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모든 수업이 끝난 방과 후, 곱슬이는 가방을 정리하던 나와 상혁이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성가신 녀석이 왔구나, 하고 경계하는 나의 시선을 건방지게도 가볍게 무시한 곱슬이는 상혁이를 향해 붉어지려는 얼굴을 애써 가다듬으며 평상시처럼 이야기했다.
" 상혁아, 오늘 방과 후에 스터디 그룹에 대비해서 문제집 사러가려고 하는데 같이 가지 않을래?"
문제집?
곱슬이치고는 참으로 건전한 이유였다. 양아치 주제에 이번 스터디그룹에서 열심히 해볼 요량인가. 난 또 평상시처럼 뭔가 쓸데없는 말이나 하러 온줄 알았더니 그런 것이면 상관없지. 상혁이도 곱슬이의 말에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 좋아. 마침 나도 수학 문제집이나 하나 더 사려고 했으니 잘됐네. 아, 그런데 나 지금은 돈이 없어서 집에 들렀다가 와야 하니 한 시간 쯤 후에 만나자."
" 응! 알았어. 그러면 한 시간 후에 내가 너희 집 앞에서 기다릴게."
집 앞에서 기다린다고 하는 곱슬이의 말에 상혁이는 그럴 필요 없다고 거절했지만 곱슬이는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곱슬이의 고집에 못이긴 상혁이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에, 그러고 보니 곱슬이는 상혁이를 좋아한다고 이 부에 들어온 것이었지. 한 달이 넘는 시간동안 아무런 일도 하지 않기에 녀석이 무슨 목적으로 동아리에 들어왔던 건지 잊고 있었다.
이 녀석 문제집보단 단지 상혁이와 단둘이 돌아다니고 싶어서 그런 것 아니야?
차분하게 상혁이와 대화하고 있는 곱슬이의 눈을 본다. 곱슬이를 상대로 이런 묘사를 하긴 좀 그렇지만 상혁이와 대화를 하는 곱슬이는 확실히 귀여웠다. 평상시의 우리를 대할 때 보이는 고압적인 모습과는 달리 상혁이에겐 비슷하면서도 미묘하게 사랑스런 눈빛을 빛내고 있어서 확실히 여자아이는 여자아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 하지만 신기하네.'
들은 바에 의하면 곱슬이는 이 지역에서 알아주는 양아치였던 모양인데 대체 상혁이와 무슨 접점이 있었던 걸까. 만난 적이 있었다면 상혁이도 알고 있어야 하는데 상혁이는 곱슬이를 전혀 알지 못하는 눈치다.
하지만 곱슬이는 분명 상혁이를 잘 알고 있는 것 같고. 거기다가 평범한 고등학생 소녀의 사랑이라고 하기엔 너무 맹목적이라고 해야 할까. 보통 이 나이 대의 여자아이들은 그냥 연애를 한다는 것에 관심이 있을 뿐이지 '사랑'이라는 것을 하는 건 드물다. 만화에서나 나오는 고등학생들의 사랑은 말 그대로 만화니까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애초에 나에겐 남녀 간의 사랑이라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모르겠다고 해야 하나. 부모의 사랑이라는 것은 한 달 전, 묘소 앞에서 아버지와 대화하며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전생에는 자업자득인 면도 있었고, 부모님들이 애초에 나와 소통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기에 부모의 사랑이라는 것도 막연하게만 느껴졌지만 이번 생애에서 확실히 알게 되었지.
분명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틀어졌다고 생각했음에도 제대로 마주보고 이야기하니 그 공백을 메울 수 있었다. 거기다 여동생이 그렇게나 나를 생각해주고 있을 줄은 몰랐어. 솔직히 정말 감동해서, 그 뒤론 동생의 말이라면 웬만해선 다 들어주고 있다.
여동생 정말 최고.
아무튼 본론으로 돌아가면 부모의 사랑을 알았다 하더라도 남녀 간의 사랑이 이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곱슬이가 어째서 상혁이에게 저리 달라붙는지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해야 하나. 차라리 윤아는 어린 시절 무언가 계기가 있었고 함께 살고 있는 입장이니 좋아한다고 해도 이해가 된다. 함께 지낸 정이라는 것은 무시 못 할 것이니까.
" 그럼 이따가 봐, 상혁아. 난 먼저 갈게."
" 그래, 나도 최대한 빨리 준비해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천천히 와."
