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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공략당해 버렸다-66화 (66/153)

66화

"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포기한거였다면 괜찮았을지도 몰라. 하지만 전생의 나도 노력했어. 할 수 있는 것은 다해봤어. 나의 꿈을 지키기위해서, 계속 믿고 할 수 있는 것은 다했다고. 하지만 다 실패야. 모두 실패했어. 버려지고 내쳐졌어. 왜? 대체 뭘 잘못했기에 그런거야? 명환이는 다르잖아. 걘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단지 쓰러져있었을 뿐이야. 전생의 나는 직접 일어기까지 했어. 하지만 부서지고 무너졌지. 대체 뭐가 달라서. 내가 뭘 잘못해서 그런건데. 대체 왜, 억울해. 너무 억울하잖아 그런건!"

수연이는 이제 정말 누군가의 이해를 바라지 않고 이야기하는 것같았다. 단지 자신의 마음에 담아두었던 말을 마음껏 꺼내서 이야기하는 것같았다. 하지만 '전생의 나'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결코 거짓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너무나 말도 안되는 이야기임에도 '수연이'라면 그럴지도 모른다, 라는 막연한 감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 진정해. 수연아. 차분하게 이야기해줘."

하지만 계속 이렇게 떠들게 놔둘수만도 없었다. 대체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기도 힘들었고, 이런식으로 내버려둬봤자 수연이만 힘들어질 것같았기 때문이다.

전생의 나라거나 '왜 구하지 않았냐'라는 말도 그렇다. 설령 그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떠들고만 있으면 수연과 자신은 어디까지 평행선일 뿐이다. 솔직히 말도 안되는 소리긴하지만 저렇게나 절박하게 이야기하는 수연이를 보니 '진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설령 지어낸 것이고 가짜라고 할지라도 지금의 수연이의 말을 들어줘야했다. 믿어줘야했다. 그것이 사실이라고 고개를 끄덕여줘야했다.

뭔지는 모른다.

하지만 자신이 뭔가 문제가 되었기에 수연은 저렇게 된 것이다. 수연이 말처럼 과거의 수연이를 구하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자신의 탓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상혁'이 본인이 있었다면 구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들어줘야한다. 자신은 수연이의 친구니까.

" 하, 아하하. 뭐야. 진지한 얼굴이네. 지금 내 말을 믿는거야? 믿으려는거야? 노력하는걸. 말도 안되는 소리에 귀도 기울여주고. 역시 상혁이는 대단하네~."

"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돕고 싶어. 과거의 수연이가 지키려고 했던 꿈이 뭔지. 수연이가말하는 '전생'이 무엇인지. 그러니 이야기해줬으면해."

그렇게 말하는 상혁이의 말에 눈물로 빨갛게 변한 눈으로 수연이 상혁을 바라보았다. 방금전보단 한층 진정이 된 듯한 모습이었다. 아마 되는데로 이야기하다가 상혁이의 말에 정신을 차린 것인지도 모른다.

" 웃기는구나. 방금 내가 한 소리는 잊어버려."

방금전에 마구 쏟아내듯 이야기했지만 수연은 알고 있다. 누가 '전생'이라는 말따위를 믿을 것인가. 당장 전생을 직접경험한 수연이조차 다른 누가 '자신은 전생을 경험했다'라고 이야기하면 비웃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혁은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이대로 끝나면 결국 수연이는 또다시 속마음을 꼭꼭 감춰둘 뿐이었다. 그러면 언제 또 지금같은 악순환이 터져나올지 모른다. 아무리 수연이라도 몇번이고 지금같은 상황에 내몰리면 정신이 버티지 못할 것이다.

" 내가 너의 말을 믿을것이라고 생각하고 이야기해줘. 나는 너의 말을 믿고 있으니까, 수연이가 날 믿고 이야기해주면 분명 괜찮을거야."

"....바보같네. 날 비웃으려는 새로운 방법이야?"

" 아니야. 제대로 듣고싶어. 방금전에 수연이가 아무렇게나 이야기한게 아닌, 제대로 사정을 알고 싶어. 그러면 늦었더라도 내가 도울 수 있는게 뭔가 있을지 모르잖아?"

