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융명가의 창시자-178화 (178/181)

§178화 45. 감옥 협정(3)

당장 신뢰가 안 가는 고블린 달러라고 해도, 이를 100% 두카트로 교환할 수 있다면 골드만 입장에선 그리 나쁜 조건은 아니었다.

‘계약서에 분명히 명시를 해놓는다면…… 우리야 크게 손해 볼 건 없지. 놈의 말대로 이 바닥에서 신뢰는 곧 생명이니까.’

거기다 금맥전쟁의 승자는 제국으로 굳혀지고 있는 상황.

물론 두카트 대신 고블린 달러를 빌려오는 것은 꺼림칙한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록펠러가 두카트를 빌려줄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게 독약이 될지, 아니면 극약이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골드만도 나름 생각을 마쳤다.

‘당장 뭐라도 안 하면 죽을 팔자니 어쩔 수 없겠군.’

“좋아. 그 고블린 달러라는 거. 확실히 두카트로 보장해 준다면야 우리야 못 빌릴 것도 없겠지.”

록펠러는 강조하듯 이 말을 전해주었다.

“제 목적이 뭔지 잘 아실 테니 이것만큼은 확실히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후 이자 지불은 무조건 고블린 달러로 하셔야 합니다.”

“고블린 달러로 장사하면 당연히 고블린 달러가 부족할 텐데. 뭔 수로 고블린 달러를 구해서 이자를 지급해?”

“그럼 제게 오셔서 고블린 달러를 가져가셔야겠군요. 그에 합당한 두카트를 지불하고서 말입니다.”

“…….”

고블린 달러에 종속되는 일이 여간 껄끄러웠으나.

두 번의 실패로 인해 골드만에게도 답이 없는 상황이었다.

‘마음엔 안 들지만 어쩔 수 없지.’

“좋아 그렇게 하자고. 대신 두카트는 확실히 보장해 줘야 할 거야.”

그 말에 씩 웃는 록펠러가 이렇게 답해주었다.

“저희에게 신뢰는 곧 생명이란 걸 잘 아시는 분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면 저야 많이 섭섭할 따름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쇼. 저희 로스메디치 가문은 대륙에서 가장 많은 금을 보유한 가문으로서 그까짓 두카트야 원 없이 바꿔드릴 수 있으니까요.”

46. 대륙 공용화폐(1)

금맥전쟁의 승자가 제국으로 굳혀지고.

막대한 배상금을 물고 풀려난 골드만은 고블린 방크로 돌아가 제국으로부터 엄청난 양의 고블린 달러를 수혈받게 되었다.

두카트도 아닌 엉뚱한 제국의 종이화폐를 수혈받게 된 고블린 방크 내부에서는 처음엔 강한 반발이 일었지만, 이후 제국과의 협상 내용이 밝혀지면서 그 불만이 서서히 사그라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곧 두카트가 아닌 고블린 달러를 앞세우며 대대적으로 대출 사업을 확장시키기 시작했다.

“이게 뭡니까? 금화도 아니고, 그렇다고…… 차용증서도 아닌 거 같은데. 정체가 뭡니까?”

하이엘프와의 전쟁으로 돈이 궁해진 다크엘프의 수장, 마르온은 급히 전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고블린 방크를 찾아갔다.

그런데 이놈의 고블린들이 자신이 원하던 두카트가 아니라 이상한 종이 화폐를 제시하는 게 아닌가?

“하하, 이건 이번에 새로 나온 차용증서입니다. 고블린 달러라고 하는데, 일종의 화폐 개념으로 보시면 됩니다.”

“화폐요?”

“네, 금화 같은 화폐입니다. 제국에선 이걸 돈처럼 쓴다지요. 아마 대륙 전체가 제국처럼 이 차용증서를 돈처럼 쓰게 될 겁니다.”

원하던 금화가 아닌, 웬 종이 화폐가 내밀어지자.

마르온은 표정을 구길 수밖에 없었다.

쾅!

그가 말아 쥔 주먹으로 제 앞의 책상을 내려치며 자신과 마주하고 있던 고블린 방크의 수장, 골드만에게 언성을 높였다.

“지금 장난하시는 겁니까! 이게 뭡니까? 이딴 걸 지금 돈이라고 주는 겁니까?”

그의 반응이야 당연했다.

그와 같이 고블린 방크에 돈을 빌리러 왔던 자들은 전부 다 같은 반응을 보였으니까.