상혁이와 곱슬이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부실에서 게임이나 할 생각이었기에 둘에게 먼저가라고 이야기했다. 그런 나의 말에 둘은 가볍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고는 교실 밖으로 나가 모습을 감췄다.
나도 슬슬 가볼까.
가방을 들고 몸을 일으키다 문득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파란 하늘과 선선한 바람이 부는 밖의 모습이 시선에 들어왔다. 이런 날씨라면 확실히 밖에서 돌아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
그렇다고 밖에 돌아다닐 생각은 없지만. 날씨가 좋던 말던 나는 부실에서 가볍게 공부나 한 두 시간하고 몬헌을 하느라 쌓인 게임을 해야 한다는 완벽한 계획이 세워져 있는걸. 한가롭게 밖을 나돌아 다닐 시간 따위는 없었다.
교실의 문을 닫으며 밖으로 나오자 어째 익숙한 인영이 눈에 들어왔다. 검은 단발 머리에 귀여운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 귀엽지 않은 가슴을 가진 소녀. 더 설명할 것도 없이 윤아가 뚱한 얼굴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 어머, 무슨 일이야? 나를 다 기다리고."
대충 예상은 되지만 모른 척 말하자 윤아가 심통이 가득한 목소리로 작게 이야기해왔다.
" 상혁이가 오늘 곱슬이랑 약속이 있다고 말하면서 가버렸어."
" 아아, 그래 맞아. 오늘 수학 문제집을 사러간다고 했어."
곱슬이와 단둘이 가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 걸까. 질투라는 것도 참 귀찮기 없는 감정이야. 이런 것에 하나하나 반응해주면 피곤할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윤아를 빤히 바라보니 윤아는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 팔짱을 끼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결심한 듯 나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 수연아! 우리도 쫓아가자!"
" 싫어."
즉답했다. 윤아는 그런 나의 반응을 예상한 듯, 손가락 한 개를 펼쳐보이며.
" 따라오면 내가 네가 좋아하는 딸기 쇼트케이크 사줄게."
" ……."
" 저번에 내가 말했던 그 가게에서 제일 맛있어 보이는 녀석으로!"
이 녀석은 내가 어떻게 딸기 케이크를 좋아하는 걸 알고 있는 거지. 지윤이가 말해준 건가. 가장 유력한 것은 지윤이지만 사실, 내가 지윤이에게 딸기 케이크를 좋아한다고 직접적으로 말한 적은 없었다. 그런 점에서 그 날 묘소에 있었던 딸기 케이크는 우연이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가지고 온 것인지, 아니면 내 취향을 알고 준비한 것인지 아직도 의문이다.
뭐 묘소에 있었던 일 이후로 지윤이도 내가 딸기 케이크를 좋아하는 걸 알게 되었겠지만 그 전에는 어떻게 알고 있었는지 아직도 궁금하다. 혹시 지윤이가 내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한다거나-, 에이 그럴 리 없지. 무슨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시스콘도 아니고.
아무튼 지윤의 제안에 솔깃한 것은 사실이다. 딸기 쇼트케이크가 싼 것도 아니고 이렇게 공짜로 사준다면야 나로선 감사할 따름이다. 하지만 내가 굳이 같이 갈 필요가 있는 건가? 곱슬이와 상혁이를 쫓아가는 것은 혼자서도 얼마든지 가능 할 텐데.
" 그러면 함께야 가겠지만, 미행정도는 혼자서도 할 수 있잖아."
" 미, 미행이라니! 그냥 몰래 뒤쫓아 가는 거야!"
세간에는 그것을 미행이라고 한단다.
짜게 식은 눈으로 내가 가만히 윤아를 바라보자 그녀는 약간 머뭇머뭇 거리며 손가락을 비비꼬았다.
" 혼자서 가는 건 좀 부끄럽잖아."
부끄러우면 애초에 미행을 하지 마. 물론 그런 말을 해봤자 지금의 윤아는 전혀 들은 척도 하지 않겠지. 나야 뭐 딸기 쇼트케이크를 사준다고 하니 적당히 어울려주면 그만이다.
" 상혁이와 곱슬이는 한 시간 뒤에 상혁이의 집 앞에서 만나기로 했어. 아직 시간이 좀 여유가 있으니 나도 집에 들려 옷을 갈아입고 갈게."
" 우리 집 앞이었구나! 곱슬이는 안 알려주려고 해서 몰랐어. 알았어, 그러면 나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을 테니 빨리 와야 해."
