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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공략당해 버렸다-42화 (42/153)

42화

요즘 많이 혼란스럽다.

내색하려 하지않지만 지윤이나, 동아리에 있는 애들은 이미 내가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모양이다. 친해지고 가까워지는 것도 곤란하네. 이래서야 혼란스럽고 고민이 많아도 표현을 할 수가 없잖아.

고민의 원인은 알다시피 단 하나다.

전생의 나-.

얼마전에 보았던 전생의 나에 대한 생각때문에 머릿속이 복잡하다. 물론 지금까지 이런 상황을 아예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과거로 회귀해서 수연이란 존재로 환생했을때 본래 이 세계에 있을 전생의 나, 명환은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하지만 굳이 그것을 알아보려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지금의 나는 송명환이 아니라 이수연이라는 소녀였으니까. 전생이 존재하는지 궁금하긴 했지만 외면했다. 내가 가장 잘하는 거잖아. 외면하고, 거절하고, 도망치는 것. 전생의 나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기 위해서 그것을 알아보려 하지 않았다. 막연히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며 그렇게 살아왔다.

그렇게 살아오며 나중에 눈앞에서 보더라도 전혀 동요하지 않을거라 그렇게 생각했는데.

실제로 보니 결국은 흔들리게 되는구나.

전생의 나는 전과 같이 외롭지만 꿋꿋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부모님과의 사이는 여전히 나쁜지. 앞으로 있을 일을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 하나하나 계속 생각났다.

분명 이 시기의 명환은 부모님과 사이도 나쁘고 친구도 없지만 아직은 꿈을 가지고 있는 소년이었다. 아직은 희망을 가지고 애니메이션처럼 친구들을 만들고 행복하게 지내고 싶다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단지 남에게 다가가는게 무서워서, 용기가 없었기에 혼자가 되었던 시절이다. 집에서 부모님과의 관계도 아직은 단순한 골치거리이며 대하기 어려운 아들에 불과하던 때. 하지만 그것이 모두 무너지는 것은 앞으로 조금 있으면 가게될 수학여행에서 깨지게 된다.

꿈도 잃고, 사람간의 신뢰를 잃으며 외면하고 거절하는법을 알게됬지.

그리고 그런 모든 일이. 세상으로부터 도망치게 되었던 순간이 이 세계의 명환에게도 분명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방치해야할지 바꿔야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마치 신이 정하기라도 한 것처럼 우리 학교가 가는 수학여행 장소도 일본 도쿄가 아닌가. 우연이라면 정말 신에게 물어보고 싶을정도로 절묘했다.

시끌 시끌한 교실 안을 둘러보아도 하나같이 앞으로 있을 수학여행에 들뜬 이야기나, 일본에 가면 어디를 가봐야지, 라고 벌써부터 계획을 짜는 족속도 있었다.

뭐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지만.

이번에 일본에 가서 어디를 둘러볼지 딱히 정하지 않았다. 전생의 나는 분명 아키하바라에 갈게 분명하니 내가 그곳에가면 마주치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키하바라에 가는 것은 좀 꺼려지다보니 수학여행 자체가 좀 시들하게 느껴졌다. 별로 즐겁지 않다고 해야하려나. 의욕도 나지 않고.

곱슬이와 윤아는 이미 의욕만만이라 일본 도쿄 가이드까지 짜고 있는 것같은데 곤란한걸. 나 혼자 따로다녀야 하나. 하지만 그렇게 하려고 해도 애들이 나를 가만히 두지 않겠지.

하아, 재수없게 전생의 내가 다니던 학교와 수학여행 날짜와 장소가 같냐고. 이래서야 전혀 즐겁지가 않잖아. 명색의 고교 최고의 이벤트중 하나인 수학여행인데 말이야. 원래라면 일본 아키하바라에 가서 검은 긴 흑발 생머리 미소녀의 위대함을 포교하고 왔을텐데 지금은 전혀 의욕이 나지 않잖아.

