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화 39. 맥주 버블(3)
그래도 맥주의 저렴한 이미지 때문인지 양조장 주인은 조슈아의 말에 반신반의하며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귀족들이 와인 대신 맥주를 마신다는 게…… 저는 잘 상상이 안 갑니다. 최근 들어 귀족들의 문의가 있긴 했으나, 아주 일시적인 현상이겠죠.”
양조장 주인은 맥주에 대해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당장이야 만들어놓은 맥주를 누군가가 다 사 가서 망정이지.
얼마 안 있어서 그만큼의 맥주를 또 생산하게 된다면 그 누가 맥주에 희소성을 부여한단 말인가?
“맥주는 그냥 서민들의 기호식품일 뿐입니다.”
그런 양조장 주인의 말에 조슈아는 속으로 생각할 뿐이었다.
‘예전엔 그렇겠지만, 이제는 아니지. 적어도 내가 푸는 시점까지는 어림도 없어.’
“아무튼 맥주는 없는 모양이군요. 알겠습니다.”
양조장을 떠나간 조슈아는 일대에 있는 몇몇 양조장을 더 돌아보았다.
다행히도 몇몇 곳은 사재기꾼들의 손이 닿지 않아 맥주를 그리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앞서 들은 이야기 때문인지.
조슈아는 늦게나마 보리와 홉에 대해서도 사재기를 시작했다.
들르는 양조장마다 가지고 있는 맥주, 그리고 그 맥주를 생산하기 위한 재료들까지 싸그리 쓸어가 버린 것이다.
* * *
맥주 사재기가 시작된 뒤로부터 몇 주 뒤.
이제 제국에서 맥주를 보는 건 하늘에 있는 별을 따는 것만큼이나 어려워졌다.
하여 일반 서민들의 기호식품이었던 맥주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그 가격은 무려 기존 가격의 다섯 배까지 오르게 됐다.
“아니, 맥주가 없다고?”
“없다니까. 그냥 와인이나 아니면 다른 술이나 마셔. 럼은 있는데 어때?”
“하…… 아니, 어떻게 맥주가 없어?”
하루 일과를 끝내고 선술집에 들러 맥주 한 잔을 들이켜는 게 유일한 낙이었던 사람들은 맥주 품귀 현상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손쉽게 구할 수 있었던 맥주가 이젠 물보다 더 귀해진 것이다.
“진짜 없는 거야?”
“아니, 며칠 전부터 없는 거 다 알고 있잖아?”
“양조장은 대체 뭐 하는 거야? 맥주도 안 팔고. 맥주 가격도 올랐다면서?”
“그게 더 문제야. 맥주 가격이 오르더니 이놈들 양조장 새끼들이 갑자기 맥주를 안 팔고 그걸 모으기 시작했어.”
“뭐? 양조장에서 맥주를 안 판다고?”
선술집 주인은 최근 들어 들은 이야기가 있는 모양인지 그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속닥여주었다.
“요즘 양조장에서 맥주를 만드는 재료조차 구하기 힘들다고 하는 모양이야.”
“그게 뭔 소리야?”
“자네도 알잖아. 맥주를 만들려면 일단 보리랑 홉이 필요한 거.”
“그거야 알고 있지.”
“그런데 그 재료들까지 맥주랑 같이 누군가 싹 쓸어가 버린 모양이야. 그러니까 양조장 주인들이 맥주를 만들고 싶어도 만들 수가 없다고 아우성이거든.”
“그럼 맥주를 못 만들어서 안 판다는 거야 뭐야?”
“그런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 하루아침에 맥주 가격이 훅훅 뛰게 되니까. 이놈의 양조장 주인들이 맥주를 안 팔기 시작했어. 생각해 봐. 다음 날 일어나면 맥주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있는데, 어느 미친 양조장 주인이 맥주를 내다 팔겠어? 가지고 있다가 가격이 더 오르면 그때 팔면 그만인데.”
세상 살다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될 줄이야.
맥주 한 잔에 오늘 있었던 고단함을 훌훌 털어버리려고 했었던 사람들은 그저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그게 말이야 방구야.”
“아무튼 맥주가 있어도 이 럼보다 비싸니, 그냥 럼이나 마시지 그래.”
그렇게 선택권이 없었던 사람들은 맥주 대신 럼을 마시게 됐다.
“에이, 무슨 맥주가 그 가격이야. 차라리 그 가격이면 럼이나 마시고 말지. 럼이나 한 잔 줘봐. 마시고 일어나게.”
그리고 이런 현상은 비단 돈 없는 서민들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귀족들 사이에서도 어렵게 맥주를 구한 이들은 이를 가지고 사교 클럽에 나가 다른 귀족들에게 자랑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건 평민들도 잘 안 마시는 맥주가 아니오?”
