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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공략당해 버렸다-20화 (20/153)

20화

다른 사람들이 바라보는 '이수연'은 그야말로 완전무결한 존재이다. 공부면 공부, 외모면 외모. 어느 것 하나 떨어지는 것이 없는 여자아이. 마치 만화나 영화에서 작가가 되는대로 설정을 잡아버린 것만 같은 흠이 보이지 않는 소녀다. 그나마 알 수 없는 것은 운동신경정도 라고나 할까.

그동안 체육수업에 늘 그늘에서 쉬거나, 다른 학생들이 하는 것을 구경만 하기에 수연이는 운동을 잘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 가-라는 주제로 한동안 토론대상이 되기도 했었다. 물론 본인은 잘 모르겠지만.

본인은 잘 모르는 모양이지만 그녀는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눈에 띄는 존재랄까. 특히 탈의실에서 곱슬이를 제압했던 사건은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두고두고 화자가 되기도 했다. 물론 그 뒤에 어째서인지 둘이 친해진 듯 하고. 수연이 본인은 주변과 말을 섞으려 하지 않으니 어떻게 된 경유인지는 아이들로선 알 도리가 없었다.

첫날 그녀가 저질렀던 '자신은 오타쿠와 같은 타입을 좋아한다.'라는 등의 발언은 이미 머릿속에서 사라진지 오래였다. 애초에 그 사건은 상혁이가 중학교 때부터 사이가 좋지 않던 아이들과 트러블이 있자, 그것을 막기 위해서 한 발언이라는 의견이 정설로 받아지기 때문이다. 덕분에 수연이는 사람을 차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곧은 여자아이로 다른 아이들의 눈에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수연이에게 말을 걸거나, 친구가 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은 많았지만 그녀 특유의 차가운 분위기나 다가가기 힘든 외견 때문에 감히 말을 거는 학생은 없었다.

고고한 꽃이며, 북풍이 몰아치는 차가운 눈의 여왕.

교실 안에서 수연이란 존재는 학생들에게 그렇게 여겨지고 있었다. 그랬기에 지금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은 학생들로선 참으로 생소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 수연이 너는 운동신경이 좋으니까 나랑 반대편으로 가서 해."

그렇게 이야기한 것은 적갈색의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을 가진 소녀였다. 통칭 아이들 마음속에서 '곱슬이'로 불리는 이 소녀는 본명보다는 별명으로 불리는 소녀였다. 사실 처음 이 반에 왔을 때 곱슬이는 다른 학생들이 벌벌 떠는 최흉, 최악의 포식자였다. 중학생 때 이 지역의 일진들과 싸워서 여자의 몸으로 무패라느니 하는 흉흉한 소문이 떠돌았을 정도. 심지어 같은 중학교 출신들에게 물어보면 '적색의 사자와 같았다'라는 평이 자자했다.

하지만 그 소문을 잠재운 것도 다름 아닌 '이수연'. 탈의실에서 트러블이 있었던 모양이지만 그것조차 훌륭하게 제압하며 적색의 사자(웃음)라고까지 불리던 곱슬이를 제압했다고 한다.

그 뒤 어째서인지 상혁과 수연이랑 함께 다니게 되었고, 그들에게 '곱슬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고 있다는 것을 들은 다른 학생들은 그 뒤로 마음속에선 언제나 그녀를 '곱슬이'라 지칭하고 있었다.

" 싫어, 난 빠르게 아웃 되서 그늘에서 쉴 거니까 열심히 하라고 강요하듯 말하지 마."

수연은 차가운 목소리로 곱슬이에게 이야기했다. 하지만 곱슬이는 그런 수연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편 가르기에 여념이 없었고. 그럴수록 수연의 시선은 점점 날카로워졌다. 이 반에서 수연이를 저렇게까지 막 대하는 것은 곱슬이가 유일했다.

