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화 40. 맥주 버블#2(3)
벨과 밥만 기분 좋아 소리치는 건 아니었다.
같은 선술집에 모여 맥주 사재기를 했었던 다른 이들도 행복에 겨워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나중에 맥주 팔아서 뭐 하지?”
“뭐 하긴. 그 정도 돈이면 영지나 사서 영주나 해야지!”
“하하하! 이거 영주 되기가 그리 쉬운지 누가 알았겠어?”
“역시 세상은 돈이 최고야. 돈이 최고라고!”
“돈만 있으면 뭐든 가능하지.”
모두가 행복에 겨워하고 있을 때.
소식을 듣고 선술집에 찾아온 어느 귀족이 있었다.
그는 맥주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고 있다고 하여 뒤늦게 투자하기 위해 찾아온 사람이었다.
크흠!
헛기침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알린 이름 모를 귀족이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던 맥주 사재기꾼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듣자 하니 여기에 맥주를 가진 자들이 많다고 하던데.”
신분이 높은지 하인까지 여러 명 대동한 그는 큼지막한 보석이 박힌 지팡이를 옆구리에 끼우고선 반응도 없는 그들을 향해 다시 목소리를 내주었다.
“여기서 팔 사람은 없나? 현 시세대로 다 사 줄 테니 있는 대로 다 팔아줬으면 하는데.”
아무래도 소식을 듣고 움직인 또 다른 매수자인 듯싶었다.
하지만 이를 어쩌나?
내일 있으면 가격이 또 오를 맥주를 과연 누가 판단 말인가?
어느 귀족의 등장과 함께 소란스러워진 선술집 안에서.
벨과 밥이 낮은 목소리로 숙덕이기 시작했다.
“이봐, 60배나 올랐는데 지금 팔아야 하나?”
벨의 한심한 말에 밥이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쏘아보았다.
“미쳤어? 오늘 전쟁 소식이 터지고 3배나 올랐어. 내일 또 오르면 그땐 어쩌려고 그래?”
그래도 또 오르리란 보장이 없지 않는가?
하여 벨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에이그, 이 사람아. 그리 쫄보가 되어서야.”
벨과 다르게 밥은 증권거래소에서 놀던 짬밥이 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증권 거래를 많이 해봤잖아. 지금 이렇게 호가가 붙는 거 보면 내일이면 더 오를 거야. 내 말을 믿고 그냥 있어. 못해도 지금보다 몇 배는 더 올라갈 테니까.”
“몇 배나 더? 그게 가능한 거야?”
“내 말을 믿으라니까. 내가 증권 거래로 크게 벌진 못했어도 그래도 거기서 논 짬밥이 있는 사람인데.”
“하긴. 자네가 그런 건 더 잘 알겠지.”
“믿고 기다려 봐. 지금보다 분명 더 갈 테니까.”
“알았어. 그럼 일단 지켜보는 게 낫겠지?”
“아, 당연하지. 절대 팔지 마. 죽어도 이 가격엔 안 팔지.”
그리고 이것은 비단 벨과 밥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선술집에 있던 대다수의 사재기꾼들이 대뜸 찾아온 어느 귀족의 제안을 그대로 무시해 버렸다.
그러자 말을 꺼낸 어느 이름 모를 귀족만 무안하게 됐다.
“크흠! 정말 아무도 없나? 내가 그 가격에 사 주겠다는데?”
그러자 그를 흘깃하던 어느 사재기꾼이 목소리를 냈다.
“거 당신 같으면 팔겠수? 내일 있으면 또 오를 걸 여기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데.”
그 말에 모두가 공감했는지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사고 싶으면 더 웃돈을 얹어보시든가.”
그 말에 눈가를 좁히며 잠시 생각에 잠기던 귀족이 나름 계산을 마쳤는지 그들을 향해 다시 말했다.
“좋소. 그럼 현 시세의 2배로 사주겠소.”
그러자 몇몇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솔직하게 말해서 맥주 가격이 너무 미친 상태라 언제까지 오를지 그들도 장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지금보다 2배? 2배면…… 그렇게 나쁘지 않을 거 같은데. 아니야. 또 몰라. 이런 추세라면 내일이면 3배, 4배까지 더 올라갈 수 있다고.’
그래도 모두가 침묵하자.
귀족은 더 고심했다는 듯이 다시 목소리를 내주었다.
“좋소. 3배 가격에 사겠소. 그 이상은 힘드니 팔 사람이 있으면 지금 내게 파시오.”
현 시세의 3배면 옛날 가격의 무려 180배나 오른 가격이었다.
그제야 몇몇 사재기꾼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귀족을 향해 걸어갔다.
아무래도 그 동안 어렵게 모은 맥주를 팔아치울 생각처럼 보였다.
그런 사재기꾼을 보던 벨이 다급히 밥을 찾았다.
“이봐, 3배래. 그래도 안 팔 거야? 계산해 보면 옛날 가격에 180배라고. 이건 진짜 미친 가격이야!”