나이 지긋하게 먹은 귀족 남자가 자신에게 맥주를 대접한 다른 귀족에게 불쾌감을 드러내자 맥주를 가져온 이가 실실 웃으며 운을 뗐다.
“잘 모르시는군요. 요즘 이 맥주를 구하는 게 그리 어렵답니다.”
“그게 뭔 소리입니까? 맥주를 구하기 어렵다니.”
“양조장에서 팔지를 않고, 또 팔아도 그 가격이 무려 다섯 배나 올랐다고 하더군요. 그것도 내일 일어나면 또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맥주 가격이야 계속 오르고 있고, 이게 너무 귀해지다 보니 누군가는 부르는 게 값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요?”
처음엔 거들떠도 안 봤던 서민들의 기호식품이었지만.
이게 귀해지자 귀족들도 맥주에 대한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다.
“크흠! 어디 한잔 마셔봅시다. 오랜만에 서민 체험 좀 해야겠소.”
“드셔보시죠. 아, 그리고 이건 제가 어디서 들은 이야기인데. 맥주는 살얼음이 낄 정도로 차갑게 해서 마시는 게 정말 좋다고 합니다. 이 목 넘김에서 탁탁 터지는 게 아주 기가 막히다고 하죠.”
그 말을 듣고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던 귀족이 뒤이어 터져 나오는 탄산의 향연에 취해 저도 모르게 한쪽 눈을 찡그렸다.
“크으~ 처음 맛보는 건데, 맛이 색다르긴 하군요. 보통 이런 것보다 독주를 마시는데. 이런 건 양도 많고, 잘 취하지도 않지 않습니까?”
“그래서 여자들이 그렇게나 좋아한답니다. 여자들이 독주는 잘 안 마시지 않습니까?”
“오호, 그런 게 있었습니까?”
“그래도 이게 취하긴 해서. 한두 잔씩 먹이게 되면 기분이 알딸딸해지는 게. 무도회 같은데 가서 작업치기 딱 좋습니다.”
“그래요? 그거 참 흥미롭군요.”
맥주 한 잔을 들이켜고 이를 유심히 살펴보던 귀족이 그것을 대접한 귀족에게 물었다.
“이게 얼마랍니까? 몇 개 사두면 괜찮을 거 같은데.”
“하하, 없던 관심이 생기신 겁니까?”
“이까짓 서민 음료가 비싸 봤자 얼마나 한다고. 그냥 호기심에 조금 사두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리 쉽게 구하실 순 없을 겁니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이거 쉽게 구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앞서 제가 말씀드렸잖습니까? 이게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라고요.”
“그게 뭔 소립니까? 이딴 거야 양조장 가면 그냥 구하는 거 아닙니까?”
그 말에 맥주를 대접한 귀족이 대번 고개를 저었다.
“아이고, 어림도 없는 소립니다. 양조장 가서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다면 제가 이리 대접을 했겠습니까? 그리고 그런 거라면 이렇게 가격이 오르지도 않았겠죠.”
쉽게 구할 수 없다는 이야기에 상대편도 호기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거 흥미롭군요. 쉽게 구할 수 없는 서민 음료라…….”
“듣자 하니 이게 드워프와의 전쟁이 가까워져서 일시적으로 품귀 현상이 생긴 거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 배경이 뭡니까? 드워프와의 전쟁? 드워프들이 또 누구랑 전쟁을 한다고 합니까?”
“모르셨습니까? 그 몬테펠트로 영지 말입니다. 거기서 최근 들어 금광석들이 무더기로 발견됐는데, 글쎄 거기가 예전에 드워프의 땅이지 않았습니까?”
“아,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네, 그래서 드워프들이 혹시나 그 일로 쳐들어오지 않을까 해서 사람들이 그런 일로 맥주 가격이 올랐다고 하더군요. 들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드워프들이 워낙 부자라 어디서 전쟁을 벌이면 그 물자를 그 지역에서 공급받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죠.”
“그들 식성이 저희와 비슷해서 식량 같은 거야 알아서 수급할 수 있겠지만. 이처럼 맥주 같은 건 희귀해지면 희귀해질수록 이걸 사들이려는 드워프들도 아주 곤란해지겠죠. 그래서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겁니다.”
“허허…….”
듣기 보니 더욱 흥미로워졌다.
“그래서 지금 맥주가 아예 없는 겁니까? 맥주 씨가 마를 정도로?”
“그렇습니다. 적어도 제가 들었을 땐 맥주 구하는 게 너무 어려워졌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최근 들어 저희 같은 사람들이 이 귀하디귀한 맥주를 서로에게 대접하는 게 새로운 유행이 됐습니다.”
