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상혁은 달렸다. 진짜 전력을 다해 달렸다. 얼마나 최선을 다했냐면 두달전 수연이를 뒤쫓아 달릴 때만큼 온 힘을 다해서 달렸다. 그 삐뚤이 녀석이 대형사고를 치기전에 막아야할 필요성이 있었으니 말이다. 무슨 만화도 아니고 여탕의 사진을 몰래 찍는다는게 허락될리가 없지 않은가. 거기다가 명호와 건수의 말을 따르면 사진까지 돌린다고 했는데 그랬다간 다신 이 학교에 다닐 수 없을 것이다. 수연이 뿐이 아니라 찍힌 여자애들은 큰 상처를 입을 것이 분명했다.
' 분위기를 타도 꼭 이상한 곳에서 분위기를 타지!'
아마 녀석들도 아주 그런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닐텐데 해외인데다가 무심코 분위기를 탔다는 것이 문제였다. 군중심리라고 해야하나, 남자들이 '와! 하자!' 이라니까 '오오오 좋다 좋아!'하면서 우르르 몰려가버린 것이다.
거기다 수연이가 좀 예쁜 것도 아니고. 평상시 말도 붙이지 못했던 아름다운 여자아이의 알몸이라니 흥분하는 것도 이해는 가지만 도를 넘어섰잖아. 이러다가 자칫하면 수학여행은 둘째치고 뉴스에 나오게 생겼어.
이럴 때만큼은 아웃사이더라는 것이 참 좋은 것같았다. 만약 자신도 친한 애들이 있었다면 '괜찮아 괜찮아, 안들켜.' 이러면서 군중심리에 휩쓸려 함께 이 일에 참가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 늦지 않아야 할텐데!"
" 그러게, 늦지 말아야 할텐데."
...?누구.
열심히 달리고 있던 상혁이의 옆에서 이질적인 음성이 들렸다. 반의 남자아이들은 대부분 온천에 있을 것이 분명한데 자신의 옆에 있는 것은 누구란 말인가.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려 보자 바가지 머리에 둥근 안경을 쓴 남학생이 달리고 잇었다. 이놈은 또 뭔데 언제 옆에 따라붙었데.
" 넌-?"
누구야, 라고 물으려는 상혁의 말을 미리 인지한 것일까, 바가지 머리의 소년으로 추측되는 남학생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 너를 가장 매장시키고 싶어하는 집단의 한명."
" 수연이 친위대냐!"
분명 수연이 친위대는 반대파가 모조리 제압된 상황이라고 했는데 이 녀석은 그럼 뭐지? 하고 바라보니 바가지 소년은 차분하게 이야기했다.
" 친위대가 1반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 1반의 친위대 중 건전한 아이들이 모두 제압되어 있기는 했지만 어떻게든 탈출해서 옆반의 친위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달려가고 있는거지."
근데 스스로를 친위대라고 말하는 것은 쪽팔리지도 않나. 상혁가 생각하기엔 차라리 오타쿠라고 당당히 떠들고 다니는게 덜 쪽팔릴 것같았다.
" 서두르지 않으면 큰 일나겠지?"
" 당연한 소릴. 이건 친위대를 떠나서 범죄행위라고. 1반녀석들 이런 부러운 짓- 이 아니라 아무튼 불건전한 범죄행위를 용납할 수 없지. 친위대라고 자칭하던 녀석들 조차 그 사이에 껴있으니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일이야. 그래서 적어도 지금은 너와 휴전을 하고 잇는거다. 아니었다면 넌 지금 이자리에서 죽었어."
" 죽이는게 더 큰 범죄라고는 생각하지 않냐."
" 지금 1반녀석들이 하는 행동도 어떻게 보면 비슷한 거다."
겉만 보면 바가지 머리에 둥근 안경으로 얼굴도 보이지 않는 수상하기 짝이 없는 녀석이 그런 소리를 하자 상혁이로선 난감할 수 밖에 없었다. 새삼 자신이 얼마나 적이 많은지 인지해버렸기 때문이다. 정말 친위대란 녀석들은 정체를 알 수없다니까.
