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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공략당해 버렸다-64화 (64/153)

64화

수연은 빠른 발걸음으로 세명이 들어간 골목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상혁이나 다른 일행들이 이상하게 생각할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애써 그런 것들은 외면하기로 했다.

전생의 명환이었던 자신에게는 없었던 일. 그것을 당장이라도 확인하지 않으면 가슴이 터져버릴 것같았기에.

" 야~, 이 오타쿠자식아 이게뭐야 너때문에 시간만 낭비하고~."

건들거리는 목소리. 잊고 있었다-라고 생각했건만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과거의 편린이 수연이를 감쌌다. 잊은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저 상처를 가리고 보지 않았을 뿐.

골목쪽으로 고개만을 살짝 기울여 바라보니 바닥에 내동댕이 쳐져있는 명환이와 세명의 양아치가 보였다.

세명의 양아치.

학교에서 '일진'이라고 분류하는 부류의 아이들. 자신에게 무슨 원수라도 진 것처럼 괴롭히고 망가트리며 비웃음을 날리던 그런 소년들.

잊을리가 없다.

잊혀질리가 없다.

수연은 몸이 떨리는 것을 느끼고 자신의 팔을 감쌌다. 싸늘한 한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차가운 냉수를 끼얹은 것처럼 전신이 조금씩 떨렸다.

" 너 말이야, 그 쌔끈한 금발 여자랑 아는 사이냐? 친한 것처럼 보이던데. 말좀 걸어보려했더니만 네가 더러운 오타쿠 소굴이나 들어가서 밖에서 시간만 날렸잖아."

" 햐, 이것봐라 가지가지하네."

명환이가 바닥에 쓰러지며 떨어트린 듯한 캐릭터 상품을 더럽다는 듯이 발로 툭툭 건들이며 남자애들 두명이 비웃었다. 마치 못볼 것을 봤다는 듯이 인상을 찡그리고 심지어 돈으로 샀을게 분명한 명환이의 물건들을 발로 짓밟고 있었다.

자신이 소중히 생각하는 것들을 쓰래기처럼 짓밟는 행동에 명환은 몸을 떨어야만 했다. 아니, 떨어야한다고 수연은 인식하고 있었다.

상황은 달랐다.

전생의 자신은 복귀시간이 되어 기분좋게 모두가 모여있는 곳으로 가서 지금과 같은 상황에 맞닥들였다. 비슷하지만 분명하게 다른 상황.

지금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물건들을 발로 뭉개지고 학교의 여자애들, 남자애들이 보는 앞에서 오타쿠라고 더러운 취급받으며 자신이 즐겁게 산 물건들이 하나하나 뭉개지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슬펐다.

자신이 왜 이런 꼴을 당해야하는지 알수 없었고, 그저 지금의 상황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도했다.

그래.

적어도 그때까지는 '지나갈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애써 참을 수 있었다.

이어진 녀석들의 행동이 아니었다면.

" 하, 진짜 생각할 수록 열받네. 우리가 뭐가 아쉬워서 이녀석 뒤나 졸졸 쫓아다닌거냐."

" 시간만 졸라 날린 거지. 야, 오타쿠. 우리가 이러니까 억울하냐? 그러니까 우리 눈에 띄지말고 숨어서 돌아다녔어야 할 것아냐~."

콰직,

또하나의 물건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소리에 명환은 움찔했지만 차마 고개를 들고 양아치들에게 뭐라 말을 하려는 기색은 없었다.

같았다.

전생의 자신의 모습과 같았다.

'다른 학생 모두가 보는 앞'이라는 조건은 달라졌지만 지금의 모습은 전생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었다. 명환은 무기력했고 그저 지금의 상황이 빨리 벗어나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그래, 달라지지 않는구나.

무섭고, 두려웠지만 어쩐지 그런 생각에 안도감마저 느껴졌다. 왜? 자신이 불행해지는 것인데 왜 자신이 안도하는 것이지.

수연의 머릿속은 다시 복잡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전생에 있었던 일이 계속 흘러가면 명환은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것은 응당 변해야하는 것인데 자신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에 안도하고 있었다.

' ....설마 나.'

질투, 하고 있는건가? 아니면 자신만이 불행해질 수는 없다는 그런 이기심 때문에?

최악이다.

