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융명가의 창시자-165화 (165/181)

§165화 42. 금맥전쟁(3)

록펠러의 말은 아리송한 것이었다.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습니까?”

황제가 의문을 표하자 록펠러가 목소리를 낮춰 그 방법에 대해 말해주었다.

이야기를 듣고 난 황제의 표정은 묘했다.

정말 그렇게 될까?

“그렇게 되리라 생각하십니까?”

“어차피 고블린 방크는 가만히 놔둬서는 안 되는 녀석들입니다. 이참에 좋은 기회가 있을 때 힘을 빼놓는 것도 나쁘지 않겠죠.”

“흐음…….”

“그리고 이왕 파실 거 다른 곳에서도 관심을 가질지도 모릅니다. 일단 파십쇼. 뒷일을 걱정하지 마시고 계속 파시면 됩니다. 나라를 팔 생각으로 팔면 꽤 많은 돈이 모일 겁니다.”

“나라를 걸고 하는 도박입니까?”

“좋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제국이 가진 저력을 생각한다면 그리 쉽게 망하진 않겠죠.”

도박.

황제가 좋아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부족한 재정을 단번에 충당시킬 수 있는 방법은 록펠러가 말한 게 유일했다.

‘어쩌면 이건 기회일 수도 있겠군.’

“그럼 귀공의 말만 듣고 한번 해보도록 하죠. 솔직한 심정으로는 나라를 두고 하는 도박이라 그리 달갑진 않지만, 그대 말처럼 대륙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면.”

한번 걸어볼 만하지 않겠는가?

들어본 계획도 그렇게 나쁘진 않아보였다.

“가능성이 높겠군요.”

“성공만 한다면 폐하께선 재정 문제에 대해선 어느 정도 해방되실 수 있을 겁니다. 보통 한 나라가 위태로워지는 경우는 재정적으로 문제가 생겼을 때가 많습니다. 반대로 재정이 풍부하다면 그 나라는 안정적이며 평이한 통치를 이어나갈 수 있죠.”

록펠러의 말이 이어졌다.

“폐하는 어떤 제국을 이끌고 싶으십니까? 재정적으로 부유한 제국입니까 아니면 재정적으로 궁핍한 제국입니까? 이건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아실 거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언가를 얻기 위해선 배팅이란 건 항상 필요하죠. 세상에 거저 얻는 건 없는 겁니다. 폐하께서 어떻게 그 자리에 오르셨는지,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황제와 대화를 마친 록펠러는 황성을 나가기 전에 자신의 동생인 루시아를 찾아갔다.

황궁 시녀들과 함께 있었던 루시아는 록펠러가 찾아오자 그에게 달려가 와락 안겼다.

“록펠러 오라버니!”

“루시아, 갑자기 이러면 어떻게 해.”

“오라버니인데 어때서요!”

“그래도 제국 안사람으로서 품위를 지켜야지.”

시녀들이 뒤로 물러나고 록펠러와 루시아만 남은 자리에서, 록펠러는 막둥이의 결혼 생활에 대해 물어보고자 했다.

“루시아, 요즘 어떻게 지내니?”

“저야 잘 지내죠. 오라버니는요?”

“나도 뭐…….”

잠시 뜸을 들이던 록펠러가 루시아에게 용서를 구하고자 했다.

“루시아. 네 의사도 없이 결혼시킨 건 정말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아니요. 전혀요. 전 정말 좋은데요?”

“그래? 그러면…… 좋은 거고.”

혹시나 해서 용서를 구했더니 괜한 걱정이었다.

루시아는 황제와의 결혼 생활에 대해 아주 만족하고 있었고, 딱히 문제 될 게 없어 보였다.

‘하긴 내가 이렇게 버티고 있는데. 적어도 내 힘과 지위가 유지될 동안은 문제없겠지.’

설령 문제가 생겨도 황제의 성품에 대해 알고 있는 록펠러는 크게 걱정하진 않았다.

‘황제도 나름 착한 사람이니.’

“루시아.”

록펠러의 부름에 루시아가 눈을 반짝이며 그를 쳐다보았다.

“왜요, 록펠러 오라버니?”

“제국의 황후로서 항상 당당하거라. 우리 가문이 꿇릴 것도 아니니, 이 오라버니만 생각하고 네 편한 대로 살면 돼.”

록펠러는 멋도 모르고 시집을 간 제 동생에게 이 말만은 꼭 해주고 싶었다.

