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융명가의 창시자-179화 (179/181)

§179화 46. 대륙 공용화폐(2)

“인생은 말이지. 정말 덧없는 거야.”

맥주 버블로 막대한 손실을 입고 순식간에 비렁뱅이가 된 벨과 밥은 그대로 고향으로 돌아갈 수가 없어 몬테펠트로 영지에 남게 되었다.

돌아간들 뭣하리.

가진 건 아무것도 없고 이제 빈털터리가 되어버렸는데.

그나마 다행이라면 금맥전쟁이 끝나고 나서 몬테펠트로 영지에서 일자리가 넘쳐흘렀다는 것이었다.

바로 광부 일이었다.

“그래, 자네 말이 맞아. 인생이란 게 참 덧없는 거지.”

밥의 푸념에 동조한 것은 같이 망해버린 벨이었다.

둘은 오늘 하루도 광산에서 개같이 일하고 선술집으로 찾아와 오늘 있었던 고단함을 씻어내는 중이었다.

그것도 그들을 망하게 한 장본인인 서민의 기호식품, 맥주와 함께 말이다.

“이게 뭐라고 그리 미쳤던 건지. 끽해야 맥주였는데.”

밥이 손에 든 맥주잔을 보며 말하자 벨도 같은 맥주잔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에휴…… 그러게 말이야. 자네 말대로 끽해야 맥주였었는데. 우리가 미쳤었지. 미쳐도 단단히 미쳤었어.”

제국 역사에서 맥주 버블로 남을 그 사건에서.

둘은 최대 피해자였다.

“그때 빠져나올 수 있었을 때 무조건 빠져나왔어야 했는데…….”

“아니야. 블랙라벨에 돌아갔을 때 무조건 거기에 있었어야 했어. 누가 때려죽여도 거기서 나오면 안 됐었어. 그때 괜히 나와서는…… 결국 망해버렸잖아.”

“에이그. 왜 하필 고점에 물려가지고. 진짜 그 말도 안 되는 가격에 무조건 빠져나왔어야 했는데.”

“다시 생각해 보면 우리가 진짜 어리석었어.”

“에휴…….”

빠져나올 수 있었을 때 빠져나왔더라면 지금쯤 대저택에서 여러 부인을 거느린 대부호로 남았을 것이다.

그 아쉬움이 아직도 남아 둘은 하루하루를 술로 버티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여기에 일거리가 있어 다행이지. 그게 아니었으면 우린 진작 빈털터리가 돼서 거리 위에서 구걸이나 하는 거지가 됐을 거야.”

“하루하루 돈 받아가며 일하는 게 이리 고될 줄이야. 가게 주인으로 살았을 때가 진짜 좋았는데.”

광산 일은 너무 고돼서 그만두는 사람이 많아 일당제로 진행되고 있었다.

하루 일하고 하루 벌어가는 그런 일용직이란 소리였다.

“이 나이에 이 무슨 추태야. 다 늙어가지고 젊은 사람도 안 하는 광산에 처박혀 그 힘든 일을 하다니. 아이고 삭신이야.”

“어쩌겠어? 그게 우리 팔자 같은데.”

“그보다 샘은 잘 먹고 잘살고 있겠지?”

“샘?”

그들이 역사적인 맥주 버블의 고점에 물려 같은 개미들끼리 헬파티를 진행하고 있을 때.

샘은 모든 맥주를 처분하고서 홀가분히 그 헬파티에서 빠져나갔다.

어찌 보면 예술.

다르게 보면 신의 아들이었다.

“진짜 샘은 귀신이 들린 거 아니야? 어째 거기서 딱 팔고 나올 생각을 했을까?”

“그러게 말이야. 놈에게 귀신이라도 붙은 모양이야. 어떻게 그 가격에서 빠져나올 생각을 했던 건지.”

“나는 진짜 샘이 성공한 거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 우리 가게에서 구두닦이 하던 게 바로 엊그제 같은데.”

“그러게 말이야. 나도 많이 봤었지. 설마 그 코흘리개가 세상 남부럽지 않은 부자가 됐을 줄이야.”

술이 들어갔는지 밥도 나름 솔직해졌다.

“처음에 샘이 무역선 투자로 성공했다고 했을 때. 솔직히 배가 많이 아팠어. 그리고 질투 좀 했었지. 우리 가게에서 구두나 닦던 놈이 성공했다니까 누군들 안 그러겠어?”

그 말에 벨도 공감한 눈치였다.

“자네만 그랬겠어? 나도 샘이 성공한 거 보고 은근히 배가 아팠다니까? 생각해 봐. 어이가 없잖아. 그딴 놈이 뭐라고.”

