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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명가의 창시자-171화 (171/181)

§171화 44. 금맥전쟁 #3(3)

록펠러가 자기소개를 마치자 골드만은 어렵지 않게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제국의 돈줄을 틀어잡고 가장 빠르게 권력의 핵심으로 급부상한 자였다.

‘저놈이 그놈이었군. 로스메디치인가 뭔가 하는 가문의 주인이 말이야.’

“오호라. 이제 알겠군. 당신이 소문의 그자였어. 어떤 상판대기를 가지고 있었는지 늘 궁금했는데, 이제 보니 새파란 애송이였군.”

도발적인 말에도 록펠러는 가볍게 웃어넘길 뿐이었다.

‘반갑다, 좋밥.’

“고블린방크의 수장을 이런 자리에서 뵙게 되다니, 나름 영광입니다.”

그런 록펠러의 말에도 골드만은 성의 없이 대꾸해 주었다.

“그래도 예의는 있군. 하긴 별것도 아닌 놈이 예의라도 없으면 큰일 나지. 내가 이 나라의 가장 큰 채권자인데, 나한테 찍히면 그땐 좋 되는 거야.”

“그보다 여기까진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저희야 잘하고 있는데.”

그러자 콧방귀를 뀌는 골드만이 있었다.

“흥, 어쩐 일로 오긴. 빌려 간 돈을 잘 갚을 수 있나 없나, 그걸 감시하러 왔지.”

굳이 둘러대지 않고 대놓고 말해주는 그에게 록펠러는 가볍게 웃어주었다.

“아, 그러시군요. 그런데 이걸 어쩝니까? 저희는 정말 잘하고 있는데. 괜한 걸음을 하셨습니다.”

“괜한 걸음이라고?”

골드만은 기분이 팍 상했다.

말투가 좀 건방져 보였으니까.

“이 새끼가 지금 뚫린 입이라고 어디서 망발을 지껄여.”

이어지는 골드만의 목소리에 날이 무섭게 섰다.

“야 이 새끼야! 개소리도 상대를 보고 지껄이란 말이야! 니 새끼들이 애당초 꿔간 돈을 잘 갚을 거 같으면 내가 여기까지 뭐 하러 와!”

귀청이 떨어져 나갈 정도의 고성에.

록펠러는 눈살을 찌푸리기보다는 고블린 방크의 수장이라는 그의 힘에 탄복했다.

어찌 보면 남의 집 안방에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꼴이 아니겠는가?

‘정말이지 대단한 배짱이군. 아무리 제국의 가장 큰 채권자라지만 여기서 저 정도 배짱을 부릴 줄이야. 그것도 제 몸조차 못 지키는 아무 힘도 없는 고블린 주제에.’

다르게 보면 골드만은 록펠러에게 있어 그의 롤모델이라 할 수 있었다.

‘저 모습. 훗날 내 모습이기도 하지. 하지만 저렇게 예의 없지는 않을 거야. 수준 떨어지니까.’

“아 그러시군요.”

씩 웃는 록펠러가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하늘 같은 채무자에게 정말 못하는 말이 없으시군요. 서로 동종 업계에 오래 있었으니, 제가 이 자리서 하는 말도 잘 아실 거라 믿습니다.”

“뭔 말?”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관심도 없었지만 골드만은 인상부터 쓰고 봤다.

그런 골드만에게 록펠러의 말이 이어졌다.

“채권자야 빌려줄 때야 서서 빌려주지만.”

이어지는 록펠러의 미소가 생각보다 잔인했다.

“그 돈을 받아갈 땐 엎드려서 받아가야죠. 그걸 잘 아시는 분께서 너무 배짱 좋게 행동하시는군요. 하늘 같은 채무자 앞에서 말입니다.”

“뭐, 이, 이 새끼가. 너 지금 뭐라고 했어?”

상대도 막말을 지껄였겠다.

록펠러 역시 거침이 없었다.

