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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공략당해 버렸다-2화 (2/153)

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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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상혁아, 그렇게 매일 나 버리고 가다가 벌 받는다니까!"

" 조용히 좀 해. 곧 입학식 시작 할거 같으니까."

검고 긴 생머리의 아름다운 여자아이와 만났다가 헤어진 뒤, 상혁은 자신의 소꿉친구인 윤아와 함께 자리를 찾아 앉았다. 앉는 자리는 특별히 정해져 있지 않았기에 대충 신입생들이 앉는 곳에 앉았더니 아무래도 정답인듯 싶었다.

유연 고등학교.

대전에 있는 굴지의 고등학교로, 그 명성은 전국에서도 유명하다더니만 그 말이 사실인 듯싶었다. 크기도 어마어마하고 수용하는 인원도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2, 3학년 학생들이 신입생들을 둘러싸듯 앉아 있는데도 아직도 넓게만 느껴질 지경이었다.

그렇다 해도-

" 뭐~야-. 기대했는데 보통 학교 입학식하고 똑같잖아."

" 넌 대체 뭘 기대한 거야……."

평범하게 선생님을 소개하고, 교감 선생님이 훈사 하시는 등의 진행은 이미 중학교 때도 겪었던 것이다. 유명한 학교이니만큼 기대했던 것이 컸던 윤아로선 이래저래 실망이 컸다.

" 네가 매일 보는 만화 같은 거 보면 특이한 거 많았잖아! 막 학생들이 뭐 준비해서 해주거나 아이돌이 오던 가 외계인이 오던가!"

" 내가 보는 만화는 거의 일본이 배경이니까 문화도 다르고……. 거기다 명백히 마지막은 잘못됐어."

" 흥!"

아까 두고 간 것이 어지간히 마음에 안든 모양이다. 상혁은 퉁퉁거리는 윤아의 모습에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며 아까 만났던 여자아이를 떠올렸다.

검고 긴 아름다운 흑발. 하얀 얼굴, 차가운 눈동자. 굳게 다문 아름다운 입술. 거기다가 매끈하게 뻗은 몸은 그야말로 천사가 아닐까 생각할 정도였다. 차가운 얼굴만큼 그 말투도 무척이나 냉정했지만 마음까지 차가운 것은 아닌지 자신의 옷에 붙은 먼지를 털어 주기도 했었다.

윤아가 끌고 오는 바람에 이름도 듣지 못했지만 말이야.

하아, 하고 상혁은 고개를 푹 떨어뜨렸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용기 내어 말을 걸어 본 적이 없었건만. 강당 밖에 두고 와서 안전할 것이라 생각한 소꿉친구가 플라잉 니킥을 먹여서 흐지부지하게 해어질 줄이야.

이게 나비 효과라는 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어느덧 재학생 대표의 말이 끝나고 신입생 대표의 순서가 왔다. 신입생 대표라 하면 이 유연 고등학교에 처음 들어왔을 때 봤던 입학시험에서 1등을 했다는 이야기다.

훗날 수능이라는 전쟁에 참여해야 할 학생들로선 현재 이 학교의 신입생 중 가장 앞서 있다는 신입생 대표의 모습이 궁금했다. 거기다가 소문으로면 그 어려웠던 시험을 모두 만점을 맞았다고 하지 않은가. 아무리 학업보다 취미 활동에 힘쓰는 상혁이라도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녀'가 나타났다.

천천히, 천천히 단상 위로 오르는 그녀. 검고 긴 흑발을 흩날리며 당당하게 걸음을 옮기는 그 모습은 여신처럼 아름다웠다. 그건 다른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는지 군데군데 들려오던 잡담조차 깔끔하게 멈춘 체 눈앞의 '그녀'에게 고정 되어있었다.

그녀가 신입생 대표로 무엇이라 이야기하는지는 누구도 기억하지 못했다.

단지, 그 마지막.

" 신입생 대표, 이 수연."

라는 그 말만은 모두가 똑똑히 기억했으리라고 생각하며, 상혁은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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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아."

-긴장했다.