“그러고 보니 그 말이 생각나는군.”

“그 말? 무슨 말?”

“자네 혹시 그 말을 알아?”

“그게 뭔데?”

잠시 뜸을 들이던 밥이 이전에 들었던 그 말에 대해 알려주었다.

“남이 말이야. 나보다 10배를 잘살면 그걸 시기 질투한다고 하나 봐.”

“그래? 그러고 보니…… 그런 거 같기도 하고.”

“그러다 나보다 100배를 잘살면. 그땐 질투가 아니라 부럽다고 생각한대.”

“맞는 말 같은데. 솔직히 샘이 더 성공했다고 했을 때 배가 아프기보다는 그냥 부러웠잖아?”

“그랬지.”

가만히 듣고 보니 자기들 이야기였다.

처음 샘이 무역선 투자로 성공했을 땐 둘은 샘의 성공을 시기하며 질투했었다.

그러다 샘이 더 큰 부자가 되자 그들은 질투가 아닌 부러움의 시선으로 샘을 바라보았던 것이다.

“그거 딱 우리 얘기 같은데?”

“그러게 말이야. 딱 우리 얘기지. 그리고 또 하나가 더 있어.”

“또 하나가 더 있다고?”

“그래, 어쩌면 지금 내 생각도 그것과 마찬가지일 거야.”

“그게 뭔데?”

“자네, 남이 나보다 1,000배를 더 잘살면. 그땐 어떤 생각을 갖는지 알아?”

그 물음에 벨이 답을 찾기 위해 생각에 잠겼다.

‘1,000배를 잘살아? 1,000배를 잘살면…….’

모르긴 해도 샘의 이야기처럼 보였다.

무역선 투자로 대박을 내고, 그 뒤로도 여러 가지 일에 손을 대며 더 큰 부자가 되었고, 막판엔 맥주 버블에서 화룡점정을 찍으며 그들보다 1,000배 잘사는 부자가 되지 않았던가?

“엄청 부럽긴 할 텐데. 그게 답은 아닐 거 같고…… 잘 모르겠는데? 남이 나보다 1,000배를 잘 살면 그땐 어떻게 되는 건데?”

벨의 물음에 밥의 말이 이어졌다.

“나보다 1,000배를 잘살면. 그땐 부러운 게 아니라 그 사람을 위해 기꺼이 일을 한다고 하나 봐.”

“뭐? 1,000배를 잘살면 그 사람을 위해 일을 한다고?”

“그래, 그게 딱 내 심정이야. 지금 샘이 나타나 자기 구두를 닦아달라고 하면. 난 기꺼이 샘의 구두를 닦아주겠어.”

“에이, 이 사람아. 그래도 어째 샘의 구두를 닦아준다는 소리를 해.”

“자네야말로 이상한 거야. 샘이 설마 공짜로 자기 구두를 닦아달라고 하겠어? 다 돈을 주면서 닦아달라고 하겠지.”

“그래도 그렇지.”

“구두 닦는 데 한 번에 1달란트씩 준다고 하면. 자넨 안 닦을 거야?”

“1달란트씩이나?”

“샘 능력이면 충분히 가능하지.”

“그럼…… 해볼 만하겠는데?”

“그렇다니까. 사람이 다 그렇대. 지금 나도 그렇고.”

“나는 구두 닦는 것보단 샘의 마부 같은 거나 하고 싶은데? 샘도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싶으면 마부가 필요할 거 아니야?”

말을 하며 서로를 쳐다보던 둘은 이내 피식 웃고 말았다.

“술이 들어가니 별 희한한 소리를 다 하는군.”

“그러게 말이야. 애당초 샘이 우리 같은 거렁뱅이를 찾을 이유도 없잖아?”

“당연히 그렇겠지. 샘이 뭐가 아쉬워서 우리 같은 사람을 찾겠어. 어차피 샘이야 이제 대부호가 돼서 남부러울 거 없이 떵떵거리며 살 텐데.”

그렇게 껄껄거리며 술잔을 기울이던 둘은 늦은 밤까지 마시다 창고 같은 데서 잠을 청했다.

다음 날.

먹고 살기 위해 자연히 광산에 출근하게 된 벨과 밥은 아주 우연찮게 광산에 찾아온 샘과 마주칠 수 있었다.

“샘이잖아?”

“아니, 샘? 여긴 무슨 일이야?”

꾀죄죄한 몰골의 두 광부가 자신을 알아보자 여러 귀족들과 어울려 광산을 찾았던 샘은 하마터면 둘을 못 알아볼 뻔했다.

“누구…… 설마 벨과 밥 아저씨입니까?”