" 에~. 그렇게 하던지. 하지만 그러면 너 반에서 운동 못하는 걸로 소문날 걸? 맨 날 그늘에서 쉬기나 하고. 그러다가 돼지 된다? 그렇지 않아도 너 요즘 조금 찐 것 같은데."

마치 놀리듯이 이야기하는 곱슬이의 말에 수연의 얼굴이 평상시보다 조금 굳은 것 같다고 아이들은 생각했다.

" ……좋아. 잠깐이지만 어울려줄게. 너의 얼굴에 이 공을 확실하게 명중시켜 보이겠어. 미안하다고 사과해도 봐주지 않아."

" 좋아, 좋아. 그런 의욕 좋지."

사람의 얼굴을 공으로 명중시키겠다는 것은 결코 좋은 의욕이 아니다. 아무튼 상황이 어째서 이렇게 됐냐면 3교시 체육이 시작하면서 부터였다. 중간고사가 얼마 남지 않았기에 체육선생님은 스트레스도 풀겸 남녀 합동피구를 하자고 제안했고, 곱슬이가 신이 나서 찬성하는 바람에 다른 아이들도 얼떨결에 찬성하게 되어버렸다.

그리고 지금처럼 편 가르기를 하는 상황에서 곱슬이와 수연이가 대립을 하게 된 것이다. 내심 피구 같은 것을 하기 귀찮아하던 여학생들은 수연이가 곱슬이와의 말싸움에서 승리하여 쉴 수 있게 되기를 기도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는 곱슬이의 도발에 깨끗이 넘어가버렸다.

도리어 무시무시한 투기를 발산하고 있는 탓에 겁에 질린 여학생들이 속출하고 있었다.

" 상혁이는 우리 편~."

" 저기 곱슬아. 난 수연이 쪽에 있고 싶은데."

상혁은 그야말로 아수라가 되어있는 수연이를 힐끔 바라 본 뒤에 그렇게 이야기햇다. 무슨 말에 저렇게 분노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수연이와 적이 된다면 저 공에 뼈와 살이 분리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핫, 상혁이는 설마 수연이를 좋아하는 거야?!"

" 아니, 그런 건 아니고...."

" 그런 것 아니면 우리 편으로 와. 내가 지켜줄 테니까!"

든든하게 소리치는 곱슬이의 모습에 상혁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곱슬이 편에 합류했다. 그런 그의 모습을 가만히 응시하던 수연은 어쩔 수 없이 두 년놈을 모두 조져 버려야겠구나,라는 눈빛을 강하게 빛냈다. 눈빛 치고는 참으로 구체적이지 않을 수없다.

졸지에 피구는 수연이 팀과 곱슬이 팀으로 나뉘어져 버렸지만 이미 기세를 탄 둘에게 반박을 할 수 있는 학생은 없었다.

수연은 수연대로 이번 피구에서 저 곱슬이의 입을 꾹 다물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곱슬이는 이번 피구에서 상혁이와 멋진 썸씽을 만들어 봐야지~라는 핑크빛 상상을 하고 있었기에 주변의 분위기는 안중도 없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체육선생님은 그것을 그저 '청춘의 열기구나!'하면서 헛헛 웃고 있었다. 어찌 보면 이 사람이 가장 문제일지도.

' 요즘 곱슬이 녀석이 너무 활개 치는 것 같단 말이지. 이번 기회에 아작을 내줘야겠어.'

절대 살찐 것 같다고 말해서 분노한 게 아니다. 수연은 스스로를 다독이며 자신의 팀을 쭉 둘러보았다. 곱슬이의 의견이 상당수 반영된 탓에 이쪽의 팀은 상대편에 비해 운동실력은 그렇게 좋지는 않아보였다. 다만 눈에 띄는 사람은 상혁이를 놀렸었던 삐뚤이 3인방이었다. 저 세 녀석은 나름 양아치니까 운동은 어느 정도 하겠지.

참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멤버 구성이지만 이쪽엔 자신이 있다. 곱슬이는 상혁이놈에게 정신이 팔려있으니 그사이 모조리 작살을 내버리면 이기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수연은 그렇게 결론을 내린 뒤에 정면을 응시했다.

