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융명가의 창시자-175화 (175/181)

§175화 44. 금맥전쟁 #3(7)

“물론입니다.”

록펠러 입장에서 고블린 달러를 대륙의 공용화폐로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그게 가능하기 위해선 우선 가치 저장 수단인 금을 가지고 있어야 하지.’

그리고 그 금을 대륙에서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게 바로 로스메디치 가문과 록펠러였다.

‘드워프와 고블린들도 제법 많이 가지고 있었지만 고블린들은 이미 투자 실패로 끝났고, 드워프들도 금맥전쟁에서 패한다면 금 보유량에서 절대 우리를 이길 수 없지. 왜냐면 우린 대륙에서 가장 큰 금맥을 손에 넣는 거니까.’

“이 자리서 전부 다 설명할 순 없지만. 금 보유량과 고블린 방크를 이용한다면 아마 충분히 가능할 겁니다.”

귀족들이 또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지 구체적으로 저희에게 알려주시면 안 되는 겁니까?”

그 물음에 있어 록펠러는 칼과 같았다.

“안 됩니다.”

“안 된다고요?”

“네, 이 사안은 저를 위해서나 제국을 위해서라도 비밀리에 진행되어야 합니다.”

귀족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런 게 뭐라고 비밀로 부쳐야 한단 말인가?

“그러시군요.”

하지만 록펠러의 권세 앞에서는 제아무리 날고 기는 귀족이라 할지라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묻고 싶어도, 궁금한 게 있어도, 딴죽을 걸고 싶어도.

결국 불가능하단 소리다.

“잘 알겠습니다. 그게 록펠러 합하의 뜻이라면 저희야 겸허히 받아들일 뿐입니다.”

그렇게 자리가 끝나자.

록펠러는 황제의 부름에 그를 찾아가게 됐다.

‘부른 이유야 뻔하지. 아까 한 얘기가 궁금할 테니까.’

귀족들이야 록펠러의 눈치를 볼 테지만, 황제는 아니었다.

황제는 기어코 록펠러를 불러내어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들어볼 작정이었다.

황제와 독대한 자리에서 록펠러가 예부터 갖췄다.

“부르셨습니까 폐하?”

황제도 너무 거만하지 않게 록펠러를 맞아주고선 그를 부른 이유에 대해 알려주었다.

“아까 하던 이야기를 좀 더 듣고 싶어, 이렇게 부르게 됐습니다.”

예상하던 게 맞아떨어지자 록펠러는 가볍게 웃을 수 있었다.

“그러시군요. 안 그래도 어림짐작하고 있었습니다. 그게 궁금하셨군요.”

“들어보니 저희가 쓰고 있는 고블린 달러를 대륙 공용화폐로 만든다고 하시던데. 그게 실질적으로 가능합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황제에게 록펠러는 거리낌 없이 답해주었다.

‘황제 혼자 아는 거라면 알려줘도 괜찮겠지. 어차피 같이 갈 사람이니까.’

권좌와 금융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상호협력적인 관계였다.

그렇기에 록펠러는 황제의 물음에 성실히 답해주기로 했다.

“네, 물론입니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그리 쉽지만은 않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어찌 됐건 저흰 그 조건을 어느 정도 갖췄으니까요.”

황제가 의문을 표했다.

“제겐 알려주실 수 있는 거 아닙니까?”

“하하, 걱정하지 마십쇼. 폐하께 제가 감출 게 뭐가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저는 폐하의 하나밖에 없는 재정고문입니다. 궁금하신 게 있으시다면야 저야 언제든 찾아와 폐하께 알려드려야죠.”

“그럼 알려주시면 안 됩니까?”

“네,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저희 고블린 달러가 대륙 공용화폐가 되기 위해선 제국에서처럼 고블린 달러가 널리 쓰이고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 대해선 공감하십니까?”

“널리 쓰여야 화폐가 되겠지요.”

“맞습니다. 널리 쓰여야 공용화폐가 되는 겁니다.”

고블린 달러는 현재 제국에서 무서운 속도로 달란트를 대체하는 중이었다.

이는 고블린 달러가 길드에 속한 방코로부터 전부 달란트로 교환이 가능한 것도 있었지만, 제국에 세금을 내기 위해선 고블린 달러가 꼭 필요했기에 그 수요로 인해 빠르게 퍼진 것도 있었다.

“저희 제국에서 고블린 달러가 달란트를 대체하게 된 배경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폐하께서는 그게 뭐라고 보십니까?”

“신뢰와…… 하나는 필요성이겠군요.”

“맞습니다. 바로 보셨습니다.”

