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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공략당해 버렸다-40화 (40/153)

40화

상혁은 지금 시내를 걷고 있었다. 오랜만에 밖에 나왔다고 해야하나, 스스로의 의지로 이런 곳에 오는 경우는 그다지 없다보니 상혁으로선 땀이 주룩 주룩 나올만큼 힘든 일이었다. 저번에 팔과 다리가 부러진 이후 물건은 대부분 인터넷 통신 판매를 통해서 구매하는 편이고 대부분의 심부름은 윤아가 하다보니 상혁이 직접 움직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물론 윤아가 일이 있을때는 상혁이가 하긴 하지만 이렇게 시내까지 혼자 걸어다니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만약 오늘, 수연이에게 보답할 선물을 사기위해서 라는 이유가 아니었다면 상혁은 결코 밖에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애초에 다 나은지 얼마 되지도 않은 팔과 다리를 움직이는 행위는 너무나 힘겨웠다.

그래도 한달만에 깁스를 풀고 멀쩡하게 걸어다닐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거지... 사실 한달도 되기전에 풀어버린 탓에 병원의 의사는 상혁을 무슨 괴물 보듯이 봤었다. 무슨 부러진 뼈가 그렇게 빨리 붙냐면서. 상혁도 생각보다 깁스를 빨리 푼 탓에 혹시 뼈가 붙다가 말지는 않았을까 싶었지만 다행히도 그렇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아무튼 상혁이가 왜 수연이에게 선물을 사주냐면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시험이 끝난 이후 이런 저런 일이 있었다. 우선 성적이 발표되고 윤아는 그야말로 함박 웃음을 지었고, 언어를 밀려쓴 곱슬이도 윤아만큼은 아니지만 무척 기분이 좋아보였다. 하지만 여기서 한가지. 무려 상혁이는 반에서 3등을 하는 기염을 토했다. 단 한번 중간고사에서 공부를 했을뿐인데 무려 열 여섯명을 재친 셈이 되는 것이다.

수연이가 열심히 가르쳐 주기는 했지만 이렇게 잘 볼줄은 몰랐던 상혁은 그야말로 당황. 상화(상혁이의 누나)는 파티라도 하자며 치킨을 잔뜩 사들고 왔었다.

물론 수연이는 전교 1등. 또다시 올 만점이라는 전설을 남기며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었다. 세간에는 이미 학업의 신이 되서 공부의 여신 취급을 받는다고 했던가. 수연이가 보지않는 곳에서 간혹 기도를 올리는 아이들이 있는데 그런 이유가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윤아와 곱슬이는 자신들의 공부를 봐준 것의 보답으로 수연이에게 이런저런 선물을 주었고, 그 탓에 가장 큰 수해자인 상혁이 자신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거기다 최근 수연이가 기분이 않좋아보이기도 했고.

더불어 조금 있으면 수학여행이 예정되어 있어서 이대로 있다간 유야무야 넘어갈 것 같았기에 이번 주말에 시간을 내어 서둘러 밖에 나왔지만 막상 무언가를 사려고 해도 뭘 사야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 시험이 모두 끝난 날 부터였지 아마.'

상혁은 최근 수연이의 모습을 생각하며 곰곰히 생각했다. 자신이 기억하기론 분명 시험이 끝난 날부터 수연이의 상태가 이상했다. 평상시에도 말이 그다지 없지만 더더욱 없어지고 자신에게 이야기하던 독설도 줄어들었다. 길을 걸을 때도 언제나 두리번 두리번 거리는 것이 마치 무언가를 찾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달까.

마치 무언가에 쫓기고 있는 것처럼.

겉으로 내색하지 않으려하는 듯 싶었지만 뭔가 불안해하고 있었다. 아마 분명 부실에 있는 다른 아이들도 그런 수연이의 상태를 눈치 챘을 것이다. 지윤이에 이르러선 자신이 뭔가 한게 아닌지 의심하고 있어서 곤란한 상태일려나.

'이번엔 언니에게 무슨 짓을 한 건가요. 구더기 똥같은 오빠.'

