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융명가의 창시자-173화 (173/181)

§173화 44. 금맥전쟁 #3(5)

‘결국 던질 줄 알았지.’

제국이 망한다면 그들이 가지고 있는 국채는 휴지가 될 수밖에 없었다.

‘푼돈이라도 건질 생각이었겠지. 하지만 제국의 저력을 알았다면 그렇게 팔아선 안 되는 거였어.’

“그동안 제대로 된 반격도 없이 제국군을 계속해서 퇴각시켰던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조용하던 록펠러가 운을 떼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이유가 있었다고요?”

“그럼 이유도 없이 퇴각만 했겠습니까?”

“이유야 당연히 있었겠지만, 지금 상황이 안 보이십니까? 오크들은 황도 근처까지 진군해 왔습니다. 이미 유리한 고지를 다 차지하고 있어서 저들을 몰아내는 것도 꽤 시간이 걸리는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만한 희생도 치러야 할 테고요.”

그러자 록펠러는 대번 고개부터 저어주었다.

“그건 아닙니다. 오크들은 그냥 물러날 겁니다.”

록펠러가 호언장담하자 귀족들이 크게 술렁이며 그 이유에 대해 알고자 했다.

“그렇게 확신하는 이유가 뭡니까?”

고블린들이 국채를 던진 이상.

록펠러도 더 이상 숨길 게 없었다.

“그야 오크들의 남하는. 처음부터 제가 계획한 겁니다. 그러니 그들을 돌려보내는 것도 제가 알아서 할 수 있는 겁니다.”

그 말을 들은 귀족들은 더 크게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들 중 하나가 말이 없는 황제를 찾아 물었다.

“폐하, 폐하께서도 저 이야기를 알고 계셨습니까?”

귀족들의 시선에 황제에게 향하자 황제는 조용히 고개만 끄덕여주었다.

이어 록펠러의 목소리가 그들에게 닿았다.

“이 일을 실행하기에 앞서 가장 먼저 폐하께 허락을 구했습니다. 그러니 폐하께서도 당연히 알고 계시는 겁니다.”

귀족들은 이해할 수 없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그런데 왜 저희들은 아직까지도 몰랐던 겁니까?”

“그럼 테페즈나 싱클레어 쪽엔 아무 언질도 없으셨던 겁니까? 그들은 오랫동안 제국에 충성한 가문입니다. 다른 가문이라면 몰라도 두 가문에는 무조건 알리셨어야죠.”

그들의 물음에 록펠러는 이렇게 답해주었다.

“저는 이 일이 무조건 비밀로 부쳐지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폐하 외엔 아무한테도 알리지 않았던 겁니다.”

귀족들의 웅성거림은 멈추질 않았다.

그러다 한 귀족이 나서서 제가 궁금하던 것을 물어보았다.

“귀공께서도 다 생각이 있으셔서 그렇게 하셨겠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할 이유가 있었던 겁니까?”

“네, 그럴 필요가 있었습니다.”

“대체 뭘 위해서 그렇게까지 비밀로 부쳤던 겁니까?”

“그야 이번 금맥전쟁을 위해 제국에서 발행한 국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국채요?”

귀족들도 황실에서 부족한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 국채를 발행했던 일을 모르지 않았다.

“국채라면 고블린 방크에서 전부 사 가지 않았습니까?”

“맞습니다. 그들이 사 간 국채를 다시 헐값에 가져오기 위해 지금까지 오크들에게 지는 척 연기를 했던 겁니다. 그래야 고블린들이 가져간 국채를 헐값에 내던지지 않겠습니까?”

록펠러의 말에 귀족들은 그제야 수긍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제국군이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황도까지 퇴각했던 게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저흰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그동안 귀공의 생각도 몰라보고 오해해서 대단히 죄송하게 됐군요.”

“어쩐지. 너무 싸우지도 않고 뒤로 뺀다고 했어.”

“하하하! 고블린 녀석들은 이번에 큰 교훈을 얻었겠군요.”

“그럼 반격은 대체 언제 하는 겁니까?”

반격 이야기가 나오자 록펠러는 가볍게 웃어주었다.

“반격을 왜 합니까? 적들이 알아서 물러난다면 반격할 필요조차 없을 겁니다.”

“반격할 필요조차 없다고요 그럼 아까 하던 얘기는 뭡니까? 록펠러 합하께서 정말 오크들의 남하를 전부 다 계획하신 겁니까?”

“네, 하지만 제가 전부 계획한 건 아닙니다.”

혹여나 여기 이야기가 잘못 흘러나가게 된다면.

훗날 문제가 될 수 있기에 록펠러는 적당히 둘러대기로 했다.

‘이런 건 애매하게 말하는 게 최고지.’

“원래 오해 같은 게 있었는데, 그걸 풀지 않고 제가 이제까지 계속 끌고 왔던 겁니다.”

웅성거리는 귀족들이 의문을 토했다.

“대체 무슨 오해가 있었다는 겁니까?”

