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화 40. 맥주 버블#2(2)
단순히 맥주뿐만이 아니라 그 재료가 되는 홉까지 쓸어갔을 줄이야.
샘은 드는 생각이 많아졌다.
‘홉까지 쓸어갈 줄은…….’
자신이 늦은 것이니 이것은 패배나 다름이 없었다.
“축하드립니다. 홉도 가격이 오르고 있어서 금방 부자가 되실 것 같네요.”
그런 샘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벨과 밥은 서로를 보며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우리보다 먼저 싹 쓸어간 사람이 있었잖아?”
“그 길드장 동생이 정말 무서워. 어째 우리보다 몇 수 앞서서 홉이랑 보리까지 건들었으니.”
“그러고 보니 그 길드장은 이번에도 교회와 합심해서 맥주를 생산한다면서? 없는 재료야 동생이 수급해서 이쪽에 있는 맥주 공장으로 보내니, 이거 원.”
“거기 맥주를 사야 하는데, 팔지를 않으니.”
둘이 그런 이야기를 하자 이번엔 샘의 귀가 트였다.
‘아직 맥주를 안 판 곳이 있다고?’
“혹시 거기가 어딥니까? 저는 처음 듣는 얘기인데요.”
벨과 밥이 샘을 보며 말했다.
“가도 별 소득은 없을 거야. 우리도 여러 번 갔는데도 팔 생각이 없더라고. 아마도 지들도 가지고 있다가 팔 생각이겠지.”
“그래도 혹시 모르잖습니까?”
“그럼 가 보든가. 절대 안 팔 거 같긴 한데 뭐.”
“그건 모르죠.”
뭔가 작심한 듯한 샘이 선술집 밖으로 나가자 이를 지켜보고 있던 벨이 말했다.
“저런다고 뭐가 될까? 어차피 아무한테도 안 파는 거 같던데.”
밥이 표정을 구기며 말했다.
“자네 같으면 팔겠어? 내일 있으면 맥줏값이야 또 오를 건데.”
“그런데 참 신기하단 말이지. 그 맥주가 대체 뭐라고. 이젠 구할 수도 없고, 부르는 게 값이니.”
“누구는 맥주 마셔보는 게 소원이라잖아.”
“그만큼 사재기를 많이 한 모양이야.”
“우리가 할 소리는 아니지?”
이어 둘은 박장대소하며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 이제 한 가지만 남았다고.”
맥주와 그 재료들을 사재기했던 이들이 목 빠지게 기다리는 일이 있었다.
바로 드워프의 전쟁 선포.
오직 그것만을 기다리며 벨과 밥은 여전히 싱글벙글이었다.
“자, 전쟁을 위하여!”
벨이 술잔을 높게 들자 그 잔을 자신의 잔으로 부딪히는 밥이 다시 외쳤다.
“드워프 만세!”
“맥주 만세!”
다음 날.
샘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교회에서 한다는 양조장을 찾아가 보았다.
찾아가는 길이 전부 다 보리와 홉이 경작될 정도로 그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이 정도면 거의…….’
모르긴 해도 이제까지 가 봤던 양조장들 중에서는 당연 최대의 규모였다.
그리고 찾아간 양조장 역시 길드장의 지원 덕분인데 하나도 아니고 수십 채나 달하고 있었다.
제국 전역에서 소비하는 맥주를 전부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규모.
그런 양조장들을 보며 샘도 드는 생각이 많아졌다.
‘돈은 이렇게 벌어야 하는 건데.’
농담이 아니라 돈은 정말 이런 식으로 버는 게 맞았다.
시중에 돌고 있는 맥주 통 몇 개를 사재기해 봤자 여기서 나오는 맥주에 비하면 정말 새 발의 피였다.
거기다 맥주 가격은 하루가 다르게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어, 샘은 이 양조장이 나중에 벌어들일 수입에 대해서는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정말 어마무시하게 벌겠군.’
잠시 후 샘은 사제들에게 물어물어 양조장을 실질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피터 사제장이란 사람을 만나보았다.
그리고 여러 사정을 통해 여기서 생산되는 맥주를 어느 정도 확보하려 했으나.
이미 길드장과 결탁된 피터 사제장은 샘이 제시하는 푼돈에 그저 콧방귀만 뀔 뿐이었다.
그렇게 빈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샘은 그날에도 선술집에 들러 일찍부터 술판을 벌이고 있던 벨과 밥을 볼 수 있었다.
‘아니, 허구한 날 술판인가?’
샘이 둘에게 아는 척을 하자, 술에 취해 기분이 좋아진 벨과 밥이 그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래, 갔다 온 일은 어떻게 됐어?”