“뭘 그리 흥분하고 계십니까? 빌려 가실 돈이라니까요?”

“이딴 게 지금 돈이라고 빌려주시는 겁니까? 제가 필요한 건 금화 두카트입니다. 이런 종이쪼가리 아니라 금으로 만든 금화, 두카트라고요! 두카트를 주십시오. 두카트가 아니면 받아가지 않겠습니다.”

그 말에 골드만이 인상을 찌푸렸다.

‘내 저럴 줄 알았지. 하긴 나 같아도 싫어했을 거야. 하지만 어쩌겠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두카트가 별로 없는데. 그러니 이거라도 가져가라고.’

“다 이해합니다. 다 이해한다고요. 갑자기 이런 걸 빌려드린다고 하니 무척이나 당황스러우시겠지요.”

기분이 몹시 상했는지, 골드만을 마주한 마르온의 몸에서 검고 부정한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당연한 거 아닙니까? 됐고, 정상적으로 두카트나 빌려주시죠. 아니면 험한 꼴을 보게 될 겁니다.”

두카트를 빌려달라고?

나도 그러고 싶다.

수중에 충분한 두카트가 있었다면 말이지.

“흠…… 그런데 이건 알고 계십니까?”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마르온이 불편한 기색을 팍팍 내비치며 퉁명스럽게 받아주었다.

“뭐가 말입니까?”

“저희가 이렇게 고블린 달러를 제시하는 것은, 이 고블린 달러가 대륙 전체적으로 널리 쓰이길 원하기 때문입니다. 왜냐? 앞으로 저희 고블린 방크에서는 이 고블린 달러로 장사할 생각이거든요.”

그가 뭐라 하기도 전에 골드만이 바로 다음 말을 이어주었다.

“그리고 이 고블린 달러는. 놀랍게도 언제 어디서든, 두카트로 교환이 가능합니다. 저희 고블린 방크나 아니면 제국에 속한 길드 방코에 찾아가셔도 언제든 두카트로 교환이 가능하죠.”

처음 듣는 소리에 마르온은 찌푸린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이 종이 쪼가리를 언제든 두카트로 교환할 수 있다고요?”

“들으신 그대롭니다. 이 고블린 달러를 빌려 가셔도 결국 두카트를 빌려가는 것과 동일하다는 겁니다.”

그 말에 마르온이 콧방귀를 뀌었다.

“그렇다면 더더욱 두카트를 받아가야겠군요. 어차피 두카트로 교환될 건데, 제가 뭣하러 그런 고블린 달러를 가져간단 말입니까?”

두카트를 빌려 간다면 당장 전쟁자금으로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두카트 대신 자신도 처음 보는 고블린 달러를 빌려 간다면 그도 이를 잘 활용할 수 없어 여러 애로사항에 직면할 것은 아주 뻔했다.

남들에게 이걸 돈이라고 소개해야하는데, 그런 귀찮음이 너무 싫었던 것이다.

‘저딴 걸 어떻게 써먹어. 당장 다른 곳에서 받아줄지 안 받아줄지도 모르는 판국에.’

“안 그렇습니까?”

그 말에 고블린 방크의 수장, 골드만이 씩 웃어 보였다.

“맞습니다. 어차피 두카트로 교환될 거 뭣하러 고블린 달러를 가져가겠냐는 당신 말에는 솔직히 공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아셔야죠.”

이 순간.

골드만이 적극적으로 고블린 달러를 권하는 이유는 딱 한 가지였다.

그들이 원하는 만큼의 두카트를 내주는 게 무리였기 때문이다.

‘예전처럼 대출 장사를 하려면 돈이야 빌려줘야겠고, 가진 건 이 고블린 달러밖에 없으니 우리도 어쩔 수 없는 거지.’

“대출 이자가 다르다는 사실을요.”

그제야 마르온이 조용해졌다.

솔직히 말해서 그에게 중요한 것은 전쟁 자금이었지만.

후에 이를 되갚는 일도 꽤나 중요했던 것이다.

“이자요?”

마르온이 흥미를 보이자 골드만의 썩소가 더욱 짙어지기 시작했다.

‘좋아, 걸려들었군. 하긴 너 같은 놈들이 다 똑같지.’

“두카트를 빌려 가시면 6.5퍼센트대의 이자지만. 반대로 고블린 달러를 빌려 가시면 현재 특별 프로모션 기간이라 5.5퍼센트대의 황금 이자를 제안받으실 수 있습니다.”

