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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공략당해 버렸다-6화 (6/153)

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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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적.

천적이란 뭘까. 상대하기 힘든 적? 아니 그건 난적이겠지. 천적이란 자신이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상대를 말한다. 개구리에겐 독수리나 뱀. 사슴에겐 사자나 호랑이와 같은 존재. 가끔가다 스포츠나 게임 경기를 보다 보면 어떤 선수는 어떤 선수의 천적이죠! 라고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솔직히 그런 것은 과장된 표현이라 생각한다.

인간 대 인간 관계에서 천적이란 기껏해야 현재라는 시간 속에 놓인 난적을 표현하는 말이다. 양쪽이 다 인간인 이상. 그 관계는 언제 뒤집힐 수 있다는 것이다. 본디 '종'의 레벨에서 '절대로' 넘어설 수 없는 벽을 표현하는 천적이라는 표현은 인간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고 생각했지만.

" 어머머머. 정말로 아름다운 후배네요. 눈에서 느껴지는 기운도 선량하고, 윤아의 말처럼 착한 아이 같아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인간 대 인간 관계에서 '천적'이라는 말을 이해한 기분이다.

이길 수 없다.

당할 수 없다.

견딜 수 없다.

도망칠 수 없다.

아름다운 금발의 푸른 눈을 지닌 이 소녀에게. 그야말로 나는 발가벗겨진 소녀에 불과했다. 이 세상에 태어나. 이 몸을 지니고 산 역사상 가장 스스로가 무력하다고 느껴진 순간 이었다.

어째서?

그녀가 딱히 나를 억압하거나 강제하는 느낌은 없었다. 도리어 그 반대였다. 나라는 존재를 모두 포용하고, 자유롭게 풀어놓을 수 있는 바다와 같았다.

" ...윽……."

움찔, 하고 뒤로 물러섰다. 세상에 저렇게나 순진무구한 눈이 있을 수 있다니. 내가 도저히 감당할 눈동자가 아니다. 저건 진심으로 나를 착한 아이라고 믿고 있는 눈동자다.

오랜 시간 단련된 아웃사이더 기질은 나를 향한 악의나 비난과 같은 것엔 익숙해져 있었고. 여기에 환생한 뒤엔 이 아름다운 외모로 상당한 호감을 받는 데에도 익숙해져 있었다.

하지만 뭐랄까- 지금 눈앞에 있는 선배에게서 느껴지는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설명하자면 '믿음'. 순수하게 나라는 사람을 강하게 '믿고 있다'라는 마음이 강하게 느껴졌다.

몰랐다.

내가 이렇게 순수하게 마주 봐오는 시선에 취약했을 줄이야. 상혁이나 윤아에게서 느껴지던 심술 같은게 선배의 앞에선 완전 차단이라도 되는 듯한 기분이었다.

역시 효녀 심청. 나 같은 존재는 옆에 있는 것만으로 정화가 되어 버린다는 건가.

" 으흐흐~. 역시 놀랐지! 청이 선배는 한국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거든. 얼굴은 이래도 완전 한국 사람이야."

윤아는 내가 놀랐다는 것에 매우 만족한 듯이 청이 선배에 대해서 말했다. 호오, 호오 그렇구나. 혼혈아 학생은 처음 봤어. 혼혈아들은 대체로 외국인 학교에 다니다 보니...

" 난 솔직히 수연이도 혼혈아인 줄 알았어. 이국적이라고 해야 할려나, 무척이나 아름답게 생겼다고 생각해."

청이 선배는 푸른 눈동자를 나를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말 그대로 새하얀 웃음. 악을 멸하는 미소에 나는 나 스스로도 모르게 가슴을 부여잡았다.

" 왜 그래?"

" 뭔가 스스로의 악함을 깨달은 듯한……."

요즘 여러 가지 심술을 많이 부렸는데 그것이 모조리 카운터로 돌아온 기분이다.

" 자자, 그럼 모두 가까운 카페라도 가서 이야기 하는 게 어때? 오늘은 내가 낼 테니까."

청이 선배는 우리들을 바라보며 밝게 이야기해 왔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에게 빚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므로 내 것은 내가 낸다고 말하려 했지만, 그런 나의 마음을 알았는지 윤아가 나의 입을 막으며 검지를 좌우로 까딱였다.

" 괜찮아, 괜찮아. 청이 선배 엄청, 엄청 부자라고? 이정도 내는 걸로 그리 신경도 쓰지 않으실 거야."

" 으음……."

