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화 38. 아즈락 골드마인(4)
“캬스라…….”
썩 좋은 이름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다른 좋은 이름이 떠오르는 건 아니었다.
“어차피 이름은 바꿔야 하니 일단 참고하겠네.”
“더 좋은 이름이 있다면 그걸로 하셔도 됩니다.”
그래도 누가 지어준 이름이던가?
피터 사제장이 바로 말을 바꾸었다.
“아닐세. 생각해 보니 자네가 지어준 이름도 듣기 괜찮군. 캬스라…… 그래, 앞으로 여기서 생산하는 맥주는 나중에 캬스라 해야겠군.”
얼떨결에 지은 이름을 좋다고 가져가는 걸 보니, 괜히 록펠러만 미안해졌다.
‘이름을…… 못 지은 거 같은데. 뭐 상관없겠지.’
“아무튼 이전에 하셨던 것처럼 사업 확장 좀 부탁드립니다.”
피터 사제장이 재차 확인 차 물었다.
“그럼 여기서 생산한 맥주는 제국 밖에서 상표만 바꿔서 팔 생각인가?”
“네, 일단 그럴 생각입니다.”
“그럼 우리 대신 팔아줄 중간 업자가 필요하겠군.”
“그렇다면 엘프가 나을 겁니다. 오크들이 맥주를 만들어서 팔 리도 없고, 드워프들도 오크들이 생산한 맥주는 맛이 없다고 생각할 게 뻔하니까요.”
무식한 오크들이 술을 담가 봤자 얼마나 잘 담그겠나?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 엘프들이 본래 술도 담갔었나? 나야 견문이 좁아 들은 게 없어서.”
“담그긴 합니다. 상업적으로 팔지 않아서 그렇지. 하지만 그 맛을 본 사람들은 절대 잊지 못한다고 하더군요.”
“하긴 엘프가 담근 술이면…… 뭔가 신비롭긴 하겠군. 일단 알겠네. 우선 자네 말대로 예전처럼 맥주 사업을 준비해 보겠네. 이참에 교구로 확장될 거라면 젊은 사제들을 더 영입해야겠어.”
록펠러는 이 말도 잊지 않고 해주었다.
“혹시나 중간에 필요하신 게 있다면 언제든 제게 찾아와 부탁하시면 됩니다. 가능한 일이면 무조건 도와드리겠습니다.”
“하하, 걱정 말게나. 필요한 게 있으면 바로 자네에게 찾아갈 생각이니.”
“그럼 맥주 관련된 일은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39. 맥주 버블(1)
간간이 록펠러와 편지를 주고받던 로스메디치 가문의 셋째 조슈아는 큰형 록펠러가 몬테펠트로 영지로 돌아가 예전처럼 다시 맥주 사업을 벌인다는 소식을 접하게 됐다.
큰형이 보낸 편지지를 손에 들고 무언가를 생각하던 조슈아가 이내 입가를 길게 휘었다.
‘그게 좋겠네.’
이전에 토템전쟁이 발발했을 때.
그는 둘째 형인 앤드류와 함께 용병들을 상대로 재미를 봤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땐 록펠러 형보다 못 벌었지.’
그게 어찌나 한이 되던지.
하지만 이젠 아니었다.
‘이번엔 다를 거야. 내가 록펠러 형보다 더 많이 벌 생각이니까.’
이것은 어찌 보면 기회였다.
더군다나 자신은 제국에서 가장 부유한 무역항인 블랙라벨에 위치해 있어 재정적으로 상당히 여유로워 무언가를 하기엔 딱 좋았다.
‘이번에 맥주 사재기를 해버리는 거야. 대륙에서 맥주란 맥주는 죄다 사버리는 거지. 씨가 마를 정도로.’
곧 있을 금맥전쟁에 대해서는 록펠러에게 귀가 닳도록 들었기에, 조슈아는 드워프들이 그 전쟁에서 어떻게 나올지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저번처럼 필요한 물자가 있으면 근처에서 사려고 하겠지. 가진 돈이 많으니 괜히 본거지에서 가져오진 않을 거야. 록펠러 형이 말한 것처럼 드워프들도 돈으로 해결하는 걸 좋아하니까.’
여기서 식량을 독점하는 것은 어려웠다.
드워프들도 인간과 식성이 비슷하여 식량으로 쓸 게 많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맥주는 달랐다.
맥주는 식량과 달리 기호식품이라 그 양이 어느 정도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독점이 가능했던 것이다.
‘방심하면 당할 수밖에 없는 거지.’
과연 드워프들은 곧 있을 금맥전쟁에서 소비될 맥주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나 있을까?
‘아니, 모르겠지. 애당초 드워프들이 동맹인 제국에 선전포고를 하리란 걸 누가 예상이나 하겠어?’
그러니 이것은 미래를 예측했거나 아니면 그 미래를 정확히 알고 있는 자만이 벌일 수 있는 일이었다.
