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명환은 소위 말하는 반에서 겉도는 '아웃사이더'이지만, 좀 더 나쁜 의미로 '왕따'라고 표현될 때가 많다. 말수도 없고, 언제나 남을 겁내하는 기색에 언제나 혼자 애니메이션이나 보는 아이는 반에서 기피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왕따란 분명 왕따 당하는 당사자에게도 문제가 있어 당한다-라고 주변은 이야기했고, 명환이를 감싸주는 사람은 없었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밖에서도.
하지만 명환은 그말에 고개를 끄덕여 나에게도 문제가 있구나, 라고 이야기할 수 없었다. 자신이 처음부터 사람을 기피했냐고 하면 그건 아니다. 자신이 이렇게 사람을 거부하기 시작한 것은 주변의 영향이 더 컸다. 명환은 단지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게임을 좋아하던 하나이 학생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줄기차게 그런 명환을 괴롭히는 아이들이 있었고, 그때문에 점차 성격이 소극적으로, 주변사람들을 두려워하게끔 만들었던 것이다. 그 아이들에게 있어 명환은 단지 자신들에게 찍혔을 뿐인 아이였다. 왕따라는 것에 특별한 의미도 두지 않고 그저 괴롭히기만 하는 것이다.
힘들었다.
하지만 명환에게는 아직 꿈이 있고, 하고 싶은 것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 어차피 이제 고등학교만 지나면 저 아이들과도 만날 일도 없으니 조금만 버티면 괜찮을 것이다. 언제나 그렇게 생각하며, 오직 애니메이션이나 게임만을 벗삼아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었다.
그냥 이 시간이 지나가기를.
단지 그렇게 바라면서.
" 이야, 이거 오랜만이네. '체포하겠어'라니. 예전에 정말 재밌게 봤었는데."
간만에 들린 가게에서 만난 소년. 자신과 부딫힌 그는 자신에게 손을 내밀며 바닥에 떨어진 체포하겠어 피규어 박스를 보았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이며, 자신의 꿈을 키우게 만들어준 만화 캐릭터를 보며 기쁘다는 듯이 웃으며 말하는 소년- 상혁이의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말을 걸고 말았다.
" 이거, 알아?"
보통 때였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말을 걸다니. 하지만 그날은 뭔가 달랐던 기분이고.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을 웃으면서 이야기해준 상혁이에게 호감을 느꼈던 것인지 모른다.
그래서 평상시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들을 했다. 그가 밥을 먹자고 이야기한 제안에 수긍을 한 것이다. 사람을 피하기만 하는 명환으로선 정말 특별한 행동이었지만 상혁이는 아마 알지 못했겠지.
그 뒤로는 정말 급격히 친해졌다.
친해진다-라는 것이 이렇게 기분좋은 것인지 명환은 처음알았다. 아, 이게 친구를 사귄다는 것이구나. 상혁이에게 친구라고 인정받은 뒤로 그 기분은 점점더 가득 차올라왔다. 명환 자신이라고 그동안 친구를 사귀고 싶지 않았을리가 없다. 단지 조금꼬인 인연이 모든 것을 망쳤고. 그에 따라 자신도 남을 피하며 교류하지 않았을 뿐이다.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게임을 하며 그저 자신에게도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하며 막연히 동경하고 살아왔을 뿐이다.
학교가 끝나고 카페에서 만나자고 약속도 하고, 보통의 친구들처럼 대화를 하고 있다는 것이 이렇게나 기분 좋을 줄이야. 명환은 지금 하루하루가 정말 꿈같았다.
" 이틀 뒤에 수학여행가는데, 준비는 잘했어?"
처음 상혁이와 만났던 가게에서 만난 둘은 각자가 좋아하는 만화책이나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이야기하며 살만한 것이 없나 둘러보고 있었다. 상혁이가 새로나온 신간 라이트노벨을 살겸 혼자가긴 심심해서 명환이를 불렀고, 그 말에 명환이 바로 승낙하고 만나게 된 것이다.
물론 명환이는 살게 없었기에 그저 가게에 있는 다른 책이나 피규어를 구경하며 혹시 살게 있나 보고 있을 뿐이다.
