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41. 맥주 버블#3(1)
그날 저녁.
바삐 짐을 챙긴 둘은 부자가 된 기념으로 장만한 팔두마차를 타고 전속력으로 블랙라벨을 떠나갔다.
그리고 며칠 뒤.
그들이 몬테펠트로 영지에 위치한 어느 선술집에 도착했을 때는.
맥주가 무려 900배나 오른 가격에서 활발하게 거래되고 있었다.
미쳐 버리다 못해 요한 님까지 출타해 버린 가격.
그럼에도 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맥주 가격이 더 올라갈 여지가 있다는 것을 뜻하고 있었다.
“거봐. 내 말이 맞지? 내가 더 오를 거라고 했어 안 했어?”
“그래, 자네 말이 또 맞았어. 그게 올랐네.”
둘은 과거보다 900배 오른 맥주 가격이 이상하게도 어색하지가 않았다.
오히려 지금 가격보다 더 오르면 오를 거라고 생각했지, 절대 내려갈 거라고 생각은 하지 못한 것이다.
“있는 대로 사자고. 어차피 놔두면 또 오르겠지.”
“저기 샘이 있어.”
“샘이?”
그런 둘과는 다르게 샘은 너무 오른 맥주 가격에 극도의 공포심을 느끼고선 며칠간 끙끙 앓다가 결국 900배나 오른 가격에서 전량 매도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이 샘! 이번엔 맥주를 파는 거야?”
“네. 오랜만에 뵙는군요.”
샘은 둘이 무슨 이유에서 다시 찾아왔는지 모르지 않았다.
미쳐 버린 가격에도 웃돈을 주고 사려는 투기꾼들이 아직도 많았던 것이다.
계속 오를 거라는 막연한 희망과 함께.
‘설마 여기서 더 오를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물론 더 오를 순 있었다.
이제까지 그래왔으니까.
하지만 드워프들도 정상적인 사고가 가능한 생명체였다.
아무리 맥주의 저주에 걸려 있다지만, 이 가격은 그들도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로 최고가였다.
이 가격에 맥주를 사 먹는다?
출타하신 요한 님께서 자신에게 프러포즈를 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 정도 가격이면 드워프 측에선 전쟁을 포기해도 될 거 같은데?’
“혹시 사실 생각입니까?”
샘의 물음에 밥은 당당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아, 당연하지! 언제 맥주 가격이 떨어진 적이 있었어? 계속 올랐잖아.”
천장을 뚫고 달나라까지 직행한 맥주 가격은 마치 신앙처럼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는 믿음을 모두에게 주고 있었다.
“이 가격에도 저리 사려는 사람들이 있는 걸 보면 맥주 가격은 더 오를 거야.”
“저도 더 오를 거 같기는 한데…… 그래도 가지고 있는 양이 좀 많아서 일단 처리하려고 합니다.”
밥의 입장에서 샘은 겁쟁이였다.
‘쯧쯧, 저러니 돈을 못 벌지.’
“그럼 우리한테 넘겨. 우리가 최대한 사줄 테니까.”
호구가 더 높은 가격에 사준다는데, 샘이야 마다할 이유가 있겠는가?
“네, 그럼 그렇게 하죠.”
그렇게 샘은 그날 둘을 포함한 다수의 투기꾼들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맥주 통을 처분하며 지옥 같던 선술집에서 간신히 ‘Exit’ 할 수 있었다.
누구는 그랬다.
매수는 기술이고, 매도는 예술이라고.
‘잘 팔고 나왔어. 더 올라도 쳐다보지 말자고.’
그동안 자신을 무자비하게 억누르고 있었던 맥주의 저주에서 해방된 샘은 지옥의 구렁텅이에서 더 큰 부자가 되기 위해 아등바등하고 있는 투기꾼들을 흘깃 돌아보았다.
‘내겐 철칙이 있지. 한 번 판 건 다시는 안 산다는 거. 이것만큼은 꼭 명심해야 돼.’
지금보다 맥주 가격이 더 올라.
배 아픈 일이 생긴다고 해도.
샘은 자신의 철칙대로 두 번 다시 맥주는 사지 않을 것이라 선술집 향해 맹세했다.
‘그럼 잘들 해보라고. 나는 여기서 아웃이니까.’
아디오스.
* * *
몬테펠트로 교구에 위치한 피터 사제장과 맥주 사업을 시작한 록펠러는 자신의 가문 사람이자 동생인 조슈아가 맥주 사재기에 나섰다는 걸 알게 됐다.
