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몇 시간 전. 윤아와 곱슬이는 지윤으로 부터 한 가지 말을 들었다.
' 내일은, 언니의 친어머니의 기일이니까요.'
즉, 그 이야기는 마치 그 어머니가 자신의 어머니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았다. 마치 전혀 모르는 남을 대하는 듯 한 태도. 하지만 그 눈엔 분명 언니에 대한 연민이 있었고, 걱정이 분명 담겨 있었다.
윤아는 그런 지윤의 눈동자를 믿고 조용히 물었다.
" 말하자면, 수연이는 지금 어머니의 기일을 외면한다는 거니?"
" 외면이라, 그렇죠. 거절하고 있는 거 에요."
지윤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것은 아직 언니가 웃음을 잃지 않았던 시절. 자신과 함께 어울려 놀며 언제나 손을 잡고 이끌어 주던 그때. 그런 과거에도 언니는 단 한 번도 어머니의 기일을 지키지 않았다.
그것은 아마.
" 처음은 아버지 때문이리라 생각해요. 그리고 지금은 저와 어머니 때문인지도 몰라요."
언제였을까.
그래 그것은 아주 오래전.
지금 아버지가 지윤의 어머니와 재혼한 것은 지윤의 나이가 다섯 살이던 때였다. 당시 여섯 살이던 언니는 갑작스레 가족이 생긴 자신에게 웃으며 손을 잡아줬고 이끌어주었다. 하지만 그때에도 언니는 아버지와 전혀 대화를 하지 않고 있었다.
" 전 모든 사정을 정확히는 알 수 없었죠.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계속 언니를 봐오며 추측한 것이지만 처음의 아버지와 언니에겐 하나의 불문율이 있었어요."
그것은.
돌아가신 '어머니'를 말하지 않는 것.
딱히 어느 쪽에서 정한 규칙은 아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언니에게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언니도 아버지에게 어머니에 관해 묻지 않았다. 언니는 어머니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고, 아버지는 언니가 '언니의 어머니'를 무척 닮았기에 할 수 없었다.
" 언니는 죄책감 때문에, 아버지는 현실을 외면하고 싶었기에."
닮은 부녀다. 둘 다 할 수 있는 것은 거절하는 것뿐이었다. 도망치는 것 뿐 이었다. 아버지와 죽은 어머니 모두를 거절한 언니. 자신의 아내가 죽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던 아버지. 둘은 그렇게 거절해왔고, 그렇게 살아왔다.
솔직히 말해, 처음엔 그런 아버지가 자신의 어머니와 재혼한 것이 참 뜻밖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초등학교 6학년 때, 언니의 어머니의 기일에서야 아버지의 심정을 알 수 있었다.
“ 차차 시간이 흘러 아버지는 지금의 가족을 인정하고, 현실을 바라보며 달라지려고 하셨어요.”
아내와 닮았다는 이유로 딸을 바라보지 않았고, 그 골은 점점 깊어져만 갔다. 돌이키려 해도 돌이킬 수 없었고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아버지는 깨달았다. 아내를 사랑했고 너무나 사랑했기에 새롭게 얻은 가족은 아버지에게 도피처를 마련해주었다. 전의 아내와 전혀 닮지 않은 아내. 그리고 수연과는 전혀 다르게 생긴 딸.
하지만 그 도피처에서 아버지는 언제까지나 이렇게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지윤이 초등학교 6학년이 되던 때에야 죽은 아내의 묘소를 떠올리게 되었다. 달라진 가족 속에서 지키고 싶었던 것이 있었기에. 변하려고 노력했다.
" 하지만 언니는 아직 아니에요. 아니, 아버지가 점점 달라져왔기에 더더욱 멀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겠죠."
언니는 죽은 자신의 어머니를 닮았다.
처음은 죄책감 때문에, 아버지를 외면하고 아버지의 뜻에 따라 살아 주었다. 그리고 성장함에 따라 아버지의 마음은 달라졌고, 언니의 외모는 점점 죽은 어머니와 닮아 갔다.
닮아갈 수록, 아버지에게선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괜히 자신이 아버지에게 다가가면 죽은 어머니를 상기시키지는 않을까. 애써 지금의 어머니와 함께 살아가려는 아버지에게 독이 될까 싶었기에.
언니는 계속 아버지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이야기할 수 없었다. 바라볼 수 없었다.
그저 거절하고 도망치는 것만이, 언니가 내린 유일한 해답이었다.
