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 오늘 여자친구가 오기로 했다면서?"
상태를 보러온 간호사의 말에 상혁은 난감하다는 듯이 웃을 수밖에 없었다. 벌써 몇번이나 여자친구가 아니라 그냥 친구라고 설명을 했지만 같은 병실에 있는 다른 환자분들이나 간호사들은 도무지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 하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나?'
학교 친구들 중에서 가장 많이 찾아온 것도 수연이였고(곱슬이와 윤아는 연락은 자주 주었지만 시험 공부때문에 오지 못하는 듯했다.) 이틀간 공부를 가르쳐 주겠다고 직접 오기로 한 이상 보통의 친구사이라고 설명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했다.
특히 당시 수연이와의 대화내용을 알고 있는 병실의 분들은 계속 '설령 여자친구 아니라도 관심있으니 대쉬해봐라.'라고 계속 이야기하고 있었다. 상혁이로선 난감한 상황이랄까.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수연이가 자신에 대해 특별한 생각이 없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말 그대로, 수연이는 자신에게 빚을 지는게 싫었을 뿐이고 그것을 갚기위해 공부를 돕는다고 하는 것이다.
사실 이것만해도 수연이로선 전과는 정말 많이 달라진 거지. 상혁은 고등학교 입학 첫날부터 계속 보아온 수연이를 떠올리며 그리 생각했다. 쉽게 남을 받아들이지 않고 선을 긋고 있는 아이.
너무나 감추고 있는게 많아서 우리가 알고 있는 수연이는 그저 일부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런면에서 만난지 몇일되지도 않았을때 자신이 수연이를 설득하려고 한 것은 그야말로 무모하고, 무지한 행동이었다는 것을 자각했다.
분명 수연이에게는 가족과 관련된 일뿐이 아닌 또다른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분명.
" 어머나,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 잠시 여러가지를... 이 아니라 언제 온거야?!"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는데 대체 언제 이곳까지 온걸까. 창 밖을 보고 있던 시선을 돌려보니 그야말로 아름다운 소녀가 시선에 들어왔다. 검고 아름다운 긴 생머리. 하얀 원피스에 비교적 가벼운 옷차림을 한 소녀. 표정은 평상시같이 무덤덤하고 무미건조했지만 미묘하게 반짝이는 눈동자가 지금의 상황을 즐기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 간호사분들이 나에게 네 여자친구가 아닌지 묻던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줄래?"
" 설명하고 자시고, 나는 아무말도 않했어. 그저 네가 제일 많이 찾아왔으니까 그런걸 거야."
수연은 상혁이의 말에 과연,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녀로서도 나름 생각하고 있던 바였다. 상혁이의 병문안을 가장 많이 온 것도 자신이었고. 오늘 찾아온 이유도 상혁이의 공부를 봐주기 위해서가 아닌가.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다.
" 흐응, 난 또 네가 멋대로 소문을 낸 줄 알았어. 몰래 일을 저질러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거지."
" 너의 머릿속에 나는 그렇게나 악독한 놈이냐."
" 그래. 선녀와 나무꾼에서 나무꾼정도?"
가끔가다가 수연이의 비유는 알다가도 모르겠다. 지식이 너무 포괄적이어서 고전문학부터 일본 어덜트 게임까지 나오기에 가끔 상혁이 본인도 못알아들을 때가 많았다.
" 선녀와 나무꾼이면 내가 아는 그 옛날이야기 맞아?"
" 그럼 다른 선녀와 나무꾼이 있니? 멍청한 소리는 생각으로만 하고 입 밖으로 내지 말아줘."
" 그럼 나를 나무꾼으로 비유한 이유가 뭐야? 나쁜 것 없지 않아?"
상혁이 자신이 생각하는 선녀와 나무꾼은 선녀를 만난 나무꾼의 사랑과 마지막의 애절한 헤어짐만이 떠올랐다. 그런 이야기에서 나오는 나무꾼과 자신이 어떤 연관이 있다는 말인가. 이런 상혁의 생각을 알았는지 수연은 정말 모르냐는 듯한 시선으로 상혁을 응시하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이야기했다.
