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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공략당해 버렸다-63화 (63/153)

63화

수연은 가게안으로 들어가는 명환과 일행들의 뒤를 따라 천천히 들어갔다. 머릿속은 여전히 복잡했다. '수연'이라는 자신이 있었기에 초래된 지금의 상황이 이상하기도 했고, 전생과 달라진게 정말 그것때문인지 의문만이 들었다.

" 수연아, 무슨 고민있어?"

" ...예?"

언제 옆에 온걸까. 수연은 그림자처럼 나타나 빙그레 옆에서 웃고있는 심 청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가끔 자신이 알아차리지 못할정도로 기민한 움직임을 심청을 보며 사실 운동도 잘하는거 아니야? 라는 생각을 가끔할 정도다.

물론 상혁이의 말에 따르면 운동은 영 잘하지 못하는 모양이지만 말이다.

" 별로 아무것도 아니에요."

" 으으음~. 아닌 것같은데 말이야."

늘 생각하지만 청이는 수연이에 대해 신경을 무척 많이 쓴다. 어째서 그런 것인지 수연은 잘 알지 못해 그런 과한 친절이 가끔은 부담스럽고 이상하게 느껴지지만 심 청으로선 나름 이유가 있었다.

예전에 상혁이와 윤아가 지금의 수연이 같았기 때문이기도 했고, 나아가서는 과거의 자신의 잘못들을 반성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예전의 자신은 무척 어리고 어리석었기에.

" 수연이가 지금 뭐에 신경을 쓰는지, 나는 잘 몰라. 하지만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도록 해."

온순한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하는 청이의 말에 수연은 빤히 그런 그녀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말할 생각은 없고, 믿어줄거라 생각도 하지 않지만 그래도 저런식으로 생각해주니 고개정도는 못끄덕여 줄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 그럼 난 방해가 되는 것같으니까 먼저 앞에 가고 있을게!"

그렇게 말한 청이는 앞서가는 명환과 상혁이의 뒤를 바짝붙었다. 명환은 갑작스럽게 달려온 청이의 모습에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헤프게 웃고 있었다.

'....'명환'과 청이선배라...'

눈앞에서 실실 웃으며 청이를 보는 것만으로 즐거워하는 명환을 보고 있으려니 '설마 저녀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까 음료수를 사올때의 반응과 지금의 모습으로 볼때 명환은 아무래도 청이에게 마음이 있는 것같았다.

남자일때는 잘 몰랐겠지만 여성인 지금으로선 명환의 저런 모습이 그렇게밖에 보이지 않았다.

" 어째서?"

혼잣말을 중얼거려보지만 답은 나오지 않는다. 명환의 취향은 분명 흑발의 긴생머리 미소녀다. 말하자면 지금의 자신. 다른점이라고 하면 '성격'정도이겠지만 외견만으론 자신이 명환에게 있어 꿈에서나 나올법한 이상형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명환은 청이에게 반한 것같았다. 혹시 자신이 알던 명환과 이곳의 명환과 다른 건가-라고 순간 생각도 했었지만 지금 명환의 양손에 들려있는 수많은 캐릭터 용품들을 볼때 취향은 변하지 않은 것같았다.

결국 단순히 청이에게 반해버렸다는 이야기.

' 내가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저런 여유로운 생각을 할 수나 있었던가?'

이상하다. 저건 마치 전생의 자신이었던 '명환'이 아니라 전혀 다른 존재를 보고 있는 것같았다. 전생의 자신이라면 아무리 첫눈에 반할정도로 아름다운 청이를 보았어도 그냥 예쁘구나, 하면서 넘어갔을 것이다. 분명하다. 왜냐하면 자신은 누구와 친해져본 기억도 없었고 누군가를 좋아할정도로 여유롭지도 않았으니까.