아무리 그래도 꺼림칙한 마음이 들었지만 나보다 훨씬 오랜 시간 교제한 둘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겠지. 나는 그렇게 애써 납득하며 청이 선배의 뒤를 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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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카페에 도착해 자리에 앉으니, 생각보다 학생들이 우리 말고도 많이 있었다. 사실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카페에 와 봤어야 알지. 나에게 있어 이 카페라는 곳은 리얼충을 위한 공간이었으며 늙어 죽을 때까지 절대 못갈 장소 1순위로 꼽고 있는 곳이었다.

여자로 다시 태어난 뒤로 언젠가 한번 가볼까-하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생각만 하고 결국 가보지 못한 곳인데 이런 식으로 오게 될 줄이야.

기념일인가. 기념일로 정해야 하나. 이름은 '카페에 간 첫날'이라는 것으로...

" 자자, 마시면서 대화 하는 게 편하니 각자 뭐 주문할지 말하렴."

청이 선배의 말과 함께 옆으로 다가온 웨이터 비스무리 한 것이 고개를 숙였다. 카.. 카페에도 주문받는 사람이 있잖아. 뭘까, 뭐라고 해야 할까. 웨이터인가? 웨이터는 그 뭐지 레스토랑에 있는 거 아닌가?

일본 애니에서는 웨이트리스가 다가오곤 했으니 남자로 치면 웨이터라고 하는 게 맞겠지?

내가 신 문물에 감탄하며 쉽사리 주문을 하지 못하고 있던 사이, 나머지 인원은 모두 주문을 한 듯싶었다. 내가 아무 말도 안하고 주변만을 두리번거리고 있자 옆에 앉아 있던 윤아가 내 어깨를 쿡쿡 찌르며 말했다.

" 뭐해. 수연이도 어서 주문해야지."

" 어? 아아. 나는 물론-"

주문? 뭘 주문하지? 카페니까 커피겠지. 커피라... 내가 먹어본 커피는 편의점 커피가 전부인데. 커피 상표가 여기서 주문할 수 있는 커피명은 아닐 것이다. 그 뭐지... 난 단 게 좋은데. 단 커피의 이름은 뭐더라. 설마 자판기 커피에 있는 블랙이라던가... 아니 블랙말고 또 무슨 이름이 있는지 기억이 않나. 설령 기억이 난다고 해도 자판기에 있는 커피 이름이 이런 카페에도 파는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잖아?

' 아니, 아니, 이렇게 고민할 필요 없잖아. 그냥 메뉴판을 보면-.'

그렇게 생각하며 메뉴판을 찾는데 하필이면 그 메뉴판이 상혁이의 오른쪽 팔꿈치 아래에 껴 있었다. 내가 손을 뻗어 빼기에는 멀었고, 어쩔 수 없이 상혁이를 불러 메뉴판을 받아야 하는 위치였다.

아니 잠깐.

상혁. 유상혁은 지금 커피를 주문한 건가? 대체 무슨 재주로? 설마 내가 저 녀석보다 현실레벨이 낮다는 그런 말이야? 그럴 리가……. 물론 전생에는 두려움에 오지 않았지만 현생에는 이것 저것 자신을 높이느라 오지 못했을 뿐이야. 단지, 단지 그뿐이라고.

막상 이렇게 되니 메뉴판을 보고 주문하면 상혁이도 한 것을 하지 못한 몹시 무지한 존재가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들킨다면 분명 경멸당할 거야. 바퀴벌레- 아니 박테리아 레벨로!

' 생각하자. 방법은 분명이 있어. 하지만 시간이……. 슬슬 윤아나 상혁, 청이 선배도 나의 이상을 눈치 챘을지 모르고.'

나에게 남은 시간은 불과 몇 초. 그 사이에 어서 커피 이름을 알아내야 한다. 아무거나 좋아. 우선 처음에 떠올린 것은 가게의 벽에 붙어 있는 메뉴판이었다. 하지만 고기집도 아니고 메뉴판이 사방팔방 붙어 있을 턱이 없었다. 아마 있기는 한데 나의 시야에는 보이지 않는 미묘한 위치에 있는 모양이다.

머리에 식은땀이 송글송글 맺히는 것이 느껴졌다.

이렇게 핀치에 몰린 것이 얼마만 인가. 적어도 현생에는 없었다. 전생에야 사는 게 핀치였으니 아무래도 좋지만 이 세상에 태어난 뒤로 이렇게 식은땀이 생기도록 막다른 길에 몰린 적이 없었다.

하필. 하필 다른 것도 아닌 커피라니. 카페에 간다고 아무 생각 없이 쫄래쫄래 쫓아온게 잘못이었다. 청이 선배에게 완전히 정신이 팔려 있어서 제대로 판단을 못한 나의 실수다.