" 준비할게 있나. 그냥 노는데 필요한 것만 잘 들고 가면 되지."
명환의 물음에 상혁이 씩 웃으며 답했다.
" 하긴 그러네."
피식 웃으며 신간 만화책을 둘러보던 명환은 하나의 만화책을 빼더니 표지에 그려져 있는 캐릭터를 유심히 보기 시작했다. 뭘 보길래 저렇게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는거지? 상혁이 가까이 다가가 만화책의 표지를 보자 검은 긴 흑발 생머리의 미소녀. 코드 브레이커라는 만화책의 히로인인 사쿠라코지 사쿠라가 보였다.
" ...긴 흑발 생머리 좋아해?"
" 완전 내 취향이야. 긴 흑발에 생머리를 가지고 있는 캐릭터라면 대부분 좋아해."
우와, 부실에 있는 누구누구씨와 무척 닮은 취향인걸. 하긴 그녀석은 본인조차 긴 흑발에 생머리의 미소녀지만.
" 우리 부실에 있는 그 흑발 미소녀씨도 흑발캐릭터 무지 좋아해. 대부분 독설계에 무표정이면 좋아하는 듯 싶지만."
" 그래? 그럼 나랑은 좀 다르네. 확실히 흑발 캐러는 요즘 대부분 독설계가 대부분이지만 나는 이 만화 여주인공처럼 밝고 활기찬 성격을 좋아하거든. 외견도 외견이지만 좋아하는 성격이 말이야."
말하자면 밝은 성격의 긴 생머리 흑발 미소녀? 상혁은 명환의 말에 문득 밝고 기운넘치는 수연이를 상상해보려했지만 몇 초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그만두기로 했다. 밝고 활기찬 수연이는 생각만해도 멘탈이 깎여나가는 기분이었다.
" 이거나 사야겠다. 이 작가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인데 사무라이 디퍼 쿄우만큼 재밌지는 않아도 히로인은 정말 마음에 들어."
" 난 사무리아 디퍼 쿄우는 어릴땐 재밌게 보긴 했는데 요즘 보면 좀 유치한 것같기도 하더라."
" 그래? 난 잘모르겠는데. 하긴 사성천이니 사천왕이니 줄줄이 등장하니 그럴 수도 있지."
사장님에게 책을 계산하고 봉투에 넣은 명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지금 생각하면 추억보정도 있고해서 더 재밌게 생각될 수도 있다. 어렸을때 처음으로 빌려보았던 판타지 소설도 지금보면 그렇게 웃길 수가 없었다.
" 생각해보면 어렸을땐 그런게 왜이렇게 재밌었는지. 판타지 소설만해도 막 건물만한 검강을 휘두르는 것만 봐도 막 대단해보이고 그랬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저 웃기지."
" 우리 초중학교때는 먼치킨이 대세였으니까. 모 소설 주인공은 전력으로 힘을 뿜어내는 것만으로 전 우주의 공전이 멈췄다고."
" 우와, 그건 너무하잖아. 행성의 절반을 파괴한다던지 하는 것은 꽤 많았는데 우주 공전을 힘을 뿜는 것만으로 멈추다니. 드래곤볼도 무리라고."
" 뭐, 먼치킨이라도 잘쓰면 재밌는 것도 많아. 개인적으론 가즈나이트 같은 것은 재밌게 봤지."
" 에에, 난 그건 좀. 사람도 많이 죽고 분위기가 어두워서 좀 그래. 난 밝고 활기찬 류를 좋아한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걸어가던 둘은 갑자기 느껴지는 주변의 이상한 분위기에 걸음을 멈췄다. 시끌 시끌하던 거리가 분명 아까보다 조금은 조용해져 있었다. 대체 뭐지? 상혁은 의아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좀 떨어진 곳에 있는 하얀 인영에 '아'하고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하얀 양산을 쓰고 음료수를 빨대에 꽂아 마시며 벤치에 앉아있는 수연이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보아하니 뭔가를 사러 나왔던 것인듯, 옆에는 종이봉투가 놓여있었다. 정말 말이 안될정도로 예뻤다. 연예인이라고 해도 당장 고개를 끄덕일만큼 아름다웠다. 아니, 연예인이라도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고등학생이라 아직 앳되었을텐데 수연이에게선 뭔가 알 수없는 어른의 분위기가 늘상 있었다. 기품이라고 할지, 우아함이라고 할지 모르는 그런 고고함이.
