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화 44. 금맥전쟁 #3(6)
“지금 협박하시는 겁니까?”
록펠러의 물음에도 골드만은 거침이 없었다.
“협박? 협박이든 뭐든 무슨 상관이야. 지금 정당한 대가를 받겠다는데. 우리가 무슨 호구라서 너흴 도와준 줄 알아? 와이번들이 한 달 동안 처먹는 밥값만 해도 얼만데. 아무리 못해도 밥값 정도는 챙겨가야지.”
“아니, 협박도 장소를 가려가시면서 하셔야지. 이게 뭡니까? 뭔 되지도 않는 협박입니까?”
“뭐? 그래, 네놈은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된 모양이지?”
록펠러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안 되겠군요. 이전부터 영 마음에 안 들었는데, 계속 그렇게 나오신다면야…….”
이어지는 말이 제법 섬뜩했다.
“저희도 어쩔 수 없습니다.”
가소로운 말에 골드만은 콧방귀부터 끼고 봤다.
이어 록펠러가 펜던트를 만지자 낯익은 이가 그들 앞에 홀연히 나타났다.
“네, 네놈은!”
그를 가장 먼저 알아본 이는 다름 아닌 골드만이었다.
두 눈이 휘둥그렇게 떠진 골드만은 갑작스러운 이한의 등장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여기 어떻게 있는 거야?”
상황을 모르고 찾아온 이한을 대신하여 록펠러가 잔인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 모르셨군요. 저와 이한의 관계를 조금이라도 아셨다면 절대 그러지 않았을 겁니다.”
사방팔방에서 들려오는 와이번 포효 소리로 인해 찾아온 이한은 인상부터 구겼다.
“어이 록펠러, 이게 무슨 일이야?”
록펠러를 대함에 있어 존대가 없는 이는 제국에서, 그리고 대륙에서도 아마 이한이 유일할 것이다.
그런 이한을 향해 록펠러는 미소로 맞아주었다.
‘이한 어서 오고.’
“오셨군요. 일이 있어 부르게 됐습니다.”
이한은 록펠러가 부른 이유에 대해 대략적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고블린 방크의 수장, 그리고 밖에서 들려오는 와이번들의 포효 소리.
같잖은 일로 록펠러가 인건비 비싼 자신을 부를 이유가 없으니, 부른 이유야 뻔하지 않겠는가?
‘대충 알겠는데.’
“무슨 일로 부른 거야?”
이한을 믿고 있으니 이제 두려울 게 없는 록펠러도 거침이 없어졌다.
“그게 웬 고블린 녀석이 돼도 않는 협박을 하기에, 세상에 적수가 없다는 당신의 힘 좀 빌려볼까 불러봤습니다.”
“내 인건비가 아주 비싼 건 알고 있지?”
“이번만 도와주시면 당분간 부를 일은 아마 없을 겁니다. 그래도 제가 제 앞가림은 잘 하지 않습니까?”
“굳이 안 불러도 되는데…….”
“저 때문에 득을 본 게 많으실 텐데.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이한은 황제와 장내에서 술렁이던 귀족들을 가볍게 훑어보았다.
그들 중 몇몇은 자신과 사이가 안 좋던 이들이었다.
언제부터 저들과 적이 아닌 이런 애매한 관계로 남게 되었는지.
‘확실한 건 제국에서의 일은 저 녀석과 상의하면 된다는 거야.’
이한은 상당히 계산적이었다.
그런 이한이 생각하기를.
제국에서 무언가 필요한 일이 있다면 그저 록펠러를 찾아가 부탁하면 그만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한은 록펠러의 부탁을 들어줄 의향이 있었다.
밖에서 까부는 날도마뱀쯤이야.
뭐 아무것도 아니지.
“조금만 기다리라고. 간만에 몸 좀 풀고 올 테니까.”
이한이 자취를 감추자 당황한 골드만이 사라진 이한을 찾으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어, 어디로 간 거야?”
그 순간.
황성 밖에서 와이번의 포효 소리가 더욱 거칠어지며 귀를 찢는 굉음들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이어 거대한 무언가가 황성과 충돌했는지 황성 자체가 크게 흔들렸다.
하지만 수백 년을 거뜬히 버텨올 정도로 견고하게 지어진 황성인지라 내부는 천장에서 떨어져 내리는 먼지가루가 전부였다.
꽤나 시끄러운 황성 안에서 록펠러는 차분히 황제를 찾아 아뢰었다.
