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화 43. 금맥전쟁 #2(3)
폭등했던 맥주 가격이 무섭게 폭락함과 동시에 맥주 사재기에 나섰던 수많은 귀족들과 부유한 평민들이 한순간에 빚쟁이로 전락하고 말았다.
특히나 무리하게 맥주를 사들였던 어느 영주는 몬테펠트로 영주와 마찬가지로 영지 대부분을 길드나 방코에 담보로 잡히는 일까지 생겨났다.
어디 그뿐이랴?
그런 영주를 포함한 맥주 투기에 나섰던 대다수의 투자자들이 한순간에 빚쟁이가 되었고, 그들에게 돈을 빌려준 로스메디치 가문의 위상은 한 단계 더 높아질 수 있었다.
맥주 버블 이후.
제국민들은 막대한 부를 쌓아 올린 로스메디치 가문을 제국의 세 명가와 어깨를 나란히 하거나 약간 더 높은 정도로 치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로스메디치 가문의 위상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을 때도 금맥전쟁은 계속되고 있었고, 맥주 버블로 인해 나름 재미를 본 록펠러는 그다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 싸움의 마지막 피날레는 아무래도 고블린들이 사간 국채를 다시 가져오는 일이 되겠지.’
국채를 가져간 고블린들은 어느 시점이 되면 제국에 채무상환을 요청할 것이다.
그러면서 뒤로는 문제를 일으켜 제국이 절대 그 빚을 갚지 못하도록 방해할 것이고, 상환 시기가 닥친 제국에선 급한 대로 국채를 또 찍어내어 고블린들에게 내줄 가능성이 컸다.
‘그렇게 되면 결국 제국만 크게 빚지는 꼴이지. 전쟁에서 이겨 금광을 소유해도 결국 그 부는 고블린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는 거야.’
하여 제국으로 하여금 국채를 계속 찍어내게 하여 궁극적으로는 제국의 가장 큰 채권자가 되는 게 고블린 방크의 목표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 있지.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은 가지고 있다는 거. 처맞기 전까지.’
여기서 록펠러의 계획은 이러했다.
고블린들이 가지고 있는 국채 가격을 똥값으로 만들어 그들이 어쩔 수 없이 국채를 내다 팔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똥값이 된 국채를 전부 사들인 뒤 그 국채 가격을 예전 가격으로 되돌리는 게 록펠러가 그리고 있는 계획이었다.
‘고블린들이 비싸게 주고 산 국채를 똥값에 매수하는 거야 정말 아름다운 일이지.’
맥주 버블 이후 대다수의 영주나 귀족들은 로스메디치 가문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이는 로스메디치 가문이 그들의 가장 큰 채권자였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만약 로스메디치 가문이 제국에서 발행한 국채를 독점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고블린들이 바랐던 일을 우리 가문이 이룰 수 있는 거지.’
국채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이에 대한 신뢰가 훼손된다면 국채를 사들인 쪽에선 거센 반발이 일어나 대내외적으로 큰 문제를 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게 국채의 신뢰가 훼손된다면 두 번 다시 국채를 발행할 수 없다는 거지. 설령 발행해도 갚지도 않을 걸 다 아는데 어떤 멍청이가 그걸 사려고 하겠어.’
하여 제국에서 국채의 신뢰를 지키려 한다면 그들은 원치 않게 로스메디치 가문의 하수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왜냐?
그들이 발행한 국채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게 바로 로스메디치 가문이 될 테니까.
그리고 그들이 얼마나 많은 세금을 뜯어간다 할지라도.
‘그 세금은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돌아오게 되어 있지.’
록펠러가 그리는 마지막 그림이었다.
제국에서 발행한 국채를 헐값에 가져와 이를 토대로 제국 전체를 자신과 가문의 노예로 만드는 일.
‘결국 내가 바라는 대로 된다면 나와 우리 가문은 한평생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겠지. 우리가 일을 하지 않아도 빚쟁이가 된 나라에서 알아서 우릴 먹여 살릴 테니까.’
자신을 포함한 제국민이라면 귀족이나 평민 가릴 거 없이 모두가 내는 세금.
그 세금은 궁극적으로 로스메디치 가문에게 돌아와 그들을 더욱 살찌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록펠러가 바라는 가장 아름다운 결말이었다.
‘자 그럼, 제국에서 멋모르고 발행한 국채를 똥값으로 만들어 볼까?’