‘어찌 됐든.’
큰형인 록펠러가 말하길 인생은 배팅이라 하였다.
그 말을 뼛속까지 새긴 조슈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이 거느리고 있던 사람들에게 대륙에 있는 모든 맥주를 사들일 것을 지시했고, 자신도 나서서 우선 블랙라벨에 있는 맥주부터 마구잡이로 사들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블랙라벨은커녕 인근 지역에서도 맥주를 보기가 힘들어졌다.
그 바람에 패가망신하여 술만 퍼먹고 있던 의상점 주인 벨도 비상이 걸렸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인생 한탄을 위해 선술집에 찾아가 다른 술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맥주를 찾았는데, 글쎄 가게 주인이 말하길 그 맥주가 없단다.
“그게 뭔 소리야? 맥주가 없다니.”
그래서 벨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내가 그동안 외상을 한 것도 아니고, 이거 너무한 거 아니야?’
“지금 내가 망했다고 손님을 가려 받겠다는 거야 뭐야?”
성난 벨이 따지자 가게 주인이 곤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게 아니라 진짜 없다니까? 내가 어제부터 양조장에 찾아가 맥주를 주문해도 없다고 하는데, 내가 뭘 어쩌겠어?”
“개소리 그만하고. 어서 맥주나 가져와.”
“아니, 진짜라니까?”
“아니, 이 자식이!”
화가 난 벨이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선술집 주인인 버칸의 멱살을 잡았다.
“내가 언제 외상을 한 적이 있어 깽판을 부린 적이 있어! 왜 맥주가 없다고 지랄이야 지랄은!”
“아니, 진짜 없는 걸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진짜 없다니까?”
“그러니까 그게 무슨 개소리냐고! 세상에 선술집에서 맥주가 없다는 게 말이나 돼? 그럼 뭐 가지고 장사를 하는데?”
“장사할 거야 많지. 와인도 있고, 다른 술도 있고. 독주도 있어.”
간신히 멱살 잡은 손을 떼어낸 선술집 주인 버칸이 벨의 눈치를 보며 말을 이었다.
“비싸서 그렇지.”
“진짜 너까지 이러기야? 내가 무역선 투자로 망했다고 너까지 이러면 되냐고! 내가 진짜 여기다 쓴 돈이 얼만데! 내가 아무리 망했어도 네가 이러면 안 되지!”
“아니, 진정하라니까. 우선 진정하고 내 말을 들어. 진짜야. 진짜라고! 양조장에서 팔 맥주가 없대. 누가 싸그리 쓸어갔다니까?”
“그러니까 그게 뭔 개소리냐고! 누가 맥주 따위를 그렇게 싹 쓸어가! 대체 누가!”
그때.
선술집 안으로 헐레벌떡 뛰어 들어온 이가 있었으니.
그는 벨만큼은 아니었지만 무역선 투자가 잘못되어 가지고 있던 재산 중 절반이나 날려버린 구둣가게 주인 밥이었다.
“어, 여기 있었군!”
헐레벌떡 뛰어온 밥은 벨에게 곧바로 말을 붙였다.
“자네, 그 얘기 들었어?”
맥주 일로 기분이 나빠진 벨이 퉁명스럽게 대꾸해 주었다.
“얘기? 뭔 얘기. 안 그래도 저놈이 시답잖은 일로 시비를 걸어서 기분 잡치고 있었는데.”
“아, 글쎄, 여기 길드장 동생이 있잖아. 그 동생이 여기 맥주란 맥주는 전부 싹쓸이를 하고 있대.”
선술집 주인의 태도로 기분이 나빠지려고 했던 벨이 곧바로 의아함을 드러냈다.
“뭐? 그게 뭔 개소리야? 여기 맥주를 싹쓸이하고 있다니.”
허겁지겁 찾아온 밥은 확인 차 선술집 주인 버칸에게 물었다.
“여기도 맥주가 없는 거야? 지금 다른 곳도 아예 없다고 하던데.”
그 말에 억울함을 호소하려는 듯.
버칸이 벨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당연히 없지. 아니, 양조장에 가서도 안 파는 걸 내가 어떻게 가지고 있어.”
그 말에 벨은 의문이 아닐 수가 없었다.
“아니, 맥주가 왜 없어. 그 흔하디흔한 맥주가 갑자기 없다는 게 말이나 돼?”
그러자 답답한 마음에서 제 가슴을 두들기는 밥이 벨에게 설명하듯 말해주었다.
“그래서 내가 아까 말했잖아. 지금 그 길드장 동생이란 사람이 여기 맥주란 맥주는 전부 싹 쓸어가고 있다고.”
“아니, 그런 짓을 왜 하는 거야?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야?”
“내가 그걸 어떻게 알겠어. 나도 모르니까 이러고 있는 거지.”