기분 좋게 웃어 보이는 록펠러가 다음 말을 잇기 시작했다.

“그럼 제국에서처럼 고블린 달러가 대륙에서 공용화폐로 쓰이기 위해선 뭐가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신뢰와 필요성이겠군요.”

“바로 맞혔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능하다고 한 겁니다.”

황제는 의문이었다.

“대륙 전체가 제국과 비슷해지겠습니까?”

“안 될 건 뭐가 있겠습니까? 신뢰야 어떻게든 쌓으면 되는 거고, 필요성이야 만들면 되는 겁니다.”

“그 신뢰가 쌓이겠습니까? 저는 의문입니다.”

황제가 알고 있기론 달란트는 대륙에서 신뢰받는 금화가 아니었다.

화염전쟁 이후 구리가 섞인 관계로 다른 금화보다 순도가 낮아 다른 종족들이 기피했기 때문이었다.

“아시다시피 제국 달란트는 구리가 섞여 있어 다른 금화들보다 상대적으로 기피하는 게 현실입니다. 그리고 이걸 담보로 잡고 나온 게 고블린 달러가 아닙니까?”

록펠러는 부정하지 않았다.

“맞습니다. 고블린 달러는 달란트에 기반해서 나왔죠. 그래서 대륙 전체적으로 볼 때 고블린의 두카트보다 신뢰가 떨어지는 건 맞습니다."

“상황이 그러한데 제국 이외의 땅에서 고블린 달러에 대한 신뢰를 세우는 게 가능하겠습니까?”

단호한 록펠러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네, 가능합니다.”

“어떻게 가능한 겁니까?”

“우선 달란트를 포기하고 저희가 두카트를 쓴다면 충분히 가능하겠죠.”

“두카트를 쓴다고요? 그럼 제국에서 오랫동안 써왔던 달란트를 포기한다는 말입니까?”

“네, 대의를 위해 기존의 것을 버리는 겁니다. 그래야 고블린 달러가 대륙에서 두카트를 기반하는 대륙 공용화폐가 될 수 있으니까요.”

달란트를 포기할 줄이야.

황제 입장에서는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굳이 달란트를 포기해야 합니까?”

그 물음에 있어 록펠러는 확고히 답해주었다.

“달란트야 이미 신뢰를 잃었으니. 그 신뢰를 다시 세우기보단 기존에 있던 신뢰를 저희가 가져와 쓰면 그만입니다. 그게 바로 두카트죠.”

“…….”

어차피 달란트는 현 시점에서 제국의 공용화폐라 보기에는 상당히 애매해졌다.

이미 고블린 달러가 그 자리를 많이 대체하고 있었기에 그러했다.

‘하긴 요즘 들어 달란트 보기가 많이 힘들어졌지. 황실 창고나 아니면 방코에 가야 볼 수 있는 거니까.’

“그럼 앞으로 고블린 달러는…….”

황제가 뒷말을 채 잇기도 전에 살짝 웃어주는 록펠러가 그런 황제를 대신하여 말해주었다.

“두카트를 담보로 발행될 겁니다.”

“…….”

“그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리고 두카트는 대륙에 있는 모든 종족으로부터 어느 정도 신뢰를 인정받은 금화입니다. 그걸 꼭 사용해야만 합니다.”

“두카트를 담보로 할 줄이야…… 그럼 기존에 있던 달란트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기존에 쓰이고 있던 달란트야 거의 대부분 금고 안에서 썩고 있는 중입니다. 사람들은 그 금화를 전부 찾아가지 않으니, 저희야 아무도 모르게 달란트를 두카트로 서서히 대체해가면 됩니다.”

록펠러가 말을 이었다.

“제가 억지 좀 부려서 그렇지, 세상 사람들은 달란트보다 두카트의 순금 함량이 더 많다는 건 다 알고 있습니다. 만약 제국 내에서 두카트 사용을 장려한다면 그 누구도 순금 함량이 적은 달란트를 선호하진 않을 겁니다. 그럼 그런 달란트를 마법과 연금술을 통해 순금과 구리로 분리하고, 거기서 나온 순금으로 다시 두카트를 만들면 됩니다.”

“그렇게 해도 문제는 없는 겁니까?”

록펠러는 자신감에 찬 미소로 답해주었다.

“문제야 있겠습니까? 어차피 두카트야 금으로 만드는 건데, 저희가 가지고 있는 금으로 두카트를 만든다고 해서 대체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그것도 기존에 있던 두카트랑 순금 함량부터가 모두 일치하는데. 아마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진 않을 겁니다.”

