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42. 금맥전쟁(2)
드워프 사절단이 물러나자 황제는 자신의 재정고문이기도 한 그를 불러 따로 자리했다.
공적인 자리와 다르게 사적인 자리에서 황제는 록펠러를 하대하기보다는 약간 존대를 해주었다.
이것은 제국에서 그의 위치를 알아본 황제가 베푸는 호의였다.
“드워프들이 쉽게 포기할 거 같지는 않은데, 어떻게 보십니까?”
“앞전에 미리 말씀드린 것처럼, 드워프와의 전쟁은 피할 수 없을 겁니다. 무조건 전쟁이죠.”
“그래 보이긴 하더군요.”
황제는 으름장을 놓고 돌아간 드워프 사절단을 떠올렸다.
‘우리와 오랜 동맹을 생각해 본다면 전쟁이 안 일어날 수도 있겠지만…… 그게 황금과 얽힌 이권 다툼이라면 아마도 힘들겠지. 전쟁은 아마 피할 길이 없을 거야.’
“그럼 전쟁이라는 건데. 아시다시피 왕관 전쟁도 있었고, 돌아가신 큰 형님께서 여러 가지 일들을 벌여놓은 터라, 제국 황실에선 드워프와 전면전을 벌일 정도의 여유는 현재 없는 상태입니다.”
수심 가득한 황제의 말이 이어졌다.
“그렇다고 그 땅을 쉽게 포기할 수도 없겠지만. 아무튼 골치군요.”
“돈이 문제라면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전부 다 지원해 주실 생각입니까?”
록펠러가 가볍게 웃어 보였다.
“저희 길드와 가문이 제국에서 가장 부유하다고 해도 한 나라의 황실보다 더 부유할 순 없겠죠. 저희가 어느 정도 도와드린다고 해도 아마 한계는 있을 겁니다.”
황제가 의문을 표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앞서 말하지 않았습니까?”
“물론입니다. 그래서 다른 제안을 폐하께 드릴 예정입니다.”
황제는 귀를 열어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듣고자 했다.
“말해보시죠.”
“우선 한 국가가 부족한 재정을 채우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황제가 한 가지를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두 가지라…… 적어도 하나는 알겠군요. 전쟁입니다. 큰 형님께선 항상 어디론가 쳐들어가 전쟁을 일으키고, 그들이 가진 것을 약탈하고 빼앗아오셨습니다. 무를 숭상하는 제국 황실 역시 전쟁을 미덕으로 삼았었죠. 재정적으로 궁핍해지면 제국은 항상 자신보다 약한 적을 물어뜯었습니다.”
부정하지 않는 록펠러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맞습니다. 제가 말한 두 가지는 채권 발행과 전쟁을 통한 약탈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후자는 꽤 구시대적인 발상이죠.”
황제는 가만히 록펠러의 말을 들었다.
“굳이 전쟁을 하지 않아도 나라의 부족한 재정을 채울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겁니다.”
“저보고 채권을 발행하라는 겁니까?”
“이미 해오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기야 하지만…….”
그리 자주하던 일은 아니었다.
황실도 여느 귀족과 마찬가지로 급한 돈이 필요해지면 채권(차용증서) 같은 걸 발행해 방코나, 아니면 어느 길드 세력, 또는 타 종족들에게 그 채권을 넘기며 대신 금화를 넘겨받았다.
하지만 이 채권은 언젠간 돌아오기에 돈을 갚기 싫어하는 제국 황실과 타 세력과의 마찰은 항상 있어왔고, 그런 이유로 제국 황실에서는 채권 발행을 꺼려하기 시작했다.
오히려 속 편하게 전쟁을 일으키고 적진으로 쳐들어가 그들을 약탈하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한 것이다.
“채권이란 것을 그리 좋아하진 않습니다. 발행할 때는 좋으나, 막상 갚을 시기가 오면 항상 말썽을 일으켰으니까요.”
“그 말썽이란 건 갚을 돈이 없어서 생기는 거 아닙니까?”
“갚기 싫은 것도 있겠죠.”
그 말에 록펠러가 엄하고 진지한 모습으로 말했다.
“하지만 국채는 그래서는 안 됩니다. 정말 돈이 필요할 때 그 돈을 바로 수급할 수 없다면 나라가 망하지 않겠습니까?”
“그 점은…… 저도 동의하고 있습니다. 해서 황실에서는 그 채권이란 걸 그다지 선호하지는 않습니다. 차라리 속 편하게 적진으로 쳐들어가 그들의 황금을 갈취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고 있죠.”
“하지만 그것은 폐하의 방식은 아닐 텐데요?”