" 다왔다. 빨리 옷 벗고 들어가!"
" 알고 있다고!"
온천에 뛰어들어온 두명은 서둘러 바구니에 옷을 던지듯이 벗으며 남탕의 문을 거칠게 열었다. 뜨거운 온기와 뿌연 연기속에서 상혁은 서둘러 남학생들이 어디에 있는지 고개를 돌려 찾아보앗다. 분명 칸막이의 빈공간을 통해서 사진을 찍는다고 했았지.
" 저쪽!"
바가지 소년이 손을들어 온천의 한 구석을 가리켰다. 저쪽에 몰려있는건가 싶어 급히 고개를 돌린 상혁이의 눈에 들어온 것은 거대한 무언가였다. 단순히 애들이 무언가를 이용하여 위에 칸막이를 통해 사진을 찍는다- 라고 생각한 상혁이다. 하지만 그런 자신의 생각을 비웃는 것처럼 1반의 남학생들은 한 몸이 되어 거대한 무언가로 재탄생되어 있었다.
이집트에서 유명한 '피라미드'처럼.
맨 아래에 다섯명. 그 위에 네명, 이런 식으로 쭉 올라가 맨 위에로 올라가고 있는 삐뚤이 리더 창호가 있었다. 그 손에는 뿌연 연기속에서도 빛나는 카메라가 들려있었다. 다행히 아직 뭔가를 하지는 않은 것같지만 조금만 늦었어도 저 위에서 건너편을 사진으로 찍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가슴이 서늘해졌다.
" 응? 아니, 유상혁 네가 어떻게 여길!"
문을 거칠게 열고 들어온 탓에 소리를 들었는지 뒤를 돌아본 창호가 놀란 듯 소리쳤다. 분명 명호와 건수에게 막고 있으라고 했는데 어떻게 여기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하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이제 자신은 손에 있는 카메라로 사진을 찍기만 하면 되는 것아닌가.
" 삐뚤이- 가 아니라 지창호! 당장 이런 일 그만두고 내려와! 괜히 기분타서 대형사고 저지르지 말고!"
" 흥, 겨우 사진찍는 것으로 호들갑 떨기는, 들키지만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
저녀석 뇌가 없는 건가. 누가 삐뚤이 대장이 아니랄까봐 뇌까지 삐뚤어졌는지 생각하는게 정상이 아니다. 이런 녀석들이 있기에 고등학생이나 중딩들 사이에서 말도 안되는 사건이 가끔 터지는 것이다.
우선 명호와 건수에게 했던 것처럼 설득을 해보기로했다. 아무리 삐뚤이라도 곱슬이에게 찍히고 싶지는 않을테니까.
" 너 그러다 나중에 '여왕'에게 걸리면 어떻게 할려고 그러냐. 진짜 작살난다고!"
유연 고등학교에서 노는 애들이라면 모두 알아주는 '여왕'- 곱슬이의 이름에 맨 위에 있던 창호가 순간 움찔했다. 뿐만 아니라 그 발판으로 있던 아이들까지 움찔거리며 반응하는 모습이 보였다.
" 막상 생각해보니 그러네."
" 여왕은 좀..."
조금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생각보다 큰 반응은 아니었다. 아마 몇몇 남학생들은 그런 것들을 이미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럴 생각이 있었으면 상식적으로 이런 짓을 하지 말라고.
" 하, 하하하. 상관없다! 어차피 사진을 찍으면 우리의 승리. 여왕도 사진 앞에선 감히 어쩌지 못할걸!"
무슨 이게 일본 야동인줄아나. 중딩때부터 좀 생각이 없는 것은 알긴 했지만 이정도일 줄이야. 아무래도 곱슬이를 이용한 협박은 더이상 먹히지 않을 것같았다. 이젠 역시 학교뿐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문제된다는 것을 이야기해야겠지? 물론 저 뇌없는 녀석이 들어줄지는 모르겟찌만 아래에 있는 아이들은 분명 동요할테니까.