" 뭔가 주변이 조용한 것같은데."
명환도 주변의 분위기에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지만 아마 수연이를 발견하지는 못한듯 싶었다. 이 기회에 소개라도 시켜줄까, 하고 생각한 상혁이 수연이가 앉아있는 곳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 저기, 저쪽에 보면 흑발에 하얀양산을 쓴 애가 있지? 저 애가 내가 말한 수연이인데 저 애 때문에 주변이 좀 시선이 쏠렸나봐."
상혁이가 가리킨 곳으로 시선을 돌린 명환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조금이지만 질린 표정을 지었다.
" 근데 저 애가 정말 오타쿠야? 저렇게나 예쁜데... 믿기지가 않는걸."
사실 바로 옆에 앉아있는 상혁이조차 수연이가 부실에서 야겜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아직도 깜짝깜짝놀란다. 굳이 그런 사실까지 명환이에게 말할 필요는 없겠지-라고 생각한 상혁은 수연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명환이에게 엄지손가락으로 수연이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 어때, 한번 만나볼래? 네가 좋아하는 리얼의 흑발의 긴생머리 미소녀라고?"
" 아, 아냐 됐어! 난 아직 너 말고는 다른 사람과 대화하기 힘들어...그리고."
명환은 멀리서 보이는 수연이를 바라보며 말끝을 흐렸다. 벤치에 앉아있는 검고 긴 흑발의 생머리를 한 아름다운 소녀. 분명 아름답고 자신의 취향의 스타일인 것도 맞지만.
" 아쉽네. 좀 밝게 웃고 그러면 정말 예쁠거 같은데. 무표정하면 무섭잖아."
" 실제로도 무서운 녀석이야."
" 그럼 더더욱 만나기 힘들겠네."
고개를 흔드는 명환의 모습에 상혁은 어깨를 으쓱였다. 뭐 싫다는데 굳이 만나게 해줄 필요는 없었다. 지금 당장이 아니더라도 나중에 동아리 친구들을 소개시켜주며 함께 만나면 될 일이다.
" 그럼 그냥 갈까?"
" 그래, 우선 배고프니 밥부터 먹자."
아침에 만난 터라 점심이 아직이었다. 공복이 느껴지는 배에 상혁과 명환은 저번에 갔던 음식점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아직도 경직되어 있는 거리를 뒤로 한 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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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엄청 짧습니다 이해좀!
원래 전편에 여기까지 쓰려다가 못썼어요. 그래서 오늘은 여기서 끊습니다. 눈도 아직 아프고 징징.
그리고 자꾸 왠 항암제냐고 물어보셔서 답변해드리지만(뭔가 자꾸 언급해서 좀그런데) 제가 급성 백혈병 환자구요. 지금 병원 노트북으로 쓰는 중이에요. 병원에서 글연제하는 환자는 저뿐일거임. 그리고 굳이 걱정안하셔도 되요. 눈하고 밥못먹는거만 빼면 아주쌩쌩하거든요.(밥은 먹을 수 있는데 맛없어서 영양제 맞는중) 골수이식날짜도 정해져 있고 여기서 글쓰고 게임만하면 다 낫습니다. 백혈병따위 별거아님.
근데 드크 정말 재밌네요. 눈아파서 눈도 못뜨겠는데 눈물흘리면서 플레이하고 있어요. 롤을 금지당해서 드크에 열중중. 롤하면 맥박빨라지고 체온이 39도까지 올라가서 간호사가 막 깜놀함. 전 멀쩡한데 자꾸 헐 괜찮으세요. 여, 열이 39도에 혈압이...
롤이 이렇게나 해로운 게임입니다. 여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