차분하게 이야기하는 상혁의 말은 한치의 거짓도 없었다. 말도 안되는 소리일텐데 그것을 듣고 이해해주려 하고 있었다. 믿어주려고 하고 있었다. 바보같아, 정말 너는 바보야. 수연은 빨개진 눈을 손으로 슥슥 문지르며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 그래, 그럼 이야기해줄게."

믿는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한번쯤 이야기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같았다. 마음속에 꼭꼭 숨겨두었던 감정과 말들을 이렇게 풀어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 난 말이야. 한번 죽었어. 말하자면 전생을 기억하고 있지. 근데 우습게도 그 전생의 '나'는 말이야."

말한다. 여태껏 감추고 숨겨왔던 것을 말한다. 불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이제와서 어쩌겠는가. 수연으로선 믿든 안믿든 우선 말을 해보기로 했다.

"...네가 아는 그 명환이었지."

상혁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는 것이 느껴졌다. 하기야 믿을 수 없을 것이다. 이수연과 송명환은 다르다. 성별도 다르고 하는 행동도 달랐다. 하지만 수연이 입에서 '전생이 명환이었다'라는 말을 들으니 혼란스러울만도했다.

수연은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그저 푸념하듯, 전생의 자신이 겪었던 일들. 다른 점들. '명환'이었을 시절의 이야기. 그리고 꿈을지키기 위해서 싸웠지만 형편없이 무너진 이야기까지.

" 솔직히 말해서 억울해. 너무 분해. 내가 말한 것은 그거야. 나 정말 힘냈어. 노력했어. 어떻게든 해보려했지만 아무도 받아주지 않았어. 버려지고 내쳐지고. 그런데 지금의 명환이는 단지 너와 만났다는 것만으로 달라졌지. 그것이 참을 수 없었나봐. ....후후, 바보같네. 이렇게 이야기하니 정말 바보같아."

상혁이의 얼굴은 보지 않았다. 믿을것이라 생각하지 않았기도 했고, 그냥 이렇게 이야기한 것만으로 속이 편해지는 기분이었다. 물론 억울함과 분함은 남아있다. 지금 당장이라도 상혁이를 잡고 왜 자신에겐 오지 않았냐고 따지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아까처럼 당장 부서질 것같지는 않았다. 믿든 안믿든 이야기라도 한 것이 원인인 것일까. 정확히는 모르지만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혁은 말이 없었다. 수연은 그런 상혁을 흘깃 바라본뒤에 몸을 돌렸다. 어차피 믿을 것이라고 생각은 하지 않았으니까.

" 투정은 여기까지 부릴게. 헛소리라고 생각해도 좋아."

너무 늦었구나. 슬슬 돌아가야 할텐데- 수연은 어둡게 변한 아키하바라의 거리를 내려다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어떻게 돌아가야하나- 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뒷편에서 상혁이의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 그랬, 구나. 대단하네. 수연이는 역시 대단해. 상상도 못했어. 그런건."

" ....응?"

무슨 소리를 하는거냐, 라는 마음을 담아 뒤를 돌아보니 눈시울이 붉어진 상혁이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야, 갑자기. 도리어 당황한 것은 수연이쪽. 슬슬 정리되어 가던 마음이 크게 술렁이며 흔들렸다.

" 상상도 못했어. 수연이라면 전생이든 뭐든 경험할 수 있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명환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으니까. 그리고 누구도 손을 내밀지 않았는데 꿈을 지키기위해 노력했다니. 나 같은 것은 상상도 못할일이네."

꿈을 지킨다. 상혁이로선 수연이의 그말이 마음에 와닿았다. 지금의 명환이가 '경찰'이 되고자 하는 꿈을 얼마나 소중히 생각하는지 알고 있었다. 아마 수연이의 전생이었던 '명환'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것을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들이 내쳐도 혼자서 싸우려했던 것이다.

상혁이는 그것이 너무나 대단하게 느껴졌다. '꿈'이라는 것은 상혁이에게 너무 막혔했기에 더더욱 그랬다. 공부를 하는 것도 그냥 부모님들이 부끄럽지 않도록 어느정도만 맞춰서 하는 편이었고, 특별히 하고 싶거나 한 것은 없었다. 전에 중간고사에서 수연이에게 이야기했듯 딱히 공부를 하는데에 의욕을 가지지 않을만큼 미래에 대해선 특별히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수연이는 달랐다. 그리고 명환이도 달랐다. 아마 지금의 명환이도 자신과 만나지 않았으면 '전생의 명환'이와 같은 행동을 했을 것이라 생각하니 그저 굉장하게 느껴졌다. 그 끝은 좋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상혁이에게는 정말 대단하게만 느껴졌다.