지금 자신들이 하고 있는게 얼마나 위험천만한 짓인지. 만화책이나 애니메이션에서나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말해줘야할 필요성이 있었다.
" 너희..."
" '여왕'이 문제가 아니라 지금 선을 넘으면 너희 전원 정학에서 퇴학이라는 것은 알고 있겠지?"
상혁이 직접 이야기하려한 것을 자르고 이야기한 것은 옆에 있던 바가지 머리의 소년이었다. 소년의 손에는 언제가져왔는지 창호의 손에 있어야할 카메라가 들려있었다. 아니 무슨 닌자냐. 언제 가지고 온거야.
" ...어? 내 사진기가 왜 저깄냐."
창호도 그것을 알아차린 듯 벙찐 얼굴로 바가지 머리의 소년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신은 분명 피라미드 꼭대기에 서있는데 대체 어느 틈에 여기까지 올라와서 사진기를 가지고 간 것인지 그저 궁금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바가지 소년은 그런 창호의 벙찐 얼굴을 향해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그것은 비단 아래에 있는 피라미드 학생들에게 하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 지금 너희가 하려는 것은 단순히 장난으로 생각할지 몰라도 엄연히 중범죄다. 자칫하면 이 사진에 찍힌 여자애들은 큰 마음에 상처를 입는 것은 물론이고 인생을 망칠 수도 잇어. 법같은 것은 이야기해도 모를테니 간단히 말하자면. 지금 내가 여기서 선생님에게만 말해도 너희 전부 소년원으로 간다는 것만 명심해."
수연이 만큼은 아니어도 냉정하고 차가운 목소리에 눈에 뜨리 정도로 피라미드에서 동요가 가득한 목소리가 조그맣게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 그, 그냥 장난이라고. 그렇게 민감하게..."
" 장난도 정도가 있는 법이야. 그리고 너 수연이 친위대중 한명이었지. 다시는 친위대에 발도 들이지 마라."
피라미드에 있는 아이들이 동요하며 안절부절 못하기 시작했다. 사진기를 뺏긴 것은 둘째치고 한창 기세가 올라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찬물이 확 뒤집어썼기 때문이다. 그제야 지금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려했는지 조금 인지를 한 모양이었다.
' ...내가 말했다면 이정도로 동요했으려나.'
동요하는 피라미드 학생들의 모습에 조금 안도의 한숨을 쉰 상혁은 옆의 바가지 소년을 바라보았다. 키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위압감이라고 할지 그런게 있었다. 마치 수연이나 중학생때 보았던 청이 선배처럼.
" 저, 정신차려라 이녀석들! 저런 말에 동요하지마!"
" 지금 위에서 떠드는 저 녀석말 들으면 너희 진짜 범죄자코스 직행이라는 것만 명심해."
맨 위에 있는 창호가 뭐라고 소리쳤지만 계속해서 이야기하는 바가지 소년의 말에 이미 동요하기 시작한 피라미드 학생들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도리어 맨아래에 있는 애들이 더욱 동요하며 피라미드 마저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 우린 그냥 어쩌다 이렇게 됐을 뿐이라고."
" 아, 몰라! 안하면 되잖아! 그럼!"
시끌 시끌거리며 흔들리는 피라미드. 저거 괜찮은건가? 그만두는건 좋은 일이지만 아무래도 사람들이 탑처럼 쌓여있는 것이다보니 잘못 넘어진다면 크게 다칠 것은 분명했다.
삐걱, 삐걱.
" 야, 균형을 못잡겠어!"
" 아래에 있는 애들 움직이지 좀 말아봐!"
" 위부터 순서대로 내려오면 되잖아!"
조금이나마 위에 있는 애들이 뭐라고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이미 중심은 흔들릴 대로 흔들린 상황이었다.
" 어어어, 기울어진다! 잠깐 너희들!"
맨 위의 창호의 몸이 기울어지며 나무로 된 가림판에 등을 기댔다. 그것을 시작으로 다른 아이들의 중심도 점차 가림판 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 야, 저거 위험한 것아냐?"