어떡하지. 어떻게 해야 하지! 커피 때문에 경멸 당해버려.

누가 만들었지.

커피를 누가 만들었더라. 대체 누가 커피 따위를 만들어서!

젠자아아앙! 그래, 맞아. 칼디였나. 칼디였던가. 그 아프리카 원주민 녀석. 커피따위를 발견해가지고 나를 이렇게 곤란하게 만들다니. 내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 아프리카 원주민을 찾아가 커피에 대한 기억을 완전 말소 시켜놨을 것이다.

' 이수연! 정신 차려!'

아니야, 아직 포기하긴 일러.

집중하자. 분명 뭔가 떠오를 거야.

시각을.

청각을.

미각을.

촉각을.

후각을.

오감을 극한까지 집중시킨다. 대답까지 남은 시간은 몇 초일까. 이 순간 나는, 분명 지금까지의 나를 뛰어넘었다.

바로 그때였다.

그 순간. 심장이 크게 한번 뛰었던 바로 그 순간.

나를 구제한 것은 시각도. 미각도. 촉각도 아닌-청각이었다.

카페의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한줄기 노랫소리.

-아메리카노~, 좋아. 좋아, 좋아.

그것은 마치. 천상에서 들려온 천상의 노랫소리였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의 마음이 이러했을까. 아니면 깨달음을 얻은 붓다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그래 이거다. 바로 이거야. 저거 분명 커피 이름이야. 어디에선가 들었다고. 아메리카노. 어떤 종류의 커피인지는 모르지만 노랫소리를 들어보면 무척이나 달고 감미로운 커피인 게 분명하다.

그랬기에 나는 자신했다.

그러했기에 나는 당당했다.

나의 귀에 들려온 소리를.

그 소리를 믿은 나를.

바로 이 순간을.

나는 더 이상 없을 만큼 우아하게.

고고하고 아름답게, 답했다.

" 아메리카노 한잔."

" 아, 그래 아메리카노지?"

최대한 우아하게 말한 나의 말에 윤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지막으로 나의 커피를 웨이터로 추측되는 사람에게 말했다. 좋아, 나 최고. 완벽했어.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온 아메리카노라는 커피는 나의 예상과는 달리 무척 썼다. 뭔가 달달해 보이는 다른 아이들 커피와 달리 나의 것은 뭔가 커피에 물이라도 탄 듯. 한약과 같은 모양새였다.

다시는 아메리카노 따윈 믿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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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아! 이제 수다 타임~!"

홀짝 홀짝 커피를 마시며 윤아는 활기차게 소리쳤다. 참고로 나는 아메리카노를 빤히 응시한 체 이걸 어떻게 처분해야 되나 한참 고민하고 있었다.

" 자, 그럼 우선 오늘 친구가 된 수연이에 대해 궁금한 것부터 물어 볼까나~?"

아메리카노를 뚫어져라 응시하던 나는 윤아의 말에 고개를 슬쩍 들며 눈가를 살짝 찡그렸다. 기분이 나빠서였기보단, 볼이 살짝 붉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까부터 그랬지만 '친구'라는 말은 나에게 있어 아직 영 간질간질한 이름이었다.

" 흐응, 상관없어. 얼마든지."

내가 태연하게 대답하자 의외로 가장 처음으로 질문한 것은 상혁이도, 윤아도 아닌 청이 선배였다.

" 저기~, 소문으로 들었는데 수연이가 정말 이번 1학년 신입생 대표야?"

윤아에게 들은걸까. 이러니저러니 해도 학생으로서 그런 것은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 예."

" 대~단해! 이렇게나 예쁜데 공부까지 그리 잘하다니. 세상은 불공평한 걸~."

나의 답변에 청이 선배는 정말로 대단하다는 듯이 박수까지 치며 감탄해 주었다. 너무 순수하게 감탄해 주어서 나로선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무척이나 어색했다.

그런 나의 모습을 보던 상혁은 문득 뭔가가 생각난 듯 청이 선배를 향해 빙긋 웃으면서 말했다.

" 참, 선배. 그리고 수연이는 의외로 저와 취미가 비슷한 듯해요."

" 죽어라."

" 뭐, 뭐야 이번엔 바로 사형선고 확정?!"

자칫했으면 손에 들고 있던 아메리카노를 녀석의 머리 위로 뿌릴 뻔했다. 안타깝게도 상혁이의 위치와 나의 자리는 약간 떨어져 있어서 할 수 없다는 것이 무척 아쉬웠다.

"....아메리카노를 든 체로 내 머리 위를 바라보는 행동은 그만 해줘..."