멋쟁이 귀족의 첫 번째.
유행에 항상 민감하라.
이를 상기시킨 귀족이 말했다.
“어쩐지. 나는 누가 맥주를 마시러 자꾸 오라길래 나한테 장난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군요. 맥주가 그리 귀해질 줄이야.”
“혹시나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데가 있다면 저도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이게 일어날 때마다 가격이 달라지다 보니 저도 흥미가 생겼거든요.”
“새로운 투자처 같은 겁니까?”
“뭐, 일단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하하, 재밌군요. 맥주라는 게 이리 될 줄이야.”
맥주를 대접했던 귀족이 농담 삼아 이 말을 던져보았다.
“지금도 가격이 높은 편인데, 만약 소문대로 드워프들이 저희에게 전쟁을 걸어온다면. 제가 모르긴 해도 이 맥줏값, 정말 미친 듯이 오를 겁니다. 저희야 안 사면 그만이지만.”
그는 실실 웃으며 나머지 말도 이어주었다.
“드워프들은 그게 아니라고 하더군요. 걔들은 맥주를 안 마시면 전쟁 자체가 안 됩니다.”
“하하하, 무슨 그런 놈들이 다 있습니까?”
“드워프들이 가지고 있는 맥주의 저주라는 게 괜히 있는 거겠습니까? 뭐 그런 거겠죠.”
“하하하, 그것참 재밌군요. 맥주의 저주라…… 인간은 그런 건 없는 것 같은데.”
“아무튼 귀공께서도 구할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구해보십쇼. 적어도 손해는 아닐 거 같습니다.”
“그거야 구할 수 있다면 그렇겠죠.”
40. 맥주 버블#2(1)
몬테펠트로 영지에 위치한 어느 선술집.
교외 지역에 위치한 어느 음침한 동굴 속에 맥주와 보리, 그리고 홉을 숨겨놓은 벨과 밥이 오랜만에 회포를 풀고자 이곳으로 찾아왔다.
“저기 봐. 샘이야. 저놈도 우리처럼 맥주를 팔려고 여기까지 왔나 봐.”
둘은 샘과 우연히 마주쳤던 지난날을 떠올릴 수 있었다.
제아무리 부자인 샘이라도 그들보다 발이 빠를 순 없었다.
뒤늦게 맥주 사재기에 나섰던 샘은 그들이 먼저 선점한 곳을 뒤늦게 찾았다가 허탕만 치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샘도 둘을 봤는지 아는 척을 하기 위해 럼이 든 술잔을 들고 그들에게 찾아왔다.
아마 예전이었다면 아는 체도 안 했겠지만, 맥주 관련된 일로 대화를 나누고자 찾아온 것이다.
“여기 계셨군요. 먼 타향에서 이렇게 두 분을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샘이군.”
“어, 왔어? 그래, 저번에 보니까 맥주를 구하려고 돌아다니던데. 어떻게 된 거야?”
그 물음에 샘이 아쉬운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저도 나름 빠르게 움직였다고 생각했는데, 저희보다 먼저 움직인 사람들이 좀 있었나 봅니다. 아저씨들은 뭐 어떻게 되셨습니까? 그때 맥주를 사기 위해 오신 거 아닙니까?”
그 물음에 벨과 밥이 답해주었다.
“우리도 제법 발빠르게 움직이긴 했지.”
“남들보다 움직인 건 빨랐는데, 아쉬운 게 돈이었어. 그래서 내가 집이랑 가게랑 전부 담보로 잡고 또 돈을 빌렸지.”
모든 재산을 담보로 잡히면서까지 대출을 받았음에도.
밥의 얼굴에 근심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했던 일이 잘 풀린 것이다.
“지금 맥주 가격이 거의 10배나 뛰었지?”
“미친 가격이지.”
“그래서 대출을 하긴 했는데, 그렇게 힘들지는 않아.”
그 말을 듣자 샘은 배가 아플 지경이었다.
괜히 그때 말을 꺼내서 엉뚱한 경쟁자가 생긴 게 아닌가?
‘그때 말해주는 게 아니었는데…….’
“그래도 잘되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요즘은 홉도 구하기가 힘들어서 그 종자 가격도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답니다.”
홉의 종자가 귀해진 거야 최근 들어 시작한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말해준 것은 구할 길이 없어 반 포기 상태였기에 말해준 것도 있었다.
“홉도 그렇게 구하기가 어려웠나?”
벨의 물음에 밥이 웃으며 답해주었다.
“그럴 수도 있겠지. 우리가 홉이란 홉은 죄다 쓸어버렸잖아.”
“하하, 그렇긴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