" ....하, 가지가지하네 정말."
삐걱 삐걱 삐걱!
결국- 이라고 해야하나. 나무에다가 그렇게 튼튼해 보이지 않았던 가림막이 여탕쪽으로 깔끔하게 넘어가 버렸다. 그 뒤로는 여자애들의 비명소리가 들리며 뛰쳐나가는 것이 어렴풋이 보였고 남자들은 처참한 모양새로 여탕쪽으로 대굴대굴 구르며 널부러져 있었다.
그나마 가림판에 기대어 천천히 넘어진 탓에 크게 다친 녀석은 없어보인다고 하려나.
" 하아, 여자애들도 다친 사람 없이 전부 나갔나봐. 아, 이거 미안해서 어떡하지."
" 이 녀석들은 나중에 선생님께 건의해서 조치하도록 하고 우선 수습부터 하자."
사방에서 끙끙 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있음에도 바가지 소년은 냉정하게 이야기했다. 그런 소년의 모습에 상혁은 혀를 내둘렀지만 선생님에게 이야기한다는 말에 상혁은 황급히 되물었다.
" 선생님에게 이야기하려고?"
" 그럼. 지금 기물파손한 것은 어떻게 설명하려고. 거기다가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지. 보통 남학생들은 미수에다가 특별히 뭔가를 저지른 것은 아니니 큰 처벌은 아니고 봉사활동정도만 받겠지만. 주동자인 저 뇌가 삐둘어진 녀석은 정학정도는 먹겠지. 학생부도 타격이 있을 것이고."
'정학'까지 이야기하는 것을 보니 오늘 있었던 일을 하나하나 빼놓지 않고 이야기할 모양인 듯했다. 이녀석 대체 누구지. 상혁은 목으로 마른 침을 삼키며 어설프게 웃었다.
" 어, 어쨌든 우선 이녀석들부터 정리하자고."
" 그래."
상혁과 바가지 소년은 낑낑거리며 누워있는 아이들을 한명씩 일으켜 온천 밖으로 내보내기 시작했다. 특히 창호녀석은 떨어지며 놀란 탓에 어버버 거리고 있어서 바가지 소년이 끌고 사라져 버렸다.
' 나머지는 조금 기다렸다가 알아서 가라고 하면 될 것같고... 대충 됐나...'
그야말로 위기 일발이었다. 반 남자아이들한테 이렇게 많이 떠들어본 것은 올해 처음있는 일인 것같았기에 나름 감회가 새로웠다. 이것을 기회로 아웃사이더에서 조금 벗어나면 좋겠는데...
" 유상혁...!"
" 아, 수연이 때문에 무리려나...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 유상혁...!!"
" 대충 된건가. 아직 정신을 못차리고 앉아있는 녀석들이 있기는 하지만 알아서 나갈 것같으니까..."
" 유상혁!!"
" 으악?!"
순식간이었다. 혹시 뭐 문제 없나... 하고 주변을 둘러보면서 걸어가던 상혁이 돌 틈으로 끌려가버린 것은. 순간 상혁은 일본에서 나타난 요괴가 자신을 잡아가나 라는 생각이 느껴질정도로 무지막지하고 갑작스러웠다.
" 귀가 좋지 않으면 보청기라도 추천해줄까? 계속 불렀는데 왜 대답을 못하니."
하지만 지금 상황은 요괴가 자신을 끌고 간 것보다 더 갑작스러웠다. 무려 수건 한장으로 몸을 가리고 돌틈에 서 있는 수연이가 자신의 눈앞에 있었으니까. 멍하니 그런 수연이를 빤히 바라보자 냉정하게 이야기하던 수연이도 조금 그랬는지 볼에 홍조가 어렸다.
"....그렇게 빤히 보지마."
" 미, 미안!"
급히 고개를 옆으로 돌렸지만 이미 망막에 세겨져 버린 것을 어찌할까. 물기에 젖은 피부와 검은 머리카락. 하얀 허벅지와 아슬아슬하게 몸을 가리고 있는 수건. 대체 왜 수연이가 이런 곳에서 숨어있는 건지 상혁은 알 수 없었지만 알몸에 수건 한장으로 몸을 가리고 있는 수연이라는 사실이 너무 강했기에 다른 생각은 감히 할 수 없었다.