이것저것 여러 가지를 잘하게 되었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취향이 아니다. 거기다가 뭐야 입학식 중에서도 근성을 보이며 떠들던 녀석들. 왜 내가 올라가자마자 뚝 멈춘 거야. 설마 내가 너무 예뻐서 멈췄다거나-하는 건 너무 만화 같지?

아니면 괴롭힘인가. 순간 뛰어 내려갈 뻔했어.

하지만 뭐, 나쁘진 않다. 자신의 우수함을 내보이는 것이 싫을 리가 있나. 전생에는 꿈도 못 꿨을 일이다. 새로운 인생에서 하지 못했던 것들을 이것저것 하지 않는다면 손해겠지. 이 정도로 뛰어난 스펙의 몸을 가지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은 죄라고!

힐끔, 힐끔.

입학식이 모두 끝나고 우리는 선생님들의 안내에 따라 벽보에 붙어 잇는 자신이 배정된 반으로 각자 흩어졌다. 참고로 나는 1학년 1반. 무척이나 깔끔하게 느껴지는 숫자다.

' 그렇달까……, 어디 앉아야 되나.'

아까 신입생 대표 인사 때문인지 내가 반에 들어오자마자 반엔 침묵이 감돌고 시선이 계속 나에게 박힌다. 일본 만화나 미연시를 하다 보면 시선이 아프다-라는 말이 있는데 리얼로 무슨 뜻인지 체험 중이다. 중학교 때도 그렇지만 한 몇 일정도 나의 사교성 없음을 내보이면 금방 인상이 식게 되어 있다.

바라보기는 하지만 다가오는 사람은 점차 없어지지.(눈물)딱히 사람들과 말하는 걸 싫어하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취미가 맞는 게 별로 없어 대화가 진행되기 어려울 뿐이지. 거기다가 내 취미 생활이 이런 외모와 달리 게임이나,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책이나, 미연시같은 것이다 보니 무심코 대화하다가 흘러나올 것 같아 대화를 잘 하지 않는 편이다.

전생이야 남자였고 이미 밑바닥이었으니 상관없었지만 지금은 아니잖아. 흑발의 미소녀 쿨계 오타쿠라니, 그런 캐릭은 너무 마이너 하다고!

내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가만히 서서 어디에 앉을까 시선을 좌우로 돌려보는데 문득 익숙한 얼굴이 시선에 들어왔다.

' 유상혁-이라고 했던가.'

소꿉친구와 함께 앉아 있을 줄 알았는데 소꿉친구는 보이지 않고 떨렁 혼자 앉아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마침 잘됐네. 모르는 사람 옆에 앉기도 껄끄러웠는데 그나마 안면을 튼 녀석 옆에 앉는게 좋겠지?

거기다가 저 녀석 딱 보기에도 반에서 초식동물 아우라가 장난 아니어서 마음이 편해진다. 전생의 나도 저랬거든. 전설의 생물인 사랑스런 소꿉친구가 있는 굉장한 놈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반에 한명쯤 있는~이라는 아우라를 발하는지라 내가 앉기에 딱 좋아보였다.

' 좋아, 결정!'

결심하자마자 나는 뚜벅뚜벅 걸어가서 상혁이라는 녀석 옆자리에 천천히 앉았다. 내가 녀석의 옆에 앉자마자 주변에서 들려오는 '어째서?!' '왜 하필?!' 이라는 등의 음성이 들려왔지만 가볍게 무시하고 넘겼다. 분명 누구의 옆에 앉았어도 저렇게 말했으리라.

정작 상혁 본인은 노래를 듣고 멍하니 창밖을 응시하느라 전혀 눈치 채지 못한 모양이지만. 뭐 좋나. 먼저 말 걸기엔 아직은 어색하니 조용히 앉아나 있자.

근데 이 녀석 이어폰 소리가 커 가지고 살짝 노랫소리가 들려오는데.

don't be long입니다. 이 녀석 오타쿠 확정. 반에서 한명쯤 있는 오타쿠로 결정. 아니 그보다 언제 적 노래야. 뭐 나도 꽤 좋아하는 노래지만. 흐응, 나노하 극장판 1기 삽입곡인가 그랬지. 와, 스타 라이트 브레이커 연출 장난 아니었는데.