얼마나 만반의 준비를 하고 미행을 할 생각인지 좀 두려워졌지만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수긍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아, 그리고 핸드폰으로 청이 선배에게 오늘은 부실에 못갈 것 같다고 말해야지. 다들 밖으로 나가는데 혼자 부실을 지키고 있다면 너무 쓸쓸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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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는 화창했다. 이제 막 5월이 되었음에도 상당히 따뜻해서 가벼운 하얀 원피스 차림으로 꾸미고 나왔다. 정말, 정말 오랜만에 장시간 밖에 있는 것이다 보니 약간 힘쓴 사복차림. 이 원피스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원피스이고 강한 햇빛을 대비해서 흰 양산까지 세트로 준비했다.
완벽한 아가씨 스타일이라고 해야 하나. 자외선은 피부의 적이거든. 딱히 햇빛을 받는다고 기미나 주근깨 같은 게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혹시 모르잖아. 항상 완벽하게 대비를 하고 있어야 된다.
다만 이렇게 집을 나서려고 하니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TV를 보고 있던 동생이 크게 경악한 눈으로 '언니, 설마 밖에 나가려는 거야?!'라고 물어서 조금 상처받았다. 나란 녀석은 밖에 돌아다니는 것만으로 경악한 시선을 받아야 하는 걸까. 앞으로는 아침의 조깅 말고도 가끔 밖에 돌아다니도록 하자.
그래, 카페 같은 곳 가봐야지. 저번과 같은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미리미리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해.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상혁이의 집을 향해 걸어가고 있으려니 주변의 시선이 몰리는게 느껴졌다. 몇 명은 나를 보며 연예인 아냐? 라는 등의 이야기를 하고 있을 정도. 좋아, 나쁘지 않게 꾸미고 나왔나 보내. 역시 나 정말 최고.
이런 때일수록 고고하고 가녀린 분위기를 하고 있어야 잘 먹히는 법이다. 흰 양산도 그걸 위한 키 아이템이지. 다만 내 나이가 고등학생이다 보니 너무 어른스러운 치장이나 화장은 금물이다. 자연스럽게, 최대한 순수하고 심플하게 꾸미고 있어야 가장 아름다운 법이다.
" ……응?"
상혁이의 집 근처에 도착하자 전봇대 뒤에 누군가가 몹시 수상한 모양새로 숨어있는 게 보였다. 굳이 묘사할 필요도 없이 더할 나위 없이 진지한 얼굴의 윤아가 그곳에 있었다. 자기 자신의 집을 근처에 숨어서 감시하고 있다니 정말 어마어마하게 수상하기 그지없다.
옷차림은 윤아와 잘 어울리는 분홍색 상의에 귀여운 스커트 차림이었다. 그야말로 봄에 어울리는 색깔이라고 해야 하나. 미행하려는 주제에 잔뜩 기합을 넣은 옷차림이다. 뭐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내가 빤히 바라보는 시선을 느꼈는지 전봇대에 숨어서 자신의 집을 감시하던 윤아가 고개를 돌려 나를 향해 돌아보았다. 그녀는 나의 모습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 수연아! 그렇게 눈에 띄게 입고 오면 어떡해."
갑자기 윤아를 몹시 때리고 싶어졌지만 애써 참았다. 본인의 옷차림이 어떤지는 전혀 자각하고 있지 않은 건가. 아무튼 여기서 윤아에게 뭐라고 따져봐야 쓸데없이 힘만 뺄 뿐이었다.
" 그보다 곱슬이와 상혁이는 아직?"
" 아, 응. 상혁이는 나올 준비를 하고 있을 거야. 아직 약속시간은 10분정도 남았으니 곱슬이도 슬슬 올 거라고 생각해."
윤아가 그렇게 이야기를 끝내자마자 멀리서 익숙한 소녀가 눈에 들어왔다.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고 하더니만 윤아가 말을 끝내기 무섭게 상혁이의 집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곱슬이가 시선에 들어왔다.
응? 그런데 평상시랑 좀 다른데.
좀 떨어져있다 보니 잘 보이지 않았다. 윤아도 마찬가지인 듯 눈을 가늘게 좁히며 곱슬이의 모습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그리고 나의 눈에 잘 보일 정도의 거리가 되자, 나는 곱슬이의 모습에 크게 경악을 할 수밖에 없었다. 뭐야 예쁘잖아!
