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화
아키하바라.
여러가지 다양한 호칭을 가지고 있는 곳이지만, 특정한 취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겐 '성지'라고 불리울 정도로 유명한 곳이다. 다양한 애니메이션들과, 게임. 그리고 특색있는 가게들이 즐비한 이곳에 '특정한 취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명환은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 여기가 아키하바라구나..."
애니메이션이나 소설에서만 보던 곳. 애니나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로선 한번쯤 와보고 싶은 곳이다. 명환도 마찬가지였기에 아침 일찍부터 학교가 이곳에 간다고 했을때 두근거리던 가슴을 주체할 수 없었다.
물론, 이곳에 도착하고 불만스러워 하는 학생들도 있었던 터라, '오타쿠'라고 낙인찍혀있는 명환은 혼자서 스리슬쩍 다른 반 아이들과 떨어져 이동하고 있었다. 어차피 자유시간이기도 하고, 자신이 같이 다닐 친구도 없었으니 말이다.
확실히 외국은 외국이구나. 우리나라라면 이렇게 애니와 게임이 밀집된 곳이 없을텐데. 물론 우리나라도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시기가 한정적이고, 이렇게 거대하지는 않으니까.
' 일본도 오타쿠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같은데 말이지.'
생산지가 애초에 이곳이다보니 그런걸까. 명환은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고개를 흔들었다. 쓸데없이 그런 것을 신경쓰기보다는 하나라도 더 구경하는게 좋을 것같았기 때문이다.
거리에 이것저것 나눠주는 메이드복을 입은 여자들도 눈에 띄었고, 애니메이션 캐릭터로 장식된 간판이나, 한국에서 보기힘든 대규모 게임매장등은 명환의 눈을 사로잡았다.
" 어, 어덜트코너라..."
어떤 게임이 파나 싶어 들어가니 정말 상상도 못할정도로 많은 게임들이 전시되어있었다. 한국에 불법으로 돌아다니는 게임들은 정말 극히 일부정도인 듯, 나름 오타쿠로서 프라이드가 있는 명환으로서도 처음보는 게임들이 많았다.
...뭐 어차피 한국에 돌아다니는 미연시나 일본 게임들은 대체로 나름 유명하고 재미있는 것들이다보니 굳이 다른 게임을 하나하나 해볼 생각은 없었지만. 뭐 이렇게나 많은 미연시나 게임들이 있다는 것은 명환으로선 나름 신선한 기분이었다.
딱히 뭔가를 구매할 생각은 없으니 그냥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구경이나 하자.
-라고 생각하고 두시간쯤 지났을땐 이미 다양한 굿즈와 상품이 양손가득 명환이의 손에 들려있었다.
" ......."
돈이 떨어져서 더이상 사지 못하는게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지금 산 양도 보통이 아니어서 나중에 들고갈때가 고민이었다.
" 으음...."
무작정 지르긴 했는데 막상 나중에 이것을 들고갈 생각을 하니 걱정이 앞섰다. 이렇게 눈에 띌정도로 잔뜩사버리면 나중에 버스에 탈때도 눈치가 보일 것같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오타쿠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아이들이다보니 헤코지라도 하지 않을까 갑자기 걱정이 생겼다.
" 고민이네."
산 것까지는 좋았는데 이후가 문제라고 해야하나. 하아, 하고 작게 한숨을 쉰 명환은 벤치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계속 걸어다닌 탓에 다리가 아프기도 했던 터라, 한숨 돌릴겸 다리를 주무르며 아직 가보지 않은 곳이 어디가 있나 찾고 있었다.
' 오후에 상혁이네 학교도 온다고 했으니 운좋으면 만나려나.'
상혁이를 생각하니 문득 그 '수연'이라는 소녀가 떠올랐다. 상혁이와 함께 다니다가 보았던 아름다운 소녀. 검고 긴 아름다운 생머리에 밀랍인형처럼 하얗고 무표정한 얼굴을 가진 여자아이였다.
정말 아깝지. 좀만 밝은 얼굴이었다면 정말 명환이의 취향에 스트레이트로 박히는 외모였다. 앞머리도 일자 생멀이였고, 청초한 아가씨 분위기라고 해야하나. 명환이는 밝은 성격을 좋아하다보니 그점이 정말 아쉬웠다.
" 웃으면 예쁠 것같은데..."
거기다가 미묘하게 느껴지는 이상한 감각이라고 해야하나. 그때 수연이와 마주쳤을때 미묘한 그런 기분마저 들었다. 그것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 아무튼 이따가 상혁이와 만나게 되면 대신 가지고 가달라고 부탁이나 해볼까나."
문득 생각난 것이지만 정말 좋은 생각같았다. 물론 맨입은 아니고 보답은 해줄생각이다. 뭐 거절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상혁이는 그 학교에서 오타쿠라는 이유로 그렇게 괴롭힘을 당하거나 하는 것같지는 않았으니...