“폐하, 밖에서 자잘한 소란이 있을 거 같습니다. 혹시라도 피해를 입으신 부분이 있다면 저희 로스메디치 가문에서 전부 배상할 작정이니, 이 일에 너무 심려치 않으셨으면 합니다.”
옆에서 모든 이야기를 듣고 있던 황제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여주었다.
다 이해한다는 의미였다.
이어 록펠러의 시선이 자리에 남아 안절부절 못 하고 있던 골드만에게 향했다.
“최근 들어 투자 실패까지 맛보신 분이, 괜한 짓까지 하셨습니다. 이걸 어쩝니까? 귀한 밥까지 먹여가며 키워냈던 와이번이 순식간에 사라지게 생겼는데.”
고블린은 원래 겁이 많은 종족이었다.
다만 고리대금업을 통해 대륙의 모든 부를 거머쥐며 다소 거만해졌을 뿐.
밖에서 학살되는 와이번들의 소리가 황성 안까지 닥치자 골드만은 두려움에 몸을 떨기 시작했다.
‘빌, 빌어먹을. 어떻게 저놈이…….’
이한은 확실히 예상 밖의 일이었다.
만약 록펠러와 이한의 관계가 저리도 깊은 줄 알았다면.
제국 황성까지 찾아와 와이번 군대로 협박하는 멍청한 짓은 아마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거 큰일 났군. 정말 큰일이야.’
밖에서 학살되는 와이번들도 문제였지만 정작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제국 황성 안에 홀로 남은 자신이었다.
“어째 말이 없으십니다.”
록펠러가 웃으며 운을 떼자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던 골드만은 꼴사납게 나자빠지고 말았다.
인간 귀족들의 웃음소리가 장내에 가득 차고, 그런 비웃음 속에서도 어떻게든 빠져나가려는 골드만 앞으로 무장한 기사들이 막아섰다.
“이, 이놈들이! 내가 누군지 모르는 거야! 당장 안 비켜!”
하지만 큰소리를 치는 것도 다 예전 일이었다.
안 그래도 좋은 이미지가 아니었는데, 그를 붙잡는 기사들의 행동은 꽤나 거칠었다.
이윽고 포박된 골드만을 향해 록펠러는 그 앞까지 찾아가 입꼬리를 가볍게 들어 올렸다.
“제가 모르긴 해도.”
상대를 죽이는 야만적인 일은 없었다.
골드만은 고블린 방크의 세 수장 중 하나.
만약 그런 짓을 했다간 고블린 방크와 전면전을 각오해야만 했으니까.
그래서 록펠러는 그것보다 더 좋은 방식으로 그를 이용하기로 했다.
“고블린 방크의 수장이신 당신께 저희가 해를 끼치는 일은 아마 없을 겁니다. 붙잡혀 계시는 동안 나름 대우를 해드리죠. 대신 여기서 풀려나려면 아마 고블린 방크는 꽤나 많은 비용을 지불하셔야 할 겁니다.”
록펠러는 자신이 만든 고블린 달러를 지배하는 자였다.
그리고 그 고블린 달러는 제국 안에서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대륙 전체적으로 보면 아니었다.
그러니 이러한 일은 자신이 만든 종이화폐로 대륙 전체를 지배하는 일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저흰. 오직 고블린 달러만 화폐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게 뭔 소리야? 네놈들은 달란트를 쓰고 있었잖아.”
“달란트야 고블린 달러를 찍어내기 위한 기반에 지나지 않습니다.”
“뭐? 언제부터 그랬는데?”
“최근입니다.”
“최근은 무슨! 그걸 네 새끼가 뭔데 정하고 지랄이야!”
“이거 섭섭하군요. 제 직책을 벌써 잊으셨습니까? 전 제국의 화폐재무성을 총괄하고 있는 재상입니다. 이 나라의 화폐 시스템은 제가 관리하고 있죠. 그러니 제가 그렇다고 하면, 당연히 그런 겁니다.”
풀려나는데 돈을 지불하란다.
그것까진 뭐 그러려니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무슨 고블린 달러로 지불하라고 하니 골드만 입장에선 기가 찰 노릇이었다.
“그래 좋아. 그거야 너희 일이니까 알아서 하고. 그런데 풀려나려면 고블린 달러만 가능하다고?”
“네.”
“우린 두카트밖에 없는데?”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이어지는 록펠러의 미소가 제법 볼만 했다.
