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융명가의 창시자-162화 (162/181)

§162화 41. 맥주 버블#3(2)

기존보다 900배 오른 맥주에 전 재산을 때려 박은 벨과 밥이 좋아라 했던 것은 불과 며칠 동안이었다.

무려 1,000배까지 치솟았던 맥주 가격이 갑자기 저항을 맞은 것처럼 900배 근처에서 왔다 갔다 하기를 며칠.

오르지 않는 맥줏값에 벨이 푸념했다.

“이게 갑자기 오르질 않네. 아니, 잘 오르던 맥주 가격이 이제 와서 머뭇거리는 거야?”

밥도 오르지 않는 맥주 가격에 불만이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누가 어디서 물량을 풀고 있는 건가? 이게 계속 올라야 정상인데…….”

밥이 이전보다 조용한 선술집 안을 둘러보았다.

평소라면 맥주를 사기 위해 찾아온 귀족들로 붐비는 곳이었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부터 귀족들이 안 보이는군. 다 어디로 간 거야? 지금 가격도 충분히 노려볼 만한데.”

“뭔가 일이 생긴 거 아닐까? 갑자기 드워프들이 철군한다든지.”

“에이, 설마. 드워프들이 바보도 아니고 이 금싸라기 땅을 그냥 내주고 갈 리가 없잖아. 안 그래?”

“그건 그렇지.”

“우선 무슨 일이 있는지 한번 알아보자고. 내가 볼 땐 계속 오를 거 같은데 왜 이리 답답한지 모르겠어.”

말을 마친 둘은 선술집 안에 있던 사재기꾼들과 만나 대화를 나눠보았다.

그들도 아는 게 별로 없었는데, 그중 하나가 밖에서 주워들은 이야기 하나를 해주었다.

“로스메디치 가에서 맥주를 팔기 시작했다고?”

“조금씩 풀고 있는 모양이야. 그래서 귀족들이 그쪽으로 갔나 봐.”

“하…… 어쩐지. 왜 가격이 안 오르나 했어.”

해당 소식을 전한 사재기꾼이 말을 이었다.

“그쪽에서 맥주를 다 넘기진 않겠지만. 당분간 맥주 가격이 오를 일은 없을 거 같아. 거기서 맥주를 파는데 맥주 가격이 계속 오르는 게 이상하잖아.”

“하기야. 공급이 없다가 생기면 가격이야 유지될 수밖에 없겠지.”

“그런데 의문이야. 왜 이제 와서 맥주를 넘기는 건지.”

“너무 올랐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지. 하지만 로스메디치 가도 알고 있을 거야. 언젠간 또 오를 거란 걸.”

“이 맥주라는 게. 비단 드워프뿐만 아니라 제국 귀족들까지 수요가 엄청나. 내가 아는 귀족들만 생각해 봐도 맥주 가격이 그렇게 쉽게 떨어지지는 않을 거야.”

“로스메디치 가에서 맥주를 풀고 있는데도 가격이 유지되는 거 보면 맞는 거지.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아무튼 그렇네. 아는 사람에게 들은 거니 거의 확실할 거야.”

대화를 마친 밥이 벨을 찾아갔다.

“이봐, 맥주 가격이 안 오른 이유를 알아냈어.”

“무슨 일인데?”

“로스메디치 가에서 맥주를 팔고 있는 모양이야.”

“뭐라고? 로스메디치 가에서 맥주를 팔고 있다고?”

“그래, 파는 이유야 모르겠지만. 뭐 팔아도 이상할 건 없지. 애당초 맥주 가격이 많이 올랐으니까.”

그 말에 벨이 걱정스러운 말을 내뱉었다.

“우리도 팔아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니, 로스메디치 가면 맥주를 거의 다 가지고 있잖아.”

“에이, 일부만 파는 거래. 설마 그걸 다 팔겠어?”

“하기사 귀족들도 서로 사 가려고 안달인데.”

“로스메디치 가문에서 팔아도 어차피 다른 귀족들이 그 맥주를 받아줄 거야. 그리고 다시 가격을 끌어올리겠지. 일단은 잠자코 지켜보자고.”

그런 밥의 결정에 벨은 일단 수긍하기로 했다.

“알았어. 일단은 자네 말대로 하자고.”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시장에 과잉 공급된 맥주로 인해 맥주 가격은 기존 가격의 700배 정도로 떨어지고 말았다.

하루하루 떨어져 가는 맥주에 늘어나는 건 주량뿐.

한숨만 푹 내쉬던 밥이 벨을 향해 말했다.