" 과연 지윤이가 구더기라고 부를만하네. 선녀와 나무꾼의 이야기를 그렇게 밖에 생각하지 못하다니. 선녀와 나무꾼에서 나무꾼은 선녀가 하늘로 못돌아가도록 날개옷을 숨기고, 거짓말을 한 악독한 납치 감금범이잖아. 거기다가 못도망가게 임신까지 시키는 초 귀축. 바로 너 처럼."
" 어떻게 생각하면 그렇게 까지 삐뚤어지게 생각할 수 있는건데! 거기다가 누가 초 귀축이냐!"
" 어머, 그럼 구더기와 귀축남 중에서 어느 쪽이 좋니?"
" 둘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처럼 말하지마. 거기다 어느 쪽도 고르고 싶지 않아!"
" 정말이지 자기 주장만 내세우고 이기적이라니까."
대체 왜 이야기가 이렇게 되는거냐. 상혁은 수연의 말에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진정하자, 수연이는 그냥 자신을 놀리고 싶었을 뿐이다.
" 아니면 *란스라고 불러줄까?"
" 고전설화에서 한번에 야겜으로 이동하다니, 도저히 이야기를 따라갈 수가 없잖아."
참고로 란스라는 녀석은 모 게임의 주인공으로 '귀축왕'이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는 참으로 두렵기 그지없는 녀석이다. 꽤나 유명한 캐릭터이기에 상혁도 잘알고 있었다.
" 참고로 어제 전부 다 깼어. CG회수하느라 시간이 좀 걸렸지."
" 그런건 알고 싶지 않아."
분명 시험이 3일남은 시점인 것같은데 자신의 착각인걸까. 하기야 수연이는 이미 시험범위 쯤은 옛적에 끝내놨으니 노는 것쯤이야 아무 상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 생각해도 수연이 같은 소녀가 그런 하드한 야겜을 하는 것은 상혁으로선 정말 적응안되는 일이었다.
" 하아, 그보다 오늘은 나의 공부를 봐주러 온 것아니었어?"
" 어머, 보채는 남자는 인기 없어."
상혁의 말에 수연은 고개를 작게 끄덕인 뒤, 손에 들고 있던 가방에서 이런 저런 자습서와 노트를 꺼냈다. 깁스를 하지 않은 멀쩡한 왼손으로 몇장을 넘겨보니 여자아이 특유의 동글동글한 글씨체로 중요한 내용이 차곡차곡 적혀있었다.
평범한 여자아이들이 쓴 것처럼 적혀있는 그것에 상혁은 또 의외라는 듯이 수연을 바라보았다. 수연이의 이미지상 이렇게 또박또박 필기를 했다는게 의외였기 때문이다.
" 너는 대부분 아는 거라 대충 중요한 것만 정리했을 줄알았는데 의외로 착실하게 전부 적었구나?"
" 요약노트는 따로 있어. 그리고 공부는 착실하게 하지 않으면 틈이 생기고 말아. 꾸준히 노력하지 않으면 안 돼."
집에서 단순히 펑펑 노는 줄 알았더니 아무래도 착각이었던 모양이다. 상혁은 수연이가 꺼낸 공책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수업시간에 놓친 것 하나 없이 중요한 내용은 깔끔하게 적혀있었다. 간혹 주석을 달아 자신의 생각이나 추가할만한 내용을 적어놓기까지 하고 있었다.
" 난 네가 머리가 좋아서 이렇게까지 노력하는줄 몰랐어."
" 칭찬 고마운걸. 하지만 네말도 틀린말은 아니야. 굳이 이렇게 할 필요는 없지만 옛성인이 노력하는 것을 강조했기 때문에 나도 혹시 모르니까 꾸준히 하는 거랄까."
옛 성인이라. 이건 또 의외의 말이었다. 현대의 인물들에 대해선 그다지 관심이 없는 줄 알았는데.
" 어떤 말이었는데?"