멋대로 살라고.

“하지만 개판 치지는 말고. 무슨 말인지는 알겠지?”

그 말에 루시아는 세상 가장 해맑은 미소로 답해주었다.

“네, 알고 있어요.”

그날 이후.

제국에선 드워프와의 전면전에 대비하기 위해 막대한 양의 국채를 발행하기 시작했다.

제국의 국채 발행 소문이 돌자, 해당 국채를 사기 위한 큰손들의 움직임이 있었고, 여기엔 고블린 방크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고블린 방크를 이끄는 원탁회의에서.

외알 안경을 쓴 골드만이 제국의 국채 발행 소식을 듣고 입을 뗐다.

“좋아. 우리가 생각했던 대로 제국에서 국채를 발행하기 시작했군.”

국채는 다르게 말하면 차용증서, 즉 빚문서였다.

언제든 채권행사를 할 수 있는 다른 차용증서와 다르게 국채는 빌려준 금화를 돌려받기 위해선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상환 시기에 따라 1년 이내의 단기 국채와 1년이 넘어가는 장기 국채가 있었고, 보통 빌려준 기간이 길수록 이자 역시 높았다.

하여 안정적인 고수익을 원하는 투자자들은 제국에서 발행한 장기 국채를 사들였다.

“그것도 꽤 큰 규모야. 아무래도 전쟁이 독해질 거 같으니까 제국 쪽에서도 지레 겁을 먹은 모양이군. 그동안 발행조차 안 하던 국채를 이리 찍어낼 줄이야.”

골드만의 미소가 짙어졌다.

“미련하면 나라가 고생하게 되지.”

골드만의 말에 모건이 반응했다.

“맞아. 그래서 나라 대가리는 머리가 좋아야 돼.”

“우선 발행하는 건 웃돈을 주고서라도 무조건 사들이라고.”

“그렇게 해야지. 어중간하게 국채를 가져봤자 놈들이 콧방귀나 뀌겠어?”

골드만이 강조하듯 말했다.

“그리고 국채 상환 시기가 다가오면 제국 놈들이 상환을 못 하게 또 말썽을 일으키는 거지. 또 전쟁이지. 그럼 알아서 국채를 발행하겠지. 어찌 됐건 발행한 국채는 상환해야 할 거 아니야?”

그 악순환의 끝은 무엇일까?

“그렇게 되면 놈들은 큭큭큭…….”

골드만의 미소가 더욱 노골적으로 짙어졌다.

“우리의 충실한 노예가 되는 거지. 평생 국채만 찍어내다 뒤지게 될 거야. 그러다 한계까지 다다르면 몬테펠트로 영지를 포함해 제국의 모든 건 자연스레 우리 것이 되는 거고.”

골드만의 말에 모건과 제이피가 덩달아 웃었다.

“좋은 계획이야. 그렇게 작업 치자고.”

“시작해. 국채란 국채는 무조건 사들여. 아예 제국이란 나라를 전부 사버릴 정도로.”

고블린 방크에서 주도적으로 나서서 제국 국채를 공격적으로 사들이기 시작하자, 이를 문제 삼는 제국 귀족들이 황제를 찾아가 그 위험성에 대해 알려주었다.

“폐하, 고블린들이 저희가 발행한 국채를 대량으로 매입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놔둔다면 당장 부족한 재정이야 어떻게든 충당할 수 있겠으나, 훗날 상환 시기가 오면 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황제 역시 그 문제에 대해 모르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다가올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선 꼭 필요한 게 바로 돈이었다.

“당장은 전쟁을 위한 돈이 필요하니 그 부분에 대해선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겠다. 아니면 그대가 제국의 부족한 재정 문제를 해결해 주겠는가?”

“그건 아닙니다만…….”

“나와 제국을 걱정해 주는 건 좋다만. 나에게도 다 계획이 있다. 그러니 이 부분에 대해서는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습니까? 폐하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야…….”

수긍하는 귀족들이 돌아가고 황제는 록펠러가 말한 계획에 대해 되새김질했다.

분명 이것은 위험한 도박이었다.

하지만 다르게 보면 아주 합법적으로 고블린들의 돈을 갈취하는 행위일 수도 있었다.

‘아주 정당하게 말이지.’

그렇게 고블린 방크에서 제국이 발행하는 국채를 마구잡이로 사들이고 있는 사이.