한층 사나워진 문장이었지만 구더기 똥이라니. 뭔가 웃음마저 나오는 호칭이었다. 물론 지윤이 아무리 자신을 추궁해도 모르는건 모르는 것이고, 상혁으로선 그런 수연이의 기분을 풀어줄만한 것을 생각해볼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자신이 결론을 내린 것이 바로 지금 이 상태. 수연이에게 뭔가 보답이라도 할겸 뭐라도 선물을 하자! 라는 방법이다.

" 근데 뭘 사야 되냐고."

수연이가 좋아하는 것이려면 역시 오타쿠관련 용품이겠지만 정확한 취향을 잘 모르겠다. 뭔가를 가려서 고민된다기보다는 너무 포괄적이라 어떤 것이 좋은지 문제라고 해야하나. 각종 게임을 플레이하고, 애니메이션도 가리지않고 보는데다가, 심지어 성인 어덜트 게임도 즐겨하는 수연이에게 무엇이 가장 좋을 것인가.

" 피규어는 좋아하려나."

상혁은 자신의 장식장에 장식되어 있는 피규어들을 떠올리며 생각에 잠겼다. 피규어는 취향을 좀 타는데다가 수연이가 피규어라는 것을 언급한 적이 없어서 고민될 수밖에 없었다. 본래 피규어는 하나도 구입하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하나만 구입한 사람은 없다! 라고 할 정도로 하나를 사면 구매욕구를 자극하는 뭔가가 있다. 하지만 하나도 가지지 않은 사람에게 피규어를 선물하면 바로 쓰레기통으로 직행할 뿐인 불행한 폐품일 뿐이다.

모르겠는걸. 우선은 가게에 도착해서 고민을 해보도록 해보실까.

상혁은 언제나 동아리 부원들과 같이 가던 카페를 지나, 자신이 즐겨가는 오타쿠 샵에 도착했다. 이 동내에 유일한 오타쿠 용품 판매점으로 생각보다 규모가 괜찮아서 각종 프라모델이나 피규어, 라이트노벨 만화까지 판매하는 곳이었다.

상혁이는 모르지만 수연이도 만화나 소설을 살 때 자주 애용하는 장소이다.

입구에 들어서자 약간 매니악하지만 인기있는 만화인 진격의 거인이 간판대로 서있었다. 애니화 된다는 소문도 있고 나름 잘나가는 만화라고 할까. 뭐 상혁이 본인은 취향이 아닌지라 읽지는 않았다. 피와 살점이 난무하는 만화는 상혁이의 취향이 아니었다.

" 사장님 안녕하세요."

" 오, 상혁이 오랜만이네. 여기까지 다 걸어오고."

검은 선글라스가 인상적인 사장님이 알로하 셔츠를 입고 자신에게 인사를 해왔다. 금발로 염색하시고 머리를 삐쭉 세우신 것이 최근에 본 애니메이션에 영향을 받은 듯 싶었다. 오타쿠가 오타쿠 샵을 운영하다니, 오타쿠로선 정말 꿈의 직장이라고 생각한다.

" 요즘 통 오지 않길래 인터넷으로만 구매하는줄 알았더니 왠일이냐?"

" 친구 선물로 뭐좀 사려고 하는데, 이런건 아무래도 오프매장에서 직접 둘러보며 사는게 좋을 것같아서요."

" 너 친구도 있었어?"

" 태연하게 남에게 상처주는 말을 하지 말아주세요!"

알로하 사장님-김 유성 사장님은 턱에 옅게 자란 수염을 긁적이며 천천히 이야기했다.

" 아, 미안미안. 그럼 그 친구에게 대충 괜찮은 동인지라도 선물해봐. 야한걸로 선물하면 아주 좋아할걸."

절대 이런 어른이 되지 않도록 하자.

" 그 친구가 여자라서 아무리 그래도 그건 무리일 것같네요."

상혁의 말에 턱을 긁적이던 유성의 손이 딱 멈췄다. 친구가 여자라니. 저녀석에게 친구인 오타쿠가, 아니 그것을 넘어 '여자이고 친구이며 동시에 오타쿠인' 존재가 바로 곁에 있다니. 그런건 보통 만화에서나 나오는 인물이 아닌가.

" 여자 오타쿠는 멸종한줄 알았는데."