‘조슈아가 이런 일에 은근히 재능이 있는 거 같아.’
사재기 또는 물량 독점이 성공한다면 맥주 가격이야 천정부지로 치솟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거기다 최대 공급망은 내가 쥐고 있으니 잘만 하면 맥주 가격이 말도 안 되게 오를 순 있겠군.’
록펠러도 설마 그 맥주 가격이 오르고 올라 예전 가격에 무려 900배가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900배가 됐을 때 록펠러는 왠지 모를 불안감에 휩싸였다.
당장이야 문제 없이 맥주 가격이 고공행진을 이어나가고 있었으나, 이것도 한순간이었다.
‘투심이 꺾이게 되면 그동안 오른 것만큼 순식간에 곤두박질칠 거야. 그 트리거가 뭐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좀 위험해.’
하여 록펠러는 독점한 맥주를 처분하기 위해 급히 조슈아와 만나게 됐다.
조슈아는 오랜만에 찾아온 큰형이 무슨 연유에서 찾아왔는지 모르지 않았다.
“웬일이야? 설마 맥주 때문에 찾아온 거야?”
고개를 끄덕이는 록펠러가 말했다.
“소식은 들었다. 네가 제국 맥주는 전부 독점하고 있다면서?”
“물론이지. 내가 토템전쟁에서는 록펠러 형에게 졌지만. 이번은 아닐걸? 지금 맥주 가격 알지?”
그것을 탓할 생각은 없었으나, 문제는 미쳐 버리다 못해 요한 님이 출타해 버린 맥주 가격이었다.
“조슈아, 맥주 가격이 너무 올랐다고 생각하지 않는 거니?”
“오르면 좋지, 뭘.”
오르면 좋은 걸 누가 모르겠는가?
문제는 Exit였다.
매수는 기술이라도, 매도는 예술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오르면 당연히 좋긴 한데. 형이 예전에 말했던 것처럼 이 세상에 계속 오르는 건 없어. 증권 거래소에 있었으면 형이 지금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고 있을 거 아니야? 모든 건 최고점이란 게 있는 거야.”
“당연히 알고 있지. 그럼 지금 가격이 최고점이란 소리야?”
“최고점은 누구도 몰라. 하지만 누군가에 의해 의도될 수는 있겠지.”
그런 록펠러의 말에 조슈아가 의문을 표했다.
“그걸 누가 의도하는데?”
록펠러는 대답 없이 조슈아만 지그시 쳐다보았다.
“생각해 봐. 그걸 누가 정할 수 있는지.”
잠시 고민해 보던 조슈아는 그게 자신들임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설마 나야? 록펠러 형이랑?”
록펠러는 가볍게 고개를 주억여주었다.
“일단은 그렇지. 하지만 우리 말고도 다른 요인 때문에 최고점이 정해질 수도 있어. 갑자기 드워프들이 전쟁을 철회하고 본국으로 돌아간다든지. 아니면 드워프들이 다른 곳에서 맥주를 충분히 공급받을 수 있다든지. 그 외에 다른 요인들도 많지만 그런 요인들 중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것은 바로 우리지.”
턱밑을 긁적이던 조슈아는 록펠러가 찾아온 것을 신호 정도로 여겼다.
이제 더 이상 달리지 말고 슬슬 빠지자고.
‘900배면 충분히 끌어올리긴 했지. 아니, 이건 끌어올렸다기보다는 좀 뭐랄까…….’
“제국 역사에서 앞으로 이런 일이 또 있을까? 맥주 같은 게 900배나 뛰는 일이 말이야.”
그런 조슈아의 물음에 록펠러는 차분히 고개를 저었다.
“그건 힘들겠지. 맥주가 900배?”
현 맥주 가격은 록펠러도 고개를 갸웃할 정도였다.
“조슈아, 물론 이 가격은 너와 나의 작품이지만. 그래도 좀 심했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
“심하긴 했지만 그래도 나쁘진 않잖아?”
“그것도 우리가 조용히 빠져나갈 때의 일이지. 중요한 건 우리야. 우린 절대 손해를 봐서는 안 돼.”
록펠러도 이번 맥주 사업을 진행하면서 맥주란 것에 이 정도의 거품이 생길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역시 세상일은 알 수가 없는 거야.’
