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시험까지 딱 3일남은 시점에서 곱슬이와 윤아의 요약노트의 정리가 끝났다. 이번주 목요일이 시험인만큼 남은 화요일 수요일은 스스로 집에서 공부를하며 자기에 맞게 정리를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 그래도 아슬아슬하게 대충 세이프인 것같네요. 해파리 언니."
" 이젠 인간취급조차 해주지 않는거냐."
박수까지 짝짝 쳐주면서 나름 축하해주는 지윤이의 말이었지만 곱슬이와 윤아는 대답할 기력도 없는 듯싶었다. 시험날짜가 가까워져서 인지 청이 선배의 교육은 옆에서 내가 놀랄정도로 스파르타했으니까. 물론 지윤이는 이미 중학교 중간고사 시험범위쯤은 옛적에 끝내둔 터라 여유만만하게 놀고 있었다.
" 그럼 곱슬이도 윤아도, 남은 이틀은 부실이 아닌 집에서 스스로 정리하도록 해. 혹시 필요한게 있으면 전화를 하면 바로 도와주도록 하겠지만."
" 네, 감사해요. 선배."
윤아가 청이 선배에게 정말 감사하다는 듯이 고개마저 꾸벅 숙이며 인사를 했다. 그런 윤아의 모습에 곱슬이도 황급히 감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지윤이는 그런 곱슬이의 모습이 그저 우스웠던 모양이다.
" 진심으로 감사하는 것같지 않네요. 해파리도 은혜는 알텐데 말이죠. 이젠 해파리조차 아까워지네요."
" 무슨소리야! 나도 제대로 고마워하고 있어. 다만 표현을 제대로 못할뿐이지. 거기다가 해파리 이하면 대체 뭐가 되는건데."
" 흐음, 그건 고민인데요. 아메바나 미토콘드리아? 아니면 박테리아가 좋을까요. 어떤게 좋으시죠?"
" 그런 것에 진지하게 답변하지마."
날카롭게 쏘아붙이는 지윤이의 말에 나도 무심코 옆에서 한마디 거들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윤이가 계속 저렇게 말하고 있으면 나도 골려주고 싶어지는걸.
" 지윤아, 곱슬이는 적어도 인간이니까 좀더 인간적인 표현으로 이야기하는게 어떠니? DNA지도쯤으로."
" 수연이 너는 갑자기 왜 끼어드는건데! 거기다 그건 생명체조차 아니잖아!"
" 빙글빙글 꼬인게 딱 너의 머리모양같다고 생각하는걸.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 동의를 구하지 말라고. 거기다가 내 머린 그냥 곱슬거릴 뿐이지 그렇게 나선형으로 회전하지 않아."
" 어머, 싫어라. 그런 진지한 반응. 센스가 없다니까."
" 나 그냥 입다물고 있을게."
당분간 이렇게 곱슬이를 놀리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조금 아쉬운데. 뭐 내일부터는 상혁이를 놀리면 되겠지만. 지윤이는 그런 나와는 달리 놀릴 사람이 없어지는게 아쉬운지 계속해서 옆에서 빈정거리고 있었다. 역시 동생은 언니를 닮는 것인지 속을 긁는 어투도 나와 몹시 흡사했다.
" 너희 자매는 이상한데서 정말 닮은 것같아."
"" 칭찬고마워(요)"
"
질렸다는 듯이 이야기하는 곱슬이의 말에 나와 지윤이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없이 동시에 말했다. 피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나와 지윤이는 닮은 자매다. 정확히는 지윤이가 나를 많이 닮으려고 노력해왔다는 것이지만.
그동안 나는 왜 그런 것을 몰랐던 것일까. 나와 같은 머리모양을 하고. 비슷한 패션에, 비슷한 말투를 사용하며 나를 힘껏 따라하고 있었는데. 나는 그런 지윤이를 그저 외면하고 있었던 것같다.
앞으로라도 그런 지윤이를 이해해주고, 지윤이가 나를 좋아해주는 것보다 더더욱 좋아한다면 조금이나마 여태껏 외면해왔던 차이를 메울 수 있을 것이라 소망하고 있다.
" 수연이도 그동안 요약노트 만들어주고, 신경써줘서 고마워."