“뚫린 귀로 다 쳐들었으면서 뭘 그리 다시 물어보시는 겁니까? 다시 말해드립니까? 하늘 같은 채무자에게 잘 좀 보이시라고요.”

록펠러에 대한 이야기야 여러 차례 보고를 받았지만.

이리도 건방진 놈이었을 줄은 골드만도 알지 못했다.

‘저 새끼가 지금 제정신으로 한 소리야? 내가 여기서 뭘 할지 알고 저리 주둥아리를 나불거려?’

“지금 제정신이야?”

록펠러가 고개를 갸웃했다.

“제정신이요? 저야 멀쩡합니다. 아주 정상이죠.”

이어 록펠러가 자리한 귀족들을 향해 물어보았다.

“제가 정신이 나간 거 같습니까?”

설령 정신이 나갔다고 해도 그의 위치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귀족들은 그 누구 하나 나서는 이가 없었다.

그나마 제국 굴지의 가문인 테페즈와 싱클레어 가문 쪽의 사람이라면 뭐라도 말을 해볼 수 있겠지만.

이미 둘 다 그들의 가문 사람이 록펠러와 혼인으로 엮여 있는 상태라 그것마저도 쉽지 않았다.

만약 이 자리에서 문제가 생긴다면 록펠러를 지지해 주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소리였다.

“대답이 없으시군요.”

록펠러가 다시 골드만을 찾았다.

“여기 사람들은 제가 정상이랍니다.”

“이, 이 새끼가 뚫린 입이라고 아주 지랄을 하는군. 그래, 빌려줄 땐 서서 빌려주고, 네놈 말처럼 받아갈 땐 엎드려 받아가겠지!”

이어 골드만이 눈에 쌍심지를 켜고 윽박질렀다.

“그런데 몽둥이 쥔 채권자 앞에서도 그딴 소리가 나올 거 같아! 내가 지금 말 한마디면 여긴 그냥 잿더미가 되는 거야! 귓구멍이 제대로 뚫렸으면 밖에서 와이번 소리가 안 들리는 거야 뭐야!”

그의 경고대로 황성 안은 밖에서 울부짖는 와이번들로 인해 매우 시끄러운 상태였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는 록펠러가 그대로 맞서주었다.

“그럼 시원하게 불태우시고 그냥 돌아가시죠. 뭐 그리 겁을 주고 계십니까.”

“뭐, 뭐라고? 여길 다 태워 버리라고?”

“네, 여기까지 찾아와 저흴 걱정해 주시는 걸 보면. 저희가 망하면 그쪽도 같이 망하는 거 아닙니까? 그럼 다 같이 망하면 되지 뭘 그리 어렵게 생각하십니까.”

“뭐 이 새끼야?”

“아니면 제가 뭐 틀린 말 했습니까?”

“이 새끼가 진짜.”

아오, 혈압이야.

잠시 이성의 끈을 놓을 뻔했던 골드만이 이내 정신을 차렸다.

돈 문제에 있어서는 빠르게 이성을 찾는 게 그의 특징 중 하나였다.

아무리 마음에 안 드는 녀석이 있더라도 자신의 이익에 부합될 수 있다면 빠르게 태세전환이 가능하단 소리였다.

‘아니지. 이거 놈의 페이스에 제대로 말려들었구만.’

역시나 보고서에 나온 것처럼 아주 대단한 인간 청년이었다.

보아하니 채무자로서 말도 안 되는 똥배짱을 부리는 것 같은데, 이를 골드만이 모를 수 없었다.

“크흠! 내가 잠시 흥분해 버렸군. 그래, 돈 빌려 가 놓고 이따금씩 배짱을 부리는 놈들하고 상대하다 보면 나도 가끔씩 이성을 잃는다니까. 이놈을 몽둥이로 조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안 조질 수도 없으니.”

잠시간 화를 추스른 골드만이 조용해진 알현장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아무튼 대책은 있는 거야 뭐야?”

사실 이 자리에 골드만이 찾아온 이유는 딱 하나였다.