이토록 머리가 좋은 수연이를 꾸준히 노력하게 만들정도면 분명 유명한 사람이 한 명언일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묻자, 수연은 검지를 쭉 피며 담담히 이야기했다.
" '쓰래기가 노력의 힘으로 천재를 꺾는다'. 재능만 믿고 노력하지 않으면 자신보다 뒤떨어지는 쓰래기들에게도 따라잡힐지 모른다는 말이지."
언제부터 록리가 옛 성인이 된거냐. 거기다가 록리가 말한 의도와도 완전 다르잖아. 이녀석 나루토를 안봤구만. 대사만 알고 있는게 분명해.
상혁은 태클걸 마음도 생기지 않았기에 작게 한숨을 쉬며 수연이가 가져온 자습서를 펼쳤다. 자습서에도 중요한 내용은 형광펜으로 줄이 쳐져있거나, 외우기 쉽도록 수연이가 중요한 내용을 요약하여 정리되어있었다.
" 네가 정리한 내용만 봐도 시험을 잘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수연이가 직접 정리해서준 요약노트때부터 생각했지만 놀랍도록 중요한 점을 잘 지적하고 있었다. 굳이 일일히 가르쳐줄 필요없이 이것만 보며 공부해도 성적이 크게 오를 것같았다.
" 기특하네, 정답이야. 그럼 어서 이것을 보고 외우렴."
" ...응?"
" 참고로 시험은 세시간 후에 보겠어."
이 녀석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거지. 상혁은 단호하게 이야기한 뒤 팔짱을 끼고 자신을 바라보는 수연에게 시선을 돌렸다. 말 그대로 일방적인 선고였다. 직접 가르쳐주겠다고 와서는 스스로 외우라니.
" 뭘 그렇게 멍청한 얼굴로 보실까. 어울리는 표정이긴 하지만 보기 불쾌하니 그만둬주겠니?"
" 아, 아니 그게 아니고. 보통 가르쳐주겠다고 찾아오면 좀 설명해주거나 도와주는게 있어야 되는거 아니야?"
이런 상혁이 말에 수연은 고개를 천천히 내저으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 싫어라~. 이렇게나 아이같은 발상이나 할줄은. 전에 말했지만 난 가르치는게 익숙하지 않아. 이정도로 깔끔히 정리한 것들을 가져왔으면 스스로 할 줄도 알아야지."
아니 가르쳐주러 온거라며! 더 반박하고 싶었지만 들어먹지도 않을터라 상혁은 애써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떻게 가르치던 본인의 마음이지. 자신이 쓰던 자습서와 공책만 던져둔 것이긴 했지만 분명 이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는 것은 확실했다.
하긴 수연이가 스스로 하나하나 가르쳐준다는 편이 차라리 이상하지. 그리고 이것을 보고 시험을 본다고 하니 제대로 공부를 봐준다는 이야기는 맞는 것같았다. 다만 말을 저렇게 해서 그렇지. 언제 들어도 수연이의 어법은 적응이 되지 않았다.
" 보아하니 암기과목뿐인데. 3시간후에는 이것만 보는거야?"
" 그래. 우선 이것부터 빠르게 끝낼 생각. 이 이후에는 과학과 수학을 조금 할 생각이지. 언어는 중요한 점을 알려주긴 하겠지만 기본적인 실력이 없으면 이틀안에 크게 올릴 수 없어."
다행히도 이것에 대해선 다행히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뭐 수연이로선 이게 최선을 다한 것이겠지. 자기 입으로 가르치는게 익숙하지 않다고 했으니 이렇게 최대한 자신이 생각한 것을 요약해서 정리해준 것이리라 생각한다.
' 하지만 이렇게 요약해서 정리할 정도면 그 내용을 풀어서 설명해주면 되지 않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은 상혁이었지만 수연이 나름의 사정이 있을테니 굳이 묻지는 않았다.
" 그럼 나는 게임하고 있을테니 끝나면 말하렴."
느긋한 손동작으로 PSP의 전원을 키며 이야기하는 수연이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왼손 뿐이라 필기를 하거나 할 수는 없었지만 암기과목인지라 수연이가 준 책을 한장한장 넘겨보기만 하면 됐으므로 그리 어려울 것도 없었다.