둘이서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 지윤이와 곱슬이를 뒤로한체 윤아가 고맙다는 듯이 미소지었다. 내가 만들어서 준 노트를 내보이며 그녀는 부드럽게 이야기해왔다.
" 아직 완전히 받아들이지 않은 우리를 위해 이렇게나 신경쓸줄은 솔직히 놀랐어. 사실 '친구'라고 말은해도 수연이가 우리와 어울리는 것을 꺼리는줄 알았거든."
" 그렇지 않아."
상혁이도 그렇고 윤아도 그렇고 그런 점을 신경쓰고 있었나보다. 하지만 나 나름데로 처음으로 생긴 친구라는 것에대해서 많이 신경을 쓰고 소중히 생각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둘에겐 그렇게 생각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청이 선배는 상혁이와 윤아와는 달리 내가 친구라는 것을 소중히 생각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각자 생각하는게 다른걸까. 곱슬이야 아무 생각 없겠지만.
뭐 분명 내가 완전히 상혁이와 윤아, 그리고 곱슬이를 받아들인 것은 솔직히 아니다. 소중히 생각하고, 떠올리면 가슴이 따뜻해지고 그렇다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선 아직도 완벽히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차차 조금씩은 달라지겠지. 언젠가는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관계가 달라지지 않는다면 분명 언젠간.
" 그럼 다들 돌아갈까?"
그런 나의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청이 선배가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이야기했다. 이제 시험이 끝날 때까지는 이 부실에 들어오지 않겠지. 시간으로치면 약 사흘 간 들어오지 않을 생각을 하니 뭔가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고작 두달이 약간 못미치는 시간동안 있었던 곳임에도 막상 한동안 오지않는다고 생각하니 아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 이 부실에 정이라도 들은 것일까.
'인당부'... 제발 동아리명만 변경해주면 좀 더 감상적이게 생각할 수 있겠는데 말이야.
" 그럼 다들 시험공부 열심히 해!"
" 수연이하고 지윤이도 잘가~."
" 해파리 언니도 집에서 놀지말고 열심히 하도록 하세요."
" 거, 걱정말라니까!"
교문 앞에서 서로에게 인사를 한 우리는 뿔뿔히 흩어졌다. 청이 선배는 차를 타고 먼저 가버렸고, 윤아와 곱슬이는 같은 방향으로 가기에 반대편으로 가는 우리에게 잘가라고 배웅해주었다. 나도 뭐라고 한마디 해줄까 했지만 딱히 할말도 생각나지 않아 그저 손을 흔들어주었을 뿐, 특별한 말은 하지 않았다.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하늘 아래서, 아무 말 없이 걸어가는 나와 지윤이 사이에는 고요한 침묵이 감돌았다. 딱히 어색해서라기보단 나와 지윤이는 서로 그다지 말을 많이하지 않다보니 특별한 주제가 없으면 먼저 말을 꺼내거나 할 일이 없었다.
" 근데 언니."
횡단보도에 서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지윤이가 나에게 시선을 마주쳐오며 조용히 물어왔다. 퇴근시간임에도 이상하게 사람이 없어서 간혹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만 아니면 무척이나 조용했기에, 지윤이의 말은 무척이나 선명하게 다가왔다.
" 왜."
" 언니는 왜 사람들을 꺼려하는 거야?"
그건 아마, 곱슬이와 윤아도 포함된 '친한 사람들'조차 꺼려하는 나의 모습을 지켜본 끝에 나온 의문일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계속 함께 해온 지윤이였기에 이런 나의 행동들은 이상하게 보일 수밖에 없기야 하겠지. 지금까지 살아오며 특별히 다른 사람과 트러블이 있었던 것도 아니며, 특별히 해가 되는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런 내가 사람을 꺼려한다는 것은 지윤이로선 상당히 의외였던 모양이다. 지윤이가 언제나 보는 나의 모습은 '가족들을 피하는 나'였다. 그렇기에 이유를 알았고, 이해하고 특별히 묻거나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시험기간에 함께 공부를 하며 '다른 사람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를 알게 된 것이다.