실례.

" 아, 그렇지 나도 들었는데 정말 수연이도 상혁이와 같은 오타쿠 인거야?"

" 오타쿠는 아무래도 좋지만 상혁이와 같은 이라는 말은 정정해줘."

" 아... 미안, 심한 짓을 해 버렸네."

" 나와 같으면 그렇게나 울 정도로 심한 거야? 이럴 때는 내가 울어야 되는 거지?"

" 아냐, 아냐 상혁아. 상혁이의 취미, 선배는 응원하고 있어♪"

마지막 선배의 말에 순수한 아이의 잔인함을 목격한 기분이다.

" 뭐, 나름 비슷해. 분명 취미야."

전생의 나에게 덕밍아웃은 외톨이의 상징이었지만 지금에 와선 밝혀도 딱히 큰 문제가 되지 못한다. 학교 전체로 퍼져 나가면 좀 이미지에 타격은 있겠지만 전처럼 크게 상관하진 않는다. 지금의 나는 그 정도로 흔들릴 만큼 서투르게 스스로를 갈고 닦지 않았으니까.

나는 아름답고, 뛰어나며, 우수하다.

" 헤에~. 뭐라고 해야하 나. 상혁이가 말하면 '아! 오타쿠구나!' 싶은데 수연이가 그렇게 말하니 정말 취미일 뿐인 기분이네."

" 뭐어, 나도 인정. 같은 남자들이 말하면 뭘 그리 빙빙 돌려 말하나 동종 주제에! 이런 생각이 들지만 수연이는 외모도 그렇고 분위기도 그렇고... 오타쿠라고 할 수가 없달까?"

나의 말에 윤아와 상혁은 서로의 의견을 피력하며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소꿉친구 아니랄까봐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하는 것을 보니 약간 재미없어져서 손에 들린 아메리카노를 찰랑찰랑 흔드는데-내 입엔 도저히 써서 먹을 수가 없었다.- 우리의 이야기를 즐겁게 경청하던 청이 선배가 커피를 다 마셨는지 웨이터를 불렀다.

" 아, 저기 여기 아포카토 한잔 부탁드려요."

아포카토?

그건 뭐지. 눈을 가늘게 좁히며 아포카토라는 이름의 커피가 나오길 기다리는데 상혁이와 윤아의 대화는 마침 끝이 났는지 다시 대화의 화살이 나에게로 돌려졌다.

" 혹시, 혹시 수연아. 너 혹시 부 활동 같은 건 어때? 관심 있어?"

부 활동?

그러고 보니 유연 고등학교는 학교가 일찍 끝나다 보니 부 활동이 꽤나 장려되고 있었지. 하지만 이제 입학한 시점에서 부 활동을 찾아보는 건 조금 이르지 않나 싶다. 물론 입학식 때도 그렇고 몇몇 부는 이미 크게 홍보하고 있기는 하지만 딱히 관심 있는 부는 없었다.

내가 들어간다면 기껏해야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관련 부일 텐데 그런데 들어가 봤자 나에게 접근할 용기가 있는 애들이 있을 턱도 없고 재미도 없다.

하지만 윤아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니 소개하고 싶은 부가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부는 아니겠지. 상혁이도 가만히 있는 것을 보면 녀석도 알고 있는 모양이다.

" 소개할 만한 부라도 있는 걸까나?"

고개를 살짝 기울여 머리카락이 흘러내리게 하면서 눈을 가늘게 뜬다. 턱에 팔을 괸 체로 무미건조하게 이야기하자 상혁이 머리를 긁적이며 담담히 말했다.

" 그렇다고 해야 하나-. 딱히 강요하는 것은 아냐. 단지 이렇게 된 거 방과 후에 이렇게 만나는 것보단 부실에서 대화라도 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해서."

" 호오-."

" 원래 좀 더 천천히 말할 생각이었는데 기왕이면 선배도 있을 때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렇다는 이야기는 청이 선배도 관련되어 있는 부라는 것일까.

그런 나의 생각을 알았는지 상혁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사실 청이 선배가 있는 부가 부의 선배들이 올해에 모두 졸업해 버려서 부에 혼자 남으셨거든... 이대로 신입 부원이 들어오지 않으면 부서가 폐부인지라. 나랑 윤아가 들어가도 세 명이고. 학교 규칙상 부서가 퇴부 되지 않으려면 네 명은 있어야 하거든."

그런 건가.