" 서코에 가면 꽤 많다고요. 아무튼 뭐가 좋을 것 같아요?"

유성은 그런 상혁의 말에 손을 설래설래 흔들었다. 남자에게 줄만한 것은 알아도 여자에게 줄만한 물건을 고르라는 것은 그에게 있어 너무나 큰 무리였다.

" 그거 무리다. 난 서른 살이 될 때까지 여자에게 선물한번 준 적이 없는 사람이라고. 그런 사람에게 선물을 추천받으면 큰일날걸?"

" 새삼 사장님이 얼마나 불쌍한 사람인지 알게 됐네요."

소꿉친구인 윤아와, 바로 위에 누나가 있는 상혁에겐 너무나 먼 이야기였다. 어린시절부터 생일마다 뜯겨나가던 돈이 얼마였던가.

" 그래도 사장님, 사장님의 어머니에겐 선물을 하셨을 거잖아요."

" 어머니는 여자가 아니지. 어머니는 어머니일 뿐이야 임마."

하긴 맞는 말이다. 상혁은 더이상 이 주제에 대해선 말을 꺼내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계속 이야기해봐야 사장님의 마음속 상처만 계속 키우는 꼴이 될테니 말이다.

뭘 선물해야 되는가. 아무리 고민해도 좋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게임 소프트를 사서 선물하려해도 이미 전부 가지고 있을 것같고. 만화책이나 소설책을 선물하자니 역시 이미 봤을 것만 같았다.

" 역시... 피규어나."

수연이가 피규어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본적은 없었으므로 그쪽으로 자꾸 생각이 쏠렸지만 아까 설명했듯이 피규어를 가지지 않은 사람에겐 피규어를 선물해봤자 쓰레기가 늘어날 뿐이다.

" 그래도 혹시 관심을 가질지도 모르는데."

못내 아쉬워서 상혁은 천천히 피규어들이 모여있는 진열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니, 의외로 여자애니까 인형같은 것을 좋아할지도 모르잖아. 투덜거리긴 해도 남이 준 것은 잘 가지고 있는 것같고. 버리진 않을테니 피규어도 나쁘진 않을 것같아. -라고 상혁의 생각은 점차 피규어 쪽으로 기울어져 가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 그런 생각에 몰두해 있었던 탓일까. 미처 옆에서 걸어오던 소년을 발견하지 못한 상혁은 마찬가지로 피규어에 정신이 팔려있던 다른 소년과 깔끔하게 충돌해 바닥에 넘어질 수 밖에 없었다.

" 켁!"

" 으악?!"

쿵! 하고 둔탁한 소리를 내며 넘어지는 두 명. 상혁과 충돌한 소년은 손에 들고 있던 박스까지 바닥에 떨어트리며 성대하게 엉덩방아를 찧고 앉았다.

" 아야야...."

" 아, 죄송해요. 괜찮으세요?"

자신보다 성대하게 넘어진 소년을 향해 상혁은 서둘러 몸을 일으켜 소년의 손을 잡고 부축하며 사과했다. 검은 머리칼에 약간 음울해보이는 인상이라고 해야하나. 나이는 상혁과 비슷한 또래로 보였다. 눈 밑에 있는 다크서클이 보기만해도 피곤해 보일 지경이었다.

" 아, 저도 못봤는걸요. 죄송해요."

소년은 사람과 대화하는게 어색한 듯, 시선을 이리저리 피하며 이야기했다. 그리곤 바닥에 떨어진 박스를 줍기위해 몸을 숙이려하자, 상혁이 그보다 빠르게 몸을 숙여 떨어진 박스를 집고 소년에게 건냈다.

' 응? 피규어 박스인가?'

투명한 비닐막 안으로 보이는 캐릭터의 모습은 자신이 꽤 예전에 봤던 만화인 '체포하겠어'라는 만화의 미유키와 나츠미라는 캐릭터의 모습이었다. 우와, 이거 얼마만이냐. 진짜 예전에 봤던 만화인데. 투니버스에서 방영해줬었지. 아마.