수연은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하지만 눈앞에서 당하고 있는 명환에겐 나아갈 수가 없었다. 자신이 앞으로 나서면 달라진다.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달라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 바꿔야하는게 맞는데.

구하는게 옳은 일인데!

' 막....,아야 겠지?'

저벅, 하고 작게 발걸음을 내딛는다. 그래, 이렇게 보고만 있는 것은 좋지않아. 전생의 내가 불행했다고 여기까지 불행해야하는 것은 아니잖아? 그렇잖아? 수연은 최면을 걸듯 속으로 중얼거리며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기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아니, 옮기려했다.

" 야-! 이자식들아!!"

휙, 하고. 수연이를 스쳐지나간 누군가가 세명의 양아치가 있는 곳으로 온몸을 날렸다. 누구-? 수연이가 멍해진 머리를 흔들며 정면을 바라보자 언제 달려왔는지 상혁이가 명환이를 지키듯이 세명에게 달려드는 것이 보였다.

저녀석 싸움같은거 못할텐데.

" 수연아~, 무슨 일이야!"

" 상혁아 같이가!"

뒷편에서 들리는 목소리를 들어보니 심 청과 곱슬이 윤아도 상혁이를 뒤따라 온 모양이다. 자신이 명환이가 들어간 골목으로 들어가고 안나온데다가 명환이도 깜깜 무소식이니 골목으로 들어온 상혁이가 발견한 모양이었다.

' ....아? 뭐야, 뭐지?"

심청과 모두가 자신을 스쳐지나가며 세명의 양아치와 명환이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분명 좋은 일이었다. 지금 자신도 명환이를 도와주려고 했으니 지금처럼 다른 누군가가 나선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은 일이었다.

그런데.

' 뭐야, 뭐야 뭐냐고!'

어째선지 속에선 비명이 나왔다. 자신이 구하려고 했다. 그건 거짓이 아니다. 하지만 자신이 실행하기도 전에 다른 이들이 나타나 명환이를 지켜준 것이다. 분명 좋은일인데 왜 자신은 이토록 가슴이 아픈거지?

왜 이렇게. 왜이렇게 아픈거야.

" 뭐, 뭐야 이건!"

양아치들도 당황한 모양인지 명환이를 툭툭건드리다 말고 물러났다. 더군다나 상혁이가 덤비듯이 달려든터라 거리를 벌릴 수 밖에 없었다.

양아치들은 갑작스런 상황에 놀란 듯이 인상을 찡그리며 바닥에 더럽다는 듯이 침을 뱉었다. 그냥 시간낭비한게 아까워서 오타쿠한마리만 교육하고 가려고 했더니만 일이 더럽게 꼬이는 기분이었다.

" 아앙, 뭐야 네녀석은. 꼴에 저 오타쿠 친구라도 되냐?"

" 하여간 냄새나는 것들끼리 잘도 노내. 킥킥!"

양아치들의 말에 명환이가 움찔 몸을 떨었다. 상혁은 그런 명환의 어깨를 안심하라는 듯이 두드리며 천천히 말했다.

" 이녀석이 뭔가 너희에게 잘못하기라도 했냐? 내가 보기엔 너희들이 그냥 괴롭히고 싶어서 이러는 것같은데... 맞아?"

중학생때 저런 양아치들과 지겹게 만나온 상혁은 태연하게 이야기했다. 양아치들은 그런 상혁이가 못마땅해보였지만 주변에 이쪽을 보는 시선이 있어서 함부로 주먹을 날리거나 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 잘못? 아아~, 잘못하고 말고. 우리의 소중한 자유시간도 잡아먹게 만들고 더럽게 저런물건이나 들이밀고 말이야. 잘못해서 만졌으면 손이라도 썪을뻔했네."

" 왜? 그걸 명환이 탓으로 돌리는거야?"

" 왜냐니. 그자식 오타쿠라고. 더러운 오타쿠를 괴롭히는데 이유라도 필요하냐?"

다른 이유는 없다. 양아치들에게 있어 명환은 괴롭힐 수 있는 약자일 뿐이다. 오타쿠라는 이름. 사회적으로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는 이들. 이것만큼 괴롭히기에 좋은 조건이 없었다.