이제서야 아까전 수연이의 반응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같았다. 수연이는 명환이었기에 오늘 있었던 일을 납득할 수 없었던 것이다. '상혁'이와 만났다는 것만으로 이렇게 달라지는 운명에.

" 자, 잠깐만. 너 내말을 믿는거니? 전생이니 명환이니 하는 걸?"

도리어 당황한 것은 수연이쪽. 믿을 것이라 생각하고 말한 것도 아니었을 뿐더러 이렇게 격한 반응을 불러일으킬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 수연이라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걸?"

"....바보같긴."

어디까지가 진심인건지. 수연은 피식 웃고말았다. 거짓인지 진짜인지는 모르지만 지금 상혁이의 행동에 확실히 기분이 좋아지는 자신이 있었다.

" 수연이의 마음도 정확히는 모르지만-, 알 것은 같아. 나였다면 미쳐버렸을지도 모르겠는걸."

그토록 비참하게 끝났다면 지금의 모습을 볼때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아까 수연이가 억울하고 분하다며 소리친 것은 별거아니었을지 모른다. 자신이라면 행복해진 자신을 죽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 하지만 수연이도 괜찮을리가 없지. 아마 지금도 괜찮은척 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해. 방금전까지 그렇게 화냈으면서 갑자기 괜찮아질리가 없잖아? 마음의 상처는 쉽게 났는게 아니니까."

탁, 하고 상혁은 바닥에 앉으며 이야기했다. 그리고 옆으로 손짓하는 것이 좀더 이야기를 하자는 제스쳐같았기에 수연은 눈가를 찌푸렸다.

" -더 늦으면 좋지 않다고 생각해."

" 괜찮아! 기왕이렇게 된거 다 이야기하고 가자고. 이대로 끝내면 분명 앙금이 남을거라니까?"

귀찮은 녀석. 수연은 속으로 투덜거리면서도 천천히 상혁이의 옆에 앉았다. 아까전 격렬하게 타오르던 수연이와 비교하면 무척이나 온순한 모습이었다.

" 오늘도 생각했지만 수연이는 너무 상처가 많은 것같달까. 어떻게 지금까지 똑바로 서있는게 대단할 정도야. 나라면 옛적에 무너졌다고 생각하는데."

" 별로. 나도 괜찮은건 아니야. 오늘처럼 견디지 못할 때도 있어."

아까전의 분노가 조금만 더 오래갔으면 버티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혁이가 진정하라고, 이야기를 들어준다고 했기에 비교적 빠르게 안정된 것이지 아니었다면 정말 미쳐버렸을지도 모른다. 그 점에선 고맙다고 해야겠지.

" 그나저나 대단하네. 겨우 내가 명환이와 만났다는 것만으로 이렇게 달라지다니. 이런게 나비효과라고 하던가?"

" 정확히는 내가 너와 만난 것부터가 시작이었겠지. ....그럴지도 몰라. 아니, 애초에 내가 이세상에 태어난 것자체가 명환이가 구해지기 위한 조건이었을지도 모르지."

수연이는 그렇게 이야기하다가 문득, 지금의 대화는 상혁이가 '자신의 전생'을 믿는다는 전재하에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말 믿는 것일까?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특별히 물어보지는 않았다. 정말 자신의 전생을 믿고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특이한 녀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그러면 한가지 궁금한점이 있는데."

상혁은 문득 생각난 한가지에 수연이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 그럼 '명환'이가 아닌 지금의 '수연'이의 꿈은 뭐야?"

명환이는 경찰이 되고 싶다고 했다. 지금의 수연이는 전생에 같은 꿈을 꾸다가 좌절했고 지금에 와선 아무래도 좋다는 태도였기에 상혁이로선 궁금했다. 수연은 상혁의 말에 살짝 움찔했다가 나직한 음성으로 답했다.

" 별로. 지금은 없어."

꿈을 꾼다는 것에 환멸을 느꼈고, 스스로를 발전시키는데에 집중하느라 잊은지 오래됐다. 상혁은 씁쓸하게 중얼거리는 수연이를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이래선 뭔가 좋지 않다고 생각한 탓이다.