“표정을 보니까 별로 좋은 일은 없었던 거 같은데?”
둘이 묻자 샘이 풀이 죽은 목소리로 대답해 주었다.
“네, 거래 자체가 힘들어 보였습니다. 저 말고도 여러 귀족들이 맥주를 구하기 위해 다녀갔지만. 단순 소비용 맥주 외엔 구할 수 있는 맥주가 별로 없었습니다.”
그 말에 벨이 반응했다.
“거긴 교단 소속이라 귀족들도 쉽게 건드릴 수가 없어. 거기다 거기 대빵이 누구야. 이 제국의 실세가 아니야. 그러니 어림도 없지.”
밥도 벨이 한 말을 거들어주었다.
“그래서 내가 뭐랬어? 가 봤자 의미 없을 거라고 했지?”
“아무래도 전 이 정도에서 만족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모았는데?”
“많이는 아니고 한 500통 정도. 홉은 한 50가마 확보했습니다.”
500통이란 말에 시시덕거리며 술잔을 부딪치고 있던 벨과 밥의 표정이 빠르게 굳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자기들보다 느리게 움직인 샘이 자기들이 확보한 맥주보다 더 많이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뭐야? 이거 비웃을 게 아니었잖아?’
“아니, 언제 그렇게 모은 거야?”
밥의 물음에 샘이 답했다.
“설마 저보다 못 모으신 겁니까?”
“그러니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우리보다 좀 느리게 움직이지 않았어?”
“네…… 좀 느리긴 했어도. 그래도 여윳돈이 있어서 비싼 가격에도 그냥 사들였습니다. 계속 오를 것 같았거든요.”
뭔 일인가 했더니 가진 돈의 차이였다.
샘이 느리게 움직이긴 했어도 맥주 가격만 비싸졌을 뿐.
결국 돈만 많다면 더 많은 맥주를 선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샘의 말이 이어졌다.
“솔직히 여유가 된다면 더 사고 싶었습니다만. 제 철칙이 어떤 곳에 올인을 하지 않는다는 게 있어서요. 그래서 이 정도가 최선이라 생각했습니다.”
맥주 500통이면 얼마야.
서로를 쳐다보던 벨과 밥이 하마터면 입에 머금고 있던 술을 입 밖으로 뿜을 뻔했다.
‘역시 사이즈가 다르군. 세상에 500통이라고?’
‘어쩐지 뭔가 이상하다고 했어. 그래 녀석은 돈이 많으니 비싸든 말든 그냥 사버리면 그만이잖아?’
곧이어 벨과 밥은 부러운 시선으로 샘을 쳐다보았다.
“부러우이. 세상에 500통씩이나…….”
500통이면 얼마던가.
손가락을 다 접어도 셈 어림하는 게 힘들 정도로 아주 큰 돈이었다.
“이러다 진짜 전쟁이라도 나면 자넨 진짜 떼부자가 되겠군.”
“500통이나 가지고 있을 줄이야.”
전보다 목소리가 낮아진 둘에게 샘은 위로차 이 말을 전해주었다.
“이대로 드워프와 전쟁이 터진다면 지금 맥주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전부 다 부자가 될 건데 무슨 걱정이십니까?”
그래도 정도라는 게 있었다.
어느 정도 부자.
진짜 부자.
그것을 넘어선 더 부자.
거기서 더 나아가 아예 끝판왕이라 불리는 언터쳐블까지.
여기서 벨과 밥이 생각하는 부자는 가장 첫 번째 부자였다.
어느 정도 부자.
“그렇긴 한데…….”
“그래도 아쉽긴 하지.”
“아무튼 드워프와 전쟁은 꼭 일어났으면 좋겠군요. 가격이야 계속 오르고 있지만, 만약 전쟁이 안 일어난다면 맥주 가격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땐 어떻게든 빨리 처분해야지.”
“맞아. 당연히 그래야지. 맥주가 뭔 대수라고 들고 있어. 찾는 사람도 없을 텐데.”
“그럼 전 이만 먼저 가 보겠습니다. 할 일이 있거든요.”
“그래 가 봐. 혹시 좋은 소식이 있으면 알려주고.”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떠나간 샘을 두고 벨과 밥은 왠지 모르게 술맛이 식는 기분이 들었다.
“에이 시팔. 우리가 주제도 모르고 굼벵이 앞에서 주름을 잡았어.”
“어쩐지 내가 좀 이상하다고 했어. 샘이 거지도 아닌데 우리보다 맥주를 더 확보하면 확보했지, 우리보다 덜 가지고 있을 이유가 없잖아?”
“이래서 부자들은 더 부자가 되고, 우리 같은 서민들은 계속 서민처럼 사나 봐.”