“대체 얼마나 양이 많으면 아직도 처분을 못 해서 가격이 계속 떨어지는 거야.”

“이게 손해가 얼마야. 그냥 여기서 뺄까?”

그 말에 밥이 언성을 높였다.

“어림도 없는 소리! 여기서 손절을 어떻게 해! 어차피 맥주야 조금만 기다리면 또 오를 텐데.”

“또 오른다고?”

“벌써 잊었어? 그때 반값까지 꺼졌다가 다시 무섭게 올라갔잖아.”

제 가슴을 두들기는 밥의 말이 이어졌다.

“내가 진짜 그때만 생각해도 울화통이 터져. 무조건 버텼어야 했는데. 그걸 왜 쫄아서 팔아가지고.”

그 말에 벨도 공감할 수 있었다.

그때 팔지 않고 버텼다면 지금쯤 그들은 샘보다 더 큰 부자가 됐을 것이다.

“하…… 그래 맞아. 그땐 자네 말처럼 무조건 버티는 게 좋았어. 괜히 그때 쫄아서 손해만 봤잖아.”

“그러니까 이번에도 쫄지 말고 일단 버텨보자고. 들어보니까 이게 전쟁이 하루아침에 끝날 게 아니야. 아직도 한창인데 여기서 맥주를 판다는 게 말이나 돼?”

“하긴…… 좀만 기다리면 드워프들도 맥주가 부족해져서 여기저기서 맥주를 사들일 거야. 그럼 다시 폭등하겠지.”

“지금이야 조금 떨어졌지만, 여기서 반등이 오면 2배 3배 가는 건 금방이라니까.”

“알지. 당연히 반등 오면 맥주 가격이야 저기 달나라까지 가겠지.”

“그러니까 일단 무조건 버텨보자고.”

그렇게 또 며칠이 지나자 맥주 가격은 기존 가격의 600배까지 떨어지고 말았다.

거의 반 토막 직전까지 온 것이다.

그러자 선술집 안에서 맥줏값이 오르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여러 사재기꾼들도 크게 동요하기 시작했다.

이러다 폭망하는 건 아닌지.

그리고 이것은 벨과 밥도 마찬가지였다.

마음이 급해진 벨이 밥에게 말했다.

“지금 팔면 그래도 반 이상은 건지잖아. 계속 놔둘 거야?”

“가만히 있어 보래도. 그때도 반 이상이 빠졌다가 올랐다고. 이것은 분명 페이크야. 페이크라고.”

“하지만 이대로 있다가 진짜 내려가면 어떻게 해? 솔직히 맥주 가격이 말이 안 되긴 했잖아.”

“에이, 이 사람아. 그때도 그랬다고. 그때도 미친 가격이었어. 그런데 어떻게 됐어? 결국에 올랐어, 아니면 내렸어?”

“그야…… 오르긴 했지.”

“반이 빠져도 버틸 수 있으니까 일단 참고 기다리자고.”

밥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던 벨은 마지못해 수긍해 버렸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자네 말대로 끝까지 가 보자고.”

그렇게 또 며칠이 지나자.

놀랍게도 그들이 원하는 것처럼 곤두박질치던 맥주 가격이 갑자기 치솟기 시작했다.

맥주를 무섭게 팔아재끼던 로스메디치 가문에서 갑자기 팔던 맥주를 대량으로 매수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바람에 맥주를 파는 사람밖에 없었던 선술집에도 귀족들이 찾아와 다시 맥주를 사들이기 시작했고, 이는 곧 맥주 사재기를 한 모두에게 맥주 가격은 무조건 위로 오른다는 얼토당토않은 믿음까지 심어주었다.

“거봐. 내가 뭐라고 했어?”

기존의 500배까지 떨어졌던 맥주 가격이 다시 800배 근처로 회복하자 밥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결국 내 말이 맞았지? 내가 버티면 무조건 오른다고 했잖아.”

현실이 그러하니 며칠 동안 밥에게 맥주를 팔자고 했던 벨도 할 말이 없어졌다.

정말 밥의 말처럼 버티고, 버티다 보니 폭락했던 맥주 가격이 벌써 이전 가격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 내가 잘못했어. 앞으론 자네 말만 믿을게.”

“그러니까 내가 버티면 된다고 했잖아. 가만히 기다려 봐. 이제 곧 최고 가격을 뚫고 신기록을 갱신할 테니까.”

벨은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그까짓 맥주.

대체 얼마까지 올라갈는지.