" 있죠. 언니는 집을 좋아하지 않아요. 아버지에게선 도망치고 있고. 지금의 언니의 어머니가 된 저의 어머니에겐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하죠. 저의 어머니와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기에 고칠 수 없지만……. 적어도 아버지와의 관계는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자신의 어머니와 언니에게도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지만 그건 알 수 없다. 알지 못하니 해결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와 언니는 조금이라도 달라질 수 있다. 늦었더라도 바뀔 수 있다.
계속 외면 받았고.
계속 거절당했고.
계속 외면했고.
계속 거절했다 하더라도.
" 언니는 분명 아버지의 피를 잇는. 하나뿐인 딸이니까요."
언니는 아버지의 피를 잇고 있다. 죽은 어머니의 피 역시 잇고 있지만 분명 아버지의 딸인 것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분명 사실이다.
집에서 아버지와 언니는 서로를 외면한다. 대화를 거절하고 서로를 바라보지 않는다.
하지만 다시 바라볼 계기가 있다면.
대화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 온다면.
분명.
분명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확신할 수 없지만, 더 나빠질지도 모르지만! 지윤은 더이상 이렇게 언니가 단 하나뿐인 친부모를 외면하는 것을 계속해서 보고 싶지 않았다.
" 작년도, 재작년도. 언니를 찾아 설득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전 언니를 찾지 못했고 계속 실패했죠."
돌아가신 어머니의 기일에 언니와 아버지를 만나게 하면 뭔가 달라질지도 모른다. 그렇게 처음 생각한 것은 자신이 초등학교 6학년이던 때였다. 아버지와 함께 처음으로 돌아가신 어머니의 묘소에 간 바로 그날. 지윤은 이곳에 언니와 아버지가 함께 있었다면, 무언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어머니가 도망치는 것도. 아버지가 언니를 외면하는 것도, 모두 돌아가신 어머니가 계기였으며 시작이었다. '죽은 어머니'를 서로 외면했기에 서로를 거절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기일이라면, 죽은 어머니의 묘소 앞이라면 무언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어린 마음에, 지윤은 그런 아버지를 보며 언니를 데려오기 위해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언니는 찾을 수 없었다. 다음 해에도, 그 다음 해에도.
자신은 언니를 찾을 수 없었다.
이번에도 그럴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며 길을 걷고 있었다.
" 하지만 당신들이 말을 걸어줬죠. 언니의 친구라고."
여태껏 언니에겐 친구가 없었다. 그것은 언니가 남을 거절하는 버릇이 있기 때문도 있었고, 그 아름다움과, 고고함으로 인해 보통 사람이 쉽게 다가가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랬기에 '친구'라 자청한 이들을 믿을 수 없었다. 새 학기가 시작 한지 겨우 5일이 지났을 뿐이었다. 몇 년간 친구를 사귀지 못하던 언니가 겨우 5일 만에 두 명의 친구를 만들었을 것이라고는 조금도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그 두 명은 정말로 언니의 친구였다. 핸드폰에 서로 전화를 저장할 정도로 친한 친구였던 것이다. 언니가 남에게 자신의 번호를 알려주다니, 지윤으로선 그야말로 컬쳐 쇼크만큼이나 큰 충격이었다.
크게 놀라지 않은 척했지만, 사실 정말 크게 놀랐다. 자칫했으면 기절했을지도 모른다.
" 다시 한 번 물을게요."
지윤은 자신을 바라보는 윤아와 곱슬이를 응시하며 날카로운 눈을 한 체 천천히 이야기했다. 그 눈이 자신의 언니와 무척 닮았다는 것을 본인은 알고 있을까.
" 언니를 찾는 것을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윤아와 곱슬이는 그런 지윤의 말에 서로를 마주보았다.
당연히, 두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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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그럼 먼저 이맘때의 여학생이 갈 수 있는 장소를 생각해볼게."
윤아는 스마트폰을 꺼내 이 근방 동내의 지도를 불러왔다. 옆에서 뚱한 얼굴의 지윤과 곱슬이가 지도를 보며 자신이 생각하던 의견을 하나씩 피력했다.
" 솔직히 이 근처는 계속 찾아봤지만 머물 만한 곳은 보이지 않아요."
진지한 얼굴로 지윤은 말했다. 하지만 곱슬이는 그런 지윤을 흘깃 바라본 뒤 윤아의 손에 들린 스마트폰 지도에 손가락을 꾹꾹 누르며 몇 가지를 가리켰다.
" 하지만 여기나 여기. 호텔이나 모텔 같은 곳도 있는데?"
