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융명가의 창시자-169화 (169/181)

§169화 44. 금맥전쟁 #3(1)

“명분이라…… 마땅한 명분이 없는 것 같은데.”

황제가 고심하자 록펠러 역시 좋은 핑곗거리가 있는지 생각해 봤다.

‘없긴 하지만 어차피 뭐라도 가져다 붙이면 그만이지.’

“아니면 이건 어떻겠습니까? 국경 지대에 대규모 오크들이 나타난 겁니다. 그럼 몬테펠트로 영지를 지키기 위해 파견된 제국군이 뒤로 물러날 이유야 충분하지 않습니까? 아무리 돈이 좋아도 나라가 망하는 걸 두고 볼 수는 없으니까요.”

급조한 내용이었지만 록펠러는 꽤 괜찮다고 생각했다.

‘드워프와 전면전을 벌이는 상태에서 오크들까지 껴들면 제국에서 발행한 국채 가격은 확실히 똥값이 될 거야. 이건 무조건 좋은 거지.’

황제가 눈가를 좁히며 생각했다.

‘시기적으로 보면 오크와 딱히 트러블이 생길 때는 아닌데…….’

겨울이 다가오면 오크들도 먹을 게 없어서 제국 국경지대를 넘어오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이때는 시기적으로 오크들과 전투가 많아 둘러댈 핑곗거리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시기가 아닌지라 황제가 우려를 표했다.

“지금이 겨울이라면 몰라도, 겨울이 아닌 이상 오크들과 사이가 안 좋을 이유가 없습니다. 이걸 어떻게 포장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그 말에 록펠러가 설핏 웃어 보였다.

“오크들이야 간단합니다. 그들이 가진 토템만 부숴도 아주 난리를 칠 겁니다.”

“토템이요?”

그러자 황제가 이전에 있었던 토템전쟁을 떠올리며 반감을 드러내 주었다.

“그건 안 됩니다. 그러다 오크와 전쟁이라도 난다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이전에도 그 문제로 오크들이 드워프와 전면전을 벌이지 않았습니까?”

토템은 오크들이 가장 신성시여기는 것으로 이를 건드는 건 오크를 향한 선전포고나 다름이 없었다.

황제의 우려에 록펠러도 공감하는 모습을 보였다.

“걱정하시는 부분이야 저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오크를 이용해야 하지 자칫 잘못해서 전쟁이 난다면 그건 저희에게 절대 좋은 일이 아니죠.”

“아시는 분이 말을 그렇게 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그러니까 미리 장치를 해놔야죠.”

“장치요?”

록펠러는 이 일을 훌륭히 해낼 사람들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 일을 시킬 적당한 사람들이 있긴 하지.’

“오크 영토에서 오크 정찰병들을 잡아놓고, 그 오크들이 보는 앞에서 드워프로 변장한 저희 쪽 마법사가 오크들 토템을 부수는 겁니다. 그럼 잡힌 오크들은 드워프가 범인이라고 생각하겠죠. 하지만 저희가 풀어주지 않으니 오크들도 자기들이 본 것을 부족 사람들에게 알리지 못할 겁니다.”

록펠러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그럼 제국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오크 부족들은 이렇게 생각할 겁니다. 인간들이 토템을 부쉈다고 말이죠. 그럼 전쟁 준비를 할 테고, 자연스레 저희는 그쪽으로 병력을 이동시킬 수가 있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제국군을 움직일 적당한 명분이 생기겠군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제국은 엄청난 위기에 직면하게 되겠죠. 당장 드워프도 벅찬 마당에 오크와의 전면전도 대비해야 하니까요.”

확실히 나쁘지 않은 생각이었다.

“그때 미리 잡아놨던 오크 정찰병들을 풀어주는 겁니까?”

록펠러는 미소와 함께 답해주었다.

“맞습니다. 그럼 풀려난 오크 정찰병들은 부족 사람들에게 찾아가 자신들이 본 것을 상세히 알리겠죠. 그럼 상황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제국과 한판 붙으려고 부족 연합군을 결성한 오크들은 그 대상을 바꾸어 드워프들에게 시비를 걸 게 분명했다.

“그런 계획이 있으셨군요.”

황제가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이자 록펠러가 말했다.

“그 과정에서 고블린들은 헐값이 된 저희 국채를 던지게 될 거고. 그 국채는 저희가 다시 싼 값에 사들이면 되는 겁니다.”

“그럼 고블린들이 사 갔던 국채를 어느 정도 가격에 던진다고 보십니까?”

“그거야 가 봐야 알겠지만, 액면가의 10분의 1 가격만 돼도 휴지보단 낫다고 생각할 게 분명합니다.”

“10분의 1 가격이라…….”

국채를 발행하여 고블린들에게 금화 100개를 받았는데, 그 국채를 돌려받으며 금화 10개를 준다라…….

황제는 자신의 재정고문이기도 한 록펠러가 다시 한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무서운 사람이야.’

“상황을 모르는 고블린들만 당하게 되겠군요.”

그 말에 록펠러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물론 일이 잘 풀린다면 그렇게 될 겁니다.”