곤란해, 정말.

나는 창 밖에서 들어오는 밝은 햇살을 노려보며 작게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__

부실에 들어가자 상혁이가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는게 보였다. 요즘 생각할게 많아서 수업이 끝나도 앉아있는 경우가 많다보니 먼저 부실에 가있었던 모양이다. 특별히 나에게 말을 걸지도 않고 말야. 다들 무슨 일인지 물어보는데 상혁이는 묻지 않는 것이 나름 배려해주는 걸까. 이렇게 말없이 행하는 것을 보면 가끔 꽤 괜찮은 녀석인걸, 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최근에 핸드폰을 산 것같음에도 아직도 애니메이션과 같은 영상을 볼때는 PMP를 애용하는 상혁이다. 근데 요즘 뭐 재밌는게 있던가. 최근에 애니메이션을 잘 않보다보니 요즘 뜨는게 뭔지 모르겠는걸.

그런 생각을 하며 무심코 상혁이의 PMP를 바라보다가- 화들짝 놀라며 뒤로 주춤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전혀 생각치도 못한 애니메이션이 상혁이의 PMP에서 재생되고 있었던 것이다.

'명환'이 즐겨보던 애니메이션인 '체포하겠어'라는 애니메이션이. 워낙 오래전 애니메이션인지라 지금 이 시기에 상혁이 볼일은 없을텐데 어째서지?

나에게 있어 체포하겠어는 하나의 '금기'나 마찬가지이다. 꿈을 꾸게 했으며 결과적으로 그 꿈에 환멸하며 보지 않게 된 애니메이션. 머릿속에서 지워버린 하나의 만화. 아니, 체포하겠어 뿐이 아니라 당시 내가 좋아하던 애니메이션은 대부분 머릿속에서 지워버렸지.

그때의 슬픔과 절망에. 결국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자퇴했었다.

부모님과의 사이도 정말 돌이킬 수없게 되었고 결국 혼자 자취하며 근근히 아르바이트나 하면서 살아가게 되었다. 사회성도 없어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도 고역이었고, 꿈도 희망도 없는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되었지.

아마 계속 살았어도 직장도 가지지 못한 체 하는 것없이 살다가 아무도 모르게 죽었을 것이다. 차라리 차에 치여 죽는 마지막 순간이 명환으로선 그나마 편안한 결말이었을지 모르지만 막상 그 마지막 순간을 떠올리면 아직도 몸이 떨리고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엄습한다.

죽음, 차갑게 식어가던 몸과 흐려져가던 시선.

그것을 떠올리면 차라리 좀 힘들고 막막하더라도 역시 살아가는편이 좋았을 것이다.

아니, 지금 수연이인 내가 하는 노력을 조금이나마 명환일때 했다면 많이 달라졌겠지. 이젠... 이미 지난 일이지만.

" 누가 들어왔으면 인사라도 하는게 어떠니?"

애써 동요된 마음을 내색하지 않으며 태연하게 이야기하자 이어폰을 꽂고 애니메이션에 집중하고 있던 상혁이가 그제야 나를 발견한 듯 인사를 해왔다.

" 어, 왔네. 애니메이션을 보느라 못봤어."

" 알아, 그보다 옛날 애니메이션이네, 무슨 바람이실까."

속은 여전히 두근두근 했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이야기했는데 아무래도 이상하지 않았던 모양인지 상혁이는 이런 나의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태연하게 이야기해왔다.

" 그냥 갑자기 보고 싶어져서."

" 흐응. 그래?"

그냥 갑자기 보고 싶어졌다니,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지만 특별히 캐물을 생각은 없었다. 딱히 관심도 없고. 단지 눈앞에서 저 애니메이션을 보니 기분만 안좋아졌을 뿐이다.