“풀려나실 땐 당신들의 금화가 아니라 고블린 달러를 지불하셔야 풀려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게 뭔 소리냐고! 우린 두카트밖에 없다니까?”
골드만 입장에선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우리가 고블린 달러를 가지고 있어야…….”
말을 하면서도 웃겼다.
아니, 제국 놈들의 화폐 이름이 왜 고블린 달러인 것인가?
‘근데 왜 이름이 고블린 달러야?’
생각해 보니 정말 웃긴 이름이었다.
‘뭔 상관이야.’
“우린 그 고블린 달러가 없다고. 그런데 그게 무슨 개소리냐고!”
그 말에 록펠러가 반응했다.
“아, 그러시군요. 세상에 대륙 공용화폐인 고블린 달러가 없으시다니.”
“공용은 무슨! 대륙 공용화폐는 우리가 만든 두카트고, 고블린 달러인가 뭔가는 그냥 너네가 만든 종이 쪼가리지! 그딴 게 무슨 화폐라고 나한테 들먹이고 있어!”
“아무튼 두카트로는 풀려나실 수 없으니, 정 풀려나고 싶으시다면. 고블린 방크에서 저희 고블린 달러를 취급하면 되겠군요.”
이어 록펠러가 말했다.
“그리고 저희는 금화를 기반하여 고블린 달러를 찍어내고 있습니다. 그럼 고블린 방크에서는 두카트로 고블린 달러를 구하면 되겠군요.”
달란트가 싸구려 금화라는 것을 골드만이 모를 리 없었다.
“그딴 것보다 우리 두카트가 더 좋은데! 그 무슨 말 같지 않은 소리야! 세상에 상식이 있으면 그냥 순도 좋은 우리 두카트나 처받을 것이지! 뭔 되도 않는 고블린 달러를 우리한테 내놓으라고 지랄이야 지랄은!”
이에 대한 록펠러의 대답은 아주 뻔했다.
“그거야 저희 알 바 아닙니다.”
“뭐? 알 바가 아니야?”
“당연히 저희가 알 바는 아니죠. 어쨌든 저희는 고블린 달러만 받습니다. 만약 고블린 달러가 없으시다면 당신도 영원히 감옥 안에서 썩어야 겁니다. 그리고 상식은.”
이어지는 말이 쐐기를 박았다.
“당신들 집구석에서 찾으시죠. 여긴 당신 안방도 아니고 제국입니다. 제국에선 제국 법을 따르라. 이 말도 모릅니까?”
“이런 개 같은 놈이! 뭔 돼도 안 않는 소리를 지껄이고 있어!”
골드만이 눈을 부라리며 모두를 향해 소리쳤다.
“어디서 개수작질이야!”
“이게 개수작이든 말든, 그거야 저희 알 바 아니고. 아무튼 고블린 달러가 없으면 평생 풀려나실 일이 없으니. 만약 풀려나고 싶으시다면 그쪽 사람들과 잘 상의해 보시길 바랍니다.”
대화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록펠러는 가볍게 턱짓하는 것으로 골드만을 쫓아냈고, 장내는 끌려가는 골드만의 비명 소리로 꽤나 소란스러워졌다 다시 조용해졌다.
그러다 한 귀족이 록펠러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런데 록펠러 합하께선 저희가 쓰고 있는 고블린 달러를 대륙 공용화폐로 만드실 생각이십니까?”
술렁이는 귀족들이 록펠러의 대답을 기다렸다.
록펠러가 그 물음에 답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네, 들으신 그대로입니다. 앞으로 저의 계획은 저희가 쓰고 있는 고블린 달러를 대륙 공용화폐로 만드는 일입니다.”
그 말에 귀족들 전체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러다 다른 귀족이 다시 말을 붙였다.
“그런 게 가능하겠습니까? 저희 말고 다른 종족들은 저마다 그들만의 화폐를 쓰고 있습니다. 드워프만 해도 소브린을 쓰고 있고, 고블린들은 그들이 만든 두카트를 쓰고 있죠. 그리고 엘프들은 금화 대신 데나리온이라 불리는 은화를 그들의 화폐처럼 쓰고 있습니다. 그나마 대륙의 공용화폐로 인지되는 게 있다면 고블린이 찍어낸 두카트인데, 과연 모두가 저희가 쓰는 고블린 달러를 공용화폐로 쓰겠습니까?”
그 물음에 록펠러는 그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당연히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혀 불가능한 일도 아닙니다.”
“불가능하지 않다면 나름대로 계획을 가지고 계신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