수연이를 돕는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뭔가 도울 수 있는게 없을까 생각했다. 전생의 명환이와 자신이 만났으면 분명 구해주고 도울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결국 하지 못했기에 적어도 지금의 수연이라도 도울만한 방법을 생각했다. 수연이가 다시 꿈을 가지고 살아게 할 수 있는 방법.

그것은 생각보다 아주 간단했다.

" 그러면 지금이라도 '이수연'이 하고싶은 꿈을 찾아보는게 어때? 내가 도와줄테니 말이야."

" 그런 도움은 필요없어.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고. 그리고 정작 너도 하고싶은게 없잖아?"

정곡이다.

수연이 말처럼 상혁이 본인도 꿈이라는 것은 그저 막연하게 생각했을 뿐이다. 그렇다고 수연이처럼 환멸하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꿈을 꾸는데에 시간은 상관없으니 말이다.

뭔가 좋은게 없을까-. 그저 막연하게 생각하던 꿈을 떠올리니 생각나는게 없었다. 그저 지금의 수연이를 뭔가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생각할뿐. 이대로 두면 분명 마음의 상처는 점점 커져 또다시 겉잡을 수 없이 변할지 모른다. 그러니 뭔가 수연이를 도울만한 방법이.

" 아, 그렇지."

상혁은 생각했다. 이것이라면 수연이를 도울수도 있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자신의 꿈도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 난 말이야. 의사가 될거야."

" ....의사? 갑자기 뜬금없는 소리를 하는걸."

상혁은 고개를 흔들었다.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의사는 평범한 의사가 아니었다.

" 정신과 의사. 그것이라면 수연이를 도울수도 있다고 생각해. 마음속에 가진 상처를 내가 치료해줄 수 있을지 어떻게 아냐? 어때 괜찮다고 생각하지 않아?"

명안이다. 라고 상혁은 생각했다. 비록 전생의 수연이를 돕지는 못했지만 지금이라도 그 상처를 치유해줄수 있다면 될일이다. 마땅히 하고 싶었던 것도 없으니 정신과 의사를 목표로 공부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같았고, 상처가 많은 수연이의 마음을 치료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라고 상혁은 생각했다.

하지만 수연은 그런 상혁이의 말을 듣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잠시간 말이 없었다. 뭐지? 혹시 이제라도 너를 돕겠어!라는 자신의 말에 감동한 것일까 라고 생각했던 상혁이지만 이어진 수연이의 웃음에 그런 생각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 풋, 푸흣. 상상도 못했어. 정신과 의사라니. 어떻게 여기서 그런 말이 나오는거람, 너도 참 굉장하네. 아하하. 그럼 내가 미친여자라도 된 것같은 어감이잖아. 물론 정신병원이 그런 곳은 아니지만 어감이... 아무튼 대단해.너 정말..."

웃었다.

수연이가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냐는 듯이 웃고있었다. 그렇게나 자신이 웃긴 소리를 한 것일까. 나름 감동적인 말을 한 기분이었는데. 너의 아픈 마음을 치료하기 위해 정신과 의사가 되겠어!라고 한 것인데 뭔가 이상하게 전달된 기분이다.

수연은 가뜩이나 울어 붉어진 눈에 다시한번 눈물방울이 맺히는 것을 느끼며 작게 심호흡을 했다.

" ....뭐 좋아. 네가 그쪽으로 노력해본다면 나도 천천히 생각해볼게. 언제까지 전생을 생각하며 멤도는 것도 그만해야하니까."

된건가? 어쨌든 수연은 한층 밝아진 얼굴이었다. 어떤 것때문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좋은게 좋은거니 상관없겠지.

" 그래, ...하지만 난 진지하다고. 기왕 이렇게 된거 확실하게 정신과 의사가 되서 널 도와줄테니까."

" 그거 기대되는걸."

훗, 하고 작게 웃는 수연이의 모습에 상혁은 피식 웃었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이라도 수연이를 도울 수 있다는 것에. 수연은 그런 상혁이의 얼굴을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보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슬슬 돌아가야 할 것같았기 때문이다.

" 근데-, 너는 왜 언제나 나를 도와주려는거니?"