하루하루를 그저 어떻게 보내야 하나 고민만을 했을 뿐인 그런 아이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눈앞의 명환은 무엇이라는 말인가. 상혁이를 친구로 사귀고, 청이에게 반해있는 저 '평범한' 소년은. 전생의 자신은 거짓으로라도 평범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집에서 외면당하고. 학교에서 왕따당하고. 극한으로 몰린 정신에 몰두 할 수 있는 것은 겨우 애니메이션을 보고나 게임을 하는 정도뿐인 그런 삶이었다. 그나마 '미래의 꿈'을 생각해서 어떻게서든 버텨나가고 있는 것이었지.

그 틈에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친구를 사귄 순간은 없었다.

철저하게 혼자였고, 계속 혼자일 것이라 생각했다. 눈앞의 명환도 분명 그런 녀석이어야 할텐데.

" 저기... 상혁아, 뒤에서 뭔가 계속 미묘한 시선이 느껴지는데."

" 그게 나도 느끼고 있는데 차마 말은 못하겠네. 수연이 녀석 또 왜 저러냐."

반면 뚫어져라 이쪽을 바라보며 걸어오는 수연이의 시선에 상혁과 명환은 피가 마르는 기분이었다. 무표정하고 무감정한 얼굴로 일정한 거리에서 차분히 걸어오는 수연이의 모습은 어쩐지 공포마저 느껴졌다. 뭐 옆에 있는 곱슬이나 윤아. 그리고 심 청은 그런 수연이를 전혀 신경쓰지 않는 모양이었지만.

" 저 계집애가 저러는거 하루 이틀도 아니잖아? 또 뭔가 있나보지 뭐."

" 아니 있으면 안되는거 아니야?"

퉁명스럽게 말하는 곱슬이의 말에 상혁이 급히 태클했지만 곱슬이는 들은 척도 하지 않으며.

" 그보다 상혁아~. 여기 상혁이가 보던 만화에서 나오는 인형들도 잔뜩 있네!"

프라모델들과 사이사이에 진열된 피규어들을 바라보며 곱슬이가 이야기했다. 상혁이의 팔에 메달리며 이야기한 것인지라 주변의 시선이 불쾌하다는 듯이 상혁이에게 쏠렸다. 뭐지? 뭔데 저녀석은 저런 미소녀들과 저런 식으로 걸어다니는 거야?

라는 시선이 아플정도로 상혁이의 등뒤에 박혀왔다.

" 근데 상혁이 정말 무슨 애니메이션 주인공같네. 곱, 슬이라고했나 아무튼 곱슬이하고 소꿉친구, 그리고 청이 누나. 마지막으론 저 극강의 검은머리 미소녀와도 얽혀있다니."

" 야야. 누가들으면 진짜인줄 알아."

" 아니, 진짜잖아."

'얽혀있다'라고 표현하지 말라고. 누가들으면 삼다리 사다리 걸친줄 알겠네. 주변에 여자는 많지만 딱히 사귀는 사람이 없는 상혁으로선 억울할 따름이었다.

" 아무튼 역시 여기 장난아닌데? 꼭 와보고 싶었어. 나 이런 건프라도 되게 좋아하거든."

" 하긴 여긴 좀 희귀한 것도 많이 파니까."

가게 안을 구경하다보니 시간은 금방 금방 흘렀다. 건물 하나가 전부 피규어와 프라모델로 가득찬 곳이었기에 윤아와 곱슬이나 청이처럼 오타쿠 문화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지루할 법도 했지만 의외로 볼 것도 많고 해서 나름 재밌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수연이만 빼고.

수연이는 피규어고 프라모델이고 다른 곳에 시선이 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명환이만을 바라보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계속 복잡한 머리속을 뒤적여볼 뿐.

그건 집합시간이 가까워지는 6시가 다가올 수록 더욱 그랬다. 아직은 다섯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지만 여기서 거리를 볼 때 명환은 슬슬 돌아가야 할 것이다.

그러면 그 사건이 일어나는 것일까?

눈앞에서 웃고 있는 명환을 바라보았다. 지금 저 웃음이 그 사건이 지난 이후에도 계속 될수 있을 것인가. 수연은 이젠 자신이 뭘 어떻게 하고 싶은지도 알 수 없었다. 자신의 과거에 있었던 사건을 지켜볼 것인지. 아니면 개입해서 바꿀 것인지.