단지 스트레스를 푸는 용도. 양아치들에게 명환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 존재가 오늘 눈이 휘둥그래질 정도로 아름다운 미소녀와 같이 다닌 것도 짜증나는데 그 여자한테 말좀 걸어보려다가 시간만 낭비했으니 양아치들로선 당장 저 명환이를 더 짓밟지 않는 이상 기분이 풀리지 않을 것같았다.

" 그런게 이유라고...? 그래, 이런건 전혀 다르지 않구나. 오타쿠가 뭐가 대수라고. 명환이가 뭘 잘못했다고 이런식으로 몰아붙이고 괴롭혀야 되냐고!"

인식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상혁은 중학교때 이런 괴롭힘을 받으며 뼈저리게 깨달았다. 자신은 남들과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그냥 남들보다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고 게임을 좋아했을 뿐이다. '윤아'와 얽혔던 사건때문에 더더욱 그런 것에 빠져든 것도 있긴 했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은 남에게 피해를 준적은 없었고 단지 좋아하는 취미생활을 한 것뿐이었다.

지금의 명환이처럼.

하지만 뭐가 계기였는지는 몰라도 괴롭힘이 시작됐고, 그것은 결국 청이 선배의 도움과 스스로가 노력한 끝에 극복해낼 수 있었다. 자기 혼자라면? 글쌔, 지금처럼 이런 양아치들 앞에서 똑바로 이야기나 할 수 있었을까.

" 웃기지마! 이녀석은 단지 좋아하는 것을 했을뿐이야. 너희에게 피해라도 줫냐!? 이녀석은 단지 기념품을 사서 돌아가고 있었을뿐이야. 너희에게 이렇게 짓밟힐 이유도 없고, 평범하게 공부하고 꿈을 가지고 미래를 준비하는 그런 학생일 뿐이라고! 너희들과 대체 뭐가 다른데!"

거칠게 소리치는 상혁이의 말에 양아치들은 움찔거리는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내 '오타쿠따위'에게 압도당한 것이 짜증난 듯, 거칠게 떨어져있는 물건을 발로차며 소리쳤다.

" 하앙~, 그까짓 오타쿠가 미래에 할 수 있는 것은 방구석에서 똥이나 만드는것아니냐? 거기다가 네가 백날 떠들어봤자 저 찌질한 오타쿠 새끼는 고개도 못들고 징징거리고 있을 뿐이라고?"

" 하여간 오타쿠들이라 말만 잘해. 보는 눈만 없으면 확 조져버리는데, 새끼가."

죽일듯이 노려보는 양아치들의 시선에 상혁이 지지 않겠다는 듯 마주 바라보았다.

" ....그만해 상혁아."

양아치들과 상혁의 시선 사이로 약한 음성이 파고들었다. 꺼질듯이 작은 음성이었지만 그것은 분명 명환이의 것. 명환은 약간 몸을 떨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 하, 오타쿠새끼 주제파악은 잘해요."

" 그래그래, 우선 돌아가서 졸라 맞자. 그럼 네 친구는 봐줄테니까."

양아치들의 말에 상혁이 발끈하며 뭐라 말을 하려했지만 명환이가 작게 고개를 흔들며 말을 막았다.

" 아냐, 상혁아. 네가 그렇게 할 필요없어. 지금 도와주러 달려온 것만해도 고마운걸?"

천천히 고개를 들은 명환은 아주 옅지만 작게 미소짓고 있었다. 그 미소는 분명 방금 자신을 구하러 달려온 상혁이에 대한 고마움이었다. 명환은 천천히 고개를 흔들다가 멀리서 지켜보는 심 청과 시선이 마주쳤다.

보통은 걱정스러운 시선이나, 안쓰러워하는 얼굴을 하고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심청은 예상외로 은은하게 미소짓고 있었다. 마치 지금 자신이 상혁이의 말을 막은 의도를 아는 것처럼.

사실.

명환은 처음 이곳에서 양아치들을 맞닥들였을 때만해도 앞이 깜깜했다. 이런 곳에서 저녀석들과 만나다니, 라고 생각하면서. 자신이 즐겁게 산 물건들이 하나하나 부서질 때마다 가슴이 부서지는 것같았다. 하지만 이대로 버티면 넘어가겠지 라고 막연히 생각하며 그저 가만히 있었다.

하지만 갑자기 상혁이가 나타났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자신이 괴롭힘 당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막아주며 지켜준 것은 난생 처음있는 일이었다.