" 삐익~!"

체육 선생님의 호루라기 소리가 운동장 가득 울려퍼졌다.

선공은 곱슬이 쪽에서 가져갔다. 남자는 양손, 여자는 한손으로 공을 던지는 룰이었기에 공을 받은 남학생은 양손을 사용해서 힘껏 정면의 만만해 보이는 여학생을 향해 던졌다.

딱, 거기까지였다. 평범한 학교의 피구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은.

그것은 한 마리 매와 같았다.

강에서 튀어 오르는 물고기를 낚아채 듯.

옆에서 튀어나온 수연은 공중에서 공을 낚아채며 한 바퀴 회전한 뒤에 착지했다. 그런 수연의 행동에 학생들은 뭐라 반응도 하지 못하고 딱딱하게 굳어져 버렸다.

뭐야 저거 무서워.

결코 평범한 여학생의 몸놀림이 아니었다. 마치 국가대표 체조선수들이나 할 수 있을 법한 광경에 학생들은 몸을 굳힌 채 움직이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연이 아니었다.

팔을 뒤로 젖히며 전신의 탄력을 최고조로 이용했다.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지며 마치 중세시대의 투석기처럼 단번에 앞으로 휘둘러졌다. 팔의 탄력뿐이 아닌 허리와 다리의 힘까지 받으며 쏘아진 공은 정면에 있던 남학생의 몸통을 정확하게 가격했다.

쿵-!

그것을 맞은 남학생이 생각하길. 그것은 마치 포탄과 같았다, 라고 상기했다. 숨이 턱하고 막히며 순간적으로 시선이 어둡게 변했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수 미터를 굴러 바닥에 내동댕이 쳐져있는 자신의 모습이 시선에 들어왔다.

어째서 자신이 뒤로 날아간 것인지. 어째서 공은 다시 상대편으로 넘어간 것인지는 미처 인지 할 수 없었다. 단지 그 충격은 뼈 속까지 아팠고 자신은 이 경기에서 아웃되어버렸다는 것만이 남학생의 유일한 생각이었다.

" 너..., 장난이 아닌데?"

그제야 상혁과 희희덕 거리던 곱슬이도 정신을 차렸다. 그야말로 불의의 기습이었다. 너무 방심했던 것일까. 상혁이와 희희덕 거리는 것도 좋지만 우선 경기에 이겨 멋진 모습을 보여주어야만 했다. 꼴사납게 상혁이의 앞에서 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활활 타오르는 수연의 눈과 곱슬의 시선이 마주쳤다. 수연의 승부욕이 곱슬이의 마음속까지 들어오며 그녀의 마음을 불태웠다.

그래. 해보자는 거지.

그것은 마치 용과 호랑이의 모습이었다. 주변에 무거운 긴장감이 감돌았다. 둘의 승부욕이 점차 가볍게 피구에 임하던 학생들의 마음을 바로잡게 만들었다. 어째서인지는 모른다. 단지 진다면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을 무력함과 굴욕을 피하기 위해서였던 것인지도 모른다.

언제부터였던가. 피구라는 운동을 단순한 놀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이것은 엄연한 스포츠였다. 편을 나누고 승리하는 것이 목적인 스포츠.

진지한 수연과 곱슬이의 시선에 학생들은 마음을 다잡았다. 고요한 적막이 감도는 가운데 그 침묵을 찢은 것은 수연의 공이었다. 마치 대포와도 같이 강력한 공. 보통의 사람이 보기엔 빛살과도 같이 빠르게 날아든 공은 또다시 한명의 남학생의 목숨을 앗아갔다.

한방에 한명씩. 무서울 정도로 매서운 공격이었다.