밥도 살며시 갈등했으나, 그래도 팔 생각은 아직 없었다.
“아, 글쎄 4배도 갈 수 있으니까 좀 더 지켜보자고.”
“지금 팔면 지금보다 3배 높은 가격에 저 귀족에게 팔 수 있다고. 저 귀족이 언제까지 맥주를 살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팔아버리는 게 좋지 않겠어?”
“에이. 아니야. 그냥 일단 기다려 봐. 분명히 3배보단 더 오를 거야. 그럼 여기서 판 사람만 완전히 바보 되는 거라고.”
“허허…….”
밥이 가진 도박 근성을 말리고 싶었지만.
벨은 한때 밥이 성공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애써 그 마음을 억누르기 시작했다.
‘그래. 모닝글로리 호도 밥이 끝까지 밀어붙였잖아. 이번에도 한번 믿어보자고.’
그렇게 몇 주가 지나자.
정말 놀랍게도 밥이 예언했던 것처럼 맥주 가격은 옛날 가격의 240배까지 오르게 됐다.
드워프와의 전쟁이 시작된 이후로 맥주 가격이 4배나 뛴 것이다.
‘정말 4배나 뛰었어.’
“이봐, 4배야. 정말 자네 말처럼 됐다고!”
좋은 건 밥도 마찬가지였다.
솔직히 말해서 몇 주 동안 맘 졸이며 정말 4배까지 오를 수 있을까 노심초사했던 것은 밥도 마찬가지였다.
“진짜 미쳐 버렸군. 이게 맥주인지 금으로 만든 술인지 이제 분간이 안 될 정도야.”
“세상에 맥주 가격이 이 정도 기간에 240배까지 오른다는 게 말이나 돼? 이건 진짜 미친 거라고!”
그제야 벨과 밥은 미쳐 버린 맥주 가격에 공감하기 시작했다.
거기다 밥은 증권거래소에서 놀던 짬밥이 있었으니, 이 가격이야말로 두 번 다시 못 볼 최고점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잘 오르던 맥주 가격이 어느 시점부터는 오르지도 내리지도 않게 된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맥주를 팔아야 할지 팔지 말아야 할지 갈등을 하고 있던 벨에게 밥이 진지한 투로 말을 이었다.
“내가 증권 투자를 해봐서 잘 아는데. 세상에 끝까지 오르는 증권은 없더라고. 결국 어느 정도 오르다가 적정 수준이 되면 고점을 찍고 다시 내려오는 게 바로 증권이야.”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그럼 이게 고점인 거야?”
같잖은 경험을 마치 훈장처럼 자랑하는 밥이 다음 말을 이어주었다.
“확실해. 이 정도 먹었으면 냅다 빠지는 게 맞는 거라고. 지금 봐. 가격이 안 오르고 계속 머무르고 있잖아. 이건 가격 하락의 신호라고.”
“이번에도 자네가 맞겠지. 자넨 모닝글로리 호도 성공했잖아. 난 망했지만.”
“두 번째 건 나도 망하긴 했지.”
“그래도 따긴 했잖아.”
“그건 그렇지.”
“그럼 된 거지 뭐. 난 완전히 다 날려먹었다고.”
“아무튼 좀 더 지켜보다가 다 팔아버리자고. 지금 이 가격에도 살 사람은 많으니까.”
하지만 사람 욕심은 끝이 없던 지라.
그들은 그날도 맥주를 사려는 귀족들에게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맥주 물량을 처분하지 못했다.
그날 저녁이 되자.
다시 술잔을 기울이게 된 벨과 밥은 낮에 있었던 일에 대해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그냥 그 사람에게 팔아버리지 그랬어. 자네 말대로 이게 고점이면 이제 어떻게 해? 당장 내일이라도 맥주 가격이 떨어지면 그땐 우리만 큰일 나는 건데.”
“그렇기야 한데…….”
그렇게나 미쳐 버린 가격에도 불구하고 맥주로 대박을 노리는 투기꾼들은 정말 끊임없이 찾아와 맥주를 사 갔다.
그런 이들을 보며 밥은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저 미친놈들은 지금 이 가격에 사는 걸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한 번쯤은 미쳐 버린 맥주 가격에 회의감은 들지 않았을까?
아니면 그 미친 가격에 샀어도 더 높은 가격에 사주는 호구들이 있다면 그만이란 걸까?
‘하긴 이 가격에 팔지도 않는 나도 있는데 저놈들이야 별수 있겠어?’
그러니 밥도 자꾸만 갈등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적당한 선에서 팔려고 하는데 자꾸만 찾아오잖아. 그러면 상식적으로 맥주 가격이 떨어지는 게 맞겠어? 지금보다 더 오르겠지.”
벨도 밥의 생각을 모르는 건 아니었으나.
그래도 너무 높아져 버린 가격에 마음을 졸이는 건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드워프들이 환장한다는 맥주라지만, 결국 서민들의 기호식품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상식적으로 보면 현재 맥주 가격은 미쳐도 너무 미쳐서 아예 달나라까지 간 수준.