상혁이가 그들에게 말하는 말은 그들이 아닌 명환이의 가슴에도 박히는 말이었다.

'자신이 뭘 잘못했기에 괴롭힘을 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던건가.'

자신은 그저 '오타쿠'니까 이런 괴롭힘을 그냥 그러려니 넘기고 있었던 것같다. '그러려니'넘길 것이 아니었는데도.

하지만 혼자니까 참고 넘겼다. 자신은 누구도 지켜줄 사람이 없으니 혼자서 몸을 최대한 웅크려 세상으로부터 보호하는 수밖에 없었다. 막연하게 미래만을 버팀목으로 삼으며 이 시간이 그저 흘러가기만을 바랐다.

그런 잘못된 생각을 가진체, 계속 살아왔다.

" 이제 너희들의 말은 듣지 않고, 당하고 있지만도 않을거야."

하지만 지금은 혼자가 아니니까, 말해본다. 자신이 기댈 수 있는 것은 막연한 미래의 꿈만이 아니니까. 별 것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를 단 한명의 친구만으로 자신은 이토록 큰 용기를 낼 수 있는 것이다.

" 앙? 뭐래냐 이 새끼."

" 갑자기 머리가 쳐돌았나."

양아치들은 뭔 개가 짓냐는 표정으로 이야기했지만 명환은 조금도 굴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 나 말야, 꿈이 경찰관이 되는거야. 지금은 평범한 학생이고, 너희에게 두들겨 맞을만큼 무력하지만 몇년만 지나면 정말 경찰이되서 너희같은 짓을 하는 녀석들 모두 잡아버릴 거라고! 혹시 모르지, 그때에 똥만 생산하고 있을 너희들이 무슨 짓을 저질러서 나에게 붙잡힐지."

떨리는 목소리였지만 애써 비웃듯이 말을 이어붙였다. 경찰관- 상혁은 명환의 말을 들으며 확실히 명환이 예전에 그런 이야기를 했던 것같다고 생각했다. '체포하겠어'라는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것도 그런 이유라고 했던가.

" 이래서 오타쿠 새끼들이란 말도 하나같이 오글거리네. 뭐야~, 경찰관? 그런게 되서 우리같은 놈들은 붙잡는다고? 하항, 웃기시네. 너희같은 오타쿠랑 우리들이랑 누가 경찰쪽이 말을 믿을 거같냐?"

명환의 말을 비웃듯이 이야기하는 양아치. 그리곤 주먹을 크게 뒤로 젖히더니 그대로, 명환이의 얼굴을 후려쳤다.

퍼억!

" 윽!!"

다시 바닥에 넘어지는 명환이. 양아치들은 그런 명환이를 향해 침을 퉤 뱉으며 말을 이었다.

" 보는 눈이 있어서 봐주려했더만 계속 기어오르네 새끼가. 야 등신같은 놈아, 잘들어. 네가 경찰이건 뭐건 상관없다고. 만분에 하나로 네가 그런게 된다고 보자. 오타쿠 따위인 네가 경찰이 된 것도 웃기지만 말이야-, 네가 지금 생각하는 것처럼 그런 경찰이 될거 같냐? 너 말이야, 뭔가 착각하는 모양인데."

양아치는 그렇게 이야기하며 천천히 명환이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곤 손을들어 깔보듯이 명환이의 머리를 두드리며.

" 네가 경찰이 되서 지키는 것은 너희같은 약자가 아니라 우리같은 '평범한'녀석들이라고? 너희같은 사회 부적응자 아새끼들을 지켜줄만큼 경찰은 한가하지 않단 말이야. 앙? 알았냐? 캬, 아니면 네가 경찰이되서 니 동족들 잡아족치는 것도 볼만할 것같네."

킥킥, 거리고 비웃는 양아치들의 말. 명환은 양아치들의 말에 흔들린 얼굴로 반문을 하지 못했다. 그 말처럼, 경찰이 된 자신이 지금 생각처럼 '약자'들을 지키는 그런 '꿈'을 이루지 못한다고 막연히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말처럼, 세상은 약자들보단 '평범한자'들을 지키려한다. 이해하기 힘든 사람들은 사회 부적응자라던지 기이하다는 듯한 시선을 보내며 외면하고 무시하기 바쁘다. 양아치들의 말은 그다지 틀리진 않았다고, 명환은 생각했다. 과연 평범한 아이가 어느날 도둑질을 했다는 누명을 쓰고 잡혔을때와, 학교에서 오타쿠라던지 기이한 소문이 돌던 아이가 도둑질을 했다는 누명을 쓰고 잡혔을때. 두가지 상황이 같을 수 있을까?