만약 1황자가 황제가 됐다면, 아마도 약탈이란 수단은 제국의 부족한 재정을 채우는 가장 첫 번째 방식이 됐을 것이다.
1황자야 전쟁광이라 불릴 정도로 싸움을 좋아했으니까.
“남에게 겨눈 칼은 언젠간 자신에게 돌아오는 법이니, 저 역시 약탈에 대해선 부정적인 입장입니다.”
“그럼 한 가지 방법밖에 없겠군요.”
“국채라…….”
록펠러가 표정을 풀며 말했다.
“다행히도 제국에선 이제까지 국채와 관련해서 말썽을 일으킨 적이 없었습니다. 폐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제국 황실에서 국채 발행을 꺼려했기 때문이죠.”
“네, 저 역시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당장 국채를 발행해도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약탈이란 건 따지고 보면 오크들이나 하는 아주 미개한 짓입니다. 저희 인간처럼 배운 자들이 할 짓은 못 되죠.”
“공감합니다. 이제까지 해오던 제국의 방식은 이제 바뀔 때가 됐습니다.”
두 가문에 치여 어렵게 자란 황제였기에 그 점은 더욱 확고했다.
“좀 평화롭고 조용한 세상을 살고 싶군요. 적어도 제가 이 자리에 있는 동안은 말입니다.”
“그럼 더더욱 국채를 발행하셔서 부족한 재정을 충당시켜야겠군요.”
몬테펠트로 영지에 대한 중요성을 이 자리서 논한다는 것 자체가 웃긴 일이었다.
대륙 최대의 금맥이 발견됐다는 것만으로도 모든 게 설명됐으니까.
“그럼 국채를 대량으로 발행하란 말입니까?”
“국채 발행에 따른 리스크야 어차피 전쟁에서 승리하면 됩니다. 아주 간단하죠.”
“하지만 그 전쟁에서 지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황제의 말이 이어졌다.
“상대는 대륙에서 나름 부유하다고 하는 드워프들입니다. 그들이 합심하여 쳐들어올지, 아니면 천둥산맥의 주인만 쳐들어올지는 모르겠으나. 만약 전자라면 몬테펠트로 영지를 지키기가 쉽지만은 않을 겁니다.”
드워프가 부유하다는 말에는 록펠러도 공감하고 있었다.
차라리 오크였다면 이런 대화는 필요도 없을 터.
덩치만 큰 바보들이야 마석탱크로 찌그러뜨리면 그만이었으니까.
“아마 이번엔 드워프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쳐들어올 겁니다. 드워프 세 왕 모두 사이가 안 좋다지만, 종족 전체의 이권을 위해서는 항상 같이 움직였으니까요. 아마 모르긴 해도 몬테펠트로 영지에서 나오는 황금을 정확히 삼등분하는 것으로 합의 보고 연합군을 편성할 겁니다.”
그 치졸한 드워프들이 전부 연합을 해서 쳐들어온다?
드워프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던 황제는 쉽게 상상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힘든 일이었다.
“정말 그렇게 되겠습니까? 제가 알기론 사이가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닌데…….”
“왜 아니라고 보십니까? 드워프야 황금에 환장하는 건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인데.”
“그래도 그들은…… 서로 간의 원한이 너무 깊게 얽혀 있어서.”
“그렇지만 그 원한도 눈부신 황금 앞에서는 잠시 주춤할 수도 있는 겁니다.”
“드워프를 잘 아는 저로서는 예상하기 힘든 일이로군요.”
“저를 믿으십쇼. 분명 연합해서 쳐들어올 겁니다. 그런데 만약, 그런 연합군을 초반부터 막지 못한다면 몬테펠트로 영지는 한순간에 놈들 손에 넘어가겠죠. 그럼 그 땅을 다시 수복하는 데 꽤 많은 희생이 따를 겁니다.”
황제가 잠시 고심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드워프의 세 왕국이 힘을 합친다는 게 영 내키지가 않았다.
하지만 록펠러가 저리 강하게 말하니 황제도 제 생각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럴 수도 있겠지. 확실히 황금이란 게 있다면…….’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우선 국채부터 대량으로 발행하고 전쟁 준비에 돌입하면 되는 겁니까?”
그 말에 록펠러가 바로 반응해 주었다.
“이건 무조건 전쟁입니다. 적들이 쳐들어올 걸 뻔히 알고 있는데 여기서 머뭇거릴 생각이십니까? 무조건 국채부터 발행하시고 거기서 확보한 돈으로 군을 편성하여 몬테펠트로 영지로 보내십쇼. 저 역시 교황 성하를 만나 교단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따로 요청해 보겠습니다.”