윤아는 아직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듯싶었지만 나는 솔직히 놀랐다. 평상시의 곱슬이가 뭐 나쁘지 않게 생긴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저렇게나 화장발이 잘 받을 줄이야. 가끔 교실에서 보이는 양아치스러운 화려한 화장이나, 부실에 있을 때 귀찮다며 지우고 있는 수수한 맨얼굴과는 달랐다.
분명 곱슬이는 수수하고 귀여운 고양이상의 얼굴이다. 저렇게 자연스런 화장을 한 것을 본 것은 처음인지라 그동안 몰랐었다. 저렇게나 화장발을 잘 받는 녀석이었을 줄이야.
그래봐야 화장발이잖아? 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저렇게 화장이 잘 받는 것도 하나의 재능이다. 변장이라고 할 정도가 아니면서도 저렇게 자연스레 어울리다니. 솔직히 감탄할 정도야.
그리고 화장뿐이 아니었다. 평상시의 고압적이고 당당한 곱슬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차분한 옷차림이었다.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스커트에 리본으로 예쁘게 장식된 파란 상의를 입고 있는 곱슬이의 모습은 놀랍도록 잘 어울렸다. 적갈색의 긴 곱슬머리도 하나로 묶어 가지런하고 단정된 포니테일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그런 곱슬이의 모습을 윤아도 뒤늦게 발견한 듯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윤아에게 미안하지만 현재 곱슬이의 히로인력은 말도 못 할 정도로 높았다. 윤아도 화장하고 좀 꾸며준다면 어떨지 몰라도 현재로선 곱슬이가 너무나도 강력했다.
" 으……., 곱슬이 완전 기합을 넣었잖아. 예상 밖이야 저렇게나 진심으로 올 줄은 몰랐는데."
윤아는 통탄스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렇게 우리가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을 알리가 없는 곱슬이는 기대감에 부푼 얼굴로 상혁이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기를 몇 분. 상혁이의 집 문이 열리며 천천히 걸어 나오는 상혁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약속시간보다 5분정도 일찍 나온 셈이지만 그래도 곱슬이보다 늦게 나오다니. 하긴 곱슬이의 집은 여기서 꽤 머니까 좀 늦을 거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상혁이는 문 앞으로 나오자마자 보이는 곱슬이에게 손을 흔들다가 몸을 딱딱하게 굳혔다. 하기야 그럴 만도 하다. 그만큼 곱슬이는 예쁘게 꾸미고 있었고 평상시와 달랐으니까. 물론 특유의 당당한 표정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 당당한 표정도 약간의 수줍음을 내포하고 있어서 나조차 약간 두근두근 할 정도였다. 으, 곱슬이 무서운 아이.
윤아는 그런 상혁이의 반응에 원투 펀치를 맞고 결정타를 맞은 격투기 선수처럼 비틀거리고 있었다.
" 정신 차려, 쫓아가야지."
내가 양산으로 윤아의 다리를 톡톡 건드리자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린 윤아는 조금씩 멀어져가는 상혁이와 곱슬이를 깨달을 수 있었다. 상혁은 조금 어색해 하면서도 곱슬이와 제대로 이야기 해주고 있는 듯했고. 곱슬이도 특별히 평상시보다 달라붙거나 다른 행동을 하진 않았다.
앞으론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런 둘의 모습을 보며 윤아와 함께 조금씩 뒤를 쫓기 시작했다. 솔직히 조금 흥미로워진 기분이었다.
__
곱슬이와 약속시간이 5분밖에 남지 않자 상혁은 부랴부랴 밖으로 뛰어나갔다. 사실 30분 정도 전부터 기다리고 있을 생각이었지만, 오늘 빨래 당번인 윤아가 일이 있다고 나가버리는 바람에 세탁기에서 꺼낸 빨래를 대충이라도 널어야 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그리 늦지 않게 나갈 수는 있었지만 미안하게도 곱슬이는 자신의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 아, 미안해. 조금 더 일찍 나올려 했는……."
웃으며 사과를 하던 상혁은 자신이 나오는 소리에 고개를 몸을 돌리는 곱슬이의 모습에 몸을 딱딱하게 굳힐 수밖에 없었다.
놀랐다.