“왠지 모르게 고블린들이 불쌍하게 느껴지는군요.”

“토끼 주제에 그동안 제 주제도 모르고 호랑이 굴에서 해 처먹은 게 있으니, 이제 그 분수를 알고 다시 뱉어낼 때가 된 겁니다.”

이어지는 록펠러의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제가 왔으니 말이죠.”

황제 입장에선 록펠러의 제안은 꽤나 흥미로웠다.

일을 그렇게 꾸며서 빌린 돈을 헐값으로 갚을 수 있다니.

“그런데 그런 생각은 어떻게 하신 겁니까?”

솔직히 이미 알고 있던 것을 다르게 응용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지구 역사에는 이런 적이 한 번 있었지. 이것과는 좀 다른 경우였지만 큰 틀에서는 동일하니까.’

“그냥 어쩌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황제는 록펠러의 제안을 수긍하기로 했다.

만약 국채 가격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고블린 방크에선 가지고 있는 국채를 빌미로 어떻게든 자신과 제국을 괴롭힐 게 뻔했으니까.

“그런데 그 일은 누구에게 시킬 생각이십니까?”

“안 그래도 그 일에 적합한 사람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적합한 사람이요?”

“네, 제가 여복이 좀 있는 것 같거든요.”

황제는 그 말에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 * *

황제와 헤어진 뒤 록펠러는 자신의 아내이자 싱클레어 마법사로 있는 이자벨라를 찾아가기로 했다.

‘별로 만나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안 찾아갈 수도 없겠지. 솔직히 이 일에 가장 적합한 사람은 그녀밖에 없으니까.’

그녀 말고도 이 일에 적합한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하지만 록펠러는 거기에 대해서는 아주 부정적이었다.

‘그놈은 안 되고. 인건비가 비싸도 너무 비싸니까.’

그렇다고 이자벨라의 몸값이 싼 것도 아니었다.

다만 형식상 자신의 아내였기에 록펠러는 다른 사람보다 그녀에게 부탁하기로 한 것이다.

‘그보다 언제까지 여기 있을 작정이지? 이러면 진짜 서류상 아내 같은데.’

그녀는 아버지 등에 떠밀려 록펠러와 결혼한 것을 탐탁지 않아 하는 상태라 록펠러와 같은 저택에서 살고 있지는 않았고, 여러 핑계를 대며 그녀의 본가에서 머물고 있었다.

가문의 위세만큼이나 으리으리하게 지어진 싱클레어 가문의 대저택을 보며 록펠러는 타고 온 팔두마차에서 내렸다.

‘내가 사는 곳보다 조금 큰 거 같은데…… 조만간 사는 곳을 옮기던가 아니면 대대적으로 증축을 해야겠군. 가진 게 돈밖에 없는 내가 여기보다 작은 데 산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

록펠러가 소식도 없이 찾아오자 싱클레어 가문에선 난리가 났다.

소식은 삽시간에 퍼져 나갔고, 심지어 가문 서고에 있던 가주까지 급히 호출되었다.

마법의 힘으로 모습을 드러낸 가주 애스틴이 부랴부랴 뛰어나온 하인들에게 둘러싸인 록펠러를 알아보았다.

“이 사람이. 이렇게 소식도 없이 찾아오면 어떻게 하나.”

그래도 사위였다.

이전에는 안 좋은 관계였지만, 그가 순순히 제 딸을 데려간 관계로 애스틴도 그를 적대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록펠러 역시 그와의 관계를 생각하여 가볍게 고개를 수그려주었다.

“굳이 안 오셔도 됐는데. 일이 있어 잠시 들르게 됐습니다.”

“안 그래도 딸아이가 자넬 엄청 찾았네. 대체 언제 오냐고 나를 얼마나 구박하던지.”

정말 그랬을까?

록펠러는 믿기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겉으로 티를 내지는 않았다.

“그간 너무 바빠 따님께 전혀 신경 쓸 여력이 없었습니다.”

“자네 정도면 충분히 바쁠 수도 있는 거지. 요즘 몬테펠트로 영지 때문에 얼마나 바쁜가? 그런 와중에도 여길 찾아왔다는 게 중요한 거지.”

“따님을 좀 만나봐야겠는데, 이자벨라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

그 말을 듣고 가주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제까지 관심조차 안 주던 그가 이제야 제 딸을 데려갈 생각이 생겼다고.

그것도 정식으로 말이다.

‘데려갔어도 진작 데려갔어야지.’

“지금 안에 있네. 내가 문 앞까지 데려다줄 테니, 나머지는 자네가 알아서 하게.”

그는 이 말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잘 타일러서 이왕 온 김에 자네가 데려가 줬으면 하네. 그래도 이제 출가외인인데, 저 아이는 이제 자네가 챙겨야지. 그리고 계속 저기에 있으면 여기저기서 말이 나와.”

그런 가주의 말에 록펠러도 수긍한 듯 보였다.

‘이왕 온 김에 데려가긴 해야겠지. 순순히 따라올지는 모르겠지만.’