황제가 아는 교단은 제국보다 자기들만 챙기는 그런 곳이었다.
제국 땅에서 황금이 나온다고 하여 그들에게 크게 도움될 게 없는데, 교단에서 과연 도움을 줄까?
하여 그 점을 록펠러에게 물어보았다.
“교단에서 도와주겠습니까? 황금이 나온다고 해도 그들 땅도 아닌데.”
“안 그래도 그쪽에 새로운 교구를 신설해 놨습니다. 그러니 성하께서도 새로운 교구를 그리 방치하지는 않을 겁니까. 그리고 저와의 관계 역시 여전히 좋은 편인데, 성하께서 굳이 안 도와줄 이유가 있다고 보십니까?”
“교황군이 또 도와주는 겁니까?”
“이건 제가 요청하는 것이니, 폐하께서 너무 염려하실 필요는 없을 겁니다. 교황 성하께서 나중에 생색을 내신다 해도 어차피 제가 요청한 일인데, 굳이 폐하께 뭐라 하시겠습니까?”
“그렇다면.”
수긍한 듯 고개를 끄덕이는 황제에게 록펠러가 다시 말했다.
“몬테펠트로 영지는 저와 제국, 그리고 폐하를 위해서라도 무조건 지켜내야 하는 땅입니다. 그러니 폐하께서도 남의 일처럼 여기지 마시고 전심전력으로 절 도와주십쇼. 그래야 저도 안정된 땅에서 정당한 세금을 폐하께 바치지 않겠습니까?”
“혹시 귀공의 아내들도 참전하는 겁니까?”
“물론입니다. 그리고 이 전쟁엔 이한도 참여할 겁니다. 아마 이한이 없다면 힘든 전쟁이 되겠죠.”
“그래도 그만한 군대가 받쳐줘야 그들도 전장에서 위용을 떨칠 수 있을 겁니다.”
“그럼 그 군대는 저와 폐하가 마련하면 되겠죠.”
무언가를 생각해 보던 황제가 한 가지 걱정을 내비치기 시작했다.
다 좋은데 딱 한 가지가 걸렸던 것이다.
“그럼 적잖은 돈이 필요할 거 같은데…… 만약 대량으로 국채를 발행한다 해도 이것을 사줄 세력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고블린 방크의 개입에 대해서는.
세상 누구보다 록펠러가 잘 알고 있었다.
“있습니다. 무조건 있죠.”
“그게 누굽니까?”
“고블린 방크입니다. 그들은 이번 전쟁에서 무조건 개입할 겁니다. 그리고 제국 편을 들겠죠.”
“고블린 방크면…… 오히려 국채 발행은 안 하는 게 맞지 않습니까?”
황제가 걱정 어린 기색을 내비치며 말했다.
“한 나라의 주인 된 입장에서 교황에게 휘둘리는 것도 싫지만, 한낱 고블린에게 휘둘리는 것은 더욱 싫습니다.”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 정도 국채를 받아줄 세력은 고블린 방크밖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고블린들이 저희 편을 들겠습니까?”
“그건 확실합니다. 고블린 방크 입장에선 제국 편을 들어주는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일 겁니다. 드워프들이야 워낙 부유한 종족인지라 국채 발행 따윈 안 할 테고, 그럼 고블린들 입장에선 이번 이권 다툼에 끼어들 건덕지가 아예 없으니까요.”
“흠…….”
황제가 고심하는 듯 보이자.
록펠러가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그리고 이것은 황제가 절대 들어줄 수 없는 제안이기도 했다.
“이왕 국채를 발행하실 거. 제국을 아예 팔아넘길 생각으로 발행해 버리십쇼. 그럼 고블린 방크에선 무리를 해서라도 그 국채를 무조건 매입하려 들 겁니다.”
그 말에 황제가 놀랐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제국을 팔 생각으로 국채를 발행하라니.”
황제는 불쾌감에 표정을 구기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러다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고블린 방크에서 가만히 안 있을 겁니다. 국채를 가지고 있으니 그 핑계로 내정간섭을 시도할 수도 있겠죠. 어쩌면 제국 세금까지 건드리며 제국 전체를 위태롭게 할 수도 있을 겁니다.”
황제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건 아니라고 봤다.
“그 일은 제가 무조건 반대입니다. 제국 역사상 고블린들에게 흔들린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그건 그들의 더러운 돈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던 겁니다.”
그런 황제에게.
록펠러는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그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폐하, 제겐 다 계획이 있습니다. 어쩌면 이건 그들의 돈을 정당히 가져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