" 대체 어떻게 됐길래 이렇게 된건지 알 수 있어? 갑자기 남자애들이 굴러다녀서 밖에 못나가고 여기 숨어버렸어."
물론 다른 여자애들이 다 빠져나갔는데 왜 자신은 빠져나가지 못했는지 말할 수 없는 수연이다. 솔직히 지금 여기에 숨은 것도 진짜 간당간당했다. 태어나서 이렇게 자신의 신체능력이 고마웠던 적은 처음이다.
곱슬이와 지은이(빠득-수연은 그것을 떠올리며 이빨을 갈았다)의 만행에 반쯤 정신을 놓고 있던 탓에 가림판이 완전히 쓰러지고 남자들이 굴러들어와서 지척에 이르렀을 때서야 수연은 정신을 차렸다.
급히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여자애들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고 남자애들은 고개를 들어올리려는 듯 끙끙거리며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자신의 알몸이 보이고 만다는 생각에 급히 물에 둥실 떠있던 자신의 수건을 잡아채고 근처의 돌틈에 몸을 숨긴 것이다.
문이 조금만 가까이 있었어도 거기로 뛰쳐나갔을텐데...
물론 그런 수연이의 사정을 알도리가 없는 상혁으로선 들키지 않게 조그만 목소리로 현재 상황이 이르게 된 배경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 그래."
삐뚤이 리더의 범죄에 가까운 일에도 수연이의 반응은 단지 그것 뿐이었다. 상혁은 수연이는 그런 것에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건가? 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큰 착각이었다. 수연은 이번 일에 신경을 쓰지 않는게 아니라 일을 저지른 삐뚤이에 대해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은 것이다.
애초에 양아치를 좋아하지 않기에. 그런 녀석들이라면 충분히 하고도 남을 것이라고, 무심코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곱슬이를 처음에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곱슬이가 평범한 양아치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가며 깨달았기에 지금은 평범하게 지낼 수 있었다.
수연이에게 있어 양아치나 일진이란 존재는 '악'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잡아먹고 부숴버린.
" 빨리 저녀석들이나 쫓아내줄래. 나도 슬슬 추워지거든."
" 알았어. 최대한 빨리 내보내줄게."
상혁은 수연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말하며 뒤를 돌아서 가려는 순간.
쏴아아아!
갑자기 위에서 뜨거운 물이 촥 쏟아졌다. 왜 이런 곳에 돌틈이 있나 했더니 온천의 겉을 돌던 물이 고이면 위에서 쏟아지는 구조로 되어 있던 모양이다.
돌 틈 밖에 서있던 상혁은 그 물을 맞지는 않았지만 그 안에 가만히 서있던 수연이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깔끔하게 뒤집어 쓸 수밖에 없었다.
" 수연아, 괜찮.... 헉!"
갑작스럽게 머리부터 뜨거운 물을 뒤집어 쓴 수연이에게 괜찮은지 묻던 상혁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급히 얼굴을 옆으로 돌렸다. 수연은 갑자기 물을 맞은 것도 기분나쁜데 갑자기 상혁이 이상한 반응을 보이자 눈을 가늘게 뜨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 ....."
위에서 쏟아진 물때문에 수건이 발등위에 떨어져 있었다.
" ....."
" ......."
고요한 정적. 태연한 손놀림으로 떨어진 수건을 집은 수연은 다시 몸에 그것을 두르며 차분한 음성으로 나직히 입을 열었다.
" 봤니?"
" 아, 그게 뭐라고 해야하나...."
방금 것은 눈마저 마주쳤기에 차마 안봤다고 할 수가 없었다. 그나마 가슴께를 보고 놀라서 나머지는 않보고 고개를 돌렸다는게 그나마 상혁이의 양심이다. 상혁은 전부 못봤다는 것에 대한 묘한 아쉬움과, 여자아이의 알몸을 그 일부라도 봤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런 상혁의 모습에 수연은 얼굴을 살짝 붉혔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등을 팍 밀며 말했다.