자리에 앉으며 가방을 정돈하고 있자 다시 부실의 문이 열리며 윤아와 곱슬이, 그리고 청이 선배가 과자를 한가득 안고 들어왔다. 아마 내가 오기전에 셋이서 매점이라도 다녀온 모양이었다.

앗, 저건 칸쵸잖아. 나 칸쵸 완전 좋아하는데. 우유랑 먹으면 정말 정말 맛있다고. 내가 원래 우유랑 뭔가를 먹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중 칸쵸를 가장 애용하고 있다. 칸쵸가 없으면 고구마를 애용하는 편. 고구마도 우유랑 먹으면 아주 맛있다.

" 수연이 왔구나! 오늘은 기분 괜찮아?"

윤아가 나를 보고 활짝 웃으며 이야기해왔다. 가슴에 한가득 과자를 안고 있다보니 유독 가슴이 강조되어 버렸다. 정말 볼때마다 무지 크구나. 교복위로 저정도의 존재감을 자랑할 정도면 얼마나 커야 되는거지.

" 평소랑 같아."

딱히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기에 윤아의 말에는 이렇게 답했다. 이런 나의 대답에 윤아는 애매하다는 듯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곱슬이는 눈가를 찌푸리며 고압적인 말투로 이야기해왔다.

" 되게 애매하게 말하네. 그냥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고 해."

" 그러는 너는 조금은 내숭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너무 직설적인 여자는 남자가 좋아하지 않아."

태연하게 답한 나의 말에 곱슬이는 흠칫 놀라며 나의 옆에 있는 상혁이를 흘깃 바라보았다. 물론 상혁이는 다시 이어폰을 꽂고 애니메이션 삼매경에 들어간 상태라 방금전 우리의 대화는 전혀 듣지 못했다. 곱슬이는 그런 상혁이의 모습에 작게 안도의 한숨을 쉬며 나를 흘깃 노려본 뒤 자리에 앉았다.

" 곱슬이랑 수연이는 언제나 사이가 좋구나?"

어딜봐서요.

청이 선배가 해맑게 웃으며 하는 말에 나와 곱슬이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윤아라면 몰라도 누가 곱슬이랑 사이가 좋다고 이야기할까. ...물론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은 하지만 굳이 말하면 지윤이와 곱슬이의 관계가 나와 곱슬이의 관계와 흡사했다. 하지만 지윤이에 비하면 내가 좀 멀었지. 지윤이는 진짜로 곱슬이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가지고 놀고 있다.

언니인 나도 조금은 그런 동생을 본받지 않으면 안되겠지.

" 본 받지마!"

시끄럽긴.

" 그나저나 좋겠네. 1학년 이번에 수학여행 일본으로 간다면서? 우리는 제주도로 갔는데 너무한다."

청이 선배는 그렇게 이야기하며 윤아가 들고있던 칸쵸를 자신의 앞으로 가져갔다. 아니 잠깐만요, 칸쵸만은 안되는데. 차라리 옆에 있는 치토스를 들고 가시지.

" 전 제주도가 더 좋아요. 일본은 외국이라 말도 안통하고. 뭐 상혁이는 무척 신난 것 같지만요."

윤아는 그렇게 이야기하며 귀찮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아마 정말로 일본에 가는 것보다 제주도를 선호하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보통은 외국에 가는걸 좋아하지 않나? 곱슬이만 해도 일본에 관심도 없었으면서 외국으로 간다고 하니까 그저 방방 뜨던데.

이런 나의 시선을 알아차렸는지 윤아는 검지손가락을 쫙 피고 나의 앞에서 좌우로 흔들었다.

" 말했잖아. 상혁이가 보통 들뜬게 아니라니까. 덕분에 집에서 보통 피곤한게 아니라고. 벌써부터 일본가면 뭐할지 나한테 이리저리 떠드는 것이... 에효, 아주 귀찮아."

" 그렇게 말해도 전부 상혁이 말 그대로 해줄거잖아?"

" 그, 그건 그렇지만."