보통이라면 과거를 바꾸려고 노력할지도 모른다. 그것이 자신의 인생의 내리막을 이끌었던 것이며 트라우마와 같은 일이라면 그것을 바꿔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려고 할지 모른다.

그래, '보통이라면'.

수연도 본래는 그래도 역시 그것은 개입해서 바꾸는게 좋지 않을까, 라고도 생각하긴 했었다. 하지만 오늘 명환이를 만나고 그런 생각자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전생과는 너무나 다르게 행복하게 웃고, 친구가 있는 명환.

그것을 보고 수연은 충격을 받았고, 지금도 마음속이 답답하다. 왜? 라고 계속 질문했지만 그 이유는 무척이나 간단히 알 수 있었다.

질투, 또는 억울함과 같은 감정.

전생의 자신은 그렇게나 힘들었는데 분명 같아야할 과거의 또다른 자신은 전혀 그런 것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 것이 우습게도 수연이의 마음속에서 질투로서 변화하고 있었다.

' 바보같네. 나.'

하, 하고 작게 실소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전생의 자신을 질투하다니. 이렇게나 추할 수 있을까.

'그사건'으로 지금의 명환이 절망하는 것을 봐야만 이 답답한 마음이 편해질 수 있을려나.

수연이 그런 생각을 하며 멍하니 생각에 잠겨있을때, 명환은 벽에 걸려있는 시계를 보고 화들짝 놀라며 상혁이를 불렀다.

" 아~.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미안한데 나 먼저 가야할 것같아. 집합시간이 여섯시라서 슬슬 가지 않으면 늦을 것같거든."

" 그래? 이런-. 흐음~."

유연고등학교는 늦게 도착한 탓에 저녁식사 시간이후가 집합시간인지라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다섯시 이십분. 명환이가 여섯시가 집합이라고 했으니 확실히 빨리 가지 않으면 늦을 것같았다.

" 청이 선배. 괜찮으면 명환이를 함께 데려다줘도 괜찮을까요? 기왕 만났는데 여기서 대충 헤어지기는 좀 그러니까..."

" 그래. 그게 좋겠네. 어차피 밥도 먹어야 되니까, 명환이를 데려다주고 오는 길에 식당에 들리면 되겠는걸?"

" 나도 찬성! 완전 배고파 지금!"

명환은 자신을 바래다 주겠다고 이야기하는 일행의 말에 내심 감동했다. 언제 자신이 간다고 하는데 이렇게 함께 가주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었던가. 늘 쓸쓸하게 혼자서만 다니던 명환이다. 역시 사람은 친구를 사귀어야하는 구나, 라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뭐 마지막으로 말한 윤아야 정말 단지 배고팠기 때문이었지만.

" 자, 잠깐만."

뭐야, 정말로 함께 가려는거야? 수연은 당황한 목소리로 급히 소리쳤지만 너무 작은 목소리였기에 아무도 듣지 못했다. 수연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며 다시 한번 소리치려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 이렇게 된거 어떻게 될지 보도록 하자. 지금의 명환이가 어떻게 무너질지.

'....과연 정말로 무너질까?'

전생과는 너무나도 다른 명환. 수연은 가게 밖으로 향하며 웃고 있는 명환을 바라보았다. 다르다, 너무 달랐다. 그렇지만 결과는 같을 것이다. 그래야하니까.

" 휘유~, 확실히 시간이 좀 늦으니까 좀쌀쌀한걸."

햇빛은 아직 하늘에 떠있었지만 확실히 시간이 시간인지라 빛도 약해져있고 곧 해가 질 것만 같았다. 거리에 아직 사람들이 있기는 했었지만 아키하바라는 그리 늦게 운영하지 않는 것으로 볼때 식사시간 이후엔 아마 사람이 많이 줄어들 것만 같았다.

거리에 나와 어째선지 약간 엉거주춤한 자세로 걷던 명환은 붉어진 얼굴로 머리를 긁적이며.

" 아, 나 잠시 화장실좀 다녀올게. 너무 급히 나오느라 화장실을 못다녀와서."