' 세 시간 후면 여섯시 반인가.'
여섯시 반에 시험을보고, 또 설명해주면 많이 늦을텐데 괜찮으려나. 마음 같아서는 이것만으로 고맙다고 돌아가라고 하고 싶지만 분명 수연이는 거절할게 분명했다. 지금 상혁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최선을 다해 지금 수연이가 준 자습서와 노트를 외우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 수연이가 직접 준비한 시험을 잘보면 만족하고 가겠지. 그렇게 결론을 내린 상혁은 조금이라도 더 많은 것을 외우기 위해서 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
세 시간 후.
상혁은 그런대로 수연이가 준 자습서와 공책을 읽어볼 수 있었다. 생각보다 세 시간은 무척이나 촉박해서 완전히 외우거나 마스터하는 것은 택도 없었지만 나름 열심히 읽었던 데다가 중요한 부분은 확실히 외웠기에 수연이가 준비한 쪽지 시험정도는 자신있었다.
그래 자신 있었는데.
" 한심한걸. 거의 절반은 틀렸어."
" ......"
상혁은 수연이 준 쪽지 시험을 보고 머리를 푹 숙였다. 자신의 생각보다 시험범위는 넓었고 중요한 것은 많았다. 수연이가 딱히 어렵게 낸 것도 아니었음에도 이렇게 처참히 틀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건 수연이도 예상외였던 듯 고개를 설래설래 흔들며.
" 이래서야 오늘 안에 암기과목을 끝내려면 한참을 걸리겠는걸."
"...그, 미안."
곱슬이와 윤아보다야 나았지만 상혁이도 중간정도의 성적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최근에 영어나 수학 위주로 공부를 하느라 암기과목을 손에 놓은지 오래되서 이정도 밖에 맞지 못했다고 변명하고 싶지만, 애초에 시험이 삼 일 밖에 남지 않은 시점임으로 그런 말이 통할리가 없었다.
면목 없다는 듯이 말하는 상혁이의 말에 수연은 예상외로 무덤덤하게 답했다.
" 별로. 너의 멍청함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어. 사과라면 날 만날 첫날에 했어야지."
" 그때는 아무 것도 알지 못했잖아."
" 아무튼 그럼 세시간 후에 다시 시험볼테니까 다시 외우도록 해."
다시 세시간후? 시계를보니 그 시간이면 저녁 아홉시 반이다. 늦어도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 그건 너무 늦지 않아? 집에 돌아갈때 위험하다고."
자신을 가르쳐주는 것이야 수긍해주었지만 그렇게 늦은 시간까지 있는다면 응당 거절해야한다. 남자아이라도 위험한 시간에 여자아이가 혼자 한시간을 넘게 걸어 집에 가야한다니. 도저히 용납할 수없었다.
" 어머, 쓸데없는 걱정 고맙네. 어차피 그 시간이면 집에 들어가봤자 왜 늦었냐고 추궁당할테니 여기서 자고갈 생각이야. 어차피 병실에 한명쯤 간병인이 있는 것은 이상하지 않고, 너도 늦게까지 봐줄 수 있으니까."
늦게 들어가는 것은 안되고 외박은 가능한 거냐. 뭐가 그래.
" 여기서 외박한다고? 그게 될리가 없잖아. 집에서 뭐라 않해?"
" 저번에 실수로 부실에서 게임하다가 잠들어서 나도 모르게 외박한 적이 있어. 이번에도 그렇다고 하면 되겠지."
이녀석 생각보다 인생을 너무 막사는 것같았다. 그렇게 집에가서 자라고 저번에 별짓을 다했는데 그런 이유로 밖에서 외박을 했었다니.
" 그래도 안돼. 내가 거절할거야."
" 흐응. 혹시 내가 밤에 옆에서 자고 있으면 음심이라도 생길까봐 자제하고 있는걸까. 꽤나 장한데, 유상혁."