역시 좋네. 귀여운 소꿉친구. 얼굴을 붉히며 답하는 윤아의 모습을 따뜻한 시선으로 봐주자 윤아는 이런 나의 시선을 견디지 못하겠는지 결국 시선을 회피했다.

" 나도 일본 가고 싶은데♪"

정말로 가고 싶은 모양인지 청이 선배가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했다. 하지만 아무리 가고 싶다고 이야기해도 청이 선배는 2학년일 뿐이다. 1학년 수학여행에는 절대로 따라올 수 없다.

" 선배는 아무래도 혼자 부실을 지켜야 하셔야겠네요."

곱슬이가 그런 청이 선배를 향해 킥킥 웃으며 말했다. 1학년이 대부분인 동아리이니 수학여행 기간에는 이 부실에 청이 선배 혼자 쓸쓸이 있어야 할 것이다.

" 글쌔, 과연 어떨까?"

" ....그렇게 의미심장하게 말하지 말아주세요. 정말 따라올 생각은 아니시죠?"

" 수학여행은 아무리 나라도 못따라가니 '설마 돈의 힘으로 따라올 생각인가!'라는 시선으로는 거둬줄래♪"

청이 선배라면 충분히 교칙을 바꿔서라도 따라올 수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다행히도 그정도의 상식은 있었던 모양이다. 윤아도 그것만큼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는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 으음~, 윤아는 내가 따라가는게 싫어?"

" 아니요, 그렇다기보단 뭔가 교칙을 바꾼다던지 하는 엄청난 스케일의 일을 벌일까 싶어서요. 다행히 상상만으로 끝났지만."

" 설마. 아무리 나라도 그렇게 하지는 않아."

윤아와 청이 선배의 대화를 들으며 나는 뭔가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왜냐하면 선배는 지금까지 수학여행을 못따라 온다고 이야기만 했지 '일본'에 못간다고는 이야기하지 않았으니까.

수학여행에 안오더라도 일본에는 올수도 있는 일이다. 3일만 학교를 쉬면 되는걸. 물론 설마 그렇게 하겠어. 나는 해맑게 웃으며 윤아와 이야기하는 청이 선배를 보며 생각했다. 설마, 일본에 오려는 것은 아니겠지. 라고.

하지만 참고로 나의 '설마'는 '역시'와 동일하게 쓰인다는 것을 이때의 나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 작품 후기 ============================

항암제를 맞으니 눈이 엄청 쓰려서 눈을 뜨기가 힘드네요. 그래서 오늘은 좀 짧습니다. 원래 20kb짜리 분량으로 쓰려고 했는데 눈이 아파서 좀 짧아져 버렸네요. 나중에 수정을 하던지 해야겠습니다. 아마 3권분량 끝나고 2, 3권 분량 수정할때 같이 하겠죠.

그리고 요즘 방영 시기 같은게 이야기가 많이 나오네요. 생각없이 쓰다보니 몇개가 꼬여버렸어요. 2010년에서 2011년 사이에 나온 애니메이션 위주로 하다보니 순서가 좀 꼬였네요. 뭐 시작은 바케모노에서 꼬였지만!

그래서 우선은 연중을 하고 병이 다나으면 느긋하게 처음부터 수정을 해볼까 했지만 우선 쓰던 3권분량은 쓰고 싶어서 좀더 생각해보기로 했습니다. 연중하는 것은 천천히 생각하도록 하고. 우선 지금은 2010년에서 2011년 위주의 애니메이션과 만화들이 섞여 있다고 생각해주세요. 바케모노가 09년인지라 1년이나 꼬였지만! 그런 것은 양해부탁드릴게요.

덤으로 전편에 추천수가 갑자기 확줄었더군요! 으악, 명환이가 등장하니 추천수 브레이커가 되어버렸습니다. 역시 시작하는 부분이라 그런지 영 재미가 없었나봐요. 앞으로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번편도 아직 준비과정이라는게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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