드르륵-!

멜로디에 따라 추억을 되살리고 있는데 갑자기 앞문이 열리며 스타일이 좋아 보이는 여성이 들어왔다. 아, 아까 강당에서 보았던 선생님 중 한명이네. 가까이서 보니 훨씬 미인이시구나. 미인 여교사라니 만화에서나 있는 줄 알았는데 레어한 걸……?

" 주목."

선생님은 들어와서 교탁을 탕, 하고 치시더니 날카롭게 이야기하셨다. 방금 전까지 시끌시끌하던 반을 단번에 조용하게 만들 정도의 카리스마. 나이도 젊어 보이시는데 대단하시네. 보통 이런 학교는 젊으면 담임을 하기 힘들다는 말이 있는데 그만큼 유능하시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 어이, 네 옆에 있는 녀석 이어폰 빼라고 말해 줄래?"

" 아, 예."

갑자기 나를 보며 말하기에 뭔가 잘못한 줄 알았더니 그거였구나. 미인 선생님에 정신 팔려서 이어폰 빼라고 말하는 것도 깜빡 잊었다. 멍하니 평화에 젖어 창밖을 보고 있는 녀석에겐 미안한 이야기지만 선생님의 말씀이니 어쩔 수 없다.

톡톡.

"……?"

손가락으로 녀석의 어깨를 두드려 시선을 이쪽으로 돌리자 무심코 고개를 돌린 녀석은 나와 시선이 정면으로 맞닥들이자 딱딱하게 굳었다.

" 뭐...뭐야?!"

우당탕탕! 하고 의자를 밀어 넘어트리며 힘차게 일어선다. 참고로 이어폰은 아직 빼지 않았다. 뭐야 실례잖아. 날 보고 그렇게 놀라다니. 얼굴을 붉히거나 하는 건 이해하지만 저렇게 경악으로 물들여 못볼걸 본 것처럼 놀라 버리면 무심코 주먹으로 때려 버리고 싶다.

" 주먹으로 때리면 안 되지!"

내가 입모양으로 웅얼거리는 걸 알아차리다니 보통이 아니군.

녀석은 내가 눈가를 가볍게 찌푸리자 우왕좌왕 당황하다가 주변의 학생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과, 교탁 앞에서 서리가 내릴 만큼 차갑게 응시하는 선생님의 모습에 재빨리 이어폰을 빼며 황급히 앉았다.

그런 상혁의 모습에 선생님은 골치가 아프다는 듯 옅은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 하아, 오늘은 첫날이고 처음이기도 하니 봐주지만 두 번은 없어. 아무튼 아까 하던걸 이어서 말하자면 이렇게 너희들과 만나게 되서 반갑고 기쁘네. 나는 앞으로 너희의 반을 1년간 지도하게 될 담임이며, 이름은-."

선생님은 거기까지 말한 뒤에 칠판에 이름을 적기 시작했다. 칠판에 적힌 이름은 '박시윤'. 헤에, 박시윤 선생님이시구나. 가르치는 과목은 언어. 어쩐지 이미지와 잘 어울렸다.

" 박시윤이라고 하고 연락처는 칠판에 적혀 있으니 잊지 말고 적어 가도록 해. 그나저나 눈에 띄는 녀석들이 몇몇 있네. 특히-."

선생님은 그렇게 말하며 나를 지긋하게 바라보았다. 그렇게 바라보실 필요는 없는데. 겨우 나에게서 벗어나 선생님에게 향했던 시선이 다시 나에게 꽂혔다.

" 뭐, 다들 궁금한 게 많을 테니 오늘은 자기소개를 하고 끝내 볼까."

선생님은 그렇게 말한 뒤에 출석부를 들어 올리고 번호 순서로 이름을 호명하기 시작했다. 다행이다. 나를 바라보면서 말하기에 나보고 먼저 소개하라는 줄 알았네. 휴, 하고 한숨을 쉬는데 문득 내 옆에서 우물쭈물 거리는 기척이 느껴져 고개를 돌리자 상혁이 어설프게 웃는다.