" 됐으니까 빨리 다른 남자애들이나 내보내도록 해."
" 아, 알았어!"
상혁이 급히 몸을 돌려 아직 밍기적 거리고 쓰러져있는 남자애들에게 어서 나가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며 수연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이번엔 알몸마저 보인건가. 이정도면 상혁이에게 뭔가 러브코미디의 수호신이 아닌가 생각이 될 정도다.
수치심을 느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거기서 자신이 비명을 질렀다간 다른 남자들에게 알려질 것이 뻔했고, 뺨을 때리거나 기타 다른 행동을 했을 경우 어색해지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그리 행동했을 뿐이다.
'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나도 관계가 깨지는 것은 싫다 이걸까.'
그것이 설령 상혁이라고 하더라도 분명 자신의 마음에 '친구'라는 카테고리로 들어있기 때문에. ...아니 최근에 있었던 중간고사 덕에 뭔가 좀더 친해진 것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 하아, 됐어. 그보다 빨리 밖으로 나갔으면.'
온천은 제대로 즐기지도 못했고 기분은 별로 좋지 않았다. 그저 빨리 숙소의 방에 돌아가 잠이라도 자고 싶었다. 돌틈에 숨어 상혁이 아이들을 끌고 나가는 것을 조용히 지켜보던 수연은 잠시후 옷을 입고 들어온 곱슬이와 다른 여자애들이 남자들을 뭐라하며 끌고 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마 이제 오늘 사건에 참여했던 남자들은 앞으로 당분간 반에서 얼굴도 들고 다니지 못하리라.
온천에 모두 사라지고 텅비게 되자 그제야 수연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돌틈에서 나와 온천 밖의 탈의실로 나갈 수 있었다. 주섬 주섬 옷을 주워입고 있는 동안 단체로 여자 선생님들과 온천 관계자 분들이 수시로 왕복하는 것으로 보아 오늘 일은 아마 한국으로 돌아가서도 그냥 넘어갈 모양새가 아니었다. 혹시 경찰이라도 부르는 것은 아닐까.
물론 그런다고 일을 저지른 애들이 잘못을 뉘운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수연이는 그런 생각을 하며 속으로 작게 실소했다.
사람은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
============================ 작품 후기 ============================
짜둔 풀룻을 보니 도쿄타워 다음에 멘붕편이 아니네요. 둘째날에 도쿄 디즈니랜드가고. 셋째날에 자유시간이 되서 아키하바라가고 그 저녁에 멘붕편이 오는 거였어요. 지금 쓰는 속도보니 디즈니 랜드편은 두편예정인데 과연 두편으로 끝낼 수 있을지; 애초에 온천편은 중간에 첫째날이 좀짧은 것같아서 낑겨넣은건데 너무 길어짐.
덤으로 위의 사건처럼 함부로 분위기타서 일저지르면 안되죠. 근데 저 고등학교때만해도 반에서 남자애들 괜히 분위기타서 2층 창문으로 뛰어내리던거 생각하면 남고생들은 분위기 잘못타면 가끔 대단한 짓을 하기는 하는듯..ㅋㅋ; 저도 왜 고딩때 계단에서 뛰어내리고 그랫는지 가끔생각합니다.
그리고 온천은 아니어도 수학여행때 우리반에서 여자 숙소에 몰래 침입하고 그랬던 것도 기억나네요.(전 졸려서 잤지만요) 아침에 선생님들 난리나서 수학여행 마지막 분위기 완전 살벌했음. 10년정도가 지났는데도 아직도 생생한 추억아닌 추억이네요.
p.s 아 전편댓글보니 남자 모두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모두는 아니에요. 남자 대부분이라고 했지만 1반의 수연이 친위대들 중 반대파는 참여하지 않았죠. 그래도 과반수... 열명 좀 넘게 참여한 것은 맞지만요. 분위기에 쓸려 참여한 애들이 대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