“…….”

황제가 생각했다.

제국에서 찍어낸 두카트라 할지라도 결국 순금 함량이 기존의 두카트와 똑같다면 그것은 똑같은 두카트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두카트를 만들 금은 제국이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지.’

금맥전쟁의 승자는 제국으로 굳혀지고 있었다.

하여 황제는 자연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군요. 하긴 어디서 만들든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결국 중요한 건 두카트의 순금 함량인데.”

“네, 맞습니다. 저도 두카트의 신뢰를 무너뜨릴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랬다간 모두로부터 신뢰를 잃기 때문이죠.”

고블린 달러로 세상 모두를 기만하려는 그가 신뢰를 운운하자 황제는 속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하지만 이를 내색하지 않고 다른 걸 물어보았다.

“만약 제국에서 두카트를 허용한다면 생각보다 많은 두카트가 필요할지도 모르는데. 여기에 대한 대책은 있는 겁니까?”

“네, 당연히 있습니다.”

록펠러의 말이 곧바로 이어졌다.

“최근 들어 고블린 방크에선 두 번의 투자 실패로 인해 천문학적인 손실을 본 상태입니다. 그럼 그들이 손해 본 금화, 두카트는 지금 누구한테 갔을 거 같습니까?”

두 번의 투자 실패.

그게 맥주와 국채라는 건 황제가 잘 알고 있었다.

“제국이겠군요.”

“맞습니다. 최근 들어 제국에선 시중에 유통되는 두카트의 양이 엄청 많아졌습니다. 그만큼 고블린 방크에서 손해 본 금화가 제국 시중에 많이 풀렸다는 겁니다. 그러니 이런 이점을 이용하여 아무도 모르게 달란트를 두카트로 서서히 대체해가면 됩니다.”

“그 과정에서 혹여나 다른 문제가 생길 일은 없는 겁니까?”

그 물음에 록펠러는 가볍게 고개를 저어주었다.

“문제가 생길 순 없을 겁니다. 애당초 고블린 달러 시스템이 적용되고 있으니 사람들 수중에서 두카트가 잘 거래되진 않을 겁니다. 두카트도 달란트처럼 금고에 처박혀 장부상으로만 이동할 뿐. 그게 전부니 모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금화가 달란트에서 두카트로 교환되고 있다는 걸 알 수가 없겠죠.”

“그렇군요.”

“그리고 때가 됐을 때 앞으로 제국에선 달란트 대신 두카트만 쓰겠다고 공표하시면 되는 겁니다. 그럼 저희는 자연스레 신뢰를 잃은 달란트 대신 두카트를 쓰게 되겠죠. 그리고 이것은 저희가 찍어낸 고블린 달러가 대륙 공용화폐로 자리 잡기 위한 첫 번째 단계입니다.”

황제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이기 시작했다.

‘확실히 달란트가 아닌 두카트를 기반해서 고블린 달러를 찍어낸다면…… 제국 사람 외에도 고블린 달러를 선호할 순 있겠어. 어차피 고블린 달러야 제국에서 두카트로 교환이 가능할 테니까.’

하나는 해결한 듯싶었다.

그럼 마지막 문제가 남았다.

바로 필요성.

“고블린 달러의 신뢰야 두카트로 세우면 된다는 걸 알겠는데. 그런데 세상 모두가 고블린 달러를 굳이 쓰겠습니까?”

여기서도 록펠러의 자신감 넘치는 미소는 계속 이어졌다.

“쓰일 일이 없다면 제국에선 왜 고블린 달러가 달란트를 대신하여 그리 흔하게 쓰이고 있겠습니까?”

“그야…… 고블린 달러로만 세금을 내기 때문이죠.”

“그것도 맞지만, 사실 고블린 달러는 그 이전부터 많이 쓰이긴 했습니다. 다만 신뢰가 확실하지 않아 일부 사람들이 기피했을 뿐입니다.”

의문을 표한 황제도 이내 수긍하기 시작했다.

‘하긴 불편한 금화보다는 종이로 된 고블린 달러가 훨씬 쓰기 편하긴 하지.’

“그래도 많이 부족해 보이는군요. 대륙 모든 종족이 고블린 달러를 더 선호하게 만들 수는 없는 겁니까?”

“몇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만. 그중에 한 가지는 이겁니다.”

록펠러가 말을 이었다.

“저희가 대륙에서 가장 많은 금을 보유하고 있으니, 각 종족들에게 금 거래를 고블린 달러로 강제시키는 겁니다. 즉, 금을 사고 싶으면 무조건 고블린 달러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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