" 흥. 언니가 그런 불결한 곳에 들어가서 잘 턱이 없잖아요. 야만인 같으니라고."
" ...모텔은 그렇다 쳐도 호텔은 왜 불결한 곳인데."
어쩐지 여태껏 수연이를 단 한 번도 찾지 못한 것인지 알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지윤은 눈을 반쯤 감은 게슴츠레한 눈으로 윤아의 스마트폰을 빤히 응시하다가 문득 생각났는지 천천히 이야기했다.
" 혹시 거기 표시된 성당에서 신부님을 도와 하루동안 머물거나 하지 않았을까요."
" 너에게 있어 수연이는 그렇게 경건한 이미지냐."
거기다가 성당에서 하룻밤을 보낸다니. 무슨 장발장도 아니고.
" 경건...이랄까. 딱히 그런 건 아니에요. 언니는 무표정하고, 성격도 나쁘고. 하는 말은 독설 뿐에 집에서는 하루 종일 게임만 하고 공부는 가끔씩 한 두 시간씩만 할뿐인데, 그런 주제에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무척이나 아름다운, 그런 완벽한 사람이지만요-! 그래도 고등학생이라고요. 호텔이나 모텔 같은 곳에 묵을 리가 없겠죠."
곱슬이는 단호하게 말한 뒤 팔짱을 끼는 지윤을 짜게 식은 눈으로 바라보며 한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 이 녀석, 엄청난 시스콘이다.'
라는 한 가지 사실을.
아니 애초에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언니와 똑같은 머리 스타일에 비슷한 패션까지.
누가 보아도 좋아하는 언니를 힘껏 따라 하고 있는 여동생의 모습이 아닌가.
그런 주제에 집에선 매번 언니를 무시하고 매도하고 있는 건가. 성가신 것도 정도가 있다. 자신이 수연이었다면 분명 패버렸다. 마구 울려 버린 뒤에 손들고 벌을 서게 했을 것이다.
좋아하던지 싫어하던지 둘 중 하나만 해! 라고 하면서.
" 으음~. 호텔이나 이런 숙박업소가 아니라고 한다면 수연이가 있을만한 곳이라... 아 그렇지 여긴 어때?"
곱슬이와 지윤이가 마땅한 의견을 말하지 못하자 윤아는 지도를 바라보며 곰곰이 생각하다 한 가지 장소를 가리켰다. 윤아가 가리킨 곳은 '학교'였다.
" 학교라 부실이라면 확실히 있을 법하네. 그 녀석 PC나 게임기도 잔뜩 가져다 두었고."
" 그러네요, 언니라면 학교에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간만에 둘의 의견이 일치하는 대답이 나왔다. 윤아는 여기선 학교까지 조금 머니까 버스를 타고 갈까~하고 생각하다가 문득 '학교'라는 것에 관해 한 가지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아침에 학교에다가 숙제를 놓고 왔다고 했던 자신의 하나뿐인 소꿉친구의 모습이었다.
" 아~. 그러고 보니 오늘 상혁이가 학교에 숙제를 놓고 와서 찾으러 간다고 했어. 부실에 놓고 왔다고 했으니 분명 그곳에 수연이가 있었다면 만났을 거야."
그렇게 말한 윤아는 지금쯤 학교에 갔다가 돌아왔을 자신의 소꿉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혹시 오늘 수연이 봤어?'
윤아가 그렇게 적어 문자를 보내자 답장은 채 몇분이 지나지 않아 바로 돌아왔다.
'지금 우리집에 같이 있는데.'
젼혀 예상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만났더라도 '응 만났어.' 라던가 '무슨 소리야?' 그런 식의 답변을 생각하던 윤아와 곱슬이는 굳은 얼굴로 문자를 계속해서 응시하고 있었다. 그런 둘의 모습을 의아하다는 듯이 바라보던 지윤은 굳어 있는 둘을 향해 물었다.
" 한 가지만 묻죠. 방금 상혁이라는 분에게 문자한 것 아니었나요?"
" 그렇지."
" 이름을 들어보니 남성분이신 거 같은데 맞나요?"
" 물론."
" 그런데 지금 그 분이 언니와 단둘이 자신의 집에 있다고 문자가 온 건가요."
" 우리 아빠가 있기는 한데……."
윤아 본인의 아버지라면 어떻게 튈지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 즉, 지금 수연은 상혁이와 단 둘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이었다. 곱슬이와 윤아는 어째서 둘이 함께 있는 것일까-하고 진지하게 고민해 봤지만 답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지윤이는 지윤이데로 약간 혼란스러웠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언니가 어디에 있는지 알았다는 것이다.