무능한 제국에게 자신들이 거느린 군대를 유료로 빌려주기 위함이었다.

거기서 발생한 비용은 제국의 국채로 받아가는 게 골드만의 목적.

하지만 그런 골드만의 속셈이야 이미 록펠러가 전부 꿰뚫어 보고 있었다.

고블린이 나중에 어떤 식으로 제국 일에 간섭하게 될지 이미 알고 있으니, 그들이 취할 행동도 뻔히 보였던 것이다.

‘가지고 있는 군대를 빌려주고 제국에서 추가적으로 발행한 국채를 그 대가로 가져갈 생각이겠지. 하지만 이걸 어쩌나? 그 속셈이야 뻔히 보이는데.’

“대책이야 당연히 있죠.”

록펠러는 제법 잔인한 사람이었다.

계속 웃고 있었지만, 천사가 아닌 악마라도 그 정도야 쉽게 할 수 있었으니까.

“저희도 나름 생각이 있으니 저희가 망할 걱정이야 그냥 붙들어 매시면 됩니다. 다 계획이 있으니까요.”

그런 말을 하는 록펠러의 속내는 이러했다.

‘어차피 우리가 망하면 너희도 같이 망하니, 결국 너희는 무일푼이라도 도와줄 수밖에 없다는 거지. 그걸 아는데 호구처럼 당해줄까?’

악덕 채권자만큼이나 무서운 게 악덕 채무자였다.

그리고 그런 악덕 채무자의 역할을 록펠러는 아주 잘 소화해 냈다.

“그러니 걱정 없이 그냥 돌아가셔도 됩니다.”

그 말에 골드만은 속이 뒤집힐 지경이었다.

알아서 못할 걸 알고 왔는데, 오히려 채무자란 새끼가 배짱을 부리고 있는 게 아닌가?

‘이 새끼들 설마 진짜 같이 망하려는 건가?’

그래도 제 목적을 상기시키는 골드만이 이 자리서 생색을 내보기로 했다.

“큼! 그래도 망하면 같이 망하는 거니. 우리가 조금은 도와줄 의향은 있는데.”

어차피 이런 이야기야 한낱 재상과 할 게 아니었다.

골드만은 어느새 황제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생각이 있으면 와이번 부대를 빌려 가지 그래.”

황제가 골드만과 시선이 닿았으나 애써 무시하기로 했다.

그도 록펠러와 생각이 비슷했던 것이다.

‘저들이야 어쩔 수 없이 도와줄 수밖에 없어. 그럼 굳이 우리가 비용을 지불할 필요가 없는 거지.’

록펠러도 언질을 줬던 내용이었기에 황제가 알아서 골드만의 시선을 피하자 골드만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피어올랐다.

‘뭐, 뭐야.’

“아니, 진짜 망하려는 거야 뭐야? 이거 반응들이 왜 이리 건조해. 우리가 독자적으로 운영하는 와이번 부대에 대해 전혀 모르는 거야? 대륙 최강의 군대란 말이야. 그걸 빌려주겠다고.”

골드만이 무어라 말하든.

록펠러의 태도는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그딴 거 없어도 저희들이 알아서 잘할 테니. 굳이 신경 쓰지 마시길 바랍니다.”

“오크 새끼들이 눈깔이 뒤집혀서 지금 대규모 군을 편성했는데 지금 그딴 소리가 나와? 그리고 몬테펠트로 영지에 있는 제국군을 빼버리면 몬테펠트로 영지는 드워프에게 내주게 되는데.”

오히려 어이없어하는 골드만이 록펠러를 손가락질하며 근처에 자리한 제국의 귀족들을 향해 말했다.

“너희 인간 놈들은 생각이란 게 있는 거야 뭐야! 저기 저 머저리 같은 놈이 나라를 말아먹으려고 하고 있는데. 떽! 어떻게든 말려야지! 아니면 뭐라 하든가!”

개가 짖어라.

애당초 그에 대한 반감이 강했던 제국의 귀족들은 여전히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하…….”