이것도 피규어가 있었구나. 하기야 일본만화니까 있을 법도 한데 그때는 그런거 전혀 신경도 쓰지 않던 때였으니까. 그런 그리움 때문이었을까. 상혁은 자신도 모르게 소년에게 말을 놓으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 이야, 이거 오랜만이네. '체포하겠어'라니. 예전에 정말 재밌게 봤었는데."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상혁의 말이었지만 소년에겐 아니었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입을 살짝 벌렸다. 말하자면 아직도 이걸 기억하는 사람이 있었던 건가? 라는 표정이었다고 하는게 옳을 것이다.

" 이거, 알아?"

소년은 약간 뜸을 들이다가 상혁에게 말을 놓으며 이야기했다. 상혁은 지금 이 소년의 말이 얼마나 용기를 내어 이야기한 것인지 모를 것이다. 평상시라면 그냥 인사만하고 후다닥 도망갔을 소년이었지만 좋아하는 것을 공유하고 싶어하는 오타쿠의 마음 때문인지, 아니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아는 상혁이의 모습에 호감을 얻은 것인지는 모르지만 힘겹게 나마 입을 열었던 것이다.

" 알지, 알지. 옛날에 투니버스에서 봤었어. 아마 2년전에도 한번 다운받아서 봤을걸. 우리나라 더빙판하고 일본 원작 두개 다봤는데 재밌더라고."

상혁은 거기까지 이야기하다가 자신을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봐오는 소년의 시선에 말을 멈췄다. 뭔가 무척 기쁘다는 얼굴인데 말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려나. 으음, 이것도 인연인데 통성명이라도 해볼까.

" 저기... 이것도 인연인데 이름을 알 수 있을까? 나는 저 위에 있는 유연고등학교에 다니는 1학년 유 상혁이라고 하는데."

그 말이 갑작스러웠던 것일까. 반짝이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소년이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뭔가 어색한 얼굴로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하는 듯한 모양새인지라 싫으면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된다고 상혁이 이야기하려는 순간.

" ....나는 여기서 조금 떨어진 명신 고등학교의 1학년에 다니는 송 명환이라고 해."

왜소한 몸에 다크서클이 가득한 눈으로 올려다보며 이야기해오니 그렇게 안쓰러워 보일 수가 없었다. 그런 명환의 말에 상혁은 어색하게 볼을 긁적이다가 자신이 벌여놓은 이 상황을 애써 수습하기 위해 천천히 입을열었다.

" 그, 그래?"

" 응."

....

어색하다.

너무 어색하잖아! 상혁은 당장 머리라도 쥐어뜯고 싶은 기분이었다.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 말을 걸은건데. 그냥 아 죄송합니다, 하고 지나갔으면 될걸 괜히 말을 걸어 통성명까지해서 어색하게 되어버렸다. 이제와서 그냥 한번 말걸어 봤어요, 지나가세요. 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 음, 그러면 이것도 인연인데 잠깐 밥이나 먹으면서 이야기하지 않을래?"

거절하면 그냥 가면 되겠지. 상혁은 그렇게 생각하며 나름 괜찮은 묘책에 속으로 미소지었다. 소년- 명환도 어색하다면 거절할테고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이런 자신의 생각과 달리 명환은 잠깐 움찔하긴 했지만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 조, 조하."

혀 씹었다.

얼마나 강하게 씹었는지 명환의 얼굴은 인상이 찡그려저 눈물마저 살짝 맺혀있었다. 이녀석 사내녀석 주제에 왜이리 왜소한거야. 얼굴도 다크서클 제외하고 보면 왠지 여자아이같다. 머리도 덥수룩한게.

" 괜찮아?"

상혁의 말에 명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애써 답했다. 아무튼 상혁으로선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지금의 상황에 당황하며 작게 한숨을 쉴 수 밖에 없었다.

이 왜소한 소년과의 인연이 앞으로의 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때의 상혁은 전혀 알지 못했다.

============================ 작품 후기 ============================

오늘 ps비타 1세대 중고를 구매하고, 드래곤즈 크라운도 구매했습니다. 병원은 심심하거든요. 어떤의미로 점점 겜덕의 길로 접어든 기억이 있습니다.

덤으로 위에 있는 체포하겠습니다 1기는 1995~1997년에 방영했었고, 한국에서는 투니버스에서 2004~2006년도 사이 쯤에 방영했던 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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