“간단합니다. 이번에 오크들이 남하한 것은 그들의 토템이 누군가에 의해 파괴당했기 때문입니다. 한데 그곳이 제국과 국경을 접하는 곳인지라 오크들이 그 범인을 제국 사람으로 단정 짓고 제국에 선전포고를 한 것이죠. 하지만 그 토템을 부순 건 저희 제국 사람이 아닙니다.”

그 말에 귀족들은 다시 한번 놀랐다.

“그럼 누굽니까?”

“누구긴 누구겠습니까? 저희가 곤란해지면 좋아할 사람이 대체 누구겠습니까?”

과연 누굴까?

술렁이던 귀족들은 그리 어렵지 않게 그 범인을 특정 지을 수 있었다.

“설마…… 드워프입니까? 드워프가 그런 치졸한 짓까지 했다고요?”

원하는 답변이 나오자 록펠러는 미소를 보였다.

‘솔직히 누가 알겠어. 진실은 아무도 모르는 거지. 이전의 토템 전쟁이 그렇게 시작된 것처럼.’

“그렇습니다. 드워프가 그런 추잡스런 짓거리를 하고서 지금까지 쉬쉬했던 겁니다. 어차피 그들이야 제국의 전력이 분산되거나 약해지면 몬테펠트로 영지를 점령하는 데 있어 당연히 유리해지니까요.”

알현장에 모인 귀족들은 표정을 구긴 채 드워프 욕을 해대기 시작했다.

“치졸한 드워프 놈들. 쥐새끼처럼 땅속에 살아 졸렬한 것은 알았지만 그 정도로 추잡스럽게 나올 줄이야.”

“정말 황금 앞에서는 물불 안 가리는 놈들입니다.”

“그들이 누가 엘프와 같은 핏줄이었다고 믿겠습니까? 그래도 드워프라면 양심은 좀 있는 줄 알았는데, 그놈들도 황금 앞에서는 한없이 추악해지는 고블린이나 별반 다를 게 없군요.”

그런 귀족들을 향해 록펠러가 다시 목소리를 내주었다.

“이제와 그 오해가 풀리게 되면. 오크들은 그들의 창칼을 곧바로 드워프에게 돌릴 겁니다. 어찌 됐건 저희에게 악감이 있는 게 아닌데 굳이 황도까지 진격해 오겠습니까?”

오크들이 선전포고를 하고 쳐들어온 것도 전부 다 토템이 망가진 것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범인이 인간이 아닌 드워프라는 게 밝혀진다면 오크들은 자동반사적으로 그 창칼을 드워프에게 돌릴 게 뻔했다.

수긍하는 모두를 향해 록펠러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리고 제국군도 더 이상 퇴각할 이유가 없으니, 곧바로 반격에 나설 겁니다. 그럼 오크들도 생각이 있다면 자신들의 토템을 부순 드워프 쪽으로 쳐들어가겠죠. 분해서라도 그럴 겁니다. 모든 종족을 통틀어서 가장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게 오크가 아니었습니까?”

승리의 쇄기를 박는 것처럼.

록펠러의 미소는 더욱 깊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만약 제 생각대로 일이 흘러간다면 몬테펠트로 영지를 지키는 일도 더욱 수월해지겠죠. 제국의 위기는 이것으로 끝났고, 이제 궁지에 몰린 건 또다시 오크 토템을 건드린 드워프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공포에서 시작된 회의는 환희로 끝나게 되었고, 황제의 명이 떨어진 제국군은 곧바로 대대적인 반격에 나섰다.

동시에 록펠러에게 신호를 받은 이자벨라는 자신들이 포박하여 데리고 있던 오크들을 풀어주었고, 그들은 머잖아 오크 대군에 합류하여 오크 대족장에게 거짓된 사실을 보고하는데 일조하게 됐다.

토템이 망가진 일로 크게 화가 나 있던 오크 대족장은 인간 마법사가 벌인 짓인 줄도 모른 채 그 분노를 쏟아내며 오크 대군을 드워프가 있는 산맥 쪽으로 틀기 시작했다.

그렇게 오크 대군이 빠르게 물러나자 제국군은 급히 병력을 나누어 북방으로 진격하였고, 본대는 다시 몬테펠트로 영지로 회군하였다.

더불어 교황의 지시로 인해 몬테펠트로 영지 밖에 주둔해 있던 교황군이 다시 몬테펠트로 영지로 찾아가 요새 방어에 힘쓰기 시작했고, 그렇게 제국은 거의 망할 뻔했다가 다시 기사회생하는 기적을 보여주었다.

덩달아 치솟는 제국의 국채 가격은 덤.

자신들이 판 국채 가격이 오크들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로 순식간에 치솟자.

이를 뜬 눈으로 지켜봐야 했던 고블린 방크의 세 수장은 그저 멍한 얼굴이었다.

“이게 뭐야. 이게 뭐냐고…….”

“아니, 그게…… 그게 살아나?”

그동안 여러 세력들을 이간질시키며 제 잇속을 챙기기에 급급했던 고블린들은 오히려 제국의 수작질에 휘말며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되었다.

“이거…… 아무리 봐도 이상해. 말도 안 된다고. 어떻게 다 죽어가던 제국이 그렇게 살아날 수 있냐고.”