“그래, 우리야. 우리라고.”

곡괭이를 한쪽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폼새가 영락없는 광부였다.

여러 귀족들과 어울려 있던 샘은 그들에게 잠시 양해를 구하고 둘과 잠시 대화를 나눴다.

“여기서 뭐 하시는 겁니까? 가게 일은요.”

그런 샘의 물음에 둘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해 줬다.

“그게…… 우리가 망해서 말이지.”

“알잖아. 맥주 투자로 다 말아먹은 거.”

“아…… 그러셨군요.”

샘은 곧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처럼 맥주 투자에 나섰다가 역사적인 버블에 휘말려 한순간 거렁뱅이가 된 이들을 많이 봤던 것이다.

“저야 잘 빠져나왔지만 아저씨들은 정말 안타깝게 됐습니다.”

이왕 만난 김에.

밥은 샘에게 어떻게 그 가격에서 빠져나올 생각을 했는지 물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거기서 어째 빠져나올 생각을 했던 거야?”

그 물음에 샘은 솔직히 해줄 말이 없었다.

그냥 너무 높아서 빠져나왔는데, 그게 운 좋게 고점 근처였던 것이다.

“그냥…… 운이 좋았다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네요.”

“그래? 하긴…… 너무 높긴 했지. 그런데 여긴 무슨 일이야?”

진짜로 궁금하던 것을 물어보자 샘이 뒤에서 웅성거리는 귀족들을 힐끗 쳐다보더니 이내 그들을 향해 자신이 이곳까지 찾아온 이유에 대해 알려주었다.

“그게…… 별건 아니고. 이곳에 퍼져 있는 금맥이 워낙 커서 로스메디치 가문에서 전부 관리하기가 힘들어졌나 봅니다. 그래서 저희 같은 사람들에게 기회를 줬습니다. 여기에 있는 다른 금맥을 찾으면 일정 부분의 이익을 나눠준다고 하더군요.”

“그래?”

“그런 일이 있었어?”

“아마 어설픈 사람은 이 사업에 참여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그쪽에서도 나름 자금 규모가 있는 사람에게만 이번 기회를 줬거든요.”

샘이 가진 재력이라면 벨과 밥은 바로 공감할 수 있었다.

“그렇군. 그런 일이 있었어.”

“하긴 여기 금맥이 워낙 짱짱해서. 예전에 광부 했던 사람들도 깜짝깜짝 놀란다고 하는 모양이야.”

“곡괭이만 찍어도 금광석이 튀어나오니. 내가 모르긴 해도 여기 주인은 아마 떼부자가 아니라 금으로 성도 지을 거 같던데?”

이쪽 사정에 대해 잘 모르던 샘은 이곳에서 일하고 있던 둘의 힘이 필요함을 느꼈다.

‘마침 잘됐군. 여기서 괜한 사람을 쓰는 것보단 그래도 아는 사람이 훨씬 나으니까.’

“혹시 아저씨들께선 일거리가 필요해서 지금 여기서 일하시는 겁니까?”

그 물음에 벨과 밥은 서로를 빤히 쳐다보았다.

왠지 모르게 어제 했던 이야기가 떠오르고 있었다.

‘남이 나보다 1,000배를 잘살면.’

‘기꺼이 그 사람을 위해 일을 한다.’

이어 시선으로 대화를 마친 둘이 그 시선을 다시 샘에게 주며 말했다.

“그렇기야 한데. 그건 왜 묻는 거야?”

“우리야 돈이 궁하니 여기서 광부 일이나 하는 거지. 힘들어도 어쩔 수 없어. 그나마 있던 재산이야 맥주 때문에 다 날려 먹었으니까.”

옳거니.

바로 미소 짓는 샘이 둘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였다.

“제가 여기 일당의 세 배를 드릴 테니. 앞으로 저와 함께 일해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저도 여기저기 벌인 사업들이 많아 여기 일을 따로 관리해줄 사람이 필요하거든요.”

샘이 이어 말했다.

“그래도 남보단 아는 사람이 낫잖아요. 그리고 두 분께선 가게 경험도 있으시니 돈 관리 같은 것도 다른 사람들보단 수월하실 테고요.”

그 제안.

벨과 밥은 절대 거절하지 않았다.

“아이고! 우리야 좋지.”

“좋다 말고. 시켜만 주면 우리야 이 곡괭이 바로 던져 버리지.”

“하하, 다행이네요.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안 그래도 여기 한쪽 구역을 맡게 될 거 같거든요.”

“아, 그래?”

“그럼 오늘부터 따라다녀야겠어.”

“하하하! 그러게 말이야. 오늘부터 따라다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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