그동안 묻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계속 궁금했던 모양이네. 나는 초록색으로 바뀐 신호에 한발 내딛으며 시선을 앞으로 고정한 체 천천히 입을 열었다.
" 착각아닐까? 나는 꽤 친근하게 대했다고 생각하는걸."
" 언니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나로선 할말이 없지. 그래도 요 몇일간 계속 지켜보고 들은바에 의하면 내 생각은 좀 달라."
하지만 이유는 모른다. 지윤은 나에게 고개를 돌려 시선을 고정한 체 그리 이야기했다. 나도 앞으로 고정했던 시선을 지윤이 쪽으로 잠시 돌렸었지만, 잠시 시선을 교환한 뒤 다시 정면을 바라보았다.
이런 나의 모습에 지윤이는 팔짱을 낀 체 날카로운 어조로 쏘아붙였다.
" 대답하기 싫으면 어쩔 수없지. 굳이 캐물을 생각도 없고. 그냥 궁금했을 뿐이야."
내가 모르는 사이 언니에게 또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은 좀 충격이지만. 하고 조그만 목소리로 지윤이가 중얼거렸지만, 워낙 좋은 청력탓에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네가 모르는 사이라... 그건 아니야. 내가 사람을 꺼리는 것은 네가 나와 만난 이후에 있었던 일이 아니니까.
그건 지금의 '이 수연'이 태어나기도 전에 있었던 일들에 의해 이렇게 된 거지. 전생에 혼자 고독하게 지내게 되며 느낀 생각들로 인해서. 정말이지 과거의 나는 정말로 쓸쓸한 삶을 살았구나. 고등학교도 아마 2학년 말에 중퇴했었지?
정확히 모든 기억은 나지 않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중요한 사건들은 뚜렷하게 머릿속에 세겨져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수학여행때였던 것같아. 아마 그때부터 나는 사람을 정말 싫어하게 되었다. 하고 싶었던 꿈도 걷어차버리고 점차 도망치는 법을 알아가던 때.
" 글쎄? 태어났을 때부터 이런 천성이었을지도 모르지."
" 거짓말. 어린시절의 언니는 그렇게나 당당했는걸?"
그때야 다시한번 제대로 시작하고 싶었으니까. 겉으로야 티를 않냈을 뿐이야. 결국 다 소용없다고 생각한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간 것뿐.
나는 믿을 수없다는 듯이 이야기하는 지윤이의 말에 더이상 답변하지 않았다. 지윤이도 더이상 나에게 묻거나 말하지 않았다. 나의 침묵이 더이상 묻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라는 것을 지윤이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으니까. 분명 이번 생에서 나를 가장 많이 이해하고 있는 것은 지윤이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지윤이도 과거의 나까지는 알지 못한다. 그것을 이 세상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마 없을 것이다. 나와 같이 한번 죽고, 다시 태어난 사람이 아닌 이상에야 결코 나의 심정을 알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죽어가던 마지막 순간을 떠올리면 궁금한 점이 하나있다.
그 세계에서 내가 죽었을 때.
나를 위해 울어주었던 사람이 있었을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속으로 실소할 수밖에 없었다.
============================ 작품 후기 ============================
현실의 저를 TS시키다니 이런 무서운 분들. 아무튼 오늘은 많이 짧네요. 오늘은 이것저것 검사할게 많아서 피곤하다보니 별로 쓰지 못했습니다. 내일 나머지 분량도 써서 같이 올릴까 싶었지만 어차피 여기서 딱끊기기도 하고 해서 그냥 올리기로 했습니다. 다음편은 다시 상혁이와 병원에 있겠군요!
덤으로 TS된 주인공이 남성과 사귀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개인적인 견해니 다들 다르시겠죠. 저같은 경우엔 주인공이 살아가던 도중에 TS된 것도 아니고 '다시 태어난 경우'이다보니 여성보단 남성에게 끌린다고 생각하니까요. 대체적인 경험이나 기억은 조금 남을지 몰라도 남성성은 남지 않을 것이니까요. 애초에 몸도 완전 여성에 여성호르몬이 나오고 생리를 하는 시점에서 여성으로서 남자의 기분으로 여성과 사귀는 것이 더 이상하다고 생각하는지라. 뭐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그럼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