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39. 맥주 버블(2)
그런 샘의 말에 벨과 밥의 귀가 번쩍 뜨였다.
“흥미로운 소식? 그게 뭔데?”
벨과 밥이 과한 관심을 보이자 샘은 앞서 한 말을 뒤늦게 후회했다.
‘이건 꽤 고급 정보인데.’
“그게…… 저만 알아야 하는 거라 말씀드리기가.”
비밀스러운 이야기였는지 샘이 말을 아끼려는 모습을 보이자 밥이 대번 표정을 구겼다.
“아니. 우리보다 잘나간다고 해서 지금 우릴 무시하는 거야 뭐야?”
“아, 그건 아닙니다. 그런 건 아니고…….”
“그럼 뭐야? 이제 우리 같은 사람들하곤 말도 안 섞겠다는 거야 뭐야?”
“그게…….”
“그냥 속 시원하게 말해봐. 우리가 뭐 남이야? 내가 어디 가서 여기서 한 얘기를 동네방네 떠벌릴 거 같아?”
“하…….”
한숨을 짙게 내뱉던 샘이 한참을 고심하다 마지못해 입을 열어주었다.
“그게…… 이게 정확한 건 아니지만. 길드장 동생이 그렇게 움직인 것에 대해선 저희 나름대로 추측한 게 있습니다.”
“저희 나름?”
“아, 제가 최근에 들어간 클럽이 하나 있거든요. 어느 정도 자산 규모가 되는 사람들끼리 모이는 뭐 그런 사교모임입니다.”
역시나.
부자가 된 샘은 노는 물조차 달랐다.
뭔가 대단한 곳에 몸을 담고 있다고 하자 벨과 밥은 괜시리 자격지심 같은 게 느껴졌다.
‘대체 누구랑 어울린다는 거야. 설마 귀족들인가? 진짜 귀족이라면 샘도 많이 컸군. 정말 많이 컸어.’
귀족들이라면 분명 좋은 정보도 가지고 있을 터.
밥이 재빠르게 말을 붙였다.
“그런 정보. 혼자만 알지 말고 우리한테도 좀 알려주지 그래. 아무리 그래도 우리가 남이야? 남은 아니잖아.”
팔꿈치로 옆구리를 콕콕 찌르는 그를 보니 샘도 표정을 구겼다 마지못해 말해주기로 했다.
아직 확실한 이야기는 아닌지라 말해도 괜찮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게 맥주를 독점하려는 이유가 아무래도 몬테펠트로 영지와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몬테펠트로 영지?”
벨과 밥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거기서 무슨 일 있는 거야?”
“최근에 거기서 금광석이 나왔다는 이야기가 있거든요.”
“금광석?”
그러다 벨이 무언가가 떠올랐는지 바로 반응을 보였다.
“몬테펠트로 영지는 그 옛날에 엄청난 금광지대 아니었어? 나 그렇게 알고 있는데.”
“그래? 그런 이야기가 있었어?”
“그런데 이미 죽은 땅으로 알고 있는데. 그런데 거기서 금광석이 나왔다고?”
“금광석이 뭐야?”
“뭐긴 금 붙어 있는 광석이지. 세상에 그것도 몰랐어?”
“그래? 그럼 거기에 아직도 금이 있다는 거야?”
둘의 시선이 다시 샘에게 닿자 샘은 조용히 고개를 주억였다.
“네, 그런 것 같습니다. 아마 그쪽 영주는 쉬쉬하는 모양인데, 이미 소문이 퍼질 대로 퍼진 상태라 아마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을 겁니다.”
금광지대에 금이 아직 살아 있단다.
모닝글로리 호 사건으로 뼈아픈 실패를 맛본 둘에겐 마치 황금의 땅 엘도라도를 소개받는 기분이었다.
“세상에 그런 데가 있었으면 진작 말해줬어야지! 안 그래도 요즘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는데.”
“이거 기회 같은데? 가서 크게 땡겨야지.”
그런 둘을 보고 샘은 고개부터 저었다.
“어차피 임자가 있어 그렇게 쉽게는 못하실 겁니다.”
“임자가 있다고?”
“네, 최근 들어 제국 실세가 된 리옹 길드장이 그 지역의 실질적인 주인이라고 하더군요.”
“그게 무슨 소리야?”
벨과 밥은 동시에 의문을 표했다.
“영지면 당연히 영주 거지. 무슨 길드장 거라는 거야.”
“그게…… 실은 말입니다.”
샘은 영주의 땅이 어떻게 하다가 한낱 길드장에게 넘어가게 되었는지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그 설명을 듣고 난 벨과 밥은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일이 있었군.”
“영주가 빚쟁이가 됐을 줄이야. 하긴 그러니까 멀쩡한 땅을 뺏겼겠지.”