에헤헤, 하고 부끄럽다는 듯이 웃은 명환은 허둥지둥 발걸음을 놀려 가게 골목에 들어가야 있는 화장실로 급히 들어갔다.

" 짐 정도는 주고 다녀와도 될텐데."

아무래도 들뜬 마음에 화장실도 제대로 못다녀왔던 것이 부끄러웠던 모양이다. 허둥지둥 화장실로 달려가던 명환을 생각하며 상혁은 피식웃었다.

" 여기 서있기도 그러니 저쪽의 벤치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자."

아까 명환이의 부끄럽다는 행동을 볼때 소변이라기보단 좀더 시간이 걸리는 대변쪽이었으리라 생각한 상혁이 이야기하자 일행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선이 쏠리는 일행이다보니 거리 한복판에 서있기 보단 살짝 외각에 숨어 앉아있는게 좋았기 때문이다.

' ....응?'

일행이 모두 벤치쪽으로 몸을 돌리자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애써 움직이려던 수연은 뭔가 우르르 움직이는 것이 느껴지자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명신 고등학교의 교복. 날라리같은 인상을 한 세명의 소년.

잊혀지지 않는 얼굴. 변하지 않은 모습 그대로 명환이가 화장실을 가기위해 들어간 골목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왜?

왜 저녀석들이 이곳에 있지?

수연은 창백해진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다. 자신이 꿈을 부정하고 짓밟았던 당사자들의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겁에 질렸던 모양이다. 자신은 명환이 아니라 수연이라고 계속 생각하면서 살아왔어도 '트라우마'는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 마음속에 상처로 남아있었던 모양이다.

한번 죽었다 살아나도 사라지지 않는 상처.

" 왜 저녀석들이 여기에...."

더군다나 들어간 곳도 명환이가 들어간 화장실이 있는 골목쪽이다. 다급하게 움직이는 모양세도 그렇고 명환이처럼 단순히 화장실을 찾아서 이동한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마치- 명환이가 혼자가 되길 기다렸다는 듯이 '습격'하는 것같다고 해야하나.

하지만 왜?

저녀석들은 분명 명환에게 오늘 큰 트라우마를 주는 녀석들이 맞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집합장소에서고, 여긴 그 사건이 일어나야 되는 장소와는 터무니 없이 동떨어져 있는 곳이다.

아니 애초에 프라모델과 피규어를 파는 가게앞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 이 근처는 대체로 오타쿠 용품을 파는 곳이니 저녀석들이 이곳에 있어야할 이유도 존재하지 않는다.

' 뭐야, 뭐가 어떻게 되가는거야."

상혁이 일행은 이미 한쪽 구석에 가서 벤치에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일행들은 수연이가 왜 움직이지 않고 멀뚱히 서있나 보고 있었지만 수연은 차마 일행들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움직일 수 없었다.

명환이가 들어간 골목으로 계속 시선이 갔다. 저안으로 들어간 세명의 모습도 마음에 걸렸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해야하지?

수연이의 고민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봐야만 했다. 어째서 어떻게 무엇이 원인이 되어 지금의 상황에 이르렀는지 알고 싶었다. 무엇이 달라질지 보고 싶었다.

몸을 돌렸다.

일행들이 의아하다는 듯이 바라보는게 느껴졌지만 상관없었다. 이미 그 세명이 골목으로 들어간지도 몇분. 명환이도 나오지 않는 것을 보니 안에서 분명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봐야한다. 정확히 뭐가 일어날지 몰랐지만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 안에서 일어날 일은, 전생의 자신과는 전혀 다를 것이라고.

' 아냐, 아니야, 그럴리 없어.'

고개를 흔든다. 속으로 부정해보지만 너무나 달라진 현실에 제대로 갈피를 잡기 힘들었다. 그러니까, 우선 지금 수연이가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뿐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는 것뿐.

그것이 바로 지금 수연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 작품 후기 ============================

이 글은 수연이의 성장 소설이기도 하죠! 이제 멘탈이 후드려부셔지면 조금 덜냉정한 수연이가 나올지도 모릅니다(?)우선은 가루를 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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