한 나라에서 발행한 국채는 상환 시기가 될 때까지는 원금은커녕 이자조차 돌려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급전이 필요한 이는 이 국채를 남에게 팔아 돈을 챙길 수 있었는데, 이런 이유로 국채 가격은 고정되지 않고 유동적으로 변할 수 있었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 국채를 발행한 A라는 국가가 갑작스레 B국가의 침략을 받아 망하게 된다면, A국가에서 발행했던 국채는 나중에 상환 시기가 되어도 원금은커녕 이자조차 돌려받을 수 없기 때문에 이 국채 가격은 A국가가 망하는 시점에서 거의 똥값이 될 수밖에 없었다.
록펠러도 이 점을 잘 알았기에 현재 제국에서 어떤 포지션을 취해야만 그들이 찍어낸 국채가 똥값이 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일단 망하는 척 연기를 해야 한다는 거지.’
몬테펠트로 영지를 지키기 위해 제국군 이외에 교황군까지 가세한 형세였다.
여기다 로스메디치 가문에서 독자적으로 고용한 용병 부대까지 감안한다면 제아무리 드워프 연합군이라 할지라도 몬테펠트로 영지를 쳐들어오는 게 여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국채 가격이 무식하게 뛰었지.’
맥주 버블이 있던 시기에.
제국의 국채 가격 또한 무섭게 치솟았다.
제국에서 모은 병력이 꽤 됐기에 사람들은 금맥전쟁의 승자를 드워프가 아닌 제국으로 점친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형세가 바뀌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치솟았던 제국 국채 가격은 다시 똥값이 되겠지.’
금맥전쟁 이전의 제국은 왕관 전쟁을 포함한 다수의 전쟁으로 인해 재정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태였다.
‘그나마 몬테펠트로 영지에서 금광이 발견됐다기에 제국의 국채 가격이 반짝 오르긴 했지만, 그전까지는 제값을 받지 못했지. 제국 사정이 너무 어렵다 보니까 사람들이 깊은 회의감을 느꼈거든. 제국에서 발행한 국채를 제대로 상환해 줄지 의문이 생겼다는 소리야.’
하여 금맥전쟁의 승자가 드워프로 점쳐진다면.
제국에서 발행한 국채 가격이야 똥값이 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다행히도 고블린 방크에선 비싼 값을 주고 국채를 대량으로 매입해 줬지.’
고블린 방크에선 평소보다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공격적으로 제국의 국채를 사들였다.
나중에 제국이 이겼을 시 이에 대한 권리 행사를 위해서였다.
‘자 그럼 일부러 높여놨던 국채 가격을 다시 똥값으로 만들어볼까?’
하여 록펠러가 가장 먼저 찾아간 이는 바로 법황청에 있는 교황이었다.
“성군을 잠시 물려달라고?”
“네, 잠시만 물려주시면 됩니다.”
“그럼 영지를 드워프에게 뺏기게 될 텐데, 이건 자네가 바라는 일이 아니잖나?”
그런 교황의 말에 록펠러는 부정하지 않았다.
“물론 좋은 일은 아닙니다. 다만 제 목적이 있어 제국이 지는 형세를 만들어야 하기에 이렇게 찾아와 부탁드리는 겁니다.”
알 수 없는 말이었다.
대체 무슨 계획이 있다는 건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 그 땅을 그렇게 뺏기게 되면 나중에 되찾으려 할 때 더 큰 수고를 들여야 하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 금맥전쟁의 승자가 누가 될지 거의 확신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흐음……. 이유가 뭔가?”
고블린 방크의 정보력은 생각보다 대단했다.
하여 교황조차 믿지 못하는 록펠러가 그에게 양해를 구하기로 했다.
“일이 다 끝나고 알려드려도 되겠습니까? 성하께서 입이 무거운 거야 저도 잘 알고 있지만, 여기 이야기를 누가 들을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그럴 일이 있겠나?”
“그래도 전 조심하고 싶습니다. 제가 바라는 바가 있기 때문이죠.”
당장 이해는 할 수 없으나, 록펠러를 신뢰하고 있던 교황은 수긍했는지 이내 고개를 주억여주었다.
“알겠네. 자네가 어떤 의도로 그렇게 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자네 나름대로 생각이 있겠지.”
“그렇게 봐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나중에 일이 잘 풀린다면 성하와 교회에 더 충실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하하하, 말이라도 고맙군. 알겠네. 일단 자네 요구대로 성군은 잠시 물리도록 하겠네.”