이대로라면 패배한다. 곱슬이의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확실히 수연의 운동신경은 발군이었다. 정확히 상대방을 가격하는 공과 그것이 반동으로 자신에게 돌아오는 방향까지 정확히 계산까지 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절대무적의 피구선수. 운동신경이라면 자신도 자신있지만 저렇게나 예술적인 움직임을 할 수는 없었다. 문무가 완벽히 어우러진 수연의 움직임을 따라잡기엔 자신의 지혜가 부족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상황을 어떻게 타파해야 될까.

고민했다. 계속해서 고민했다. 하지만 답은 보이지 않았다. 무엇을,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빠져나가야 할지.

" 으악!"

또다시 한명의 남학생이 아웃되었다. 차갑고 매서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수연의 모습은 그야말로 전장의 화신과 같았다. 한명을 더 죽인다면 그야말로 전설의 출현. 곱슬이는 그런 수연의 모습에 계속해서 궁리했다.

자신이 모른다면 이미 있던 지식을 빌려오자. 이런 상황에서 분명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이 분명 있을 것이다. 찾아라, 기억해라. 저 공을 받아낼 방법을 모색하는 것.

그때였다.

문득 중세시대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정면에서 강력하게 돌진해오는 적의 병사를 밀집대형으로 퉁겨내는 그런 광경이. 그래, 바로 그것이다. 혼자라면 막을 수없다. 하지만 함께 뭉친다면……!

" 모두 뭉쳐!"

곱슬이가 외침에 수연의 공에 우왕좌왕 하던 학생들이 급히 뭉쳤다. 그리고 그 바로 앞에 곱슬이가 섰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수연이 의아하다는 시선을 보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어차피 뭉치면 더 맞추기 쉬울 뿐이었으니까.

피구에서 뭉친다는 것은 자살행위에 불과하다. 표적이 넓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한 번에 여러 명이 맞을 수도 있는 것이다.

수연은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바로 이 기회에 곱슬이의 안면을 공으로 확실히 뭉개줄 요량이었던 것이다.

팔을 휘두른다. 자신의 손을 떠난 이 공은 반드시 상대방을 요격하고 다시 자신의 손으로 돌아올 것이다. 수연은 자신의 실력에 자신감이 있었다. 그리고 그 자신감은 방심이라는 이름으로 돌아왔다.

쿵-!

육중한 충격음이 운동장 안을 가득 메웠다. 분명 제대로 명중했다. 곱슬이에게 날아간 공은 확실히 그녀의 몸에 명중했다. 하지만 공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어째서?

그 이유는 간단하다. 즉, 공이 상대방에게 잡혔다-라는 것. 수연은 몸이 둔해졌다,라고 생각했다. 아니, 움직일 수 없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곱슬이의 시선에. 그 손에 잡혀있는 공의 모습에!

" 일부로 정면에서 공을 받았다. 그리고 그 충격을 모두와 함께 상쇄했다."

곱슬이는 그런 수연에게 당당히 말했다.

" 어떠냐. 공이 없는데 정면을 노출한 기분은. 지금부터! 너희를 끝장내는데 단 한번의 찬스도 주지 않겠다!"

곱슬이의 손에 잡혀있던 공이 수연의 팀을 향해 쏘아졌다. 전부터 말했지만 수연과 곱슬이의 신체능력은 비등비등하다. 단지 그것을 움직이는 수연이 좀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뿐. 하지만 이렇게 단순히 '공을 던진다.'라는 행위에선 수연과 곱슬이나 그리 다를 것이 없었다.

곱슬이의 공은 빨랐다. 단순히 빠른 게 아니라 수연의 공에 전혀 뒤지지 않을 만큼 빠르고 강력했다. 수연이가 있는 곳을 피해 떨어져있는 학생들의 몸을 확실하게 적중시켰다. 아무리 수연의 몸이 빠르다고 해도 다른 사람도 아닌 곱슬이의 공을 커버치기는 힘든 일이었다.

이대로라면 진다. 수연의 이마에서 한줄기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왜 잊고 있었을까. 피구는 혼자하는 것이 아니다. 피구는 팀 게임인 것이다.