“이제 그만하고 슬슬 정리하도록 하자. 이 정도면 충분하고, 우리가 가진 물량을 시중에 넘기는 것도 시간이 꽤 걸릴 거야.”
슬슬 처분하자는 말에 조슈아도 공감하기 시작했다.
맥주 가격이 올라도 너무 올랐던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처분하라는 거야? 우리가 한꺼번에 물량을 던지면 맥주 가격이 폭락하게 될 텐데.”
그 말에 록펠러가 반응을 보였다.
“그러니까 어린애를 달래듯 살살 풀어야겠지. 그래야 폭락이 없을 테니까.”
현재 맥주 가격은 고공행진 중이었다.
여기서 물량을 풀게 되면 더 오르는 건 힘들 터.
“지금 우리가 물량을 풀게 되면 예전에 내가 했던 것처럼 맥주 가격이 적정선에서 유지는 될 거야. 그러다 순간 훅 꺾이긴 하겠지만.”
“그럼 그때 가격을 올려서 투심을 살려주고 다시 팔면 돼.”
조슈아가 한 가지 걱정을 드러냈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팔면 지금 가격에서 우리가 가진 물량을 전부 처분할 수 없잖아?”
“그거야 당연하지. 우린 일반 사람들하고 달라. 우리가 사재기한 만큼 그 가격에 전부 팔 수는 없어.”
“그럼 어떻게 해?”
“어떻게 하긴. 그래도 넘겨야지. 어차피 우리야 이득인데.”
적당한 가격이었다면 맥주를 쥐고 드워프를 쥐락펴락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미친 가격에 맥주를 들고 있는 건 폭탄을 들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중요한 건 우리가 투자한 금액대비 얼마를 벌었냐는 거야. 맥주 가격이 과거보다 900배나 올랐으니, 그 절반인 450배 정도의 가격에서 전부 처분할 수 있다 해도 결국 우린 이득인 거야.”
“900배를 생각하지 말라는 거야?”
“당연하지. 우리가 가진 물량을 현 시세대로 팔 수 있다면 그건 신이라 할 수 있겠지.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순 없어. 우리가 대량으로 물량을 풀게 되면 맥주 가격이야 잘해야 횡보고 최악의 경우 바로 곤두박질치게 될 테니까. 거기다 수급까지 없으면 끝장인 거고.”
“흠…… 듣고 보니 그렇네.”
“우선 시장 상황이 좋으니 최대한 물량을 풀다가 좀 가격이 꺾였다 싶을 때 다시 사재기를 해서 살리는 척 조금만 올리면 돼.”
“그 말은 그냥 가격만 살리라는 거야? 다시 사재기를 하는 게 아니라?”
“맞아. 살짝 반등만 주는 거지.”
이어지는 말이 핵심이었다.
“그래야 스스로를 투기꾼이라 생각하는 호구들이 그 가격에서 우리가 가진 맥주를 열심히 가져갈 테니까. 안 그래도 예전에 좋은 예가 있더군. 맥주 가격이 크게 꺾였던 때가 있잖아? 그땐 초창기였지만.”
“그런 때가 있었지. 그때는 나도 식겁했어. 세상에 맥주 가격이 반이나 훅 떨어질 줄은 몰랐거든.”
“그런 좋은 예도 있으니 사람들도 속기 딱 좋을 거야. 이 가격에서 절반 이상 떨어진다 해도 살짝 반등만 주면 조건반사처럼 호구들은 계속 붙을 거야.”
록펠러는 강조하듯 다음 말을 이어주었다.
“그 호구들을 절대 놓치지 말고 살살 달래듯, 물량을 다 넘겨 버려.”
이해했다는 듯이 조슈아가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알았어. 그럼 지금부터 맥주는 전부 다 처분한다?”
“천천히 팔아. 한꺼번에 막 던지진 말고.”
“형이야말로 천천히 팔아.”
“형이야 어차피 못 팔아도 그걸로 드워프를 구워삶을 수 있으니 괜찮아. 그냥 너만 잘하면 돼. 솔직히 맥주 가격이 뻥튀기된 건 내가 아닌 네 작품이잖아?”
그 말에 조슈아도 부정하지 못했다.
“그렇긴 하지.”
“아무튼 잘 빠져나가. 어차피 이 가격이면 어떻게 빠져나가든 무조건 이득이겠지만, 그래도 가문을 위해서 더 많이 벌면 좋은 거잖아? 안 그래?”
“당연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