" 어머, 왜 그렇게 보는 걸까?"

내가 조용하게 물어보자 상혁은 어설프게 웃는 그대로 뚝 굳더니.

" 아-하하, 아무것도 아니야. 그저 같은 반인 줄은 몰랐으니까."

" 모르는 것이 당연해. 난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잖아."

" 그렇지? 아..아하하."

대체 뭘 말하고 싶은 거냐.

정신이라도 나간 듯이 어색하게 웃는 녀석을 바라보다 문득 아까 보았던 녀석의 소꿉친구가 떠올랐다. 마치 같은 반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기에 그런 줄 알았더니 아니었던 건가?

" 아까, 네가 말한 소꿉친구는 다른 반?"

" 으, 으응? 아아~. 그렇지. 그 바보, 아침에 와서 그것부터 확인했던 모양인데 아무래도 잘못 봤던 모양이야. 같은 반인 줄 알았더니 정작 반 편성하러 흩어질 때는 찡얼거리면서 옆 반으로 들어가 버리더라고."

그렇게 된 거구만. 어떻게 보면 반 편성 벽보를 잘못 볼 수 있는 거지.

" 아, 내 차례네."

녀석은 어색한 얼굴로 그리 말하며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약간 딱딱하게 얼굴을 굳힌 녀석은 작게 심호흡을 한 뒤, 비교적 침착하게 자신을 소개했다. 오오, 그래도 말 잘하네. 보통 초식계 아이들은 이런 자기소개 같은 것에 영 쥐약인데 말이지. 나도 아직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할 땐 말을 더듬거나 하니 말이다. 이야, 그런 면에서 아깐 운이 좋았지. 실수해서 단상에 오르자마자 넘어질 뻔했다니까.

' 그렇지만-.'

주변에서 몇 명이 상혁을 가리키며 킥킥 거리는 게 보인다. 딱 보기에도 남자애들 여럿이 모여 있는 지역. 아마 예전부터 상혁을 알던 녀석들인 듯싶었다. 노골적으로 주변 애들한테 들리라는 것처럼 에에- 저 녀석 오타쿠라고. 노래도 언제나 일본 노래나 듣고 말이야. 라는 식으로 비웃듯이, 들으라는 듯이 이야기했다. 아니 ‘들리라는 듯’이 아니라, 대놓고 ‘들으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런 거, 짜증나는데.'

너무 노골적으로 떠들다 보니 주변의 몇몇 애들도 인상을 찌푸렸지만 그보다 상혁이 오타쿠라는 것에 편견을 가지며 다른 의미로 인상을 찌푸리거나, 꺼림직 하다는 시선을 보내는 학생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하기야 우리나라에서 오타쿠 인식은 최악이니까. 뭐 일본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뭐 그것도 개인차가 좀 있다. 예쁜 여자애들이 그런다면 우습게도 좀 관대하게 넘어가기도 하더라고.

하지만 저런 초식계 녀석에게 저런 말이 퍼지기 시작하면 이미지를 바꾸기 힘들어진다. 원래 활발하게 활동하지 않다 보니 인식을 바꾸기도 힘들고, 그 모습 그대로 고등학교 3년을 보내게 될지 모른다.

그런 건 너무 가혹하잖아.

딱히 뭘 잘못한 것도 아닌데 말이야. 굳이 저렇게 노골적으로 상혁이를 타깃으로 하여 말할 필요는 없을 텐데. 설마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저 녀석 옆에 앉아서 앙심이라도 품은 건가. 그렇다면 내가 좀 미안해지는걸.

주변 애들이 열심히 궁시렁 거렸지만 상혁은 움찔거리긴 했어도 꿋꿋하게 자기소개를 한 뒤에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를 했다. 그러자 짝, 짝. 하고 미묘하게 박수를 쳐주는 반 학생들. 단순하지만 확실하게 오타쿠라고 열심히 궁시렁 거린 게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다.

상혁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서 피곤하다는 듯이 푹 늘어졌다.