혼자서 활동하는 수연에겐 그야말로 독과 같은 '팀'이라는 것. 수연은 그것을 망각한 자신을 자책했다. 이대로 자신들에게 공이 넘어오지 않을 가능성이 너무나도 많았다. 자신이 상대팀을 상당수 아웃시킨 덕에 선 밖에선 혹여 흘러나왔을 공을 잡아주려고 대기하는 곱슬이 팀의 학생들이 있었고, 설령 어떻게 빼앗는다고 해도 곱슬이를 정면으로 내세운 글라디에이터 전술을 이길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졌다.

라고 천천히 눈을 감을 때. 자신의 발밑으로 굴러 떨어지는 공을 볼 수 있었다.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 것은 쓰러져있는 한명의 남학생과 그 학생의 뒤를 받치고 있는 세 명의 남학생... 삐뚤이 삼인방이었다.

" 너희들은……."

수연이 아연한 얼굴로 묻자, 삐뚤이 삼인방중 가장 키가 작은 녀석이 코 밑을 쓱 훑으면서 씩 웃었다.

" 피구는 팀 게임이야. 언제까지나 보고 있을 수만은 없잖아."

" 그래! 우리는 한 팀이라고!"

삐뚤이 삼인방의 말에 수연이 팀은 전의를 가다듬으며 소리쳤다. 그렇다, 아직 진 것은 아니었다. 아직 이렇게나 많은 학생들이 남아있지 않은가.

수연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래, 여기선 승부를 내야했다. 적의 숫자와 이쪽의 숫자는 비슷. 그렇다면 서로의 장수인 곱슬이와 수연이 중 먼저 아웃되는 쪽이 지게 될 것이다. 일반 학생들이 던져봤자 적 팀은 곱슬이가, 이쪽은 수연이가 커버하니 실질적으로 둘을 아웃시킬 수 있는 것은 그 본인들 뿐 이었다.

" 한 가지 방법이 있어."

수연은 자신이 생각한 바를 삐뚤이 삼인방에게 이야기했고, 그들은 수연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 모 아니면 도인 도박이지만 할 만 할 것 같아."

상의를 끝낸 수연은 자신의 정면에 당당하게 서있는 곱슬이를 응시했다. 이 작전이 통할지는 전적으로 삐뚤이 삼인방의 팀워크에 달려있다.

팔을 뒤로 당긴다. 하나의 활과 같이, 전신의 힘을 실어 공을 쏘아내듯 던졌다. 그 속도는 가히 총알과 같았고 위력은 대포와 같았다. 하지만 그런 무시무시한 공을 곱슬이는 정면에서 받아내었다.

도리어 받아냄과 동시에 수연을 향해 지체 없이 공을 던져내었다. 그 속도는 재빨리 던진 탓에 수연의 공보다는 덜 위협적이었지만 지금의 수연으로선 받을 수 없는 공이었다. 물론 그것을 수연은 확실히 예상하고 있던 바였다.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저 공이 다시 상대편에게 돌아가지 않도록 막는 것!

공이 날아오는 각도와 힘을 계산해서 몸을 기울여 공을 손으로 쳐서 흘려냈다. 잡을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그 힘과 각도가 여의치 않았다. 수연은 아웃됐고 이제 남은 것은 삐뚤이 삼인방과 몇몇 뿐이었다.

" 좋아! 이겼어!"

수연이가 아웃되자 곱슬이와 그 팀원들은 크게 환호성을 질렀다. 이제 이 경기는 이미 이긴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하지만 수연은 생각했다.

승부는, 끝까지 가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것을.

수연이 아웃되는 것을 주의 깊게 보고 있던 탓에 수연의 몸에 맞고 날아간 공이 누구의 손에 들어갔는지 곱슬이는 미처 보지 못했다. 그랬기에 지금 자신의 앞에 일렬로 전진하며 던질 준비를 하는 삐뚤이 삼인방의 모습에 곱슬이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제일 앞에 있는 녀석은 공을 들고 있지 않았지만 덩치가 제일 큰 탓에 뒤에 있는 것이 몇 명인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뒤에 있는 사람이 분명 공을 가지고 있을 터인데 시야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치명적이었다.