명환은 아니라고 줄곳생각했다. 그랬기에 지금까지의 괴롭힘을 묵묵히 감내해왔던 것이고.

마치 꿈 전부가 부정당한듯한 느낌이었다.

양아치들입장에선 그냥 벌것아니라는 듯이 내뱉은 말이었지만 명환에게 있어서는 자신이 꿈꾸던 경찰관이 말그대로 '꿈'에서나 가능하다가 비웃는 말이었던 것이다.

흔들렸다. 자신이 꿈꾸던 것에 흔들리고 부정당할 것만 같았다.

어떻게든 반문해야하는데, 뭐라고 설명할 방도가 생각나지 않았다. 그건 너희들 생각일 뿐이잖아! 라고 소리치고 싶지만 어쩐지 자신만 그렇게 생각하고있을 것만 같았다.

세상은 약자에게 상냥하지 않으니까.

" 명환아? 그런 것은 벌써 고민할 필요가 없는거야."

언제 다가온 걸까. 맞아서 발갛게 변한 명환이의 볼을 쓰다듬으며 심청은 부드럽게 웃고 있었다.

" 세상은 약자보다 평범한 사람을 우선시한다. 그런 것은 누가 정하는게 아니야. 단지 그렇게 생각할뿐. 같은 사람은 없어. 모두가 개개인의 개성을 가지고 살아가. 오타쿠와 같은 것도 취미생활에 일환이고 그사람이 개성일뿐이야. 그것이 약자의 조건은 되지 않지."

청이는 거기까지 말하고 잠시 심호흡을 했다.

" 분명 세간의 인식이라는 것이 있어서 남들보다 쉽게 오해받을 지도 모르고, 불편한 것도 있어. 저 불량한 아이들이 이야기한 것처럼 경찰은 명환이가 원하는 '약자'뿐이 아니라 '저런 녀석들'도 지켜주는 존재야. 약자만을 지키는 것도 아니고, 평범한 사람이나 강자만을 지키는 것도 아니지. 저 아이들은 그냥 되는데로 이야기했을 뿐이야. 그동안 격어온 세상이 평범한 사람을 위하고 약한 사람을 배척한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아니 분명 그런 것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것을 인정하는 것은 일러."

'저런 녀석들도' 지켜줘야한다는 것은 변하지 않지만. 하고 심청은 장난스럽게 혀를 내밀고 웃었다.

" 그러니까 명환이가 생각하는 '미래의 경찰'의 모습을 버리지 않았으면해. 지금 이런저런 말을 들어봤자 그냥 듣는 것일뿐이야. 세상은 냉정하다고, 그런 이야기를 아무리 들어도 사람이 느끼는 세상이란 자신이 겪어온 세상일 뿐이거든. 설령 저 아이들 말처럼 세상이 약자들을 버리고 배척하려고 한다해도, 명환이가 다르게 바라보고 나아갈 수 있다면 얼마든지 명환이가 꿈꾸던 것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그러니 지금처럼 남의 말에 흔들리는 것은 잘못이야! 좀더 마음을 강하게 먹으렴."

빙긋. 하고 웃으며 말하는 청이의 말에 명환은 고개를 들고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청이의 말이 맞았다. 세상에서 아무리 지금 세계는 이렇다 저렇다 떠드는 것보단 자신이 직접 격는 세상이 자신의 세상이니까. 지금 양아치들이 이야기한 것은 그냥 '그들이 생각한 세상'일 뿐이다.

자신들이 '평범'이며 '비평범'하다고 생각하는 존재를 배척하는.

단지 하나의 말이며 의견아닌 의견이었을 뿐이다. 그런 것에 휘둘리다니 웃음마저 나올 것같았다.

" 이 계집애는 또 뭐냐? 우리 여자라고 안봐줘? 좀 예뻐가지고 가만히 듣고만 있으려니 가지가지 하네. 우리가 '저런 녀석들?' 지금 말이라고 하냐!"