" 하아..."
최근 괴롭힘의 강도가 심해져가는 그 삼인조와 주변의 아이들이 생각나자 명환은 크게 한숨을 쉬었다. 자신이 뭘 그리 잘못했다고 그렇게 배척하고 무시하고 괴롭힌다는 말인가. 양아치들이나 일진들보다 일반 적인 반아이들의 시선이나, 어중간하게 노는 아이들이 계속 시비를 거는게 더 힘들었다. 이상하게 양아치나 일진들은 그다지 자신에 대해 신경쓰지 않는단 말이지...
" 응? 외국인이네?"
애초에 이곳이 외국이기는 하지만 명환은 우연히 시선에 들어온 금발머리에 눈을 동그랗게 떻다. 이곳에 걸어다니며 다양한 외국인들을 보기는 했지만 지금 명환이의 시선에 들어온 '금발머리의 소녀'는 유독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자신이 좋아하는 흑발에 단정한 앞머리를 지닌 소녀는 아니었지만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머리카락과 싱그러운 미소를 머금은 얼굴. 보기만해도 밝아지고 순수해보이는 소녀였다.
순수 서양계로는 보이지 않는 약간 동양적인 외모마저 섟인 소녀의 모습에 명환은 그만 넋을 놓고 봐버렸다. 어쩌면- 반했다라고 표현할정도로 빠져버린 것이다.
" 어머."
뭔가를 찾는 듯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걸어가던 금발의 소녀는 어째서인지 명환을 발견하고는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처음에는 이곳에 무슨 볼일일이 있나 싶어 풀린 눈으로 바라보던 명환이였지만 이내 자신의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화들짝 놀랐다.
갑자기 왜 이쪽으로 오는거지? 금발머리의 소녀가 자신에게 다가올 이유는 조금도 없었다.
" 다행이네~. 완전 미아될뻔 했었는데... 명신 고등학교의 학생이에요?"
유창한 한국말이었다. 이곳이 일본이었던 터라 일본어로 묻는게 일반적일텐데 한국말로 물어 온 것이다. 더군다나 외견으로는 영어를 쓸 것같은 화려한 금발을 지닌 여자아이였다.
" 에... 어떻게?"
어떻게 자신이 명신 고등학교의 학생인 것을 안것일까. 멍하니 명환이가 묻자 금발의 소녀는 풋하고 작게 웃으며 명환이가 입고 있는 옷을 가리켰다.
" 그거 명신고등학교의 교복이잖아요? 오늘 유연고등학교랑 같이 일본에 수학여행을 왔다는 것도 잘 알고 있고..."
멍청하게도. 확실히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은 명신고등학교의 교복이었다. 따로 옷을 챙겨와서 사복으로 나온애들도 있었지만 애초에 기본복장은 교복이었고, 자신은 따로 갈아입을 생각이 없었기에 지금도 교복을 입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 근데 ...저에게는 왜?"
보아하니 명신 고등학교나 유연고등학교 둘중 하나 때문에 자신에게 왔던 모양이다. 유창한 한국말이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이 소녀는 빙긋 웃음지으며 말을 이었다.
" 음~, 뭐라고 해야하나. 사실 오늘 수학여행온 유연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이 이곳에 온다고 하지 뭐에요. 사실 어제 디즈니 랜드에서 만날 생각이었는데 일이 늦게 끝나는 바람에 오늘 아키하바라에서 짠-하고 나타나 놀래켜줄 생각이었거든요. 근데 알고보니 오후에 오는데다가 어디로 올지 감도 잡히지 않아서..."
우연히 같은 한국사람이 눈에 띄어서 오게 됐다- 라고 소녀는 이야기했다.
" 아, 그, 그런가요?"
멍하니 대답하던 명환은 얼굴을 붉히며 어색하게 이야기했다. 태어나서 이렇게 여자와 가까이서 이야기해본 것은 난생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렇게 예쁜 소녀라면 보통 여자와 자주이야기하던 남자들도 긴장할텐데 명환이라면 오죽할까.
" 거기다가 바닥에 놓아둔 그 물건들을 보니 왠지 오늘 내가 만나려고 하는 아이들과 취미도 비슷할 것같아서 어디로 가면 될지 알것 같았어요. 괜찮다면 계속 같이다녀도 될까요?"
거절하면 어떻게하나-라는 불안한 얼굴로 살짝 미소지으며 이야기해오는 소녀. 아니 이게 무슨 일이지. 명환은 자신의 볼을 꼬집으며 갑작스럽게 일어난 현재의 상황을 인식할 수 없었다. 이 무슨 애니메이션 만큼이나 터무니 없는 일인가! 학교에서 따돌림이나 당하는 오타쿠인 자신에게 이렇게 아름다운 미소녀가 갑자기 다가온데다가 불안한 얼굴로 같이 다녀도 되냐고 묻다니!