하지만 수연은 이미 아웃됐고 평범한 공이 날아오는 것정도는 자신의 신체능력이라면 여유롭게 받아낼 수 있다. 곱슬이는 그렇게 생각했고, 그 생각은 아까 수연이와 마찬가지로 방심으로 다가왔다.

첫 번째 삐뚤이가 고개를 숙임과 동시에 뒤에 있던 삐뚤이가 옆으로 튀어나왔다. 공을 던지는 자세를 취하고 있던 터라 순간 공이 있는 줄 알고 시선이 그쪽으로 따라가 버렸다. 곱슬이의 반사 신경은 경이적이었고, 그랬기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 손은 공을 잡으려고 몸 앞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이었다. 뒤에서 한명이 더 튀어나온 것은.

곱슬이의 손이 위로 올라간 사이 아래에서 튀어나온 키가 작은 삐뚤이는 자신의 혼신의 힘을 담아 곱슬이의 다리 쪽을 향해 팔을 휘둘렀다.

다리.

피구에서 다리란 공을 잡기 무척이나 힘든 불가해의 영역이다. 아무리 곱슬이라고 하더라도 손이 몸 쪽으로 올라간 이상 다시 다리 쪽으로 내릴 수는 없었다.

' 방심했....!'

퉁!

삐뚤이의 공이 곱슬이의 다리에 명중했다. 수연이도 아닌 삐뚤이에게 아웃당한 것이다.

" 앗싸아아아아!!"

삐뚤이 세명은 무릎을 꿇고 환호했다.

바로 이것이, 유연 고등학교 피구팀의 검은 삼연성이라 불리게 될 이들의 시작이었으며. 이 기술은 제트스트림어택이라는 명칭으로 주변 학교의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__

" 라는 꿈을 점심시간에 꾸었어."

오늘 체육시간에 있었던 피구가 언제 그렇게 거창한 스포츠 물로 바뀐 건지 모르겠다. 나는 동아리 부실에서 들고있던 PSP를 내려놓으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가끔가다 곱슬이의 상상력은 나조차 놀랄 만큼 굉장 하달까 어이가 없다고 해야 하나. 애초에 우리학교엔 피구 팀이라는 게 없다. 아니 피구 팀이라는 게 전국적으로 있는 곳이 있긴 한가.

거기다.

" 어떤 이유이든 내가 그렇게 열심히 운동을 할리가 없잖아."

" 하긴 그러네."

참고로 나는 오늘 있던 체육시간의 피구에선 가장 먼저 아웃 되서 그늘에서 쉬고 있었다.

내가 저 꿈에 참여하고 있었다는 것만 제외하면 내용은 대체로 맞기는 한가. 그 삐뚤이 삼인방이 그렇게 피구를 잘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곱슬이는 상혁이한테 달라붙어있던 탓에 나 다음으로 순식간에 아웃 되어버렸었고. 그 아쉬움이 아마 꿈에 반영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뭐, 대충 그렇다는 이야기다.

============================ 작품 후기 ============================

쓰면서 생각하지만 주인공은 참 귀찮은걸 싫어하고 사교성이 없는 녀석이네요. 주인공은 오덕이긴 하지만 애니보단 게임쪽에 치중되어 있는 편이죠. 애니도 보긴 하지만. 뭐 이 글은 주인공 수연이가 점차 그런 성격을 고치고 극복하며 성장하는 성장물이기도 합니다만.

아직 수연이가 넘어가야할 벽은 새어머니와 전생의 벽이 있기 때문에!

그리고 2권 분량부턴 시점이 수연이 1인칭이 상당히 줄어들어요. 3인칭인 경우가 더 많을 것같네요. 이번화는 2권 모의고사 편을 시작하기전 잠시 쉬어가는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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