아무래도 자신들을 무시하며 이야기한 것이 열이라도 받은 것처럼 양아치들이 이젠 될때로 되라는 듯이 손을 청이에게 휘둘렀다.

갑작스런 그행동에 명환이 눈을 동그랗게 떴으며 옆에서 지켜보던 곱슬이와 상혁이가 앞으로 나서려는 순간.

어마어마한 거구가 갑작스럽게 나타났다.

정확하게는 떨어졌다.

쿵, 하고 바닥에 착지하며 청이에게 휘둘러지던 손을 잡아내며 그 당사자는 물론 그 일행인 나머지 두 양아치까지 단번에 제압하는데는 체 몇 초가 걸리지 않았다.

" 어머나. 어디계신가 했더니..."

오늘 자신이 이곳에 온다고 했을때 순순히 보내주던 아버지를 떠올리니 어디선가 경호원이 따라온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이처럼 하늘에서 뚝떨어진다고는 생각치 않았던 청이다.

" ....와, 더 커지신 것같네요. 삼룡 할아버지."

" 아이고, 아가씨와 친구분들 안녕하십니까."

걸걸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백발의 노장. 상혁이도 익히 아는 얼굴이다. 중학교때 청이와 만나면서 알게된 '당시 경호실장' 할아버지. 상혁이와 친해지며 이런저런 만화책을 보다가 '아무래도 경호원보단 집사쪽이 쌘 것같다'라는 정체불명의 말을하며 청이 선배의 집사를 맡고있다던가.

당시에는 180정도의 꽤 큰키를 가진 아저씨이긴 했지만 자신이 만화책을 보여준 뒤 '아무래도 집사가 되려면 강해져야 겠군요!'라는 말에 따라 수련하기 시작한 이후로 지금은 이 미터가 넘는 거구를 지닌 초강력 경호원이 되버리고 말았다. 분명 나이가 예순이 넘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어째서 지금까지 성장하고 있는 건지는 상혁으로서도 정말 궁금한 사항이었다.

아무튼 그 아저씨는 그 아저씨인 것이고 지금 상황을 우선 처리해야만 했다. 명환이도 명환이었지만 청이를 때리려고 했던 양아치들이니 쉽게 넘어가지는 않으리라.

" 뭐, 뭐야 이거 당장 안놔?!"

양아치들이 창백한 얼굴로 비명을 지르고 있었지만 삼룡 집사(!)아저씨는 허허 녀석들 참 귀엽구나, 하면서 몇번 만져주니 금방 조용하게 변했다.

" 아무래도 학생사건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뒷일은 내가 알아서 할게. 명환이는 집합해야 하니 돌아가야 할테고-, 상혁이들은 저녁도 먹어야 할테니까."

양아치들을 바라보며 빙글빙글 웃으며 말하는 청이의 말에 상혁과 명환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런 것은 자신들보단 청이가 처리하는 편이 빠르고 쉬울테니 말이다.

" ....하하, 마지막은 왠지 우습게 됐네. 미안해 나때문에 이런 일에 휘말려서."

명환은 아픈 볼을 매만지며 상혁이에게 옅게 웃었다. 아까전 자신을 구하기위해 달려온 상혁이가 있었기에 지금처럼 힘을 낼 수 있었던 것같았다.

" 뭘, 나중에 저녀석들 학교에서 괴롭히면 말해! 나는 약해도 청이선배나 다른 아이들은 네 생각보다 어마어마하니 말이야."

" 아하하, 고마워."

맞고도 웃은 것은 처음이다. 명환은 그렇게 생각하며 골목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을 움직였다. 상혁이와 장난으로 몇마디 주고 받으며 다행히라는 듯이 웃어오는 윤아와 곱슬이의 말을 들으며 그렇게 골목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 ......거, 짓말."

공허한 목소리. 마치 유령같은 그 음성에 고개를 돌리자 명환과 상혁이의 눈에 들어온 것은 평상시의 무표정이나 여유로운 얼굴을 한 수연이가 아니라 창백하고, 겁에질린 수연이의 모습이었다.

" 수연아? 뭐야, 갑자기 왜그래?"