" 하아~. 또냐. 고등학교 올라와선 좀 봐 달라고. 딱히 신경 쓰는 건 아니지만……."

무척 낙심했을 것이라는 나의 생각과는 달리 상혁은 정말로 단지 피곤하다는 말투로 책상에 얼굴을 박은 체 중얼거리듯 말해 왔다. 에에, 생각보다 대인배인가. 아니면 선천적인 아웃사이더인가. 참고로 전생의 나는 완전 기죽어서 죽은 듯이 산 불우한 스타일이었다.

울 것 같아.

내가 눈가를 가볍게 찌푸리자 책상에 얼굴을 박은 체 어떻게 내 표정 변화를 눈치 챘는지 상혁은 평이한 어투로 말해 왔다.

아니 그런데 어떻게 내 표정 변화를 알아차린 거야. 뒤통수에 눈이라도 달린 건가.

" 오타쿠라도 딱히 별짓 하지 않으니 신경 쓰지 마-라면 좀 그러려나. 뭐 참고로 나는 내가 좋아서 하는 거니 너희가 뭐라 생각하든 난 별로 신경 쓰지 않아. 어차피 지금 앉아 있는 것은 임시 자리이기도 하고 다음에 제대로 편성되니 걱정 말라고."

아무래도 내가 눈가를 찌푸린 이유를 잘못 이해한 듯싶지만(어떻게 알아챈 건진 정말 궁금하다) 뭐랄까…….

다르네.

나랑은 좀 다르다. 전생의 내가 만약 이런 상황이라면 정말 낙담하고 남은 고등학교 생활이나 걱정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녀석은 그런 것 따위 상관없다는 듯이 말하고 있었다. 단지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이니까, 그것을 감추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하기야 그러니 don't be long을 그렇게 크게 듣고 있지.

" 하."

뭐야 너. 초식계가 아니었잖아. 얼굴만 그럴싸하게 초식이었네. 닮은 건 분위기 뿐이고 전생의 나와는 전혀 다른 스타일이었다. 소꿉친구도 있고, 자신의 취미를 부정해도 당당하게 있고.

재밌네, 너.

" 이 수연."

그러는 사이 선생님이 나의 이름을 호명했다. 아무래도 내 순서인 모양이었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반 아이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몰려왔다.

천천히 걸어 교탁 앞에 섰다.

모두들 기대에 가득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이런 시선은 이제 익숙하다. 전생에는 전혀 익숙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저 익숙하다. 하지만 자기소개를 하는 것은 익숙하지 않지.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은 여전히 불편하다. 거기다 평범하게 반말로 소개하고 싶어도 말이 잘 떨어지지 않아 꼭 이렇게 여러 사람들에게 말할땐 존댓말로 설명하게 되어 버린다.

" 안녕하세요. 저의 이름은 이수연이라고 합니다. 새롭게 시작되는 고등학교 생활로 앞으로 많이 기대가 됩니다. 같은 반 학생으로 앞으로 사이좋게 지냈으면 합니다."

그리 길지 않고 짧게 소개를 한 뒤에.

" 그리고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물어봐 주세요."

그렇게 말을 끝 맞췄다. 이렇게 하면 굳이 이런 저런 이야기할 필요 없이 단순히 물어보는 것만 대답해 주면 간단하다. 아니나 다를까 많은 아이들이 손을 들어 질문을 말하기 시작했다.

" 저기 어디에서 살아?"

" 학교에서 멀지않은 주택가에서 살고 있어요."

" 혼혈이야? 약간 이국적으로 생겼는데."

" 아닙니다. 순수한 한국인이에요."

그 외에도 쓰리 사이즈를 물어 보거나(물론 기각했다) 어디 중학교 출신인지, 등의 질문에 간단하게 답해 주니 대체적으로 마무리가 된 듯싶었다. 대충 대충 대답하며 주위를 마지막으로 둘러보는데 아까 전 상혁이를 향해 열심히 오타쿠 주문을 외우던 삐딱한 녀석들 중 하나가 삐딱한 녀석 답게 삐딱한 자세로 삐딱하게 손을 들고 삐딱하게 말해 왔다.