“그러게 말이야. 아무튼 그거랑 맥주랑 무슨 상관인데?”
샘이 말했다.
“그 땅이 본래 드워프 땅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마 길드장 동생이 발 빠르게 맥주를 독점한 것을 보아, 아무래도 드워프와 전쟁이 임박한 것은 아닌지 저희들끼리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뭐? 드워프와 전쟁을 해?”
벨과 밥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아니, 그게 말이나 돼? 드워프와는 원래 동맹이잖아? 안 그래?”
“맞아. 서로 동맹이잖아. 그렇다고 너무 좋은 사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오크 같은 것에 비하면 친한 편이지.”
샘이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거기에 황금이 끼게 되면 이야기는 달라지게 되죠. 아시잖습니까? 드워프가 어떤 것에 환장을 하는지.”
“그런데 그거랑 맥주랑 무슨 상관이야?”
“맥주를 독점하는 게 드워프와의 전쟁을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겁니다.”
“아…….”
벨이 어디서 들었는지 밥에게 말해주었다.
“그러고 보니까 예전에 국경 근처에서 오크랑 드워프가 한판 붙은 적이 있었는데, 글쎄 어떤 교회에서 맥주 사업으로 크게 돈을 벌었다고 하는 모양이야.”
“그래? 그런 이야기가 있었어?”
“나도 들은 얘기야. 그럼 설마 그것 때문에 맥주를 독점한다는 거야?”
“아마도 그런 것 같습니다. 아니면 굳이 맥주만 고집스럽게 독점한다는 게 말이 안 되거든요.”
“허허…….”
할 말을 다한 모양인지.
샘은 그들에게 모자 인사를 건네고 육두마차로 올라탔다.
“그럼 전 바빠서 이만. 나중에 또 뵙도록 하죠.”
바삐 떠나가는 샘을 보고선 벨과 밥은 많은 생각들이 들기 시작했다.
어차피 장사는 이미 접은 지 오래.
벨은 한 번의 투자 실패로 패가망신을 했고, 밥이야 증권거래소만 전전하는 전업투자자로 돌아선 지 오래였다.
“이봐, 이거 어디서 돈 냄새가 나지 않아?”
밥의 말에 벨의 어깨가 축 처졌다.
어디서 돈 냄새가 나든 말든 뭐하나?
어차피 자신은 망했는데.
“그래서 뭐 어쩌라고. 난 이미 망해가지고 뭘 해보지도 못하는데.”
“아니, 진짜 전 재산을 다 말아먹은 거야?”
벨이 손까지 휘저으며 밥을 보내려했다.
“다 말아먹었지. 그놈의 무역선 투자가 뭐길래.”
그러면서 원망의 시선을 밥에게 던져주었다.
저놈이 무역선 투자로 성공하지만 않았더라도.
절대 증권 투자는 하지 말자는 자신의 신념이 지켜졌을 텐데.
그런 시선이 느껴졌는지 밥이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그래도 우린 친구가 아니야. 이 사람아 여기서 술만 축내지 말고. 차라리 나랑 맥주 사업이나 크게 해보지 그래.”
“맥주 사업?”
“그래, 그 예전에 드워프랑 오크랑 전쟁을 했을 때 무슨 교회에서 맥주 사업을 해서 크게 돈을 벌었다면서.”
“그게 뭐 어쨌다는 거야?”
“전쟁이 무슨 하루아침에 끝날 것도 아니고. 차라리 이참에 내가 투자를 할 테니 서로 합심해서 맥주 사업이나 한번 해보자고.”
그러자 벨이 손사래부터 쳤다.
“아니, 무슨 기반이 있어야 맥주 사업을 하지. 이제 와서 무슨 맥주 사업. 차라리 거기 가서 곡괭이나 들고 말지. 그러고 보니 거기서 금광석이 나올 정도면 광산도 열리지 않겠어?”
그런 벨의 말에 밥이 성부터 냈다.
“광산은 무슨! 자네가 무슨 광부야? 평생 옷이나 팔던 사람이 이제 와서 무슨 쯧쯧쯧. 엉뚱한 소리 집어치워. 자넨 그런 데 갔다간 며칠도 못 가서 도망쳐 나올 테니까.”
“아 그래서 뭐 어쩌자고?”
“그냥 나랑 같이 사업을 하자니까. 허구한 날 술만 퍼먹으면 뭐 답이 나와?”
“하…….”
같이 사업을 하는 건 좋았으나, 그래도 갑자기 맥주 사업을 벌이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차라리 그 길드장 동생처럼 맥주나 사보지 그래? 자네도 벌기야 벌었으니 어느 정도 돈은 가지고 있을 거 아니야?”