정말 순수하게 놀라버렸다. 곱슬이가 예쁜 아이라는 것은 평상시에도 잘 알고 있었지만 윤아나 수연이, 청이 선배와 자주 있던 탓에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곱슬이의 모습은 솔직히 말해서 정말 예뻤다. 물론 객관적으로나 주관적으로 수연이나 청이 선배가 더 예쁘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그 둘과는 다르게 곱슬이는 밝고 경쾌한, 그런 분위기가 감돌았다.
언제나 수연이가 양아치라고 놀려대는 것이 거짓말인 것처럼 순수하고 활기차 보이는 그런 모습이었다.
그런 상혁의 심정을 모르는지 곱슬이는 빙긋 웃으며.
" 괜찮아. 나도 방금 왔는걸."
밝게 이야기해왔다. 새치름하게 올라간 눈매나 자신만만한 웃음은 변하지 않았다. 단지 조금 인상이 달라졌다고 해야 하나, 그런 기분이었다. 곱슬이는 상혁이 아무 말 없이 자신을 바라보자 약간 어색한 얼굴로 어깨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빙빙 돌리며 슬쩍 웃었다.
" 왜, 이상해?"
평상시와 같은 말투에 얼굴이었는데 그 분위기가 묘하게 애처롭게 보여서 상혁은 손을 휘휘 내저으며 크게 소리쳤다.
" 아니, 아니! 절대 아냐! 그냥 평상시와 달라서 깜짝 놀랐어."
갑작스럽게 소리치는 상혁의 모습에 눈을 동그랗게 떴던 곱슬이는 배시시 웃으며.
" 그래? 그럼 다행이야."
조그만 목소리로 이야기해왔다. 상혁은 그런 곱슬이의 모습에 순수하게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우와, 위험해. 평상시에 당당하고 수연이와 노는 모습만 보다가 이런 면을 보니 그 갭이 더욱 확실하게 느껴졌다.
" 그, 그럼 갈까?"
" 좋아. 마침 사려고 생각한 책도 다 적어왔어."
핸드폰 메모장에, 하고 빙긋 웃은 곱슬이는 생각보다 많아서 돈이 많이 들 것 같네, 라고 말한 뒤, 그동안 공부 좀 할 걸이라고 중얼거리며 작게 웃었다.
그런 곱슬이의 웃음에 상혁도 어색하게 마주 웃어준 뒤에 딱딱하게 굳은 몸을 움직였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애써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내딛었다. 어쩐지, 오늘 하루가 무척 길 것만 같았다.
============================ 작품 후기 ============================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진행 될 것같네요. 일상물이자 러브코미디의 장르를 표방한 만큼 러브코미디도 나와줘야죠! 전편에 댓글에서 곱슬이가 수연이랑 신체능력이 비슷한 것에 대한 의견이 있었는데요. 딱히 중간에 수정한 것은 아니에요. 신체능력이 비슷하다는 것은 맞지만 그게 계속 언급했듯이 순수한 근력이나 각력과 같은 힘이나 능력이 비슷하다는 것이고요. 반사신경이나 이것저것 따지면 수연이가 월등합니다.
본편에서도 곱슬이가 수연이와 비슷했던 것은 단순한 달리기 정도고 실제로는 순식간에 제압됐었죠. 심지어 본인보다 신체능력이 떨어지는 수연이의 여동생한테도 한번 제압될뻔했구요.(수연이에게 먼저 당하지 않았다면 피할 수 없었다,라고 곱슬이가 말하기도 했고)너무 판타지적인 신체능력은 아니지만 이 글에서 수연이의 신체능력은 월등합니다. 달리기할때도 지친 수연이가 다리에서 뛰어내려 도망치자 곱슬이가 차마 저건 할 수없다고 하기도 했고요. 각력이나 근력과 같은 것은 비슷한지라 수연도 곱슬이를 신체능력에선 쉽게 보지 않을 뿐이에요. 1권에선 딱히 곱슬이의 신체능력이 언급되지 않아서 갑작스레 추가된 것처럼 보이셨을 수도 있어요. 그건 제가 글을 잘못 전달하고 썼기 때문이겠죠(흑) 그리고 이번편은 여러가지로 수연이가 생각이 많아지는 편이죠. 곱슬이나 윤아도 힘내는 편이고요. 상혁이 이 행운아 자식! 뭐 상혁이와 곱슬이나 윤아가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차차 나올 생각입니다.
대충 3권분량은 수학여행편 4권 분량은 여름방학편이 예정되어 있고요. 아직 나머지는 미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