" 저기-, 남자 친구는 있어?

"

질문까지 삐딱하네. 녀석의 질문에 다른 반 녀석들까지 뚫어져라 나를 주시했다. 진작 묻고 싶었는데 용기가 나지 않아 묻지 못했던 모양이다.

남자 친구라. 물론 당연하게도 없다.

" 없습니다."

" 그럼 좋아하는 타입은?"

질문은 한 사람당 한번이다. 삐딱하게 서 있다가 똑바로 서있다고 다른 사람이 되는 건 아니라고.

대충 거절하고 내려가려다가 문득.

재밌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하는 타입이라.

" 흐응~."

삐딱한 녀석은 내가 무표정하게 무감정하게 무미건조하게 감탄하자 움찔하고 물러섰다. 좋아하는 타입이라. 물론 딱히 없다. 남자에 대해선 특별히 생각해본 적 없다. 전생에 오타쿠였으니 당연히 남자보단 미소녀에 관심이 많았고, 남자친구라는 것은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도 없다. 전생에 남자다 보니 약간 영향을 받은 것도 없잖아 있다.

하지만, 문득 이 말에 재밌는 대답이 생각났다.

전생이라면 이런 식으로 대답하는 것은 무리수라고, 절대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우수하고, 뛰어나며 아름답다.

" 좋아하는 타입은-."

삐딱한 녀석을 직접 바라봐 주며 무표정하게, 무감정하게, 무미건조하게 이야기했다.

" ‘오타쿠’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까부터 오타쿠 거리며 비웃는 게 신경에 거슬리네요."

말 그대로 좋아하는 타입은 나와 취향이 맞는 오타쿠인 게 맞긴 하지. 거기다가 내가 직접적으로 녀석이 ‘오타쿠’라고 말한 것을 비난하자 교실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특히 삐딱한 녀석들이 말하는 ‘오타쿠’발언에 인상을 찌푸리거나 좋지 않은 반응을 했던 녀석들의 얼굴은 아주 볼만 했다.

우뚝하고 굳어 버린 교실의 모습에. 삐딱하게 서있던 녀석이 피사의 사탑처럼 기울어져 버린 그런 모습들에 만족하며 천천히 내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옆에서 계속 오타쿠, 오타쿠하고 말한 게 마음에 안 들어서 저질러 버렸다~, 라는 느낌인가. 상혁이 녀석을 도와주려고 했다기보다는 단지 그런 것으로 사람의 평가를 낮추고 이른바 ‘왕따’를 시키려고 했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그런 상황에서 ‘오타쿠를 좋아한다.’라고 말해버렸으니 간접적으로 나도 ‘오타쿠’이거나 그와 비슷하다는 걸 말한 것이 된다.

어디 나도 오타쿠라고 놀리던지 무시하던지 마음대로 하라고 해. 어차피 난 계속 혼자였고 남을 사귀는 것보단 혼자인 편이 좋다. 그렇게 생각하면 방금 전처럼 대답한 것도 나름 괜찮았나? 하지만 내가 그런 식으로 말한 것이 그렇게나 의외였던 것인지 삐딱한 녀석들도 그렇고 오타쿠라고 염불처럼 중얼거리던 녀석들이 모두 조용해졌다. 오타쿠라는 것도 귀천이 있는 건지 내가 그런 말을 한 것이 그렇게나 의외였던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정적이 감도는 교실을 바라보던 나는, 속으로 작게 웃었다. 내가 생각한 고교 데뷔와는 조금 달랐지만.

재밌으니 됐나.

============================ 작품 후기 ============================

공략당할까보냐 라는 것은 텍본으로 보기는했지만 번역기의 압박에 결국 포기한 기억이 있네요. 재목은 비스무리한거 같지만 딱히 큰 영향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이야기 진행스타일도 다르구요.

그리고... 딱..딱히 익숙하지 않을텐데요, 제가 뭐,,,,,,, 꿈도 희망도없는 던파팬픽을 썼다거나 나노하나 타입문관련 팬픽에 손을뎄었을리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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