명환은 수연과 그리 말을 하지 않는 사이였기에 상혁이가 직접 수연이에게 다가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조용히 물었다. 수연이가 불안한 모습을 보였지만 그래도 최근엔 괜찮은 모습을 보였기에 별 일아니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수연이의 얼굴은 지금까지 봐왔던 어느때보다 창백하고 겁에질린 얼굴이었다.

" -...너, 는."

너무나 작은 음성으로,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도 못할 목소리로 수연은 중얼 거렸다. 가장 가까이에 있던 상혁이만이 수연이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 왜 '나'는 구하지 않았었니....?"

" 무슨 소릴-."

탁.

상혁이가 수연이의 팔을 잡기위해 손을 뻗자 수연이의 몸이 흔들렸다. 그리고 검은 머리카락이 시야를 어지럽히며 순식간에 멀어져가기 시작했다.

즉, 수연이는 몸을 돌리고 '도망치기' 시작한 것이다.

" ...또냐?"

벌써 몇번째인지. 수연이가 뭔가 문제가 생기면 도망치는 버릇이 있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는 상혁이다. 즉, 지금의 수연이에겐 '뭔가 문제가 생겼다'라는 이야기가 된다.

" 침착하게 상황을 설명하지 말고 쫒아가야 하지 않을까?!"

윤아의 다급한 말에 상혁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여태까지 수연이의 모습중 가장 불안한 모습이었기에 최대한 빨리찾는게 좋을 것같았다.

" 저 계집애 겁나빨라서 이미 쫓아가긴 늦은 것같고. 셋이서 흩어져서 찾는게 좋을 것같아."

곱슬이의 말처럼 이미 수연이의 모습은 아키하바라의 인파속에 사라지고 없었다. 이제부터 흩어져서 찾아봐야 겠구나, 라고 생각하며 세명이 의견을 합치는 가운데 오직 명환이만이 경악한 듯 소리쳤다.

" 그러면 빨리 쫓아가야지! 뭔가 일이라도 생긴거 아냐?"

" 진정해 명환아. 확실히 빨리 쫓아가야하긴 하지만 위치도 모르고... 너는 우선 집합장소로 가도록해. 늦으면 안되잖아?"

" 그렇지만...."

" 걱정마. 우리는 수연이의 이런 행동에 익숙하니까."

눈을 찡긋하며 이야기하는 말에 명환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처럼 수연이를 잘알지 못하는 자신이 도우려 해봤자 방해만 될 뿐이었다.

" 청이 선배는 저 양아치들을 처리해야하니 도와주기가 힘들 것같고."

" 응, 미안해. 경호원이라도 동원해주고 싶지만 오늘은 삼룡 집사님만 따라오신 모양이라서."

언제 옆으로 다가왔는지 말하는 청이의 말에 상혁은 화들짝 놀랐지만 겉으론 태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강력한 카드인 청이가 할 수 없다면 자신들이 직접 움직여 수연이를 찾는 방법밖에 없었다.

" 그래도 혹시 집합시간에 늦거나 할지 모르니까, 내가 담임 선생님들껜 잘 말씀드릴게. 늦게라도 수연이 찾으면 나에게 연락하렴. 데리러 올테니까."

" 고 계집애도 알고보면 되게 민폐야."

청이의 말에 곱슬이가 투덜거리듯 이야기했지만 내심 창백한 얼굴로 도망가던 수연이가 생각난듯 걱정에 잠긴 음성이었다.

" 그럼 셋이서 흩어져서 찾고 찾으면 핸드폰으로 문자보내!"

" 알았어."

" 응!"

아키하바라는 그렇게 늦은 시간까지 밝은 곳이 아니다. 최대한 빨리 찾지 못하면 어둠속에서 헤메게 될지도 몰랐기에 그리 시간이 많지는 않았다.

' 근데 ....' 왜 '나'는 구하지 않았니?'라니.'

상혁은 일행들과 흩어지며 아까 전 수연이의 말을 떠올렸다. 무슨 말이었을까. 계속 곱씹어봐도 무슨 말인지 알수가 없었다. 그것에 대해선 직접 만나서 묻는 수밖에 없을 것같았다.

상혁은 그렇게 생각하며 점차 빠르게 아키하바라의 거리를 달리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손가락 아프다! 수연이와 지금의 명환이가 겪은일은 묘하게 비슷하면서 다르다는 사실. 다음편에 나오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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