승리를 자축하려는 골드만의 말이 이어졌다.

“어떻습니까? 이래도 고블린 달러가 싫으십니까?”

대출 이자가 무려 1퍼센트나 차이 난다는 것은 대규모 자금을 빌리는 마르온 입장에선 꽤나 흥미로운 제안이었다.

“대출 이자가 1퍼센트나 차이 난다 이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아니면 사람들이 뭐 하러 두카트 대신 지금 고블린 달러를 빌려 가겠습니까?”

골드만은 이전에 찾아왔던 어느 용병대장을 떠올리며 말을 이어주었다.

“최근에 무슨 용병대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쪽 대장도 여기서 돈을 빌려 가며 고블린 달러를 빌려 갔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우리보고 바보라 하더군요.”

골드만은 여전히 씩 웃고 있었다.

“왜 그들이 저희보고 바보라 하신 줄 아십니까? 어차피 고블린 달러를 가져가나, 아니면 두카트를 가져가나. 결국 두카트를 가져가는 건 똑같은데. 대출 이자는 무려 1퍼센트나 차이가 나니 놈들이 우릴 바보로 봤던 겁니다. 그만큼 저희는 이 고블린 달러를 대륙 전체적으로 활성화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상대는 신용과 신뢰를 앞세운 고블린 방크였다.

아무리 고블린 달러가 생소하고 이상해도, 그동안 고블린 방크와 여러 거래를 해왔던 마르온 입장에선 고블린 달러가 마냥 싫지만은 않아졌다.

대출 이자가 싸다면 굳이 이자가 비싼 두카트를 가져갈 필요가 없지 않는가?

“고블린 달러를 대출하고 바로 두카트로 바꾸어 가도 문제는 없는 겁니까?”

“그건 안 됩니다. 고블린 달러로 빌려 갔을 때만 이자가 싼 것이고, 그걸 곧바로 두카트로 교환해 가신다면 곧바로 기존 대출 이자가 적용되는 겁니다.”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는 겁니까?”

“그야 원금하고 이자를 나중에 고블린 달러로만 받기 때문이죠. 만약 두카트로 돌려주신다면 기존의 6.5퍼센트의 이자가 적용될 겁니다. 그러니 꼭 기억하십쇼. 5.5퍼센트의 황금 프로모션이 적용되는 건 오직 고블린 달러를 빌려 갔을 때만 가능하다는 것을요.”

“흠…….”

1퍼센트의 이자 차이를 위해 생소한 고블린 달러를 대출해 가 이것을 모두에게 돈이라 소개한다?

그 정도 번거로움이야 1퍼센트 차이의 대출 이자 앞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1퍼센트만 해도 엄청나지. 작은 돈도 아니고 큰돈을 빌려가는 입장에선.’

“좋습니다. 대신 한 가지만 확실히 해뒀으면 합니다.”

이어지는 질문이야 골드만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것이었다.

“정말 그 고블린 달러는 두카트로 언제 어디서든 교환이 가능한 겁니까?”

그 말에 골드만은 세상 그 누구보다도 자신 있게 웃어 보였다.

“물론입니다. 굳이 저희가 아니더라도 대륙 최고 부자라 자부하는 제국의 로스메디치 가문에서도 확실히 보장해 주는 겁니다. 아니면 그쪽 가서 바꿔 보십쇼. 그들이 바꿔주면 제 말이 맞는 거고, 만약 틀린다면. 저희야 여기 장사를 오늘부로 접어야겠지요.”

금맥전쟁의 승자가 제국과 그곳에 속한 로스메디치 가문이라는 것은 대륙 전체적으로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하여 마르온은 의심보단 오히려 고블린 달러에 대한 신뢰를 더욱 높일 수 있었다.

‘여기서 거짓말을 할 리는 절대 없을 테고. 그런데 제국에서도 이 고블린 달러를 두카트로 보장해 준다는 건 조금 신기한 일이군. 제국은 본래 달란트를 쓸 텐데…… 그 줘도 안 갖는 구리 섞인 금화를 말이야.’

대출 승인과 함께 고블린 방크를 나서는 다크엘프의 수장, 마르온은 자신 뒤에 우뚝 서 있는 고블린 방크의 건물을 보며 피식 웃었다.

‘고블린 달러라……. 하여간 고블린 놈들은 지들 것에 꼭 지들 이름을 붙인단 말이야.’

그가 바라보는 곳엔 ‘고블린 방크’라는 간판이 크게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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