" 그럼 서둘러 가죠. 언니가 다른 곳으로 가기 전에."
그런 지윤의 말에 곱슬이가 의아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 응? 네 언니가 남자랑 단 둘이 있다는데 신경쓰이지 않아?"
" 그보다 언니를 찾는 게 중요하니까요."
이상하다는 듯이 물어보는 곱슬이의 말에 지윤은 재차 짜증이 치솟은 듯 거친 어투로 대답했다. 이상하네, 아까 전 느낀 그 '시스콘력'이라면 좀더 다른 반응을 보일 줄 알았는데.
" 나는 막 네가 언니에게 남자라니! 라는 식의 반응을 할 줄 알았거든."
" 하, 바보 같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멍청할 줄은 몰랐네요. 제가 그럴 리가 없잖아요. 언니가 보는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시스콘도 아니고."
단호하게 말하는 지윤의 모습에 곱슬이는 자신이 착각이었나 싶어 고개를 갸웃하는데, 윤아는 무언가를 발견한 듯 손가락으로 아래를 가리키며.
" 아, 지윤아 지금 너 손이 막 떨리고 있는데."
" 잘못 보신 거예요. 빨리 언니가 있는 장소로 안내 해주도록 하세요. 당장."
정말이지 성가신 녀석 이다.라고 곱슬이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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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외였다.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상혁이의 집에 있었고, 같이 산다는 윤아가 아닌한 다른 외부의 사람과 마주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의 예상대로 윤아와는 만났고, 아마 함께 있었는지 곱슬이도 같이 들어왔다.
하지만 전혀 접점 따위는 없어야 할 인물까지 함께하고 있었다.
나의 여동생.
하나뿐인 여동생 '이 지윤'이.
저 세명이 어째서 같이 들어온 지는 모른다. 거기다가 나를 보며 '찾았다'라고 하는 지윤이의 말을 들어보면 오늘 계속해서 나를 찾아 밖을 돌아다녔다는 듯이 말하고 있었다.
어째서?
지윤이가 나를 찾아야 할 이유 따위는 없을 텐데. 그도 그럴게 지윤이는 집에서 나 때문에 늘 비교 당하거나 혼나거나 했으니까, 매일 싫어하는 티를 잔뜩 내고 있었으니 말이다. 설령, 지윤이가 나를 싫어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나를 찾아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내가 주말에 집에 들어오지 않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었고, 특히 내일은 아버지와 만나선 안되는 어머니의 기일이었다.
" 어머, 무슨 일일까?"
애써 마음을 가다듬고 차분하게 물었다. 평소와 달라진 것 없는 무미건조한 음성으로. 하지만 지윤이는 전혀 상관없다는 얼굴이었다. 도리어 짜증이 감득 담긴 시선으로 나를 노려보며.
" 무슨 일이긴, 설마 진심으로 물은 것일까? 언니를 찾으러 왔을 뿐이야. 분명 방금 말했을 텐데?"
누구 동생 아니랄까 봐, 말투에 가시가 잔뜩 이다. 전부 내 탓인가. 그렇다면 조금 반성해야 할지도.
" 네가 나를 찾아올 이유는 없잖아. 내가 주말에 들어가지 않는 것은 늘 있는 일인걸."
" 그래. 하지만 내일은 다르지. 어머니의 기일이잖아."
어머니의 기일.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나쁜 의미로 두근거렸다. 여동생에게 직접 그런 말을 들은 것은 처음이었다.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지 않을 텐데 여동생은 태연하게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 언제까지 피할 셈이야, 언니. 아버지는 이미 마주보고 있어. 이제 언니만 마주보기만 하면 되."
마주본다. 내가 어머니의 기일에 묘소를 찾는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마주본다. 지금까지 등을 돌리고 외면해 왔던 것을 봐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지윤이도 모를 턱이 없었다.
그것은 애써 안정을 찾기 시작한 지금의 가정에 '나'라는 맹독을 푸는 것이다.
나는 아머니와 닮았다.
무척 많이 닮았지.
아버지가 계속 나를 외면해버릴 정도로 닮았달까.
아버지는 어머니를 사랑했다. 무척이나, 아주-, 절대적으로 사랑했다. 하지만 그런 아버지에게서 어머니를 빼앗은 것은 바로 나.
그렇기에 나는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한다.
나를 바라보고 싶지 않은 것을 인정한다.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아내를 빼앗은 존재다. 설령 딸이라도 증오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나를 증오하지 않았다. 딸이었기에, 미워하지 않으려 했다.