“이거 말이 안 돼. 진짜 말이 안 된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좀 이상한데. 아니, 오크들이 그렇게 움직인다고?”

“애당초 오크들이 움직였던 게 토템이었잖아.”

“설마…….”

셋은 동시에 부정했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예전에 우리처럼 제국 놈들이 그딴 짓을 했을까.”

“그 버러지만도 못한 것들이 우리처럼 대가리를 굴렸다고?”

“하지만 그럴 수도 있잖아? 우리도 이제까지 그렇게 많이 해 처먹었는데.”

“하…… 이걸 어떻게 하지. 이거 너무 손해가 막심한데.”

제국과 얽힌 이후로 제대로 된 일이 하나도 없었다.

맥주 버블에서 손절한 것만 해도 피가 마를 지경이었는데, 국채 투기에서 완전히 망해버렸으니 이젠 대륙에서 제일 부자라 하기에도 애매해졌다.

그냥 어중간한 세력보다 나은 수준.

“드워프들도 오크들이 본진으로 쳐들어가는 바람에 가망이 없다고.”

“망할 오크 놈들이 빈집털이를 그렇게 해버리다니…….”

“하…….”

국채야 손절했으니 이제 제국과 드워프 이야기는 그들에게 남일이 됐다.

“그 빌어먹을 영지를 지키느라 와이번들도 많이 죽었는데. 그 죽은 거 누구한테 보상받을 거야?”

“제국이야 어차피 동의한 적 없으니 그냥 우리가 삽질한 거밖에 안 되잖아?”

“젠장할!”

그러다 골드만은 제국에서 자신을 상대했던 아주 건방진 인간 하나를 떠올릴 수 있었다.

“그래. 이제 알겠군. 이제 알겠어. 다 그 악마 같은 놈이 꾸민 짓이야.”

남을 많이 속여봤으니, 자기가 속았다는 걸 알아채는 것도 그리 늦지 않았다.

“그게 무슨 소리야? 그놈이 꾸몄다니?”

“전부 다 그놈이 벌인 짓이야. 그놈 말이야.”

“대체 누굴 말하는 거야?”

“그, 록펠러인가 로스메디치인가 하는 놈이 있잖아. 이게 다 그 제국 놈이 꾸민 짓이라고.”

“뭐? 그게 정말이야?”

“무슨 근거야?”

근거 따윈 없었다.

그저 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을 뿐.

“그냥 내 촉이 그래.”

표정을 구긴 골드만의 눈에서 화르륵! 불이 일기 시작했다.

“이 개 같은 놈들. 우리가 이렇게 물러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지. 그래, 가서 본때를 보여줘야겠어.”

* * *

“여긴 뭐 하러 오셨습니까? 저희 국채도 없는 마당에 이젠 채권자 신분도 아니고, 그저 남일 텐데요?”

금맥전쟁의 승자가 거의 제국으로 기울었을 무렵.

와이번 군세를 이끌고 제국 황제를 찾아온 골드만은 눈에 뵈는 게 없는 상태였다.

맥주 버블과 국채 투기에서 천문학적인 손실을 본 터라 어떻게든 그 손해를 메우고자 제국 황실에 땡깡을 부리기로 한 것이다.

특히나 자신 앞에서 감히 겁도 없이 입방정을 떨고 있는 저 록펠러란 인간을 보고 있자 하니 속에서 부아가 치밀어오를 지경이었다.

“갚을 게 없긴 왜 없어. 우리가 무슨 호구 같은 자원봉사자도 아니고. 그래도 우리 군대를 희생해서 몬테펠트로 영지를 지켜줬는데. 거기에 대한 수고비는 확실히 받아가야겠지.”

이어지는 와이번의 포효 소리가 황성 안까지 들이닥쳤다.

여차하면 황성을 뒤집어엎을 생각으로 골드만이 와이번 군세를 끌고 찾아온 것이었다.

“크흠! 그러시군요.”

그런 골드만의 속내야 록펠러를 포함한 제국 황제가 모를 리 없었다.

아직 금맥전쟁이 끝나지 않아 제국의 거의 모든 전력은 드워프와 대치하고 있던 몬테펠트로 영지에 집중되어 있었고, 만약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면 제국 입장에선 막을 도리가 없는 게 현실이었다.

“굳이 입 아프게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만. 지금 내가 마음먹기에 따라선 여기를 완전 엎어버릴 수도 있어.”

제국 황제 앞에서도 굽힘이 없는 골드만이 자신이 데려온 와이번 군세만 믿고 거들먹거리자.

이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록펠러가 이전에 이한에게 받은 펜던트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굳이 치트키까지는 안 쓰려고 했는데.’

하지만 필요에 따라선 쓸 수밖에 없는 게 바로 세상일이었다.

‘아마 놈들은 맥주랑 국채 투기가 실패해서 천문학적인 손해를 봤을 거야. 그러니 여기까지 찾아와 깡패짓거리나 하는 거겠지.’

거기다 가진 전 재산이라 할 수 있는 와이번 군세가 어느 먼치킨에게 몰살을 당한다면.

과연 그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아마 오늘부로 간판을 내려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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