“그렇기야 한데…… 그래도 이건 너무 올랐다면서. 나도 솔직히 맥주 가격이 올라서 좋기야 한데 너무 쫄린다고. 그냥 이쯤에서 정리해도 충분히 부자인데, 여기서 만족하는 게 어때? 생각해 봐. 드워프들이 아무리 부자라도 이 미친 가격에 사주겠어? 이건 진짜 정신 나간 거라고.”
벨의 말에 밥은 과거 자신의 아내와 증권 투자로 있었던 어느 에피소드 하나를 떠올릴 수 있었다.
그때도 자신이 투자한 증권 가격이 무려 세 배나 올랐던 시점이었다.
“여보, 그 정도 가격이면 이제 팔아도 되지 않겠어요? 올라도 너무 올랐잖아요.”
“에이, 이 사람아. 사람이 그리 쫄보여서야. 그런 푼돈을 먹어서 언제 부자가 되겠어? 내 밑에서 일하던 샘은 이제 대저택 같은 데서 하인을 두고 살던데. 말만 평민이지 사실상 귀족이라고. 우리도 그 정도는 돼야지 않겠어?”
“그래도 많이 올랐어요. 그 정도면 충분하니까 그냥 파세요.”
“아니야. 더 오를 거야. 일단 지켜보자고.”
그렇게 아내의 말을 무시했던 밥은 며칠 뒤 해적에게 나포되어 휴짓조각이 된 자신의 증권을 볼 수 있었다.
“그때 팔았어야 했는데…….”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밥을 보고 벨이 의문을 표했다.
“지금 뭐라고 한 거야?”
“그때 팔았어야 했다고. 예전에 그런 일이 있었거든.”
밥은 예전에 있었던 일을 벨에게 말해주었다.
그 뒤 자신이 내린 결론에 대해 언급했다.
“증권 가격이 폭락하기 전에는 항상 보이는 전조가 있어. 가격이 더 이상 오르지 않고 훅 떨어질 때가 있거든. 그럼 그전에 무조건 팔아야 돼. 이건 숱한 증권 거래로 알게 된 거야.”
“그래?”
“일단 가격 추이를 지켜보자고. 그리고 낌새가 이상하다 싶으면 냅다 처분하면 돼.”
“알겠어. 나야 뭘 알겠어. 자네를 믿고 따라 가는 거지.”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놀랍게도 밥이 예언했던 것처럼 지루한 횡보를 이어나가던 맥주 가격이 단 하루 만에 무려 50%나 폭락하고 말았다.
이제 막 전쟁에 돌입한 드워프들이 예전의 기억을 되살려 다른 곳에서 맥주를 수급하여 쳐들어왔고, 그런 이유로 제국 내에서 쓸모가 없어진 맥주 가격이 순식간에 반 토막이 나버린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해. 그때 팔았으면 기존 가격에 240배 선에서 정리할 수 있었는데.”
“지금도 계속 떨어지고 있어. 저기서 맥주를 사가는 귀족들만 아주 싱글벙글이야.”
폭락한 맥주값에도 그것을 사들이려는 움직임은 계속 있었다.
벨은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미친 거 아니야? 드워프들이 여기서 맥주를 사갈지도 안 사갈지도 모르는 판국에 저렇게 사는 게 맞는 거냐고?”
잠시간 생각해 보던 밥이 그 이유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렇군. 전쟁이 길어지면 드워프들도 맥주 소비량이 워낙 많다 보니까 맥주가 딸려서 여기서 맥주를 살 수도 있겠지. 아마 그걸 노리는 거 같은데…….”
“그래도 저건 도박이잖아? 전쟁이 얼마나 지속될지 누가 알겠어?”
“그렇기야 한데…….”
“그보다 어떻게 해? 이대로 정리하는 게 좋지 않겠어?”
잠시간 갈등하던 밥이 이전 기억을 되살리며 말했다.
‘맞아. 그때도 팔았어야 했어.’
“지금이라도 팔아야지. 이대로 있다간 완전 똥값이 되겠어.”
그때 벨이 갑자기 어딘가를 가리키기 시작했다.
그가 가리킨 곳에는 몇몇 귀족들과 함께 폭락해 버린 맥주를 사들이려는 샘이 자리하고 있었다.
“저기 봐. 샘이야. 샘이 지금 이 가격에 사려고 하고 있어. 완전 미친 거 아니야?”
벨이 가리키는 곳을 밥도 보았다.
그는 분명 샘이 맞았다.
‘저게 무슨 짓거리야? 설마 전쟁이 길어질 걸 예상이라도 한 거야 뭐야?’
도무지 이해될 수 없는 행동.
하지만 자신은 반값이나 폭락해 버린 맥주를 들고 있을 자신이 없었다.
거기다 폭락의 쓴맛을 맛봤던 예전 기억까지.
하여 마음을 굳힌 밥이 벨을 향해 말했다.
“잘됐네. 가서 샘에게 팔아버리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