“그래도 맥줏값이 계속 뛰고 있으니까 좀 더 지켜보자고. 이거 좀만 있으면 몇십 배도 갈 거 같은데?”
밥의 말에 벨은 약간 회의적인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지금도 많이 올랐는데, 여기서 더 오르긴 할까?”
“일단 전쟁이 나면 더 오르긴 할 거 아니야?”
“그렇긴 한데…… 이게 얼마나 오를지는 잘 모르겠어. 이게 무슨 천 배까지 오르고 막 그러진 않을 거 아니야?”
“천 배?”
그들은 맥줏값이 아무리 올라도 천 배는커녕 백 배도 힘들 것이라 생각했다.
“에이, 천 배는 완전 말도 안 되는 소리지. 끽해야 몇십 배야. 지금도 오르긴 했지만 여기서 전쟁이 터지고 더 올라봤자 한 30배?”
“30배나? 지금이 10배 올랐는데?”
“그래도 지금 가격의 3배 더 오르면 기존 가격의 30배나 오르는 건데, 에이 그래도 그 정도는 가겠지.”
“나도 그 생각이야.”
“우선은 지켜보자고. 이게 얼마까지 갈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시중에 맥주는 없으니 결국 부르는 게 값이잖아?”
“그렇긴 하지.”
“당장 생활비야 맥주 한 통만 팔아도 신나게 놀고먹을 수 있으니, 몇 달만 더 버텨보자고.”
“나도 그 생각이야. 어디 끝까지 가 보자고.”
그렇게 몇 달이 지나자.
드디어 그들이 학수고대하던 드워프의 선전포고가 제국 전역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몬테펠트로 영지에서 금광이 개발되고 있다는 소식이 대륙 전역으로 뻗치자.
과거 그 땅의 주인이었던 드워프들이 크게 반발하며 제국을 상대로 선전포고를 한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동맹인 드워프들의 갑작스러운 선전포고로 인해 당황했지만, 미리 그 일을 예상하고 있었던 극소수의 사람들은 소식을 접한 직후 곧바로 환호성을 내질렀다.
“드워프가 선전포고를 했대!”
벨과 밥처럼.
몬테펠트로 영지에 위치한 선술집에서 거의 살다시피 하며 드워프의 선전포고만 기다리고 있던 맥주 사재기꾼들이 일제히 만세삼창과 함께 크게 환호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캬아! 정신이 나갈 정도로 흔들어보자고! 우린 이제 부자야! 엄청난 부자라고!”
“주인장! 여기 럼주 하나씩 다 돌려! 이건 내가 오늘 쏘는 거야!”
축제장을 방불케 하는 선술집에서 신나게 흔들어 재끼던 벨과 밥은 다음 날 아침 지독한 숙취와 함께 정신이 혼미할 정도의 소식을 접하게 됐다.
“뭐, 뭐라고? 지금 뭐라고 했어?”
전날 늦게까지 술을 퍼먹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던 벨은 선술집 주인으로부터 뜻밖의 소식을 듣게 됐다.
몇 달 동안 무려 20배나 올랐던 맥줏값이 전날 있었던 드워프의 선전포고와 함께 그 가격이 무려 3배나 더 올랐다는 것이다.
그 말은 옛날 가격보다 무려 60배나 올랐다는 소리나 다름이 없었다.
“지금 맥주 가격이 3배나 더 뛰었다고?”
“그렇다니까. 지금 귀족들이 돈 싸 들고 맥주를 사려고 아주 난리야 난리!”
뒤늦게 소식을 접한 귀족들도 한시바삐 맥주를 확보하기 위해 움직였으나, 시중에 돌고 있는 맥주가 없어 아주 높은 가격에 맥주를 살 수밖에 없었고, 이는 곧 맥주 버블이라는 희대 사건의 시발점이 되고 말았다.
“아니, 그게 정말이야? 어제까지만 해도 20배였잖아?”
“그게 전쟁이 터지고 나서 60배까지 뛰었다고 하나 봐.”
“60배? 그럼 어제보다 3배나 더 오른 거잖아?”
“그렇게 된 거라고.”
믿기지 않는 소리에 밥은 그 자리에 벌러덩 자빠지고 말았다.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도무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이게 뭔 일이야? 세상에 그 맥주 가격이 60배나 뛰었다고? 허허…….’
과거 숱하게 증권 거래소를 드나들었어도 액면가에 60배나 뛴 증권 같은 건 없었다.
그런데 그런 증권도 아니고 하찮은 맥주 따위가!
하루아침에 귀족들도 쉽게 맛볼 수 없는 고급 기호식품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나는 이제 부자다! 엄청난 부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