단순히 친구라서? 그런 시선을 담아 상혁이를 바라보니 상혁은 몸을 일으키며.

" 바보야, 돕는데 이유가 필요하냐?"

라고 이야기했다. 상혁이 다운 대답이라고 생각했다.

" 그러네."

명환이를 도운 것도 단지 그랬을 뿐이다. 전생의 자신을 돕지 않은 것은 단지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약 만나기라도 했다면 이녀석은 전생의 자신을 돕기 위해 분명 고군분투해줬을 것이다.

단지 운이없었다.

전생의 자신은 운이없었던 것이다.

그토록 비참했던 것도, 단지 운이없었기 때문이다. 겨우 그것때문에 자신은 버려지고 내쳐진 것이다.

억울하고, 화가나고 분하다.

그것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자신을 도와준다는 이런 바보같은 녀석이 있으니까.

" 그럼 지금부터라도 확실히 도와주도록 해."

우선은 참고 앞으로 나아가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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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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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여행 마지막 날에는 어마어마하게 혼났다. 내가 멋대로 사라졌으니 당연한 이야기다. 청이 선배도 귀국하고 나서 한시간동안 잔소리를 해서 솔직히 지쳤다. 또 지윤이에게도 일렀는지 돌아오자마자 '언니 또 도망갔었다며?'라고 비웃는 말을 그대로 들어야했다.

바보같네 정말.

그때 왜그렇게 흔들렸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우스울 따름이다. 나는 나고, 명환은 명환이인데 이제와서 그토록 흔들린 것을 떠올리면 말그대로 투정을 부렸다고 하는게 옳을 것이다.

물론, 지금도 나만 그랬다는 것을 생각하면 화가난다. 하지만 화가나고 억울할 뿐이고 전처럼 혼자 도망치고 무너질정도는 아니다.

그리고 수학여행에 다녀오고 달라진게 또하나 있다.

상혁이 녀석이 갑자기 공부를 열심히 하기 시작한것.

정신과 의사가 된다고 했으니 공부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예상보다 훨씬 열심히 하고 있었다. 그 좋아하던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도 확실히 줄었다고 해야하나. 곱슬이와 윤아는 갑작스런 상혁이의 행동에 나와 뭔가 일이 있었다는 것을 눈치 챈 모양이지만 특별히 묻거나 하진 않았다.

최근 내가 심란한 얼굴로 앉아있었던 것도 있고.

말하자면 상혁이가 말했듯이 '미래'를 생각하게 된 것.

이제와서 그런 생각을 하니 그저 막연하게 느껴졌다. 나는 다잘하니까 뭔가 특별히 노력하고 싶은게 생기지 않았다. 하고싶은 것도 딱히 없었다. 하지만 상혁이가 저렇게 노력하고 있는 것을 보니 나도 뭔가는 해야하지 않을까-하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리고 또하나 심란한 이유가 있다.

" 아, 수연아 일찍 왔네?"

"....응? 아, 응 뭐 그렇지 뭐."

당황한다.

요즘들어 이런다.

당황해버린다고.

[당황 (唐慌/唐惶) [명사] 놀라거나 다급하여 어찌할 바를 모름] 이 말이 이렇게 가슴에 와닿을 수가 없다.

평상시처럼 비웃고 놀리는 것은 다르지 않지만 가끔가다가 이렇게 상혁이가 말을 걸어오면 당황하게 된다.

곤란해. 곤란하다고 나.

" ....뭘 그렇게 노려봐?"

" -별로."

설마, 설마라고 생각하지만. 아주 말도 안되는 것은 아니다. 학기초부터 최근까지 상혁이가 얼마나 차근차근 자신의 이벤트를 달성해 왔던가. 게임으로 치면 지금 한창 호감도가 올라가있어도 이상할게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은 들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상해. 좋지 않다고 이거.

설마. 라고 생각하고.

말도 안 돼, 라고 생각도 되지만.

공략당해 버렸다.

<終>

============================ 작품 후기 ============================

본격적인 러브코미디 시즌이 돌아왔습니다.

...사실 오늘 저녁에 올리려 했는데 몽량님이 외박복귀라는 말씀에 바로 올리게 되는군요. 나름 댓글보면서 즐기는게 취미인데... 흑흑. 어찌됐든 이제 수학여행편이 끝났습니다.

다음편은 여름방학 편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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