“그런데 자네는 그걸 어떻게 알았는데?”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모닝글로리 호로 인해 가진 재산의 반이나 날린 밥이었지만, 그래도 한 번 맛본 자본주의의 뿅맛은 도무지 끊을 길이 없어 완전히 패가망신한 벨과 다르게 매일 같이 증권거래소를 드나들고 있었다.
또 다른 재기를 노리면서 말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거래소 직원들과 친해지게 됐고, 그런 연유로 거래소 직원들에게 현재 맥주 사재기를 하고 있는 길드장 동생 이야기를 우연히 들었던 것이다.
“뭔지는 몰라도 그 일 때문에 양조장 증권 가격이 세상에 두 배나 뛰었어. 내가 뭔가 싶어서 바로 그쪽 거래소 직원들한테 물어봤지.”
“그래서 그럼 그 길드장 동생이 여기 맥주를 싹쓸이하고 있다는 거야?”
“글쎄 그렇다니까. 그러니까 내가 지금 이러고 있는 거잖아. 진짜인지 확인하려고 여기까지 달려왔어.”
벨은 아직도 의문이었다.
“아니, 왜?”
“그야 나도 모르지.”
“하하…… 아니, 무슨 맥주가…… 맥주로 대체 뭘 한다고. 그거 다 처마실 것도 아니잖아?”
“그렇기야 하겠지. 아니, 그렇게나 돈 많은 사람이 뭐가 아쉽다고 서민들이나 홀짝이는 맥주나 처마시겠어. 마셔도 비싼 양주나 홀짝이겠지.”
“그럼 뭐야?”
“나도 모른다니까?”
이내 둘의 시선은 선술집 주인인 버칸에게 향했다.
“자네는 뭐 아는 거 없어?”
“아는 거 있으면 좀 말 좀 해봐.”
버칸도 사정을 알지 못해 답답하긴 마찬가지였다.
맥주가 매상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데, 그 맥주가 없으니 속이 터질 지경이었다.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며칠 전부터 매출이 반 토막이 났어. 나도 궁금하다고. 아니, 왜 관계도 없는 맥주까지 건들고 지랄이야. 그렇게 해 처먹을 게 없어서 그런 건가?”
“다른 술은?”
“다른 술이야 있지.”
“그대로야?”
“전부 그대로야. 다른 술이야 아무 문제 없다고. 그냥 맥주만 지랄이야. 아주 맥주만 지랄 났다고.”
“허…….”
답을 찾지 못한 셋은 허공에 긴 탄식만 늘어놓은 채 영문 모를 짓을 저지른 길드장 동생만 머릿속에 그려놓고 있었다.
“대체 뭐 하러…….”
“도무지 모르겠는데. 그걸로 장사라도 하려는 건가?”
“흐음…… 그런데 왜 다른 술은 가만히 놔두고 가장 싼 맥주만 조지는 거야?”
“그러니까 그걸 모르겠다고.”
“갑자기 정신병 같은 게 도진 건 아닐 테고?”
“이봐, 그 사람 길드장 동생이야. 그 길드장이란 사람은 이제 제국 실세고.”
“아, 그게 그렇게 됐어?”
“이 사람 봐. 그렇게 세간 소식에 어두워서야 쯧쯧쯧.”
답을 찾지 못한 셋이 헛소리만 늘어놓고 있을 때.
오랜만에 낯익은 얼굴이 선술집 안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그들 중 가장 성공한 구두닦이 샘이었다.
“아니, 샘이잖아?”
“이런 벌건 대낮부터 무슨…….”
“저쪽으로 이사 가지 않았어? 이제 이런 데 안 살고 좋은 데 살잖아.”
“대저택이라고 하던데…….”
어느샌가 선술집 주인에게 다가온 샘이 그에게 무언가를 물어보았다.
밥이 물어본 것과 똑같은 것이었다.
“여기도 맥주가 없습니까?
“맥주요? 예, 맥주는 지금 없습니다.”
“역시나 여기도 없군요. 네, 알겠습니다. 수고하십쇼.”
사실 확인을 마친 샘이 밖으로 나가자 이를 지켜보고 있던 벨과 밥의 시선이 허공에서 잠시 만났다.
그리고 둘은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곧장 샘을 쫓아갔다.
샘이 육두마차에 오르기 전에 간신히 붙잡은 밥이 예전에 자신 밑에서 구두나 닦던 샘에게 공손히 물어보았다.
“저기 샘, 여긴 어쩐 일로 온 거야. 최근에 얼굴도 안 보이고.”
이제 노는 물이 달라진 상태라 샘도 딱히 밥에게 인사치레조차 할 생각이 없었지만, 그래도 예의상 고개는 까딱거려주었다.
“밥 아저씨군요.”
“그래, 여긴 어쩐 일로 온 거야?”
“그냥 확인 차 들렀습니다. 최근 들어 흥미로운 소식을 들었거든요.”