대꾸도 없는 제국의 귀족들을 보며 골드만은 제 속만 답답해졌다.

‘진짜 망하려고 작정한 거야?’

그럴 리가 있겠는가.

그제야 골드만은 그들이 정녕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됐다.

‘시방 이것들이 설마 우리가 무일푼으로 도와주는 걸 바라고 있는 건 아니겠지?’

그걸 어찌 알았을까?

씩 웃는 록펠러가 침묵하는 제국의 귀족들을 배경 삼아 머릿속이 복잡해 보이던 골드만을 향해 말을 잇기 시작했다.

“정 그렇게 저희가 걱정되신다면. 저희가 찍어낸 국채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고블린 방크에서 무상으로 도와주는 건 어떻겠습니까?”

“뭐, 뭐라고?”

“다 듣고 뭘 모른 척하십니까?”

이어지는 록펠러의 시선이 알현장에 있던 제국 귀족들에게 향했다.

“안 그렇습니까? 어차피 저희가 망하면 저희가 발행한 국채도 똥값이 될 텐데. 그걸 가지고 있는 고블린 방크에서도 가만히 있진 않겠죠. 그럼 저희가 굳이 불필요한 희생을 해가면서 고블린 방크의 도움을 바라야겠습니까? 제가 여러분께 물어보죠.”

그 물음에 답한 것은 귀족들 중에서도 가장 권위 있는 귀족인 테페즈와 싱클레어 가문의 사람들이었다.

“록펠러 합하의 생각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굳이 비용을 지불해 가며 고블린 방크의 도움을 바랄 필요는 없겠죠. 어차피 합하가 하신 말씀대로 저희가 망할 거 같으면 고블린 방크에서 알아서 나서줄 거 아닙니까?”

“저희 역시 공감합니다. 굳이 쓸데없는 비용을 지출할 필요가 없겠죠.”

이런 썩을 놈의 인간 놈들.

진짜 망하고 싶어서 환장한 것인가?

입매가 부들부들 떨리는 골드만이 파렴치한 제국의 귀족들을 노려보며 별의별 생각을 하였다.

‘진짜 마음 같아서는 다 태워 버리고 싶군. 이런 버러지 같은 놈들. 근성도 거지에다가 채권자 알기를 개호구로 알고 있어.’

차라리 제국에서 발행한 국채를 적당히 가져갔다면.

제국이 망하든 말든, 오히려 고블린 방크에서 배짱을 부릴 수 있었다.

하지만 제국에서 발행한 국채를 거의 쓸다시피 가져간 고블린 방크였기에.

골드만도 다른 선택권이 없어졌다.

‘개 같은 인간 놈들. 내가 두 번 다시 이 똥 같은 국채를 사나 봐라. 내가 진짜 몬테펠트로 영지만 아니었더라도 거들떠도 안 봤을 텐데.’

“흥, 알아서 하라고. 이제 나도 모르니까.”

그렇게 등을 돌린 고블린 방크의 수장을 향해.

록펠러는 잘 들으란 듯이 큰 소리로 무언가를 주문하기 시작했다.

“그럼 믿고 기다리겠습니다. 아, 저희 쪽 전력은 현재 오크들이 남하하고 있는 북방 쪽으로 집중될 예정이니, 저희를 생각하신다면 몬테펠트로 영지 쪽으로 신경 좀 써주시길 바랍니다.”

그 말을 듣고 골드만이 자리에 잠시 멈춰 섰다가 이내 주먹 쥔 손을 부들부들 떨며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천벌을 받을 놈들. 특히나 저놈은 뒤져도 꼭 지옥에 가기를.’

골드만이 속으로 악담과 저주를 퍼붓고 떠나가자.

그가 속으로 자신을 욕할 줄 알았던 록펠러는 가볍게 웃으며 이렇게 생각해 주었다.

‘나한테 무슨 저주를 퍼부었는지는 몰라도. 절대 지옥만큼은 안 가지.’

왜 안 가냐고?

‘이미 면죄부를 받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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