실제로 주변의 일본 남성들이나 일부 서양인들은 눈앞의 금발 소녀를 향해 휘파람을 불거나 눈을 때지 못하고 있었다.
" 괘, 괜차, 아니 괜찮기는 한데 저기 싫거나 하지 않나요? 아무래도 그..."
자신이 바닥에 내려둔 것은 보기만해도 부담스러워지는 각종 미소녀그림이 그려진 굿즈와 상품들이었기에 여자들입장에서는 거부감이 들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금발소녀는 입을 가리고 작게 웃으며.
" 방금 말했지요? 오늘 만날 애들도 비슷한 취미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렇게 애써가리지 말아요. 예쁜 캐릭터들인데 아깝잖아요? 자신이 좋아서 산 것이니 굳이 남의 눈치를 신경쓸 필요는 없어요. 그나저나 다행이네요, 혼자 이곳을 돌아다닐 생각을 하니 막막했는데... 제가 보기엔 다 비슷비슷해보여서."
두근!하고 가슴에 직빵으로 박히는 말이었다. 천사다! 명환은 눈앞의 소녀를 보며 그렇게 생각해버리고 말았다. 학교에서 매번 여자애들의 경멸하는 눈초리나 받았던 명환이기에 눈앞에 아름다운 소녀가 하는 말은 그야말로 심금을 울리는 말이었다. 정말 천사가 아닌가 생각했을 정도다.
예의상하는 말이 아닌 전혀 편견이 들어가지 않은 순수한 눈동자로 이야기하는 소녀의 모습은 명환이 자신이 꿈꾸던 이상형의 소녀의 성격과 아주 똑같았다.
" 가,감사해요..."
" 아, 그렇지. 같이 다니게 됐으니 자기 소개를 할게요. 제 이름은 '심 청'이에요. 유연 고등학교 2학년이랍니다."
심 청? 무척이나 독특한 이름이다. 하지만 무척 잘어울리는 이름같기도 했다. 명환은 심청이의 자기소개에 어색하게 웃었다. 그나저나 2학년이면 자신보다 한살 연상이었다.
" 저보다 한살 많으시네요. 말 편하게 하세요. 전 명환이라고 해요. 명신 고등학교 1학년이에요."
금발머리의 아름다운 소녀, -심청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청이는 이미 이 소년이 명신고등학교의 학생이라는 것을 알았을때부터 자신보다 연하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반말을 하지 않았던 것은 초면이기도 하고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그래도 되니? 후후, 그럼 오후에 길안내 잘부탁해."
명환이의 옆으로 앉은 심청은 평상시의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옆에 높여있던 명환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덕분에 크게 놀란 것은 명환이쪽. '외, 외국인의 스킨십인가!'하면서 얼굴을 붉게 물들였지만 굳이 손을 빼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청이는 붉어진 명환이의 얼굴에 그제야 자신이 무심코 손을 겹쳤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미안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 어머나, 미안. 내가 자주 어울리는 아이들이 너와 같은 나이인지라 무심코... 분위기도 비슷하다고 해야하나. 음~, 나 그렇게 스킨십 많이 하는편 아닌데 실수했는걸."
혀를 비죽내밀며 귀엽게 웃는 모습에 명환은 다시한번 심장이 멈출뻔했지만 애써 정신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오후에 상혁이랑 만난다는 생각은 이미 머릿속에 사라진 이후였다. 오늘의 목표는 우선 이 심청이라는 소녀와 어울리는 것이 최우선 목표였다.
" 저, 그... 10분만 앉아있다가 움직이도록 해요."
" 응? 그래. 그렇게 하자."
굳이 빨리 움직일 필요는 없겠지. 명환은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의 옆에 조용히 미소짓고 있는 청이를 힐끗힐끗 바라보았다. 조금이라도 오래같이 있을 수 있도록. 명환은 그런 자신의 생각에 속으로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아무래도 자신은 자신의 옆에 있는 천사같은 금발의 소녀에게, 첫눈에 반해버린 모양이었다.
============================ 작품 후기 ============================
마침 다음편이 청이가 나오는 장면이었는데 그것을 어찌알고 전편에 미리 언급을 하시다니! 내일은 병실을 옮겨 이제 일인 무균실로 들어갑니다. 두근두근.
생긴게 영 영창처럼 생겼던데 말이죠. 저에겐 소세크 델타와 페르소나 더 골든이 함께하니 괜찮습니다. 퇴원하면 다시 스카이림 해야죠. 빨리 검은사막 오베했음 좋겠네요.
하지만 제가 최고로 기대하는 게임은 트리오브 세이비어! 이거 나오면 정말 열심히 해줄 생각이 있는데 제발 올해안에 오픈베타좀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