아버지가 한 것은 단지 나를 외면한 것뿐이었다.
외면 받는 것은 익숙하다. 전생에서도 계속 외면 받았고 현생에선 태어나자마자 아버지에게 외면 받았다. 그것이 조금 충격이긴 했지만 살아가는 데에 문제는 없었다.
아버지는 다시 재혼을 했고, 나는 새로운 어머니에게 최선을 다해 사랑받으려고 했다.
결국 그것도 실패해 버렸지만.
아버지에게도, 새로운 어머니에게도 실패해버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고립되는 것뿐이었다. 그것이 정답이었는지 아버지는 점차 안정을 찾아, 내가 중학교 1학년때쯤 어머니의 묘소를 찾아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어머니의 기일에, 어머니의 묘소를 찾아간다면 분명 아버지와 마주보게 될 것이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묘소 앞에서 아버지와 함께 어머니의 죽음을 마주보게 될 것이다.
과연 아버지는 죽은 어머니와 꼭 닮은 나를 어머니의 묘소 앞에서 바라보며 어떻게 반응하실까. 지금까지 참아 왔던, 매주 금요일마다 나를 찾아와 울부짖을 정도로 그리워하던 어머니를 계속 잊어 가실 수 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닮은 것이 있다면 인간은 그것을 잊지 않고 계속 떠올릴 밖에 없었다. 자신이 잊고 싶다고 멋대로 잊어버릴 만큼 인간은 편리한 생물이 아니다.
내가 어머니의 묘소에 간다는 것은 단순한 괴롭힘이며, 아버지를- 나아가 가정을 어떻게 만들지 모를 '맹독'이다.
" 언니는."
내가 말을 하지 않고 조용히 있자 지윤이는 차가운 얼굴로, 무표정하게 무감정하게. 무미건조하게 이야기해 왔다. 나와 전혀 닮지 않았음에도 그 얼굴은 무척이나 나와 닮아 있었다.
" 역시 내일 묘소에 가지 않을 생각이지?"
대답하지 않았다. 지윤이도 그것이 내가 '가지 않는다.'라는 것을 돌려 표현한 것이리라 이해했을 것이다. 그것을 이해하고 돌아가 주었으면 그야말로 좋았을 텐데.
녀석은 전혀 상관없다는 것처럼 내 옆에 앉으며 태연하게 이야기했다.
" 그럴 거라 생각했어. 하지만 나는 언니를 내일 반드시 어머니의 묘소로 끌고갈거야."
포기하지 않은 거야? 내가 고개를 돌려 지윤이를 바라보자 지윤이는 말 그대로 '아 진짜 짜증나지만 어쩔 수 없지'라는 얼굴로 거칠게 이야기해 왔다.
" 오늘 여기서 자고 갈 생각이잖아. 오늘 밤 세도록 설득할 거야. 도망갈 생각은 마. 여기 언니를 잡으려고 준비 중인 사람은 잔뜩있어."
" 전혀, 쓸모없는 일일 텐데."
" 그런 건 내가 정해. 언니는 그저 귀를 열고만 있으면 된다고."
아무래도 단단히 마음을 먹은 것인지 지윤은 나의 말을 조금도 들을 마음이 없어보였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니 상혁이와, 윤아와, 곱슬이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도망이라도 친다면 진심으로 붙잡을 생각인 모양이었다.
뭐야 대체.
너무 갑작스럽잖아.
" 이래서 좋은 것은 없어. 이런 확실치 않은 방법으로 네가 나에게서 얻고 싶은 게 뭐지?"
내가 차가운 음성으로 날카롭게 쏘아붙였지만 지윤은 전혀 관심 없다는 듯 태연하게 소파에 놓여있던 과자 바구니에서 과자를 집어먹으며 작게 답했다.
" 몰라도 상관없잖아, 그런 건."
대답해줄 마음은 조금도 없는 듯 했다.
그런 나의 여동생을 바라보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작게 한숨을 쉬는 것뿐이었다.
============================ 작품 후기 ============================
여동생 이지윤양. 언니를 닮은 긴생머리에 거의 흡사한 패션센스를 가진 여동생. 다만 언니와 달리 외모가 무척이나 어려보여 대부분 초등학생정도로 본다. 수연이와는 한살 어릴뿐이지만 키는 머리하나가 작을정도.
아무튼 이제 두편정도면 1권 분량도 끝이군요.
과연 수연이는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게 될 수 있을 것인가! 두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