“그러고 보면 참 신기하단 말이야. 끽해야 맥주 아니었어? 그런데 지금은 돈 많은 귀족들도 못 사서 안달이 난, 금으로 만든 술이 됐어.”

“에이 이 사람아. 금으로 만든 술이라니. 만약 금으로 만든 술이 있어도 나는 맥주가 최고야. 맥주는 믿음이라고!”

맥주는 믿음이라는 희대의 개소리까지 했던 그 날이.

그들이 지옥에서 탈출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이었다.

그날 이후로 맥주 가격은 어찌 된 영문인지 다시 밑으로 슬슬 내려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가격 변화에도 맥주를 사재기했던 사재기꾼과 귀족 투자자 모두 들고 있는 맥주를 전혀 팔 생각이 없었다.

또 오를 것이란 헛된 희망과 함께 맥주 통을 안고서 지옥 나락까지 직행한 것이다.

“어떻게……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전쟁은 아직이잖아?”

최대 1,000배까지 올랐던 맥주 가격은 이제 정상 가격을 되찾을 정도로 완전히 폭락해 버렸다.

한순간에 거지가 된 벨과 밥은 망연자실한 상태로 선술집 바닥에 그대로 드러누웠다.

주변엔 그들처럼 큰 투자를 했다가 맥주 버블이라는 희대의 사기극에 휘말려 거지가 된 이들이 사방팔방에 널려 있었다.

심지어 가지고 있던 호신용 총으로 제 머리를 겨누고 자살까지 한 이들도 있었다.

“아니, 어떻게 이렇게 될 수 있냐고.”

벨도 할 말이 없었다.

맥주 가격이 곤두박질치는 것을 봤어도.

언젠간 오를 거라는 희망 때문에, 그리고 밥과 맥주에 대한 믿음 때문에.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한 것이다.

“우린 이제 어떻게 해. 완전 알거지가 됐어.”

“하…….”

한숨만 쉬던 밥이 근처를 둘러보았다.

자신처럼 완전 패가망신한 사재기꾼들이 보였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맥주 가자!’를 외쳤던 투기꾼들이었다.

‘완전히 망했어. 완전히…… 망했다고.’

둘을 포함한 선술집의 모두는 삶의 의욕을 잃은 듯싶었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자.

이제 선술집에는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예전 손님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선술집 주인을 불러 오랜만에 맥주라는 걸 주문했다.

“캬아~ 이 맛을 여태까지 못 보고 있었다니.”

선술집에서 오랜만에 맥주를 맛본 그는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한심한 인생들을 보고선 표정을 구겼다.

‘저런 것들 때문에 내가 이 맥주를 한동안 못 마셨었지. 꼴좋구나.’

“이딴 게 대체 뭐라고 그동안 그리 난리였던 거야. 난 모르겠어. 진짜 모르겠다고.”

생각해 보면 바닥에 널브러진 그들이 투자했던 것은.

그저 서민들의 기호식품인 맥주일 뿐이었다.

“이거 그냥 맥주잖아. 무슨 금으로 빚은 술도 아니고. 애당초 1,000배까지 뛰었다는 게 말이나 돼? 그냥 미친놈들끼리 난리 친 거지.”

그러자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어느 사재기꾼이 자리에서 일어나 막말을 지껄인 그에게 찾아왔다.

“이 새끼가 뚫린 입이라고. 내가 듣자 듣자 하니까 뭐, 뭐가 어째?”

그들 때문에 맥주를 못 마셨던 이름 모를 손님도 화가 나긴 마찬가지였다.

덩치 좋은 그도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을 노려보고 있던 그에게 인상부터 썼다.

“내가 뭐 틀린 말 했나? 너희 새끼들 때문에 이제까지 이 좋아하는 맥주도 못 마시고, 좋아하지도 않은 럼주나 그렇게 퍼마셨는데! 니들 같으면 기분이 좋았겠어, 어쨌겠어? 망해도 잘 망했지!”

“이런 개새끼가! 지 일이 아니라고 그딴 개소리를 지껄여! 너 오늘 나한테 죽어봐라!”

“누가 쫄 줄 알아? 덤벼, 이 새끼야!”

이윽고 서로 치고받는 둘의 싸움은 조용하던 선술집 안을 아주 개판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런 와중에도.

정신이 없는 벨과 밥은 그저 한숨만 푹푹 내쉬며 한순간에 날아가 버린 그들의 전 재산에 대해 생각해 봤다.

그때 블랙라벨에서 웃으며 달려오지만 않았더라도…….

지금쯤 아주 떵떵거리며 살고 있을 텐데.

“하…… 인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