록펠러는 교단의 도움을 청하기 위해 법황청을 찾아갔다.

아무리 자신이 교황에게 특별한 존재라 해도, 교황은 교단의 상징이자 신의 아들 같은 자였다.

하여 교황과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던 중.

그런 록펠러에게 찾아온 이가 있었으니, 그 역시 로스메디치라는 성을 가지고 있는 가문의 넷째 레오였다.

“록펠러 형님 오셨습니까?”

레오가 정중히 인사를 하자 록펠러가 미소 띤 얼굴로 레오를 맞아주었다.

“레오구나. 신수가 훤한 걸 보니 여기 생활도 마음에 드는 모양이야?”

“아닙니다. 큰 형님께서 많이 챙겨주셔서 그렇지, 다른 건 없습니다.”

“그래?”

레오는 그 나이와 경험에 맞지 않게 생각보다 이른 시기에 교단의 높은 직책에 앉은 상태였다.

궁무처장.

교황의 비서라 할 수 있는 그 자리에 레오가 앉아 있었다.

물론 교단 내에선 너무 이른 나이와 어린 평사제가 갑자기 교황 다음이라 할 수 있는 궁무처장의 자리에 앉는 걸 극구 반대했지만.

그의 형이 제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인물이었고 또한 교황이 이전부터 써오던 비서인지라 이에 대한 반발은 빠르게 수그러질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게 그의 형이 교회의 재산을 품고 예금 이자를 가지고 교인들을 쥐락펴락하고 있었으니, 그 일에 불만이 아주 많은 교인이라 할지라도 감히 뭐라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 어린 나이의 평사제가 교황 다음이라 할 수 있는 궁무처장의 자리에 멀쩡히 앉아 있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배울 게 많은 자리니 처신 잘하고.”

“네, 록펠러 형님.”

잠시 후.

교황의 부름을 받은 록펠러가 교황과 면담을 하게 됐다.

“오, 자네 왔는가? 간만에 보니 아주 반갑군.”

“그동안 평안하셨습니까? 저 역시 오랜만에 교황 성하를 뵙게 되어 무척이나 반갑군요.”

“별일은 없나?”

“별일이라…… 솔직히 있습니다.”

괜히 찾아오지는 않았을 터.

따로 자리한 곳에서 록펠러는 그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 운을 떼기 시작했다.

“저희가 이번에 몬테펠트로 영지에다 새로운 교구를 신설하지 않았습니까?”

교황은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여주었다.

“그 교구가 지금 외부 세력에 의해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제국 황제는 금이 많은 땅에서 세금이란 명목으로 합법적인 금품갈취를 할 수 있었다.

그럼 교회는 그렇게 못 하느냐?

아니었다.

교회에선 신을 앞세워 성금이란 명목으로 제국 황제와 같은 일을 할 수 있었으니, 록펠러는 이 점을 강조하고자 했다.

“저야 그 좋은 땅에 교구를 신설하여 교단 재정에 어느 정도 도움을 드릴 생각이었는데, 일이 이렇게 되면 그 일이 힘들어지지 않겠습니다? 하여 성하께 도움을 청하고자 이렇게 찾아오게 됐습니다.”

이어지는 반응이야.

록펠러가 예상하던 그대로였다.

“당연히 곤란하지. 그게 드워프들의 짓인가?”

어차피 이 대화의 끝은 안 봐도 뻔했다.

하여 록펠러는 미소부터 드리우며 그 물음에 답해주었다.

“네, 드워프들이 말도 안 되는 억지를 쓰며 실효 지배도 하지 않는 몬테펠트로 영지를 노리고 있습니다.”

“그런 파렴치한 무리가 감히 요한님의 성역을 노리다니.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네.”

“성하께서 저희 좀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그 좋은 땅을 남에게 뺏길 순 없지 않습니까?”

“당연히 안 되지. 걱정하지 말게. 그 일이 비단 제국만의 일은 아닌 것 같으니까.”

교황도 록펠러가 의도적으로 그곳에 교구를 신설했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일은 결국 교회에도 좋은 일.

하여 교황도 빠르게 결단을 내릴 수 있었다.

“그 땅에 성군을 파견하여 어지러운 질서를 바로잡고 요한 님의 권위 또한 바로 세우겠네. 어디서 감히 조막만 한 이종족 따위가 신성한 교구를 넘봐. 어림도 없는 소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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