“맥주를 독점하자고?”
“그래, 차라리 그게 낫지. 세상에 언제 우리가 맥주를 만들어 봤다고 이제 와서 맥주를 만들어 팔겠어. 나 같으면 그냥 그 길드장 동생처럼 여기저기 발품 팔아가며 맥주나 사겠다.”
“흠…….”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던지 밥도 꽤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거 좋군.”
그러다 벨이 다른 생각을 했다.
“아니, 어차피 맥주는 이미 싹 쓸어갔잖아.”
그래도 벨이 밥보다는 머리가 돌아가는 편이었다.
재수가 없어서 그렇지.
“차라리 맥주가 아니라 홉이나 보리 같은 걸 사자고. 맥주를 만들려면 그게 필요할 거 아니야?”
“홉이나 보리를 사자고?”
“그래, 그게 있어야 맥주를 만들 거 아니야.”
“오호라. 그거 좋은 생각이군.”
“지금 길드장 동생이 맥주를 독점하려고 하고 있잖아. 그건 이미 싹쓸이를 시작해서 우리가 먹을 게 별로 없을 거야. 하지만 우리가 발 빠르게 움직인다면 홉이나 보리 정도는 확보할 수 있을 거라고.”
“그거 좋군.”
드디어 뜻이 맞게 된 둘은 합심하여 홉과 보리를 독점할 생각을 하게 됐다.
“한 번 망했다고 두 번 망하란 법이 있겠어?”
벨의 말에 밥이 지독한 미소를 입가에 드리웠다.
이 느낌은 분명 증권거래소에 있다가 자신이 투자한 증권 가격이 갑작스레 치솟는 느낌과 흡사했다.
“그래, 나도 한 번 말아먹었지만 이번 기회에 제대로 재기를 해야겠어. 우리 한번 잘해보자고.”
“아 물론이고말고. 우리가 어디 남이야? 적어도 우린 피는 나누지 않았지만 그래도 좋은 친구지.”
“암, 그렇고말고! 우리도 이제 샘처럼 부자가 되어보자고!”
“좋았어! 가자고!”
* * *
“맥주를 전부 사 갔다고요?”
제국 전체를 돌며 맥주를 사재기하던 조슈아는 어느 양조장에서 뜻밖의 소식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자신보다 먼저 찾아와 맥주를 몽땅 사 간 이들이 있단다.
“그게 누굽니까?”
자신보다 빠른 사람은 없을 거라 생각했건만.
그건 조슈아 본인만의 착각이었다.
“모르겠습니다. 두 사람이었는데, 대형 수레를 끌고 다니는 걸 보니 좀 부유한 평민처럼 보이긴 했습니다.”
“귀족은 아니었습니까?”
“귀족이 할 일은 아니잖습니까?”
“그렇긴 하군요.”
“아, 그 사람들 홉과 보리도 사가더군요.”
“홉과 보리도 사 간 겁니까?”
“네, 수레를 보니 잔뜩 실려 있었습니다. 보아하니 맥주보단 홉과 보리를 더 많이 샀더군요.”
“흠…….”
아무래도 자신의 계획을 눈치챈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생각보다 많은 양의 맥주를 사들인 터라 크게 아쉬움은 없었다.
‘뭐 그 정도야 내줄 수 있지. 어차피 내가 확보한 양에 비하면 새 발의 피가 될 테니까.’
“그렇군요. 아무튼 알겠습니다.”
그러자 양조장 주인이 의문을 표했다.
“그런데 무슨 일 있는 겁니까? 요즘 맥주 구하기가 그렇게 어렵다고 하던데. 솔직히 말해서 지금 맥주 가격이 말도 안 됩니다. 세상에 와인보다 비싸질 줄이야.”
조슈아를 포함한 몇몇이 맥주란 맥주를 몽땅 사재기를 하는 바람에 제국에서 맥주 보기가 별 따기처럼 어려워졌다.
하여 맥주 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는 중이었다.
“이게 말이나 됩니까?”
수요와 공급이라는 아주 당연한 법칙에 의거.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생각한 조슈아가 말했다.
“시중에 맥주가 없으니 그럴 수도 있겠죠.”
“세상에 맥주가 이리 비싸질 줄이야. 나중엔 귀족들이 와인 대신 맥주를 마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최근 들어 맥주 문의를 하는 귀족들이 있더군요.”
아무래도 자기 덕분에 맥주가 아주 귀해진 모양이었다.
“귀족들 입맛이 고급이라…….”
조슈아가 보기엔 맥주도 나름 희소성을 띤다면 양조장 주인이 말한 일도 충분히 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쉽게 맛볼 수 없다면 그들도 이제껏 상대도 안 하던 맥주에 가치를 부여할지도 모르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