원래 둘이서 청이 선배가 있는 부에 들어가기로 하고, 남은 한명은 구할 요량이었는데 마침 나라는 녀석이 나타나서 덩달아 입부시킬 생각인 듯싶었다. 강제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지만 간절한 얼굴이긴 했다. 딱히 나는 거절할 생각은 별로 없는데. 애초에 요즘 라노벨이나 애니메이션 대세도 대체로 부 활동이 주 내용이라 관심 있기도 했고.

상혁이나 윤아가 들어간다면 귀찮기 그지없는 운동과 관련된 부도 아닐 것이다.

" 그래서, 무슨 부지?"

턱을 괸 체 윤아를 지긋이 응시하자 그녀는 내 말이 긍정적으로 다가온듯 빙긋 웃으며 말했다.

" 부 이름은 '변화하는 일상'. 줄여서 변상부."

무언가 변상해야 될 것 같은 수상하기 짝이 없는 부서 이름이다.

" 역시 귀가부가 좋겠네..."

" 에에?! 어째서!"

" 그런 이름을 듣고 수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게 도리어 이상한 게 아닐까."

도저히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는 이름이다. 요즘 고등학교 부 이름은 다 이런 건가. 소설에서 읽은 부들은 적어도 딱 들었을 때 오오 그럴싸하구나 싶었는데. 봉사부라던가- SOS단이라던가.

그런 우리의 대화를 듣던 청이 선배는 방금 나온 아포카토를 손에 든 체 방긋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아, 저게 아포카토인가? 커피에 아스크림이 들어 있어. ...먹어보고 싶다. 달아 보여. 진작 저거 시킬걸.

" 신입생도 들어오니 사실 이름도 바꿀까 해서 생각해본 부서 이름이 있는데 들어볼래?"

" 뭔데요?"

" 인당수."

당장이라도 몸을 던져야 할 것 같은 부서 이름이다.

아니, 그걸 떠나서 부서 이름이라 하기엔 대체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 전혀 감도 잡히지 않는다. 자기희생을 강요하는 부인가, 아니면 공양미 삼 백석을 모으는 부일까.

인당수 부.

부장 심청.

이렇게 되는 건가, 분명 무척이나 어울리지만 들어갈 마음은 눈곱만큼도 생기지 않는다. 거기다 금발에 푸른 눈을 한 심청이라니.

그런 윤아와 청이 선배의 대화를 듣던 상혁은 결국 듣다, 듣다 참지 못했는지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 사실... '변화하는 일상부'라고 하면 그럴싸한데 줄이면 '변상부'라서 이상할 뿐이잖아요. 그럼 그냥 줄인 이름만 바꾸면 되지 않을까요."

핫, 상혁이 답지 않게 그럴싸한 의견이긴 하지만 애초에 변화하는 일상부라는 이름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은 지적하지 않는 걸까. 대체 무슨 일을 하는 부서입니까.

" 아, 변화하는 일상부는 원래 '이미지 체인지부'였던가. 그런 이름이었던 모양이야. 활동도 부원들의 이미지나, 아니면 자신의 이미지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오면 도와서 당사자의 부족한 점을 바꾸거나 채우는 그런 부였거든. 그런데 이번에 졸업한 3학년 부장이 '이미지 체인지부'는 너무 노골적이라고 할지, 아름답지 않다고 해서 '변화하는 일상부'로 바뀌었어."

어떻게 나의 무표정을 읽었는지 청이 선배가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근데 선배는 그렇게 자세히 알고 있으면서 부서 이름을 인당수로 하려 한 겁니까. 아니, 하긴 심청이도 인당수에 빠진 뒤에 왕비가 됐으니 확실히 이미지가 바뀌었다고 할 수 있으려나.

하지만 도저히 입부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는 이름이다. 인당수는.

그리고 사실 그런 것보단...

' 다음에 오면 꼭 먹어봐야지.'

아포카토. 꼭 기억해 두도록 하자. 아메리카노는 결국 끝까지 다 마시지 못했지만, 다 먹은 척 두고 나왔다. 역시 나 최고, 완전 영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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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인덱라간 이라니 .... 너무 오랜만에 들어서 깜짝놀랐네요.

언제적 이야기인지. 거의 7년은 된 듯 싶네요. 하도 오랜만에 들은 이름이라 자다가 이불도 걷어찰뻔했어요.

그리고 아직 부서이름 완전 정해진건 아니지만 임시라고 할까. 애초에 '부'로 끝나기보단 현직 여고생인 제동생 말로는 다양한 이름이 많더라구요. 그래도 라노벨이라면 라노벨 답게 ~~부라고 불리우는게 좋을 것같아서. 으흐흐.

빨리 부활동을 시작해야 여러가지 쓰기가 좀 편해지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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