" 아, 아니 그런 건 아니야! 다만 그런 걸로 집에 안들어가면 여러가지로 문제잖아."
"...왜?"
상혁이의 말에 수연은 진심으로 모르겠다는 얼굴로 반문했다. 오히려 그런 수연이의 반응에 당황한 것은 상혁이 쪽이었다.
" 왜냐니, 집에서 걱정할게 뻔하잖아."
" 걱정-이라. 아, 그러네."
그제야 수연이는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수연은 곰곰히 생각하며 잊고 있었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 확실히 걱정할지도 모르겠는걸. 누군가 나를 걱정해준다는 것은 익숙치 않아서 자꾸만 잊게 되는구나. 하긴 저번에도 부실에서 자고 일어보니 백통가까이 전화가 와있었지."
그정도면 잊지 말라고.
수연은 상혁의 말에 그제야 고개를 끄덕인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 그럼 거짓말하는 것은 그만두고 솔직히 이야기하도록 할까."
" 그게 아니지! 집에 돌아간다고 생각하는게 정상아니냐?!"
" 싫어. 이대로 어중간하게 끝내면 내일 할 것이 많아질 뿐이야. 내 성격에도 맞지 않고. 지윤이에게 사실대로 말하면 분명 이해해줄거라 생각해. 내가 빚을 지는걸 싫어하는 것을 잘 알고 있기도하거든."
지윤이에게 연락한다고. 다른 것도 아니라 상혁 자신의 병실에서 공부를 가르쳐주다가 하룻밤을 자고 간다고 이야기할 생각인가. 가뜩이나 저번에 부실에서 마주쳤을 때도 자신을 진심으로 '구더기'취급하며 바라보던 지윤이다. 이번 일로 어떻게 반응해올지는 상상도 할 수없었다.
아니, 차라리 지윤이가 거절하면 수연이가 돌아가겠구나. 절대 허락할리가 없으니 차라리 지윤이에게 전화하는게 나을 것같았다.
상혁이 이런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수연은 태연한 얼굴로 지윤이에게 전화를 해서 사정을 설명하고 있었다. 자신이 상혁이에게 시험공부를 도와주기로 한 것과, 하다보니 상혁이가 자신의 생각만큼의 수준이 되지 않아 늦게까지 가르쳐야 된다는 것까지.
병원에서 자고가야 된다는 말까지 전하고 끊자. 상혁은 긴장된 시선으로 수연이의 입을 주시했다.
" 지윤이가 부모님에게 설명한다고 했어. 너는 이제 다시 외우기나 하렴. 다음 쪽지시험에도 이런 결과가 나오면 용서하지 않아."
" ...병원에서 자고 온다는데 괜찮데?"
" 말했잖아. 지윤이는 내가 누구에게 빚지는걸 싫어하는 것을 잘 알아. 시끄럽게 계속 떠들 말이 있으면 하나라도 더 외우도록 해."
이게 아닌데. 정말로 자고갈 생각인지 태연하게 이야기하는 수연의 말에 상혁은 곤혹스런 얼굴을 지었다. 수연이가 집에서도 허락을 맡은 이상 계속 거절한다고 해도 절대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이걸 어떻게 해야하나, 하고 고민하는데 자신이 침대 옆에 높아두었던 핸드폰이 부르르 떨었다. 누가 문자라도 보낸걸까 싶어 화면을 보니 익숙한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멀쩡한 왼손으로 황급히 해당 문자를 확인하니 딱 보기에도 진지한 어투로 하나의 말이 쓰여잇었다.
[각오하세요.]
진지함이 궁서체였다.
상혁은 이제 지윤이의 관계는 정말 돌이킬 수 없겠구나. 하고 생각하며 눈물을 속으로 삼킬 수 밖에 없었다.
============================ 작품 후기 ============================
내용이 좀 루즈하다보니 코멘트도 점점 줄어가네요. 으앙 슬픕니다. 항암제 다시 맡기 시작했어요. 언제 컨디션 나빠질지 모름... 오타수정은 좀 쉬었다가 하도록 할게요. 즐거운 하루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