
윤아도 처음엔 즐거운 얼굴로 이곳저곳 기웃거렸는데 점차 표정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응? 왜그러지? 마음에 드는 수영복이 없는걸까.
" 왜그러니, 윤아야?"
" 아, 수연아 그게...."
내가 궁금해져서 윤아에게 물어보자 윤아는 약간 난감한 얼굴로 손가락을 비비꼬더니.
"....아무래도 가슴에 맞는것중에 예쁜게 없는것 같아서..."
" 헉."
참고로 윤아의 말을 듣고 경악한 것은 내가 아니라 지윤이다. 옆에서 자신의 몸에 어울리는 귀여운 초등학생용 수영복을 가져다데던 지윤은 윤아의 말을 듣고 슬픈 얼굴로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힘내 여동생. 아직 중학생이니까 성장의 여지는 남아있다고!
" 하긴, 가슴이 크면 예쁜 수영복을 고르기 힘들다고 하긴 하던데."
곁눈질로 윤아의 가슴을 흘깃 바라보았지만 크다크다 생각하긴 했어도 무슨 컵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체로 A~B사이다보니 C컵까지는 적당한게 나와도 D컵부터는 예쁜게 별로 없다고 알고 있다.
딱 내 정도가 아슬아슬하게 세이프라는 소리지.
" 응. 나 D컵이니까-, 아무래도 검정색같이 단색위주의 수영복밖에 몸에 맞는게 없는 것같아."
"....D컵?"
고등학생 맞으세요? 아니, 애초에 한국인이 맞는거냐 이녀석. 뭐 TV에서는 더 큰것도 많이 보긴 했지만 이건 실물이다. 거기다가 고등학생인데 D컵이라니. 커도 너무 크잖아. 그렇다면 청이 선배는 D컵보다 크다는 이야기인가?
아니아니 청이 선배는 그래도 혼혈아니까 그렇다쳐도 윤아는 순수 동양인인데 어떻게 가슴이 이렇게 클수가 있는거지.
" 엄마가 보고싶어."
히잉, 하고 지윤이는 울상인 얼굴을 지었다. 그러길래 왜 바다에 따라온다고 해가지고 이런 소리를 듣는거냐. 지윤이는 AA니까 D컵과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었다.
나도 C컵이니 고등학생치고 무척이나 큰 편인데 나보다 한수위라니. 나보다 큰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같은 C컵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큰 착각이었던 모양이다. 뭐어 나는 가슴크기에 그렇게 메달리지 않으니 아무래도 좋지만.
커봤자 움직이는데 불편하기만 할뿐이다. 지금도 조금 불편한데 D컵이라니.
" 괜찮아, 괜찮아. 마음에 드는 모델로 고르렴. 나중에 사장님에게 이야기해서 같은 모델로 주문하면 되니까."
언제 왔는지 울상인 윤아의 옆에서 청이 선배가 빙글빙글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 아, 정말요? 그래도 괜찮은거에요?"
윤아가 활짝웃으며 물어보자 청이 선배는 다시한번 고개를 끄덕이며 걱정말라는 듯이 말했다.
" 물론이야. 사장님께도 말해뒀으니까 원하는 모델로 고르도록해."
" 다행이다~."
윤아는 정말로 다행이라는 얼굴로 그제서야 다른 수영복들을 하나하나 훑어보기 시작했다.
" 지윤이도 사장님께 말해줄테니까 너무 사이즈 신경쓰지 말고 고르도록 하렴."
" ...!! 괘, 괜찮아요. 우웃, 읏. 왜 나는..."
주문제작해야하는 이유가 반대구나. 자존심이 강한 지윤이로선 그것이 분했는지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지윤이의 몸에 맞는 수영복은 대체로 초등학생용이었기에 작게 한숨을 쉬며 청이 선배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 어쩔 수 없네요... 부탁드릴게요."
" 응, 맞겨둬."
힘내, 여동생.
' 아무튼 나도 슬슬 골라야 할 것같은데....'
어떤 수영복이 예쁘려나. 주변을 두리번 두리번 둘러보니 예상보다 훨씬 예쁘고 귀여운 수영복이 잔뜩 있었다. 프릴이 좀 달린게 예쁠까? 일체형 수영복보단 역시 비키니가 좋은 것같은데.
색깔은 흰색이나 푸른색으로 할 생각이다. 다만 모양을 어떤 것으로 해야하나 고민이 될뿐. 으음 고민해보자. 내가 하던 게임중에 캐릭터를 꾸미는 기능이있던 게임도 있으니까.
내가 게임에서 내 캐릭터에 어떤 수영복을 입혔던가-하고 생각해봐도 마땅히 떠오르는게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반창고로 대체했거든. 제길 좀더 정상적인 수영복을 입혀볼걸. 몹시 후회된다.
" 뭐야~, 이수연. 아직도 못골랐어?"
곱슬이 녀석은 이미 골랐는지 종이가방에 수영복을 챙겨두고 옆에서 빈정거리고 있었다. 귀찮은 녀석.
" 흥, 너처럼 아무거나 입어도 신경쓰지 않는 사람과 다르니까."
" 야, 나도 제대로 골랐다고! 분명 상혁이도 내 수영복차림 보면 깜짝놀랄걸?"
" 어머, 얼마나 이상하면 깜짝놀란다는 걸까. 그거 보고싶은걸."
" 제대로 완전 뇌쇄라고. 너야말로 촌티나는거 고르지 마셔."
뭐가 저리 자신만만하데. 가슴도 간신히 B컵인 주제에.
" 너, 너희들이 이상하게 큰거야! B컵이면 또래애들중에선 큰 편이라고!"
이런 실례. 속마음을 무심코 또 말해버린 모양이다. 이 버릇 고쳐야할텐데 말이야. 아무튼 뭔가 수영복을 고르긴 골라야할텐데 딱히 이거다!하고 꽂히는게 없었다. 다들 예쁘긴하지만 무난무난하다고 해야하나.
곱슬이는 이미 수영복을 다 골랐기에 우리가 수영복을 고르는 것을 바라보며 심심한 듯 옆에서 계속 참견했다. 정말 피곤한 녀석이 아닐 수 없다.
" 야야, 대충 골라. 수연이 너는 뭐 특별히 보여주고 싶은 사람도 없잖아? 아니 있는거야? 그리고 지윤이 너도 어차피 언니 따라서 비슷한거 고를거면서 뭘 그렇게 고민해."
무,슨소리를 하는거야 이녀석은!
" 정말 시끄럽네. 특, 특별히 내가 누군가에게 수영복을 보여주고 싶을리 없잖아? 그냥 마음에 드는게 없을 뿐이야."
" 맞아요.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에요? 제가 따,딱히 언니를 따라할 이유는 없잖아요? 그냥 마음에 드는게 없을 뿐이에요."
" 아, 이녀석들 겁나 성가셔. 저 성격 좀 어떻게 해버리고 싶네."
흥이다!
============================ 작품 후기 ============================
수영복편은 다음화에 이어서 가겠네요. 사실 아직도 수연이의 수영복을 뭐로할지 고르지를 못해서! 으 역시 흰색에 프릴이냐. 검정색에 프릴이냐. 비키니냐 원피스냐! 예쁜게 많아서 고민이네요.
아니면 분홍색으로 해야하나... 자주색이라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