“아, 혹시 이유가 필요하시다면. 저와의 불화 때문에 성군을 잠시 물리게 됐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말 좀 해주십쇼. 꼭 필요한 겁니다. 그래야 성군이 물러나는 걸 사람들이 의심하지 않을 테니까요.”
록펠러가 한 말을 곱씹어보던 교황은 이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줬다.
“그래, 자네한테 뭔가 있는 모양이군. 일단은 그렇게 해주겠네. 대신 나중에 일이 끝나면 왜 그렇게 했는지 알려주게나.”
“네, 일이 끝나면 성하께 전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록펠러가 법황청을 들른 직후.
몬테펠트로 영지에 주둔하고 있던 성군이 갑자기 회군하기 시작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사람들은 그 이유에 대해 알아보았고, 머잖아 법황청에 위치한 교인들로부터 록펠러와 교황 사이에 있었던 불화에 대해 듣게 되었다.
자세한 내용까지는 몰라도 서로 싸웠단다.
그리고 그 불화 내용은 고블린 방크까지 빠르게 전달되었다.
“뭐라고? 성군이 회군해?”
금맥전쟁에서 제국의 당연한 승기를 점치며 공격적으로 국채를 매수했던 고블린들에겐 청천벽력 같은 소리나 다름이 없었다.
“이런 빌어먹을. 우리가 그 줘도 안 먹는 국채에 박은 돈이 얼만데. 그런데 왜 갑자기 회군하고 지랄이야 지랄은!”
고블린답게 입이 거친 그들은 제국의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에 상당히 당황한 눈치였다.
“아니 이러면 제국이 질 수도 있는 거 아니야?”
“그건 아니지. 성군이 작지 않은 규모라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국군이 바로 질 정도는 아니지. 제국 놈들이 돈은 없어도 전투 경험은 오지게 많다고. 최근 왕관 전쟁도 치렀잖아? 그 경험 어디로 안 가.”
“아니, 그 새끼는 대체 왜 교황하고 싸우고 지랄인 거야. 그놈 대가리에 총이라도 맞은 거 아니야?”
지금 그들이 말하고 있는 이는 바로 록펠러였다.
“모르겠어. 왜 갑자기 그렇게 됐는지…….”
“뭐 자세히 알아볼 길은 없어? 이거 중요하다고.”
“법황청에도 우리 쪽 끄나풀이 있긴 하지만. 별다른 소식이 없는 걸 보면 아마 그 소문이 맞는 거 같은데?”
“그럼 성군이 물러나면 제국이 독자적으로 막아야 한다는 소리 아니야?”
“이러면 좀 곤란한데…….”
“일단 더 지켜보자고. 아니면 우리가 직접 나서서 도와줘야 할지도 모르겠어.”
“우리가?”
“우리도 와이번 부대는 데리고 있잖아. 영 아니다 싶으면 국채가 똥값 되기 전에 움직이긴 해야겠지.”
“그래, 우리가 가진 게 돈밖에 더 있겠어? 영 아니다 싶으면 우리가 군을 투입해서 도와주면 돼.”
“에이씨…….”
성군이 물러난 뒤.
록펠러가 다음으로 향한 곳은 제국 황제가 있는 황도였다.
황성에 도착한 록펠러는 곧바로 황제와 단독으로 만남을 가졌다.
“제국군을 물려달라는 말입니까?”
황제 역시 교황과 그 반응이 비슷하면 비슷했지, 절대 다르지 않았다.
“지금 당장 수비 병력을 빼버리면 몬테펠트로 영지는 바로 드워프 소유가 될 겁니다.”
“제가 고용한 용병 부대도 있고, 마석탱크 또한 있으니 드워프들이 바로 점거하지는 못할 겁니다.”
“이유가 따로 있는 겁니까?”
황제에겐 이미 설명한 내용이라 록펠러는 간략하게 말해주었다.
“일전에 한번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고블린들이 사간 국채 가격을 다시 떨어뜨려야 한다고요. 만약 그대로 둔다면 놈들은 영원히 제국의 문젯거리가 될 겁니다. 그럼 그렇게 되기 전에 무조건 잡아야죠.”
그제야 황제는 록펠러가 왜 제국군을 잠시 영지 밖으로 물리라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고블린들이 사간 국채 가격을 일부러 떨어뜨리기 위해 자신에게 그런 부탁을 한 것이다.
“하지만 명분이 없잖습니까?”
이에 대한 록펠러의 대답은 꽤나 명쾌했다.
“명분이야 만들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