“네, 앞으로 대공 전하께서 신경 안 쓰시게 잘 타일러서 제가 데려가 보겠습니다.”

그보다 듣기 좋은 말은 없었다.

“제발 부탁하네.”

그렇게 가주의 도움으로 그녀의 방 앞에 도착한 록펠러는 잠시 머뭇거리다 이내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반응이 없었다.

록펠러가 다시 문을 두드리려고 하자 방문이 열리며 형식상 아내로 있는 그녀가 모습을 보였다.

“…….”

“…….”

둘은 서로를 마주 보며 말이 없었다.

그러다 그 침묵을 깬 건 다름 아닌 록펠러였다.

“잠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그녀는 대답 없이 문만 열어주었다.

그렇게 안으로 들어선 록펠러는 여자 혼자가 쓰기엔 꽤 넓은 거실 같은 방을 보며 코끝을 매만졌다.

‘냄새가 좋군.’

“그래도 결혼한 사이인데, 살갑지는 않을망정 너무 삭막하게 구시는군요. 물론 원하던 결혼이 아니었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전 서류상으론 당신의 남편입니다.”

웃으며 말했으나 그녀는 전혀 웃기지 않는 모양인지 표정이 굳어 있었다.

괜히 말을 더 꺼내 봤자 어색해질 거 같아 록펠러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큼! 그냥 용건만 말하고 돌아가겠습니다. 이번에 고블린 방크에서 폐하가 발행한 국채를 대량으로 사들인 일에 대해선 아마 들어보셨을 겁니다.”

대꾸도 없는 그녀에게 록펠러는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그 일로 부탁할 게 있어 이렇게 찾아왔는데, 계속 말이 없으시군요.”

“그야 할 말이 없으니까요.”

“저도 당신과 결혼하기는 싫었습니다. 그냥 옆에서 보채니까 억지로 한 거지.”

그녀는 굳었던 표정을 구겼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록펠러만 답답할 뿐.

“대체 왜 그러시는 겁니까? 그냥 속 시원하게 말 좀 해보시죠.”

“여기까진 왜 찾아오신 거예요?”

“왜 찾아왔냐니요? 당연히 부탁할 일이 있어 찾아왔죠.”

“부탁할 일? 그럼 다른 건요?”

“다른 건 없습니다. 그냥 일이 있어 찾아왔죠.”

“…….”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그녀가 못내 납득하고 말았다.

애당초 서로 좋아서 한 결혼이 아닌데 뭘 바란단 말인가?

무언가 체념한 듯한 그녀가 다시 물어보았다.

“제게 부탁하실 일이 뭐죠?”

이제야 대화가 통하는 듯싶자 록펠러가 웃으며 운을 뗐다.

“마법사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솔직히 이 일에 다른 사람을 쓰는 건 꺼림칙해서요. 아마 당신이라면 여러 경험도 많을 테니 문제없이 그 일을 해결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록펠러는 이어 그녀가 해줄 일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 이야기를 다 듣고 난 그녀는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헐값이 된 국채를 다시 사신다고 했는데, 그럼 그 국채는 대체 누구 것이 되는 건가요?”

이제까지 그런 질문을 한 사람은 없었다.

다들 제국 것이 된다고 생각했을 뿐.

그 물음에 록펠러는 생각보다 잔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당연히 제 것이 되겠죠.”

“…….”

“제 돈으로 사는 거니까.”

“그럼…….”

제국 입장에서 보면 고블린에서 그로 채권자가 바뀔 뿐.

그녀가 보기엔 큰 차이가 없어 보였다.

“달라지는 게 아무것도 없잖아요.”

록펠러는 대놓고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아니죠. 달라지는 거야 당연히 있죠. 그래도 고블린보단 제국에 세금을 내는 제가 더 낫지 않겠습니까?”

“당신은 폐하가 아니에요.”

“폐하는 아니죠. 저는 권좌를 원하지 않으니까요.”

그가 바라는 이상은.

그녀가 보기엔 대단히 위험해 보였다.

“권좌를 바라지 않는다면서 그들을 돈으로 부리려 하고 있잖아요.”

“네, 맞습니다. 아주 정확히 보셨습니다. 그게 바로 제가 바라는 겁니다. 권좌에 앉지 않고, 그들을 부려먹는 거. 이렇게 하면 남들의 시선을 피할 수 있어 자유롭고 또 안전하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게 그들처럼 무소불위의 권력도 가질 수 있습니다.”

거짓 없이, 오히려 대놓고 말하는 그에게 그녀는 뭐라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잠시 머뭇거렸다.

하지만 그녀가 어떤 결론을 낼지는 록펠러 본인이 잘 알고 있었다.

“세상 이런 자리가 또 없죠. 아마 보통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모두 위에 폐하가 있다고.”

말을 마친 록펠러가 보란 듯이 고개를 천천히 저어주었다.

부정한다는 의미였다.

“제가 볼 땐 아닙니다. 그 폐하 위에 있는 건 저도 아니고 당신도 아니고 아무도 아닙니다. 그저 이게 있죠.”

록펠러는 품에서 고블린 달러를 꺼내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걸 지배하는 게 바로 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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